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분류
“몸의 부활”을 부인하는 “개역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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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0월호>
“부활”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본질”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드려지셨고[죽음] 우리의 의롭게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부활]』(롬 4:25).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기에 우리의 죄가 제거될 수 있었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의롭게 될 수 있었다. “마틴 루터”도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활”은 “참된 종교와 참된 복음의 시금석”으로, 다른 종교는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다. “마호메트”는 부활하지 못했다. “공자”도 부활하지 못했다. “석가모니”도, “소크라테스”도, “조로아스터”도 부활하지 못했다. “부활”은 “예언”과 더불어 “성경적 기독교 신앙”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보다 “부활”에 대해 더 많이 강조했다. 누군가가 잘 설교했듯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뉴스”는 “무덤에서 온 소식”이었다!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말씀하셨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자리를 보라』(마 28:6). 그 자리는 “눈을 씻고 봐도” 완전히 비어 있다!미국의 “창조 과학”의 “선구자”인 “해리 림머”(Harry Rimmer, 1890-1952) 박사가 “어느 이슬람교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인간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이슬람교도”는 “우리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라고 대꾸했다. 이에 “림머” 박사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성경’을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고, 그 “이슬람교도” 역시 지지 않고 이렇게 대응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코란’을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셨다고 믿습니다.” 그 이후에도 서로 간에 몇 차례의 공방이 더 이어졌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언자 ‘마호메트’를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 역시 ‘마호메트’가 ‘그의 백성’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림머” 박사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말씀이 입증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때 그토록 자신감 있게 말해 오던 “이슬람교도”는 갑자기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마호메트’가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인간의 무덤들은 그 뼈들이 먼지와 재로 변하면서 영원히 침묵을 지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덤을 비우신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살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 『여수룬[이스라엘]에서 왕』(신 33:5)이었던 “모세”가 죽었을 때, 『그의 묘를 아는 자가 아무도』(신 34:6) 없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귀”는 “모세의 부활한 몸”에 대해 천사장 “미카엘”과 다투면서 논쟁을 걸기도 했다(유 1:9). 한편 “모세”는 출애굽 당시 이집트에서 빠져나올 때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뼈들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출 13:19). “요셉”은 세상의 예표인 “이집트”에 뼈들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특히 그는 150가지 이상의 항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예표하는 인물이다. 이렇듯 부활하신 예수님의 “뼈들”은 단 하나도 지상에 남아 있지 않고, 모두 다 “셋째 하늘”로 들어갔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뼈들이 이 땅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은 “실제 사건”이므로, “우리의 몸” 역시 죽게 되면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야 하고, 또 살아 있다면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어 “휴거”되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3,800여 년 전에 살았던 “욥”은 “몸의 실제적인 부활”을 믿었다. 『내 피부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뒤에라도 내가 내 몸을 입고[in my flesh]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 하지만 “변개된 성서들”은, “욥”이 “죽음 이후에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변개시켰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개역개정판).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개역한글판성경).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새번역, 『내 몸을 입고』를 “삭제”). 「내 가죽이 썩은 후에라도, 이 몸이 썩은 후에라도 내가 하나님을 뵐 것이네」(쉬운성경, 『내 몸을 입고』를 “삭제”). 이와 관련하여 “피터 럭크만” 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욥”이 자신이 한 말의 “교리적인 중요성”을 인지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명 “욥”이 이 말을 했다는 것이고, 그 말이 하나님의 『책』(욥 19:23)에 인쇄되고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 영원히』(욥 19:24) 기록되었다는 것이며, 또 “기록된” 그대로 “몸의 부활”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변개된 “RSV”는, “욥이 부활 때 그의 몸을 입지 않을 것이고, 그의 몸 밖에서 영적인 몸을 입게 될 것”이라고 번역했다. “ASV”도 『내 몸을 입고』를, “내 육체 밖에서”로 번역했고, “NEB”는 “내 옆에 서서”로 번역했다. 한편 『내가 내 몸을 입고 하나님을 보리라.』라는 말씀을, “내 옆에서 내가 누구를 보리요?”(윌리암스)라고 읽는 “바보들”이 있는가 하면, “내 옆에서 그분을 보기를 원하노라.”(모펫) 또는 “나에 관하여 응시하라.”(더멜로우)라고 이해하는 “어리석은 신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욥”이 분명하게 “몸의 부활”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서 “욥”이 직접 말한 “그의 증언”을 통해 확실하게 입증된다.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비록 내 콩팥이 내 안에서 소멸된다 해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눈으로 보리라』(욥 19:27). 하지만 “변개된 성서들”은 이 구절 역시 전혀 엉뚱한 의미로 왜곡시켜 버렸다.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를 통해 사람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개역개정판).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개역한글판성경).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 간장이 다 녹는구나!」(새번역). 「내가 그분을 내 두 눈으로 바라볼 걸세. 내 심장이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네」(쉬운성경).
실제적인 “몸의 부활”에 관한 말씀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한 성경은 “가짜 성경”이다. “몸의 부활”에 관한 교리를 올바르게 계시하지 못하는 성경은 “거짓 성경”이다. 또한 그런 “변개된 성서들”로 교회 및 신학교 강단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모두 “가짜들”이다. “참된 성경”이라면,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로 하여금 “몸의 부활”에 관한 “소망”을 확고하게 갖도록 해 주어야 한다.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벧전 1:3). 여러분의 성경은 “산 소망”을 갖게 하는 성경인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