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분류
영원한 웃음을 주시는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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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6월호>
나는 고3 무렵에 구원받았다. 대한민국 수험생이라면 한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다는 고3 스트레스. 그런데 내겐 그 시기가 더 특별했다. 덕분에 내 한계를 깨닫고 주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아버지가 교직 생활 중에 조카에게 사기를 당해 졸지에 재산을 잃는 바람에 술에 취해 그놈을 찾아 죽이겠다며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곤 하셨다. 사는 낙이라고는 내가 학교에서 받아오는 상장을 벽에 잔뜩 붙여 놓고 친척들에게 자랑하는 것뿐이었다. 가난하고 힘든 집에서 그렇게 가족의 기대를 받고 크면서 공부에 대해 더 자만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중3 때 전교 1등과 같은 반이 됐는데 작정하고 공부했더니 700여 명 중에서 10명에게 상을 주는 경시대회에서 그 아이를 물리치고 내가 상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공은 이후 내 인생에 독으로 작용했다. 안 그래도 게을렀는데 “난 언제든 하면 되는구나.”라는 교만에 사로잡혀 더욱 게을러졌다.
한편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던 때라 진리에 갈급하기도 했다. 문학을 좋아해서 독서를 즐겼는데 책을 읽고 나면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책 속에서야 작가의 가치관이 절대적이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고 책마다, 작가마다, 시대마다 가치관이 다 달랐다. 절대적인 것을 찾다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를 찾았으니, 바로 죽음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얼마나 허무한가. 때마침 입시 준비는 재미도 없고 어찌나 어렵던지. 그런 공부를 왜 해야 하며,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후회 없이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답을 못 찾자 그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겠다는 근본적인 동기도 갖지 못했다.
위와 같은 생각에 빠져 지내다 우연히 TV에서 고3 수험생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불현듯 내가 고3이라는 현실 감각이 돌아오면서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자책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족의 기대로 인한 부담감이 함께 몰려왔다. 게다가 공부를 만만히 보고 게을리 지내다가 뒤늦게 밀린 양을 채우려다 보니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나도 두려움 때문에 책을 볼 수 없었고, 밤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다 더 이상 못 살겠다 싶어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왔다. 하지만 막상 실행하려니 너무 아팠고, 또 죽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칼을 다시 갖다 놓고 새벽 2시, 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예수님께 기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예수님!” 하고 이름을 불렀는데, 그때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본 적이 없었다. 교회를 다니니까 당연히 믿는다고 여겨 왔는데, 죽음이라는 절박함 앞에 서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당장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다. 뭘 보고 진짜로 믿는단 말인가. 믿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허공에 대고 정직하게 말했다. “예수님, 진짜 계세요? 진짜 계시다면 내가 알게 해 주세요.” 주님께서는 다 듣고 계셨지만 그마저도 모르던 나는 예수님이 계시다고 가정하고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때 구원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종교놀이를 버리고 신앙에 대해 진지해지는 계기는 됐고, 곧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어느 날 네비게이토에서 만든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이라는 전도지를 읽고,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채로 너희의 눈 앞에 분명히 제시되었는데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누가 너희를 미혹하더냐?』(갈 3:1)라는 말씀으로 주님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셨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던 것이다. 영접 기도를 했던 그날, 난 자면서 쉼을 얻었고(마 11:28) 그때 그 잠을 평생 잊지 못한다. 죄인이 죄를 해결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후 얻은 꿀잠이었다. 그렇게 오래 교회에 다녔는데 왜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는지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교회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목사가 많음을 점차 알게 됐다.
대학에 가서 UBF라는 선교 단체에 들어갔다. 대학 선교가 활발했던 당시, 다른 단체에서는 교재로 성경을 가르쳤지만 UBF에서는 성경 자체로 성경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거기서 개역성경을 공부하고 훈련받다가 결혼도 했다. 나중에 바른 성경을 알고 나서 창세기 1:1부터 변개됐고 전체에서는 36,000군데나 변개됐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사탄이 망가트린 오류투성이 성경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했으니 얼마나 많이 사탄의 함정에 빠졌겠는가. 개역성경의 마태복음 28:19,20의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에 근거해 제자 훈련을 받았는데, 거기서 “제자”는 첨가된 말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제자로 훈련하는 일은 성경에 없는 일이었다.
