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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의 동기를 일깨워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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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3월호>
따스한 햇살이 창문으로 비껴드는 어느 날 오후, 함께 교제를 나누던 한 형제가 이 책을 추천해 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찰스 피니(Charles Finney, 1792-1875)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나는 가벼이 읽을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은 내 마음을 강력하게 울리시는 주님의 위대한 메시지였기 때문이다.사실 "거룩하다"라는 단어가 그때까지는 매우 막연하게만 느껴졌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에 관해 누군가 내게 물었다면 진땀을 뺐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거룩하신 주님께서 명령하신 이 "거룩하라!"(벧전 1:16)는 말씀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인 개념" 정도로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났을 때, 그동안 막연하게만 이해했던 거룩함에 대한 개념뿐 아니라 뜬구름을 잡듯이 알았던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해 지녔던 분명치 못한 사랑의 태도가 너무도 명확해졌다. 게다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잘못된 동기와 태도가 분명히 드러났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직시하게 하시어 그분 앞에 부복하게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함"이다. 현 세상에서의 온전한 "성화"(sanctification)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를 원하시는 것만큼이나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이에 관한 본서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온전한 성화를 요구하시지 않는다든지 또는 그리스도인이 성화될 수 없다든지 하는 주장을 성경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성경에는 "죄인이 죄의 형벌에서 해방되는 것과 연관된 구절"보다도 "성도가 죄를 행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언급하는 구절"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본서는 또한 "거룩함은 성경 전체를 통해 약속된 위대한 축복"이라고 언급한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로써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심은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통해서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타락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1:4). 찰스 피니는 이 구절에 이르렀을 때, "이것이 온전한 성화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졌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는 희미하게만 남아 있던 "거룩함"에 대한 개념이 한층 또렷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거룩하시기에 우리에게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시면서 "그분 자신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특히 이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극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믿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활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거룩함의 창시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간 스스로는 결코 거룩하거나 의로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지 않으셨다면, 거룩하라는 명령에 관한 한 인간은 따를 수 있는 "본"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 명령은 지키기에 너무나 버거운 명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의 모습을 취하신 예수님께서는 죄 없이 사셨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보여 주셨다. 고린도후서 5:21에서는 그분을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본을 쫓으면서 지극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붙들면, 죄에게는 죽고 하나님께는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산 자로서(롬 6:11)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며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을 때, 마치 퍼즐 판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추어지듯,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흩어져 있던 거룩함에 관한 성경적 지식들이 하나로 모아져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여기에다가 거룩함은 "동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이 책에는 동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은 모든 일은 아무리 선해 보여도 "더러운 죄"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역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거룩함을 위한 동기는, 그저 "명령이니까"라든지, "이게 옳은 거니까" 또는 "해야 하니까"라는 식의 실로 생명력 없고 무미건조한 동기였다.
그런데 동기에 관하여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한다. "노예와 자유인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노예는 해야 하기 때문에 섬기는 반면, 자유인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을 하고 섬긴다." 여기서 자유인의 섬김은 "사랑의 동기"가 결여되어 있으면 불가능한 섬김이다. 또한 피니의 말에 의하면, 비굴한 두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어떤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받게 될 재앙을 무서워하는 것으로 순전히 이기적인 두려움이다. 그래서 이기적인 성도들은 기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그 의무를 소홀히 하면 당하게 될지 모를 재앙이 두려워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성경이 꿀처럼 달지도 않다. 성경을 읽는 것이 즐겁지도 않다. 결코 기쁨으로 성경을 읽지 못한다.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성도라고 고백하면서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은 옳지 않기에 성경을 읽는 것뿐이다. 이런 내용들이 마음으로 들어올 때마다 계속해서 나의 심중을 찔렀고, 가슴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분을 사랑하는지 세 번 반복해서 물으셨듯이, 이 책은 구구절절이 "정말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고 나의 종교적인 위선을 정직하게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일반 제도교회들에서나 볼 수 있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들, 그리고 그저 비굴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들이 내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주님 앞에 자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의무감에서만 성경을 읽고 기도했으며, 의무감에서만 구령했고, 또 그 의무감에서만 성도들의 교제에 참석했던 모습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합당한 사랑을 드리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깊이 뉘우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가 무엇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진정으로 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숙고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처럼 거룩함과 이를 위한 온전한 동기에 관한 피니의 강력한 메시지는 150여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강한 도전과 여운을 남기고 있다. 『성도는 이 생애에서 온전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가 거룩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뭔가를 명령하셨는데 행할 수 없는 일을 명령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니라』(살전 4: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