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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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까지 신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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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6월호>

미국 서부에는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이라고 불리는 간헐천이 있다. 그 이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온천이 계속 솟아오를 게 분명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으리라. 당신은 『지극히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신실하며, 또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하니라.』(눅 16:10)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성경은 “신실함”에 대해 이외에도 여러 구절에서 말씀한다. 『오 만군의 주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또 주를 두르고 있는 주의 신실하심과 같이 강한 주가 누구리이까?』(시 89:8) 시편 89편을 보면 특히 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다(시 89:1,2,5,8,24,33).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 잠언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간결한 진술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선함을 선언하나, 누가 신실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요?』(잠 20:6)

우리는 “신실한 누구”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성경에도 그런 사례가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브라함은 신실함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갈라디아서 3:9에서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FAITHFUL Abraham]』이라고 불린다. 모세와 우리 주님도 신실함의 좋은 본이 된다(히 3:1-6). 우리가 어떤 사역자에 대해 신실하다고 할 때는 그가 신뢰할 만한, 곧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들을 마치 “신탁 관리인들”(trustees)처럼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분이시다. 시편 말씀에서 읽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오 하나님 나의 아버지, 주의 신실하심은 크시도다. 주께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나이다!”라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한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전달하시는 데 있어서 신실하시다. 그분께서는 누군가가 기만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당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의심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진리를 얻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요 14:6), 당신이 그 진리를 소유하길 원하신다. 학자들이 세상의 온갖 방법으로 당신을 망치려 들고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전달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허물과 죄들 가운데 죽어 더럽혀진 채로 태어난 것을 아시며,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신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당신은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을 도우려 하신다. 이 도움의 손길은 신뢰할 만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변인과 물건들이 당신을 더럽힌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 더럽혀질 장소를 찾아간다는 것을 아신다. 당신을 유혹하고 나쁜 짓을 하게 하는 사람들, 부정한 것들, 장소들을 알고 계시는 것이다. 어쩌면 이단이나 오컬트 매체가 당신을 더럽히고 있을지 모른다. 위저보드(강령술 도구), 마법, 포르노, 마약, 록 음악 같은 것을 가지고 장난치다 망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 주님은 당신에게 최선인 것을 원하시기에, 그런 것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려 하신다. 친구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문제에 있어 믿음직한 분이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필요를 채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영광 가운데서 그의 풍요함을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빌 4:19).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무신론자라면 몰라도,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이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그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고, 지금도 그렇게 하신다. 마을 전체와 도시를 날려 버리는 허리케인을 보라!

“신실함”(faithfulness)이라는 단어는 “믿음”(faith)에서 왔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어떤 환경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주변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새 예루살렘을 계속 믿는다.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지옥도 계속 믿는다. 그것도 본 적이 없다. 내 주변에는 끝없는 고속도로, 건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지금 하나님의 보좌를 두른 무지개나 네 짐승을 볼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2,000년이나 된 말씀과 진리를 설교해 왔고, 또 계속 설교할 것이다! 왜인가? 환경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발견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함을 요구하시고, 신실함에 보상하는 분이시다. 신실함이란 막연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전 4:2). 바로 이것이다. 당신이 주님께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마 25:21)라는 보상의 말씀을 들으려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 믿음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나는 지금 눈에 보이는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주님께서 돌아오실 것을 믿는다. 또 이 땅에 오셔서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실 것을 믿는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 외에 다른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산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누구라도 뒤로 물러나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 이 말씀은 설령 당신의 믿음이 약해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어쨌든 계속 나아가며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신실함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신실하라.』라고 명령하셨으며,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다(계 2:10).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처소를 마련하시면 돌아오셔서 우리도 그곳에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2,3). 세상은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가? 나는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신실해질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라면 이야기할 만한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부지런히 일하는 자가 돼라.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돼라. 실제로 행하라!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비록 사실이기는 하나(엡 2:8-10), 성경은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라고도 말씀하신다.

부지런히 일하라. 게으름뱅이가 되지 말라. 인생을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는 기간으로 여기라. 당신의 가족도, 집도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것으로 여기라. 당신은 언젠가 그것들을 내놓아야 한다(눅 16:2).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럭크만, 내가 네게 이 교회를 주었다. 너는 그것으로 무엇을 했느냐? 학교도 주었다. 너는 그것으로 무엇을 했느냐? 네게 가족도 주었다. 너는 그것으로 무엇을 했느냐? 또한 네게 진리의 성경을 주었다. 너는 그것으로 무엇을 했느냐? 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재능을 주었다. 너는 그것으로 무엇을 했느냐?” 주님께서는 반드시 청지기 직분을 청산하라 하시며 결산을 요구하실 것이다! 돈도,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낭비하지 말라! 신실한 사람은 시간도 돈도 낭비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현명하게 쓰되, 이기적으로 움켜쥐지는 말라.

