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지역 교회 분류

제2과 교회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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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7월호>

본 「지역 교회」 코너는 피터 S. 럭크만 목사의 책 <지역 교회>(The Local Church)의 핵심 내용을 편집하여 정리한 것이다.

“교회”로 번역되는 단어인 “에클레시아”(e]kklhsi;a)는 성경에 총 117번 나온다. 그 가운데 하나(행 19:39)를 보면 “불러냄을 받은 모임”이기만 하다면 무엇이든지 “교회”라고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과의 핵심은 다양한 “교회들” 가운데서도 사도행전에 묘사된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 즉 사도행전 20장에 가서야 그 형태를 최종적으로 확정 짓는 모임과 가장 가까운 “불러냄을 받은 모임”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교회”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다섯 가지 용례로 사용된다. 1) “교회”는 이스라엘을 지칭할 수 있다(행 7:38). 2) “교회”는 이교도 모임을 지칭할 수 있는데(행 19:32,39,41), 가령 여학생 사교클럽, 남학생 사교클럽, 엘크스(Elks), 프리메이슨, 라이온스 클럽 등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3) “교회”는 죄 없이 완벽하게 영화롭게 된 교회를 지칭할 수 있다(엡 5:27). 4)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역 모임을 지칭할 수 있는데(계 1-3장), 성경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용례가 이것이다(롬 16:1,4,5,16, 행 15:3,4,22,41, 고전 4:17; 6:4; 7:17; 11:16; 14:4,5,12,19,23, 28,33 등등을 보라). 5) “교회”는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지칭할 수 있다(엡 1:22,23).

복음 전도자들과 성경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과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하나가 아닌 여러 지역 교회로부터 수입을 얻기 때문이다. 반면 목사들은 지역 교회를 과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서 그들의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헛웃음이 난다.
어쨌거나 성경적인 “교회”는 바로 이 둘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자세히 보라. 하나는 복수형이요, 다른 하나는 단수형이다(즉 “교회들”과 “교회”는 다르다). 캠벨주의자들은 그들의 지역 “교회들”이 마치 그리스도의 “교회”인 양 행세함으로써 돈을 번다. 그러나 하나는 “조직된 기관”인 반면,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하나는 성령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구원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반면 다른 하나에는 구원받은 혼들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혼들도 그 구성원 가운데 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물침례를 받음으로써 지역 교회에 더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러냄을 받은 지역 모임들”은 결국 “배교”로 끝을 맺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영광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지역 교회의 “분류”에 관해서라면, 교회사적으로 주요한 일곱 개의 교회가 있다. 모든 교회들은 이 교회들로부터 나왔다. 1) 그리스 정교회, 2) 로마카톨릭 교회, 3) 루터교회, 4) 성공회(감독교회), 5) 장로교회, 6) 감리교회, 7) 침례교회가 바로 그 일곱 교회이다.
주요 장로교 단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 입장을 버리고 배교했는데, 그럼에도 컴벌랜드 장로교회라는 분파는 50년 가까이를 버텼다. 감리교회는 1930년이 되기도 전에 파멸을 맞이했고, 1960년 무렵 남침례교단은 우스갯거리로 전락했다. J. 프랭크 노리스가 집요하게 배교를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1940년 이전에 배교해 버렸을 것이다. 성공회도 우스갯거리이기는 마찬가지며, 카톨릭 교회는 우스갯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그 교회는 A.D. 500년에도 이미 이단이었고, A.D. 1000년 무렵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창녀일 뿐이었다. 뉴스 매체를 제외한다면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를 퍼뜨리는 데 가장 열심인 자들은 성공회와 카톨릭 교회 지도자들이다. 그들이 하늘나라나 지옥의 실재성에 대해 가진 입장이란 마달린 머레이 오헤어나 버트란드 러셀1)의 그것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1)무신론으로 유명한 사회운동가와 철학자(역자 주)>

침례교도들은 이 모든 문제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곱 가운데 유일하게 물침례에 관해 신약성경에 순종한 집단인 까닭이다. 이 “차별점”에 관해서라면, 침례교도들은 뚜렷하게 남아 있는 발자취를 따라 그 기원을 사도행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다. 다른 여섯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모두 사도행전 2:38이 거듭남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된다고 그들의 신조에 기록했기 때문이다.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면 그들은 다 “캠벨파”로 변해 버린다. 감리교 안내서에는 사도행전 2:38이 나온다. 루터의 소요리문답에도 사도행전 2:38이 나온다. 카톨릭 미사경본에도 사도행전 2:38이 나온다. 장로교 요리문답(웨스트민스터, 하이델베르크 등)에도 사도행전 2:38이 나온다. 그리스 정교회 안내서들도 마찬가지다. 영국 국교회의 39개조는, 사람은 오순절 날에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졌던 그 물침례에 의해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는지, 이 중 다섯은 회개나 신앙 고백을 할 수가 없는 아기들에게 침례(세례)를 준다. 그들의 “사도적 계승”을 추적해 올라가면 사탄이 등장할 것이다. 그들이 침례에 대해 아는 것이란 모두 그들의 어머니, 즉 로마에게서 배운 지식이다.

