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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5 -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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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2월호>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I. 성별
1.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두 부류, 곧 마귀에 속한 마귀의 자녀들과 복음을 믿고 영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로 나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마귀도 믿지 않고, 하나님도 믿지 않고 나 홀로 살겠다고 한다 해도 그가 있을 만한 어떤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영적 세계에는 중립지대가 없습니다.
첫 출생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실상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1절),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마귀의 자녀]』(2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마귀의 자녀]』(3절),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5,6절).
구원받은 당신의 영은 셋째 하늘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혼은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 주셔서(고전 6:20) 마귀의 소유였다가 이제는 하나님께 속하게 되었으며, 몸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이것이 몸된 교회입니다 - 골 1:18).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더 이상 나그네도 타국인도 아니요, 오히려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니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잇돌이 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엡 2:19-22).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자기의 삶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1) 영적 양식을 얻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2) 옛날의 나쁜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술은 물론이요, 담배, 기호, 나쁜 습관, 말투, 사고방식, 세상 친구들, 더럽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무가치한 영화, 저질 음악, 사행적 습관 등을 버려야 합니다).
3) 세상을 기쁘게 하는 일이나 반정부 시위, 투쟁 등에 가담해서는 안 됩니다.
4) 자기 직업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면 가능하면 바꿔야 합니다. 직장이 사업 이익을 취하기 위해 부정과 불법을 저지른다면 단연 뛰쳐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며 또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들과 딸들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가 말하노라.“고 하셨느니라』(고후 6:17,18, 고전 6:19,20).
2.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빌 3:20).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이 세상 제도들은 마귀가 고안해 낸 것들이며, 현재 이 세상 신은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즐기고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2:15,16).
주님은 세상(세상 사람)을 사랑하시어 그들을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질고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는데, 이는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희생을 알고서도 그분을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거부하고, 마귀의 소유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예수님이 지금도 세상을 사랑하는 양 오해하고 있습니다(조용기 목사).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성별한 모임이듯이 교회에 속한 성도 개개인도 이 악한 세상의 영향력에서 성별하여 세상과 일치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롬 12:2).
세상에 속한 마귀의 자녀들은 세상 말을 들으나(요일 4:5),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선택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합니다(요 15:19).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셨는데, 현대 교회들은 세상을 위하여 기도합니다(요 17:8).
그럼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성별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먼저 믿지 않는 자와 혼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고후 6:14-17).
2)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두움의 일에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목사라 하면서도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해 하나님을 파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빌 3:19).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
3) 성경대로 믿지 않고, 교단 교리를 따라 믿는 체하는 자들은 우상 숭배자와 같습니다(고전 5:11). 그런 자들과는 교제하지 말고 분리되어야 합니다(고후 6:15).
4) 성경적 교리를 혼란시키며, 성경 전체를 믿지 않고 부분적으로 믿고, 부분적으로행하는 자들에게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Ⅱ. 경배
그리스도인이 되면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의 첫날에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서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안식일(토요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의 첫날인 일요일을 지킵니다. 주님께서 첫째 날에 부활하셨고, 첫날에 성도들이 모였고(행 20:7), 첫날에 헌금을 했습니다(고전 16:2).
경배를 드리는 데는 원칙이 있는데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요 4:24). 여기서 영이란 영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육신적인 몸가짐과, 육신적인 의식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방식이 아닌 교회의 전통에 따라(살후 2:15; 3:6) 드려야 하며,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교단 교리가 아닌 성경적 교리에 일치해야 합니다. 변개된 성경을 쓴다든지, 혼미하고 부분적인 교단 교리로 세뇌시키거나 미혹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도 교리를 가지고 있고(딤전 4:1), 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떨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약 2:19) 오늘날 마귀가 세운 교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세워져 그리스도의 교회를 흉내내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그런 교회들 가운데 돈을 거두는 데 무관한 곳은 한 군데도 없으며, 더 나아가 거짓 은사를 자랑하며, 병 고치고, 귀신 쫓고, 방언하며 성령의 능력을 가장하는 곳들이 얼마나 많은지 경계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받았고, 영생을 소유했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도로 늘 교제하고, 기도로 지상에서의 필요한 것들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천상의 복들은 물론이요, 지상의 복들도 향유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만병통치,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연단되어야 하기에, 때로는 고난도 당합니다. 세상은 복음을 환영하는 곳이 아니라 거절하는 곳이기에 복음을 전파하면 고난과 박해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더니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나이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옵니다』(요 17:14). 이런 까닭에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곳들에서는 복음 전파가 없거나 형식적으로 전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주님과 함께 받을 영광이 크기 때문에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롬 8:17,18). 순복음 은사주의자들은 “믿기만 하면 불가능은 없다.”고 가르치나 그것은 한갓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이 시대에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천년왕국에서 면류관이 없게 됩니다.
