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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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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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7월호>

“차가움”은 단순히 따뜻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명한 색깔을 지닌다. 새벽녘 공기가 주는 날카롭고 투명한 느낌, 캄캄한 호수 위를 유영하는 시린 안개, 그 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첫새벽의 푸른빛, 겨울 밤바다를 홀로 견디는 갯바위, 타인과 두는 선의의 거리감,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냉정히 바라보는 시선, 언뜻 건조하고 쓸쓸해 보이지만 그 속에 짙은 온기를 감추고 있는 시적 문장들에 “차가움”의 빛깔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차갑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사람의 차가움”은 그 서늘한 무게로 인해 마음을 지치고 아프고 외롭게 한다. 그 차가움이 어디서 오느냐에 따라 마음의 통증도 다르게 다가온다. 믿었던 사람이 나를 냉랭하게 대할 때, 어제는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게 웃어 주더니,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낯선 눈빛으로 차갑게 변해 버릴 때, 그 급격한 온도 차이가 주는 충격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럴 때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고 끊임없이 살얼음판을 걸으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그”(혹은 “그녀”)라는 존재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와 함께 있는 공간은 지독한 고립감의 늪으로 변하고, “그”의 온기 없는 시선과 태도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아, 차라리 “그”가 있는 공간을 벗어나는 길을 택하려는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몇 날 며칠을 앓고 또 앓다 보면, 너무 지쳐 버린 탓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쾅!” 닫아 버리는 자구책을 찾는다. “그”는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인생 위에 얹힌 괴롭고 차가운 쇳덩이이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차가운 순간들”에 마음이 억눌리고 움츠러드는 사람들... 그 얼어붙은 시간 속을 혼자 걸어가는 것은 정말로 숨 막힐 정도로 힘든 일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은 크게 “열이 있는 것”과 “열이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이 둘의 기원은 “창조주”라고 불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열”(熱)이라는 한자 아랫부분에 있는 점 네 개, 곧 “灬”(연화발)은 불(火)이 아래에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뜻하는 부수이다. 그런 면에서 “열”은 “불”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열”은 “열이 없는 것”보다 우선한다. 왜냐하면 모든 “열”의 근원은 “빛”과 “불”로 불리시는 하나님이시며, 만물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께서 “열이 없는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요일 1:5). 『우리 하나님은 소멸케 하시는 불이심이라』(히 12:29).

“빛”과 “불”의 공통점은 둘 다 “열”을 가지고 있고 “열”을 발산한다는 데 있다. “빛”은 물론, “불” 역시 빛을 방사한다. 따라서 “빛”과 “불”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분을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사람에게서는 당연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영광,” cf. 겔 43:2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의 길로부터 임하였으니... 땅이 그의 영광과 함께 빛나더라.』)과, 그분께로부터 받은 “열기”와 “온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햇빛을 쐬거나 불을 쬐는 데도 몸에 “빛”이 비치지 않거나 몸이 “열”로 데워지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빛”(“영광”) - 『이는 어두움 속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비추셨기 때문이라』(고후 4:6). 『유리를 통해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느니라』(고후 3:18).
“열기” - 『그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서 내 뼈들 속에 사무치는 타는 불 같아서 내가 참기에 지쳤고 견딜 수 없었나이다』(렘 20:9).
“온기”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또 하나님을 아느니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요일 4:7,8, cf. 요일 1:6).

사람은 “열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열”은 생명과 움직임, 그리고 사랑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듯한 피가 흐르는, 온기가 있는 생명, 무언가를 갈망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힘, 타인을 안아 주고 품어 주는 관계의 따듯함을 싫어할 이가 없다. 사람은 모두 “열”에 목말라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열이 없는 것”도 창조하셨다. 창조 세계에서는 “열이 없는 것” 또한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끝없이 펼쳐진 굳건한 대지, 그 위를 굽이치는 험산준령들, 거기에 박혀 있는 단단한 바위들, 낮의 긴장과 뜨거운 열기를 덜어내고 있는 숨죽인 밤, 하루의 습기와 먼지를 가라앉히는 차가운 밤공기, 봄에 싹 틔울 준비를 하는 깊은 겨울의 지표(地表), 징조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연도들을 위해 광명들을 두신 우주 공간(창 1:14), 그 공간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냉철한 진리는 “열이 있는 것”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고요한 질서와 안식을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열이 있는 것”은 물론, “열이 없는 것”도 존중해야 한다. 이유를 들자면, “열이 있는 것”은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은 타오르다가 사그라지고, 생명체의 온기는 흙으로 돌아갈 때쯤 식고 만다. 한 사람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한순간의 불장난일 때가 있다. “열”은 마음이라 불리는 얇은 유리창 밖으로 너무도 쉽게 빠져 나간다. 마치 까르르 웃다가 자지러지게 울고, 자지러지게 울다가 까르르 웃는 아기와 같다. “열”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밤이라 불리는 차가운 시간, 겨울이라 불리는 열 없는 계절을 통해, 만물은 내일과 내년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한다. 열이 없는 바위와 대지는 계절이 바뀌고 폭풍이 불어닥쳐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 낸다. 요한계시록 3장은 그 점에 관해 우리에게 특별한 묵상을 선물한다.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계 3:14-16).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차가운 믿음”과 “더운 믿음”을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둘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사전에는 ‘미지근한 것’이 없다. 네 자리에서 냉철하고 묵묵하게 진리를 실행하든지, 뜨거운 열정을 표출하든지 네 믿음과 행위를 선명히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담담하게 섬기는 성도들도 귀하게 여기신다. “사람의 차가움”에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차가운 믿음”을 발휘해야 한다. 사람과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주변의 온도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영원한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철은 차가운 물에 담가 식히는 담금질을 통해 구조적으로 완벽하고 단단한 상태가 된다. “차가운 마음”에는 “차가운 믿음”으로 대응하라. 당신에겐 바로 그 지혜가 필요하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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