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나는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분류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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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09월호>

나는 2002년 9월 20일 밤 10시경,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보혈을 흘리고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장장 55년을 살인, 강도질 외에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를 거의 다 짓고 살았다. 세상 법에 어긋나 감옥에서 정죄받아 마땅한 죄들을 수없이 지었다. 지옥에 대한 영상 매체나 기록물이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과연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곤 했지만 의도적으로 기피하면서 형식적인 교인으로 10년 이상을 주일 오전예배(바쁠 땐 새벽예배)에만 참석하며 허송세월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죄가 용서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교회에만 출석했다. 10년간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성경(개역성경)의 창세기 1:1도 펼쳐 본 적이 없었다. 수백 번 설교를 들었어도 어떻게 하면 죄가 용서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고, 그저 ‘교회에만 소속되면 어떻게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렇게 형식적으로라도 교회라는 곳에 다니게 된 것은 막내아이가 3살 때(내 나이 38세 경) 건강하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생긴 것이 계기가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여 진단한 결과 뇌에 이상이 있는 듯하여 정상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셋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 양육에 대한 걱정에, 또 앞으로 살아갈 일이 깜깜하여 삶에 대한 절망감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병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구석에서 무릎 꿇고 그동안 살아온 인생과는 아무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분이신지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다. “제 아내만 고쳐 주시면 평생 동안 하나님을 믿고 살겠습니다. 제발 고쳐 주십시오!”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는 그때가 평생 처음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정말 혼신을 다해 기도했다. 하나님의 응답이었는지 아내는 별 탈 없이 즉시 퇴원하여 정상인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아내의 권고도 있었지만 아내의 병을 고쳐 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믿겠다고 한 서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교회에서 적당히 종교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집 가까운 자그마한 개척 교회는 사생활을 침범할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너무 귀찮게 해서 적당히 큰 중형 교회에 다니며 간섭받지 않고 이름만 걸어놓고 “주일용 교인”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그러니까 내 나이 50세 되던 해인 1997년 IMF가 터졌다. 그때 그 경제 위기로 10여 년 다니던 직장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왼발 뒤꿈치가 부러져 1년 이상 무위도식하게 되었고, 생활비 걱정을 하던 아내가 경험과 식견도 없이 남의 돈으로 사채놀이 비슷한 것을 하다가 큰 사고를 치게 되어 집안이 완전히 파탄 나 길거리에 나앉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약 5년 동안 악몽 같은 세월을 견뎌 냈지만 그사이 나는 중풍으로 쓰러지고 합병증으로 고혈압, 당뇨까지 걸려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하지도 않았다. 10년여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으며, ‘내가 그동안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값으로 이 고초를 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5년간의 그 거친 광풍이 지나간 뒤 아내와 어느 기도 집회에 참석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구속사역을 이루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주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것이 마음속 깊이 꽂히는 것이었다. 그 즉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니, 어릴 때부터 지었던 모든 죄가 주마등같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진심으로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쏟아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감사함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 뒤 약 2년 이상을 여의도순복음 소속 교회에서 열심히 종교 생활을 했으나 목사나 교인들의 행동이 비록 개역성경이지만 성경과는 거리가 먼 것이 자꾸 눈에 띄었다. 그러나 별 대안 없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10시쯤 업무를 쉬고 사무실에 한가하게 앉아 있는데 응접실 유리테이블 위에 신문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날짜의 새 신문도 아니고 지난 날짜의 광고용 지면 한쪽이었다. 제목이 언뜻 “하나님께서는...”이라고 되어 있어 유난히 눈에 띄는 그 신문을 들었더니 2005년 4월 11일자 동아일보 전면광고지였다. 2002년 회심한 이후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셔서 모든 세상 것을 끊고 신문, TV 등도 거의 보지 않던 내가 느닷없이 신문을 손에 들었다. 그 광고 문구는 내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성경만을 쓰셨습니다.”

나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킹제임스성경> 외에는 모두 “가짜”라는 말에 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성경은 하나인데 번역상의 차이로 여러 성경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때까지 열심히 읽고 쓰며 아껴 온 “한글개역성경”이 “가짜”라는 사실에 자존심의 추락과 패배감과 실망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즉시 인터넷 사이트로 들어가 바이블마스터와 성경침례교회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송오 목사님의 설교를 가능한 한 많이 듣고 많은 책을 주문하여 밤새도록 읽고 깨닫게 되었다. 가짜 성경이 왜 생겼으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왜 생겼으며, 순복음이 무엇이고 은사주의가 무엇인지, 그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과 결과를 알게 되어 그동안 의구심을 가졌던 모든 문제가 시원하게 다 풀렸다. 한 줄기의 진리의 빛이 내 안에 강렬하게 비쳐 들어온 듯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 즉시로 수소문하여 천안성경침례교회를 찾아냈고, 그 다음 다음 주 수요일에 교회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가정에서 집사람과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진리를 알아 너무 기쁘고 흥분된 나머지 아내에게 순복음은 가짜이고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곳에서 당장 나오라고 일성을 내던졌다. 아내는 며칠은 아무 반응이 없더니 일주일쯤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구입한 <한글킹제임스성경>과 진리의 책들을 찢는 것이었다. 자기네 교회 목사에게서 남편이 이단에 빠졌으니 빨리 건져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각방을 쓰고 영적 전쟁에 돌입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설득력 부재이고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나의 무지함이 아내와의 극단적인 결별로 이르게까지 한 원인이 되었음에 후회할 뿐이다. ‘좀 더 참고 인내하며 설득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을 지금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으로 부르셨느니라. 오 아내여, 네가 네 남편을 구원할지 어찌 알겠으며, 오 남편이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겠느냐?』(고전 7:15,16)

