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나는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분류

천년왕국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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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6월호>

인생 여정을 걸어오는 동안 내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니 드릴 것은 “감사”밖에 없다. 굽이굽이 나의 그 인생길에 함께해 주신 주님을 이 시간 자랑하고자 한다. 내가 어떻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나의 삶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주님께서 어떻게 관여하셨는지 나누고자 한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친한 친구가 다니는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성가대 활동을 하고 미사에 참여하며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으나, 그때는 하나님에 대해 그저 막연하고 초월적인 어떤 거대한 존재가 계시니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소위 미션 스쿨을 다녔기에 학교생활 중에는 늘 채플 시간이 있었다. 주중에는 학교에서, 주말에는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는 있었지만 정작 구체적인 복음은 들어 보지 못했다. 성당에서도 주로 교리 문답 공부를 하거나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강론을 들었을 뿐, 성경 공부다운 성경 공부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도 명동성당에서 하고, 아이들도 유아 세례를 받게 하였으며, 성당의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였으나 신앙심이 자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나마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90년대에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의 강론을 들으며 정의감에 불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성당에서 듣는 인문학과 철학 등이 주를 이루는 강론들은 내 마음에 들어오질 않았다. 귓가에 둥둥 떠다니기만 하여 도무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 점차 미사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불교 신자이셨던 어머니가 절에서 염불을 외우는 것처럼, 성당에서 계속 묵주를 돌리며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일이 지겨웠다. 여러 규율을 지켜야 하는 것도 힘들기만 했다. 결국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그나마 찾던 하나님도 잊혀갔다. 내 간절한 기도에 침묵하시는 하나님도 원망스러웠다. 따라서 내 발길은 하나님에게서 영영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열정적 기질을 가진 나는 아이들 교육에도 지나치게 열정을 쏟다 보니 점점 지쳐 갔다. 하지만 부모가 앞서 이끌기만 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나의 열정을 아이들이 아닌 나 자신의 성장에 쏟기로 결심하고 그림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원래 공예를 전공했기에 유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으나 그 무렵 유화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실기만으로는 예술의 본질을 체득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예술학 공부를 병행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불교 미술을 접하며 불교 사상에도 흥미를 느꼈고, <선의 나침반> 같은 철학서를 탐독하거나 조계사에서 기초 교리를 수강하며 배움을 확장했다.

부처란 “깨달은 인간”이라는 중의 설명을 듣고서, 어떤 중에게 나중에 병들고 아프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돌을 배낭에 잔뜩 넣어 짊어지고 강물에 빠져서 죽어야죠.”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농담 같은 대답을 듣고, 불교는 희망도 없고 구원도 없는 막연한 철학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본질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으며, 현생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직감 아래 내세에 대한 해답을 갈구했다. 하지만 천주교와 불교 그 어디에서도 나를 납득시킬 만한 명쾌하고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교회에 발을 들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이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목사와 교회가 도처에 널려 있으며, 교회는 이단과 사이비가 횡행하는 가장 부패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간은 덧없이 흘러 2019년에 다다랐다. 당시 둘째 아들은 인생의 본질에 대해 유독 깊은 고민을 했다. 아마도 나와 닮은 기질이나 사고방식을 가졌기에 겪는 과정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아들은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종교 영상을 접하던 중, 성경침례교회와 그 협력 사역인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알게 되어 내게 소개해 주었다. 처음에는 혹여나 아들이 잘못된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부러 아들과 함께 설교를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설교는 그동안 내가 교회에 대해 가졌던 모든 편견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참된 복음의 정수였으며, 거대한 영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며, 나의 모든 죄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진리였다. 이 사실을 믿고 죄인임을 진심으로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놀라운 소식, “복음”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전부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통감하고 있었기에, 말할 수 없는 감사함과 송구한 마음을 안고 죄인임을 자백했다.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시는 영접 기도를 온 마음을 다해서 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구원과 영생이라는 값진 선물을 거저 받게 되었다. 그때 나와 함께 죄를 회개하고 영접 기도를 했던 둘째 아들은, 구원의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전국의 성경침례교회 목사님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상담을 청했다. 마침내 인천성경침례교회 목사님과 상담하던 중에 우리 가족은 마음의 안식처를 찾고 그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당에 다닐 적에는 주로 교리 문답이나 주보를 읽는 것이 전부였다. 성경은 내게 너무나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졌고 누구 하나 명쾌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자연히 성경은 제대로 펼쳐 읽는 것조차 버거운 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쉽고 재미있게 읽혀 신기할 정도였다. 기존의 대다수 교회와 성당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무려 36,000군데나 변개되었고, 신약에서만 2,200단어 이상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성경을 사용하니 진리의 지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오늘날 기독교계에 타락과 배교가 만연한 것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매 순간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 보호해 주셨으며, 그분의 선하신 섭리로 인생을 이끌어 주셨음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깊이 체감하고 있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식을 키우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첫째 아들은 비교적 키우기에 수월하고 무난히 잘 커 주었지만, 둘째 아들은 눈물과 기도의 시간, 그리고 인내가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둘째 아들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고, 바른 말씀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알려 주셨으며, 성경대로 믿는 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성경침례교회로 안내해 주셨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의 기도 제목이 되었는지 모른다.

한번은 친구가 “네 둘째 아들이 너희 가정의 축복의 통로가 될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었더니 “힘들고 부족하고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더 드러나고, 약할 때 강함이 되어 주시는 주님을 더 찬양하고 높여 드릴 수 있지 않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젠 나도 친구의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둘째 아들로 인해 나뿐만 아니라 큰아들, 그리고 남편도 구원을 받았고, 온 가족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된 사도행전 16:31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단순히 기술적인 숙련을 넘어 작품에 정체성과 민족성, 시대성을 담아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을 통해 내가 꿈꾸는 이상향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끝없는 욕망을 상징하는 바벨탑 같은 자본주의의 부패한 현실을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하여 풍자하는 작업을 이어 왔다.

그러나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라는 말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이 말씀 때문에 더 이상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민하며 성경을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하나님께 내 삶의 올바른 방향을 알려 주시라는 기도도 쉬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이사야 11:6,7을 읽다가 영감이 떠올랐다. 『또한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 말하자면 내가 항상 꿈꾸던 이상향은 다름 아닌 성경에 나오는 “천년왕국”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모든 육식 동물들이 야수성을 잃고 초식 동물이 되어 인간과 평화롭게 지내는 세상! 자연계가 아담의 타락 이전으로 완전히 회복된 세상, 바로 천년왕국!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천년왕국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내게 너무도 달콤하고 즐거운 선물로 주어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를 고난을 통해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시키신다. 신구약 성경 66권 통독을 마친 후 가장 궁금했던 책은 “욥기”였다. 욥기는 “의인이 왜 고통을 받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럭크만 목사님의 주석서를 읽으며 고난이 믿음을 견고하게 성장시킨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위로를 깨달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 또한 품게 되었다. 고난 속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로 삼게 하셨으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 교회로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의 놀랍고 거룩한 은혜에 감사가 넘친다. 이제 내 인생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남은 삶 동안 항상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리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매 순간 악에서 보호하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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