다음으로, 주님을 위해 더 값진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 훌륭한 청지기가 돼라. 하나님께 “나를 들어쓰셔서 무언가 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구하라. 할 일을 더 달라고 구하라. 밥존스대학에 다닐 때 나는 길거리나 감옥에서 설교하는 것 말고는 설교할 기회가 없었다. 설교자로 써 주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차를 몰고 가면서 큰 교회들이 보이면 “와, 나도 저런 곳에서 설교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몇 년 후, 나는 정말로 큰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시 감옥에서 사역하게 되었는데, 사실 교회보다 감옥에서 사역할 때 마음이 더 좋다!

당신이 신실해지지 못하도록 마귀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중 첫 번째는 “낙담”이다. 당신은 타인의 행실을 보면서 낙담할 수 있다. 이때 가장 좋은 치료책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눈을 고정하는 것이다. 빌리 그래함의 타협, 베니 힌의 속임수, 주변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부도덕한 설교자들의 행동 등을 보지 말라. 낙담했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치료책 가운데 하나는 “활동”하는 것이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할 일을 찾아 실행하면 낙담이 많이 치료될 것이다.

다음으로 “억압”이 있다. 이때에는 억눌리고 짓눌린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님 안에서 아무런 기쁨도 누리지 못하거나, 너무 많이 패배한 나머지 예전보다 걸음도 좀 느려지고 항상 겁먹은 것처럼 보인다. 삶에 대한 열정도 없고, 정말 뭘 해도 즐겁지 않다. 흔하지는 않지만 억압은 때로 어린 시절의 일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못된 아버지나 무관심한 어머니 때문에 상처를 받아 그렇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다 큰 어른이니 극복해야 한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나를 버릴 때에도 주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이다』(시 27:10, cf. 시 103:13, 사 66:13). 당신의 부모는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 주실 것이다!

뒷걸음질 치는 “퇴보,” 즉 타락 때문에도 신실함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런 일은 기대가 박살날 때 일어나곤 한다. 가령 사람들은 훌륭한 구령자로 살고자 하다가도 이겨온 사람들이 변변치 못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버리면 혼을 이겨오는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모든 회심자들이 잘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퇴보한다고 당신도 그만둘 수는 없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했다(빌 3:13).

“눌림”도 신실함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된다. 질병, 돈 문제, 가족 문제 등과 같은 실제적인 문제들 때문에, 성도들의 영이 꺾이는 것이다. 『사람의 영은 그의 병을 지탱할 것이나, 상처받은 영을 누가 견딜 수 있으랴?』(잠 18:14) 영이 상처 입거나 더럽혀진다면 당신의 영은 당신을 지탱할 수가 없게 된다. 주의하여 자신의 영을 늘 고양시켜야 하는 것이다.
“마귀 들림” 때문에 신실함을 상실할 수도 있다. 마귀는 당신의 혼을 소유할 수 없지만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성경은 마귀가 당신의 마음과 몸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한다. 이건 꽤 큰 부분이다! 예컨대, 마귀는 롯의 육신, 마음, 상상, 가족, 재산, 평판, 간증, 그의 건강까지도 앗아갔다!

신실함은 때로 “이집트로 돌아감”으로써 사라지고 만다. 낙담하고, 우울해하고, 압제당하고, 마귀 들리고, 그 밖의 모든 일을 겪으며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묘지에는 세상을 그리워한 나머지 결국 세상으로 돌아가서 살다가 죽은 사람들의 시신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세상에 속하고, 세상에게 인정받고, 세상이 그들을 수용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게 거부당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사 53:3). 바로 그 예수님께서 당신을 받아들이셨다.
왜 주님을 위해 신실하게 일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가? 당신을 거부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라. 부모가 당신을 악하게 대했다 해도 그들을 용서하라. 당신의 등 뒤에 칼을 꽂은 친구나 그리스도인도 용서하라. 쓴 뿌리는 던져 버리라. 목마르다고 하셨음에도 물 대신 식초를 받으신 분을 생각하라.

젊은 그리스도인들이여, 자신만의 사역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사역에 신실하라. 교회를 개척하고 싶은가? 현재 소속된 교회에 신실하라. 심는 그대로 거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지금 신실하지 않다면, 장래에도 신실하지 않을 것이다. 관리자가 되어 사업을 운영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 위에 있는 상사에게 신실하라. 군대에서는 계급이 낮을 때 받은 명령을 올바로 수행한 사람만이 후일 올바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관이 된다. 명령을 내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명령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라. 자매들도 주목하라! 『아내들아, 너희는 너희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가정을 꾸리기 원하는가? 그럼 부모님의 슬하에서 똑바로 하라.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당신의 소유로 주시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것을 제대로 돌보라.

“너희 신실하고 기쁨으로 충만하며 승리한 성도들이여 오라!”라는 오래된 찬송가 가사가 있다.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10). 눈에 보이는 주변 환경이 어려워도, 끝까지 신실하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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