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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앤더슨의 <하나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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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3월호>
로버트 앤더슨 경의 <하나님의 침묵>은 제목부터 묵직한 무게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안겨 준다. 저자는 런던 경찰청 부국장을 지낸 유능한 법조인이자 경찰이었으며, 동시에 17권의 영적 서적을 집필한 탁월한 성경 신학자이자 진리의 수호자였다(말씀보존학회에서 펴낸 <잊혀진 진리>역시 동일 저자의 책이다). 그는 런던의 범죄율을 감소시켰고, 당대의 유명한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인 <셜록 홈즈>의 실제 모델이 되었을 만큼 뛰어난 경찰로 활동했으며, 그러한 분주함 속에서도 설교자로서 주님을 신실하게 섬겼다고 한다. 나는 예리하고 냉철한 이성을 가졌던 로버트 앤더슨 경이 전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무엇일지 큰 기대감을 안고 <하나님의 침묵>을 펼쳤다.저자 로버트 앤더슨 경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기록된 성경” 외에 “직접적인 음성”이나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기적”과 같은 물리적 개입으로 말씀하지 않는 상태를 “침묵”이라고 보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고 잠자코 계신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와 달리 초자연적인 발화(發話)나 기적을 보편적으로 나타내지 않으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가? 과거에도 그러하셨는가?”와 같은 질문들로, 불손한 의심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고 또 정확한 답변을 찾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짜 불순한 동기로 그와 같은 질문이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침묵>을 읽으면서, 이번 계기에 답변할 준비를 잘 갖추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즉 모든 시대에 침묵해 오셨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과거 히브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음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히 1:1). 구약 시대에는 그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기적들이 표적으로서 동반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어떠한가?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재난, 악행이 난무하고 악인이 득세하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냉담해 보일 정도로 개입하지 않으신다. 저자는 이를 “갑판 아래에 노예들의 신음이 가득한 노예선”에 비유하며, 인류 역사의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죄악의 수위는 높아지는데 하나님의 기적적인 심판이나 구원은 중단된 듯한 현실을 예리하게 짚어 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사태에 분개하다 보면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시겠느냐? 지극히 높으신 분께 지식이 있겠느냐?』(시 73:11)와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다(p.12). 왜냐하면 이럴 때에 “하나님” 같은 전능자가 등장하여 약자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을 쳐부수고 세상을 질서 있게 평정하여 공정하고 의로운 세상이 펼쳐지도록 개입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한 경찰관으로서 저자가 불의를 보고 느꼈을 분노는 더욱 깊었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뛰어난 문체로 이에 대해 필설하고 있다. 말하자면 “비극”이 특히 “자신”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될수록 힘없는 사람들은 “슈퍼맨” 같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간절히 소망할 것이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 현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하여 사회악을 적극적으로 제거하시는 하나님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성도들이 박해당하고 순교할 때에도 하늘에서는 어떠한 미동조차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증거(표적)로서의 기적”에 대한 고찰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 당시 주님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시기 위해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서, 그분의 위대한 능력으로 실로 다양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그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해 기적들을 행하셨으며, 아무도 “저것은 기적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기적들을 보이셨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기 눈앞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기인(奇人)을 만난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그 민족의 메시아 왕으로서 받아들였는가?