처음에는 완전히 성별하지 못하고 순복음교회에 몇 개월을 아내를 따라 억지로 나갔으나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중에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열왕기상 19:9” 말씀을 읽고 결심하게 되었다.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하느냐?』 이 말씀에 마음이 뜨끔하였다. 네 구절 뒤인 13절에서 또 한 번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하느냐?』 하시자 그 말씀이 천둥같이 큰소리로 가슴을 울렸다. 그때 나는 “아이쿠, 하나님! 제가 당장 가겠습니다.” 하고 그 다음 주부터 성경침례교회로 출석하게 되었고, 한 2년간 아내와 한 집안에서 이상한 동거생활을 하며 서로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대화 한마디 없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식지 않았는지 이단(?)에 빠진 남편을 구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드디어 실력행사를 했다. 어느 주일날 교회에서 경건하고 조용하게 경배드리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교회 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는 난동을 피운 것이다. 엄숙한 예배가 난장판이 되었다. 분명 마귀의 역사였다. 그래서 도저히 이것은 아니다 싶어서 그 길로 아내로부터의 완전한 성별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로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길에서 지켜 주셨으며 어려움 없이 공부하며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채워 주셨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 뒤로 내 안에 일어난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치고픈 열망이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나는 킹제임스성경신학교에 등록하여 늦은 나이(59세)지만 믿음의 열정으로 2006년 가을 학기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늘면서 믿음이 자라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점점 커졌으며 잃어버린 혼들에 대한 연민이 점점 더 커져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이겨 와야 한다는 부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구령의 열매도 없이 늘 전도지만 건네던 중 하나님께서 구령의 첫 열매를 주셔서 힘을 얻게 되었다. 충남 아산 경찰서 앞 버스정류장에서 복음을 전할 때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80대 노신사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켄터키 치킨 할아버지 같이 중후하고 점잖아 보이시는 분에게 다가가서 몸을 굽히고 정중하게 복음을 전했다. “저는 천안의 성경침례교회에서 나왔는데 복음을 전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 알아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묵묵부답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의 혼은 한 번 태어나면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죄 있는 혼은 지옥에 가고 죄 없는 혼은 하늘나라에 갑니다.” “...”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받아야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죄지으신 적이 있으시죠?” “...”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을 위해서, 또한 어르신의 죄 문제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게 하셔서 죄값을 모두 치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기 원하십니까?” 노신사는 내 말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눈길도 돌리지 않고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귀가 어두워서 전혀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하면서 막 끝내려고 하는데 노신사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떡이는 게 아닌가! 즉시 영접기도로 인도했더니 꼬박꼬박 끝까지 따라하셨다. 이제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시냐고 여쭸더니 천당에 간다고 미소를 지으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첫 구령의 열매였다. 그 뒤부터는 구령에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전했더니 어떤 장소에 가든 늘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아내와의 성별로 서울에 있는 성경침례교회로 와서는 서울역 거리설교팀에 합류했다. 설교하는 형제들 가운데에는 원고를 보고 하는 형제가 없었는데 나는 여전히 설교문을 보고 설교를 해야 했다. 처음 설교를 시작할 때는 설교문을 작성하여 현장에서 막히지 않도록 완벽하게 외워서 각각 다른 설교 내용으로 실연을 세 번 정도 하면 복음의 내용을 적당히 활용하면서 언제 어떤 장소에서도 자유자재로 설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목소리도 안 좋고 모든 이를 설득할 수 있는 설교로는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하루에 수만 명이 왕래하는 대한민국의 관문인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모든 시민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여러분은 모두 죄인이니 구원받고 지옥의 형벌을 면하라!”고 담대하게 외치고 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일은 진정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벗어나 성경대로 믿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 뒤로, 주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은혜로 베풀어 주셨음을 나 자신이 절절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초심을 유지하지도 못한 채 세상에서의 생활유지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 이미 하나님을 향한 장성한 분량의 지식에 이르러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미하게 쌓아 놓은 진리의 기초 지식마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괴로워진다. 잃어버린 혼들에 대한 연민, 마귀의 공격을 대적할 분노와 열정, 말씀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이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첫날보다 더 강렬해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형식적인 교회생활에 안주해 가고 있는 것이다. 거짓 은사주의자에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성장 없고 변화 없는 편안하고 형식적인 교회 생활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내가 받을 상급과 유업을 바라며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일만이 이제 내 앞에 남아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고자 한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붙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만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에 손을 뻗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쫓아갈 뿐이라』(빌 3:13,14).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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