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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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방법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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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3월호>

모슬렘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폭력을 “성전”(Jihad)이라 이름 붙여 젊은이들을 세뇌시킨다. 알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거나,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면 즉시 낙원으로 가서 배꼽춤을 추는 여자들 70명과 함께 살면서 술과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다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영국, 미국 등 각처에서 끊이지 않고 모슬렘들에 의한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예전에 이라크에서는 50대의 한 여인이 처녀들을 강간당하게 만든 뒤, 이슬람 사회의 특성상 그러한 수치를 당하고서는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폭에 동원되도록 만든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 처녀들도 낙원에 가서 70명의 남자들과 놀아나는가? 코란은 참으로 상식 이하의 책이다.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신도교, 로마카톨릭, 문선명의 통일교에 이르기까지, 종교들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정해진 규례들대로 행하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규례를 지킨다고 해서 무슨 염원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어떤 종류이기에 그들을 추종하는 인간들이 정한 대로 그 염원을 들어준다는 말인가? 하긴 그들이 섬기는 대상들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부처상으로부터 소, 염소, 원숭이, 코브라, 악어, 두꺼비, 개구리 심지어 파리까지 있으니 그들의 믿음에 “상식”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시도일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적어도 네 가지가 필연적으로 있게 된다. 종교, 쓰레기, 술, 싸움(갈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지구상의 인류 가운데 종교가 없는 종족은 발견되지 않는다.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미 대륙의 인디언, 코디액 같은 섬들에 사는 알류트족, 아프리카 오지의 미개인들, 사하라 사막의 베두인족, 인도네시아 섬들의 종족들 등을 전부 살펴봐도 종교가 없는 종족은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숭앙해야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려 홍수로 집이 떠내려가고, 산불이 나서 모든 것을 태워 버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맹수에게 잡아먹히고,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으로 목숨과 배를 잃고, 또 가뭄이 심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 인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도움을 갈구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을 숭앙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의 때에 이집트에는 수많은 거짓 신들이 있었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그러한 거짓 신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전역에 내리셨던 열 가지 재앙은 물, 땅, 개구리, 파리, 소, 곤충, 대기, 태양 등의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 본질상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기는 땅으로부터 그분께서 택하신 백성을 분리해 내신 목적은 제사장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심이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어떻게 하였으며, 내가 어떻게 독수리들의 날개들로 너희를 실어 내게로 데려왔는지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 하시니라』(출 19:4-6). 그러나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이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제사장 민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던 것이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그들은 배교함으로써 나라를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셨던, 모든 민족들에게 롤 모델이 되는 신정통치 왕국은 잠시 연기되고 말았다.

유대인들이 실족함으로 인하여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교회 시대의 경륜이 펼쳐졌다. 『도리어 그들의 실족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그들로 시기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11:11). 말하자면 비록 유대인 출신이 아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나면 “제사장” 직분이 맡겨지는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자비를 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자비를 받았느니라』(벧전 2:9,10).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영 버리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하여 원수가 되었으나 선택에 있어서는 그들의 조상으로 인하여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 이와 같이 이제 이들이 믿지 아니한 것은 너희의 자비를 통하여 그들도 자비를 얻게 하려 함이라』(롬 11:28,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고 하신 약속은 위의 로마서 11장 외에도 이사야 49:12-23; 60:1-22, 에스겔 36:24-28, 스카랴 12:9-11, 히브리서 8:9-13 등의 수많은 구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으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특권은 모두 자신들에게로 넘어왔다고 거짓말하면서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이것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유대인은 혈통으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신 바에 따른 것이다. 『내가 나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 사이에 대대로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씨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에게 네가 타국인으로 있는 땅, 즉 카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17:7,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에는 어떤 조건을 위반하면 취소된다는 조항이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인 유대인들에게 영원히, 무조건적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신성모독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으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특권은 모두 자신들에게로 넘어왔다고 거짓말하면서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이것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유대인은 혈통으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창 17:7,8)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영원히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말을 오해하지 말라. 이 말은 그들 개개인의 구원이 무조건 보장된다는 말은 아니다. 소속원들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의 여부는 유대인들의 구원과 교회 시대 성도들의 구원 사이의 차이를 잘 보여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출 4:2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낳으셨다”고까지 말씀하셨다(신 32:18). 그렇지만 유대인 한 사람이 지옥에 간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여전히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건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낳으신 아들을 지옥에 보내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시대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개개인이 성령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요 1:12).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지옥에 보내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현 시대의 성도들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롬 8장).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다르다. 그럼에도 로마카톨릭은 유대인들이 받았던 할례가 이제 유아세례로 대체되었다는 이론에 따라 물뿌림을 받으면 “카톨릭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1,600년 동안 가르쳐 왔다. 구약의 율법을 따라 살았던 유대인들이 구원 받는 방법을 현 시대의 구원에 적용하려다 보니, 행위를 구원과 연결시키는 비성경적인 교리를 붙들게 된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현재와 같이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은 행위가 동반되어야 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나온다(신 32:20, 합 2:4).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믿음”이 200회 이상 나온다. 구약과 신약의 구원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신약성경은 곳곳에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나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인하여 온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갈 2:21). 우리의 구원이 행위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인가를 해서 구원받았다면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구원받았기에,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잃어버릴 것이 없다.