이 대목에서 앤더슨 경은 “눈에 띄는 많은 기적들을 행했다고 해서 이러한 기적들 때문에 과연 그분이 믿을 만한 분이며, 그분의 모든 메시지가 옳은 것인가?”라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기적 자체가 믿음의 절대적 근거가 될 수 없음을 경고한 것인데, 만약 “기적”만이 기준이 된다면 거짓 선지자나 하늘에서 온 천사가 기적을 베풀며 “다른 복음”(갈 1:8)을 전할 때 분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앤더슨 경은 기독교계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이 두 가지 명제, 즉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토대를 쌓으셨고, 그분께서 행하신 기적들의 권위를 보고서 온 세상이 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틀렸다고 말한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펄쩍 뛸는지 모르지만, 앤더슨 경은 두 명제가 모두 잘못됐고, 그러한 착각으로 인해 지금까지 기독교의 입장이 더 심각한 오해와 편견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앞의 두 명제가 지지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불신자들이 기적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나서 그 기적을 행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회심하게 된다.” 과연 이 말이 옳은 것일까?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목도하고도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주님을 신성모독자로 몰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리고 요한복음 2장은 기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한다.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시는 주님께서는 누군가가 그분의 기적을 보고 믿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그분의 제자로 받아 주시지 않았던 것이다(요 2:23-25). 결국 기적은 믿음의 단초가 될 수는 있으나, 인간의 완악함을 꺾거나 하나님께 온전히 인정받는 믿음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십자가 사건이 이를 증명하는데, 말하자면 주님의 기적을 보았던 당대의 유대인들이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을 처형했던 것이다!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사탄의 편에 섰던 그 비극적인 십자가 사건 이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장구히 침묵하고 계시는” 독특한 경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사탄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넘겨지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도 그분을 왕으로, 메시아로 믿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이로 인해 약속된 왕국(천국)의 도래는 연기되었지만, 이 일은 동시에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놀라운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으로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은혜의 시대”를 활짝 여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3). 이 교회 시대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엡 2:18).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의와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지혜”(고전 1:24)이자 “위대한 신비”(엡 3:4-6)이다.
앤더슨 경은 사도행전의 과도기적인 변화들을 추적하며 복음의 성격이 “유대인을 위한 왕국 복음”에서 “모든 인류를 위한 은혜의 복음”으로 확장되었음을 강조한다. 과거 유대인들에게 표적으로서 주어졌던 기적들은 그들의 지속적인 거부로 인해 목적을 다하여 서서히 멈추었고,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하나님의 침묵”은 무력함의 증거가 아니다. 저자는 이를 “대안식의 침묵”이자 “심오한 평강의 침묵”이라고 부른다. 이는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심판을 유예하고 계시는 “자비로운 기다림의 시간”인 것이다.
유대인들의 거부로 인해 천국은 잠시 연기되었지만, 이 점을 역으로 생각하면, 지금 이 시대에는 누구나, 즉 우리 “이방인들”까지도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방인”인 “나”에게 적용되는, “만민에게 부요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는 진리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차별이 없으니 이는 만민에게 동일한 주께서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심이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2,13).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롬 11:33). 비록 과거에는 주님께서 “개”라고 비유하셨던(마 15:26,27) 이방인이었으나, 이제는 은혜의 복음을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즉 고린도후서 5:17 말씀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 자신이 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최대의 수혜자들인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왜 악인을 즉시 심판하시지 않느냐며, 한번 “침묵을 깨 보시라”고 무모한 도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 앤더슨 경은 그 침묵이 깨지는 순간이 곧 “대사면의 종료”이자 그 죄인들을 향한 “진노의 날”의 시작임을 경고한다. 지금의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주님께서는 죄인을 멸하시는 대신, 십자가 대속의 공로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도록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계신 것이다.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2:1)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쉬고 계신(히 1:3) 지금, 가장 연약하고 악한 자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있다.
「이 교회의 경륜에 하나님께서는 죄를 인간에게 씌우지 않으신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깨뜨리고 심판의 번갯불을 일으키셔야 할 것이다. 심판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십자가로 이미 해결되었거나,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날까지 연기돼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들을 형벌에 처할 심판의 날까지 가두실 것을 아시느니라.』(벧후 2:9)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심판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p.131).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히 다시 오실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찬란한 은혜가 될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두려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 그 날에 주께서 오시면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시리라.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 가운데서 믿어졌기 때문이라.)』(살후 1:7-10).
경찰 출신 저자답게, 앤더슨 경은 탐정처럼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난제를 추적하고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 추리를 해 나가며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침묵>을 펴낸 배경이 된 여러 학자들의 주장들도 폭넓게 언급하며 각각의 진위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비판하거나 반박한다. 그리고 본래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교회 시대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경륜적 이유를 깨닫게 해 줌으로써 부조리한 세상을 견딜 힘과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한 복된 소망을 심어 준다. “하나님의 침묵” 뒤에 숨겨진 깊은 지혜와 부요한 은혜를 알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침묵>은 논리적이고도 영적인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