침례교도들은 (참 이상하게도) “물침례를 믿지 않는” 유일한 집단이다. 우리는 침례가 여러분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물” 속에 넣는 행위라고 말한다. 우리는 거듭남이 물과 대비를 이루는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요 3:3-5). 그러니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 실라와 디모데로부터 시작하여 도나티스트, 몬타니스트, 노바티안, “아리우스파” 및 “네스토리우스파”(로마가 자신들의 신조에 동의하지 않거나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붙인 명칭들), 폴리시안, 보고마일, 카타리, 왈덴스, 알비겐스, 유카이트, 메살린을 거쳐 독일의 종교 개혁 때의 재침례교도에게 이어지는 “성경적 실행”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침례교도에게는 몇 가지 “차별점”이 있다. 1) 거듭난 사람들만 회원이 될 수 있다. 다른 여섯 교회들 중에는 이런 회원 자격을 요구하는 곳이 없다. 그들은 아기에게 물을 뿌려 주고는 회원 자격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2) 지역 교회는 자치적이며 독립적이다. 그 어떤 외부의 간섭, 즉 국가, 정부, 다른 교회들, 다른 종교 단체들, 회원이 아닌 개인들이 행사하는 어떤 영향력으로부터라도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3) 유아 세례는 종류와 이유를 불문하고 주지 않는다. 4)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믿는다. 다른 집단 가운데는 오직 “칼빈주의자들”인 장로교도들만 이것을 믿는다. 5)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제사장직이 수여된다고 믿는다. 다른 종교 개혁 교회들도 이 믿음을 공유했으나, 실행 차원에서 그 믿음을 지킨 것은 침례교도뿐이었다. 나머지 모든 교회들은 교인을 통제하기 위해 니콜라파적인 위계제도를 개발했다.
그렇다면 “지역”적이고 신약성경에 부합하는 불러냄을 받은 모임이란 바로 “침례교회”라는 결론이 난다. “내가 가진 책”에 따른다면 그렇다(이것은 적어도 “75권”의 교회사 책들도 주의 깊게 연구해 본 뒤에 내리는 결론이다).
“침례교”라는 명칭은 꼭 필요하다. 이 이름표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반카톨릭”임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교리적 표식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례교”는 반카톨릭이라는 뜻이다. 침례교회는 조직체적 교회로서는 유일하게, 제사장 직분과 미사, 마리아, 구원 계획, 앞으로 펼쳐질 미래, 누가 지역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의 문제,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사람의 위상, 선교에 관한 장단기적 목표 등에 대한 로마카톨릭이 가진 입장에 동의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정한 교회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회는 일차적으로 세 가지 일에 힘써야 하며, 그 지도자들은 우선적으로 두 가지 일에 힘써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견의 여지도 없다. 사도행전 6:4에 따르면 목사들은 1) 말씀의 사역, 2) 기도에 전념해야 한다. 간단명료하지 않은가? 록 콘서트, 시위, 국제 대회, 지역 사회 참여, 정치 개입,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 인종 혼합, 로마와의 “대화” 따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목사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기도하는 일과 말씀의 사역』뿐이다.


문제를 하나 내겠다. 만일에 여러분의 대학 교수가 여러분에게서 말씀을 도둑질해 간 탓에 더 이상 사역에 필요한 말씀이 여러분에게 없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게 되겠는가? 그렇다. 답은 록 콘서트를 열고, 세계 대회를 개최하고, 거대한 주일학교를 세우고, 낙태 반대 운동에 관여하고, “손을 뻗어” 빈민들을 “어루만지며” 결국 배교한다는 것이다.
지역 교회는 1) 죄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2) 성도들을 세워 주는 것, 3) 구주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 세 가지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전부다. 추가할 것이란 없다. 어떤 지역 교회가 이 세 가지가 아닌 다른 곳에 그 강조점을 둔다면 그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그 교회가 신약성경에 기반한 지역 교회라면 말이다). 자산, 건물, 조직, 비품, 차량, 법인 문서 등에 있어 어떤 필요가 더 있을 수 있겠으나, 이 세 가지가 바로 “필수품”이다. 다른 일들도 물론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이 일들을 대체하는 순간 그 사역은 “끝장”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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