UBF에서 많은 일들을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곳을 나왔다. 뭔가 잘못됐고 힘만 드는데 그 이유를 성경적으로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인천 UBF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러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웃인 우크라이나의 대학에 한국어과를 개설하니 교사 자격증 소지자라면 선교사로 지원하라고 권유했다. 내게 딱 맞는 조건이었다. 내게도 선교의 문이 열리면 가겠노라고 평소에 기도해 왔던 터라 비록 UBF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다 뒤로하고 출국했다. 하지만 나가 보니 국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문제까지 여실히 보였다. 성경 어디에 대학생만을 선교 대상으로 삼으라고 했던가! 다른 선교 단체는 대학생들을 교내에서 훈련시켜 교회로 보냈는데, UBF는 재학생과 학사들로만 교회를 형성해서 졸업 후에도 나가지 못하게 붙들어 두었다. 갓 회심한 어린양들에게 대학에서 주님을 만났으니 “캠퍼스 선교”에 헌신하도록 성경에도 없는 맹세를 하게 했다. 그러니 UBF에서 나오면 하나님을 배반한 양 양심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는 순전히 UBF 설립자 이사무엘(이창우) 한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또 UBF는 자비량 선교를 원칙으로 했다. 즉 선교회 측에서 돈 쓸 일이 없다 보니 UBF가 단시간에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가족에게서 받는 지원도 금했다. 선교지에서 하나님만 의지해 생업을 유지하고 바울처럼 스스로 번 물질로 교회를 섬겨야 가장 덕스럽다고 교육받았다. 문제는 타국의 생업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선교 대상이 아니므로 예배에 초청하지 못했다. 시간을 따로 내어 대학생만을 성경 공부에 초대해 현지어로 제자를 삼아야 했는데, 이중, 삼중으로 힘든 일이었고 평생을 사역해 성공했다는 선교사도 열매가 한둘에 불과했다. 성경적이라면 단 한 명의 열매라도 의미가 있지만 UBF는 제자 삼는다는 명목으로 “UBF 사람”을 만들어 조직에 남기는 데 초점을 뒀다. 거기에다 미성숙한 지도자에게 무조건 순종하도록 요구해서 순수하게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한 동료 선교사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결국 더 두고 볼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UBF 사역을 접고 귀국했다. 그 후 6개월쯤 뒤 전 세계 UBF 지도자들의 성적, 물질적 타락상이 선교사들에 의해 공개됐다. 이어서 이사무엘 선교사는 자택 화재 현장에서 사망했고, 그가 자랑했던 UBF 역사 역시 타 버린 집과 함께 사라졌다.
그 뒤 거듭났다고 판단되는 목사를 찾아 신앙생활을 하다가 암 수술을 받았는데 예후가 좋지 않은 희귀 암이었다. 수술은 잘 됐지만 어느 날 나 자신을 보니 추적 관찰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 연명할 뿐이었다. 이제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 싶어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요한계시록의 “계시”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휘장을 열어젖히다, 밝히 보여 주다”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성경 66권 중에 책 제목 자체가 밝히 보여 주는 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왜 하나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요한계시록에 대한 두 입장, 즉 전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가 나왔다. 근거를 보니 성경을 정말 눈곱만큼이라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천년주의 편에 서는 것이 옳았다. 아니, 예수님께서 아직 오시지를 않았는데 무슨 후천년주의며, 무천년주의란 말인가. 그러다 말씀보존학회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알게 됐다. 자기들만 참 신앙인으로 내세우는 이단으로만 알았는데 설교를 들어 보니 그 반대였다.
비록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바른 성경에 기초한 성경침례교회에서 경배 드리고 신학교에서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공부하면서 20년이 넘도록 듣지 못한 진리를 환하게 알아가는 중이다. 몸과 혼과 영으로 된 인간의 구조, 세상과 사탄과 육신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적들, 성경의 주제인 왕국, 구원받은 성도가 준비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세대주의와 전천년주의 등 지면의 제한으로 다 쓰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지 귀한 진리를 얼마나 명쾌하게 배우고 있는지 모른다. 동시에 치열하게 영적 싸움도 치르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구령했더니 부모들이 등원을 중단시켰고, 교회 다닌다는 부모들에게서 조롱과 공격을 받았다. 세상과 짝한 채 하나님을 믿는 척하며 바른 말씀과 바른 실행을 멸시하는 가짜들에게 둘러싸여 살자니 지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 말씀을 떠올린다. 『내가 나의 길들을 생각하고 내 발길을 주의 증거들로 돌렸나이다』(시 119:59). 썩고 사라져 버릴 이 땅에 조금도 소망을 두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잠시 웃다가 사라질 기쁨이 아니라 영원하다. 주님께 순종하는 길에 고난이 따르더라도 그것이 『영원한 영광의 비중』(고후 4:17)을 이뤄 참으로 영원히 웃을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