세례나 과자 부스러기나 예배나 미사로는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없다. 인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모든 죄 문제를 단번에 처리하실 수 있는 구주로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교황도, 그 외 추기경, 대주교, 주교도, 또 개신교 목사와 장로, 집사, 권사도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정죄를 받아야 한다.

사람들이 지옥행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치워 버리고 인간이 만든 제도와 규례를 따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4:12). 예수님께서도 초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점을 힐책하셨다.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또한 어찌하여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너희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말하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5:3,7-9). 인간의 발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것만큼 불경스러운 일도 없다. 자신을 종교 지도자라고 불렀든, 설교자라고 불렀든 복음을 전하는 건 고사하고 성경에 없는 일들, 그것도 주로 세상과 연관된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세상에서 인정받았다면 그는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요, 세상에 속한 사람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종교 지도자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시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세상은 그를 대적하고 박해하며 거부하게 되어 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은 너희를 미워하기 이전에 나를 미워한 것임을 알라.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세상으로부터 선택하였느니라. 이로 인하여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종이 자기 주인보다 더 위대하지 못하다.’고 너희에게 일렀던 나의 말을 기억하라. 만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다면 너희도 박해하리라. 만일 사람들이 나의 말을 지켰다면 너희 말도 지키리라. 그러나 그들이 이 모든 일들을 내 이름으로 인하여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요 15:18-21).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 기도조차 하지 않으셨다(요 17:9).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 같은 것을 준비하느라 부산한 자들은 소경이면서도 소경을 인도하려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물론 우리는 국가의 법을 준수하기에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등을 성실하게 다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세는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되 국세를 낼 자에게 국세를 내고 관세를 낼 자에게 관세를 내며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1,7).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나, 세상을 변혁하려고 애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님께서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모슬렘들이나 로마카톨릭 교황들처럼 종교적 권력을 정치적 권력으로 치환하려 드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목사나 중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행태는 “신실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종교심으로부터 비롯된 종교 지도자들의 인간적 권위를,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자들보다 위에 놓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에 의해 자행된 박해와 종교 전쟁으로 인해 수천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중세 암흑시대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종교 행위에 얼마나 공을 들였건 간에 복음을 믿고 구원받지 않았다면 그 종착지는 지옥이다. 세상에서 무슨 짓을 하며 살았든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늘나라에 가려 했다면 썩은 동아줄을 붙잡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하신다(히 9:27). 그 심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는 이런저런 율례들을 다 잘 지켰습니다. 저는 깨끗해요. 죄가 없단 말입니다. 오히려 제게 보상을 주셔야죠.”라고 말하는 모든 입을 다물게 하시고(롬 3:19), 그들을 영원한 불길 속으로 던지실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의로워질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사람만이 그 심판을 면제받고, 자신의 섬김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그분의 방법을 신뢰한 사람들을 이처럼 후하게 대우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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