오늘날 잘못된 경배가 잘못된 교리만큼 흔합니다. 어떤 곳들에서는 의미없는 의식이 짓누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경배와 찬양이라며 통기타 치고, 율동하며, CCM을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자신들을 즐겁게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잘 차려입은 수십 명의 합창대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네 목사를 기쁘게 하기도 하나, 그런 것들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와는 무관합니다. 그러한 불경건한 육신적인 표출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찾으시겠습니까?(요 4:23)
영과 진리를 배격한 채 경배드리려고 하거나 사람을 높이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경배와 찬양 같은 무드나, 은사주의 교회에서 했던 발광춤 같은 것은 사탄에 의하여 그렇게 하도록 충동받은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마귀의 종들이 연출한 굿판에 임재하시어 경배를 받으실 것이라고 오산한 자들이 어리석을 뿐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을 보십시오!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신을 찾을 수도, 규명할 수도 없기에 상상하여 만든 것이 사람의 형상이지 않습니까? 그 우상들은 머리털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들은 삭발을 하는 것 아닙니까! 삭발이 그 사람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듭니까? 이에 대한 해명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로마카톨릭은 물론이요, 현대 개신교회들에서도 경배를 방해하는 요인들이 너무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몇 가지만 열거하면,
1) 경배를 방해하는 요소는 자기 의지입니다. 웃사는 언약궤를 옮기려고 새 수레에 실었는데, 궤가 달구지 위에서 흔들리자, 선한 동기로 손으로 궤를 붙들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쳐서 현장에서 죽이셨습니다(삼하 6:3-8). 웃사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적 방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열성으로 하려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그래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롬 10:1-3). 소 달구지에 언약궤를 싣고 가는 필리스티아인의 방법은 사탄적이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도 불을 바쳤으나,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다른 불로 섬기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2) 세상적인 것들이 경배를 방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 17:11,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과 범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이 맞춰진 몸과 마음과 인격이어야 참 경배입니다.
3) 형식이나 의식에 치우치게 되면 경배에 방해가 됩니다. 헛된 자부심이나 자신의 인격에 대한 자만, 자기에게만 축복이 넘친 것 같은 과분함이 예배를 방해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경건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주님이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18:20). 신실한 성도들이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 영과 진리로 경배할 때 주님은 그런 경배를 받으십니다.
Ⅲ. 헌금과 십일조
오늘날 배교한 교회들의 특징을 든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돈에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딤전 6:10). 교회의 규모가 작으면 작은 대로, 대형화되면 대형화된 대로, 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어느 교회가 나쁜 교회입니까? 돈에 집착하는 교회가 일차적으로 나쁜 교회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헌금봉투 명목에는 십일조, 건축헌금, 사랑의 손길, 사랑과 행복 나눔 후원회, 세계 선교 헌금, 평양 조용기 심장전문병원 건축헌금, 개척헌금, 감사헌금, 부활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 헌금봉투에는 무려 22가지나 적혀 있었습니다. 제대군인, 출산가정, 학교입학, 졸업 등 명목이 없어서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을 돈내는 도구로 삼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면, 마귀에게 속했던 죄의 종이었을 때에 비하여, 우리에게 전해 준 교리의 본에 순종하여 의의 종이 되었는데, 이것이 죄에서 해방된 대가입니까?(롬 6:17,18)
어떻게 죄의 짐에서 해방되어 자유케 되었습니까? 멍에의 이름만 바뀐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렇게 살라고 우리를 구원시키셨겠습니까? 분명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했듯이,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하고, 구원을 빙자하여 교인들을 불러 모아 갖가지 명목으로 그들에게서 돈을 갈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기만하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니라』(고후 11:13-15).
왜 교회가 헌금을 걷습니까?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는 국가의 운영을 위하여 국민들에게 각종 세금을 부과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도들, 즉 한 교회에서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하면 그 교회의 회원이 되는데 교회의 회원 된 성도만이 헌금에 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헌금에 관한 성경적 지식이 없이 교회의 전통을 무질서하게 만드는가 보십시오.
교회의 헌금은 "주일 연보"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의무이나 연보는 임의입니다. 십일조가 의무라 해서 정부나 자치 단체가 국민들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세금 같은 것이 아니라, 회원 된 성도가 자기 수입에서 9/10는 자기가 갖고, 1/10만 하나님께 바칩니다. 십일조를 정직하게 하면 복을 받게 되는데, 이는 더욱 번성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와 내 집에 식량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의 창문들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부어 주지 않나 보라.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장소가 없으리라. 또 내가 너를 위하여 그 먹어 치우는 자를 꾸짖으리니 그가 너희 땅의 열매를 멸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포도나무는 때가 되기 전에 그 열매를 밭에 떨어뜨리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러면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복받았다 하리니, 이는 너희가 기쁨의 땅이 될 것임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말 3:10-12).
수입이 없는 교인들에게 일률적으로 십일조를 부과해서 교인들이 십일조를 내려고 은행에서 대출받거나 타인에게서 빌려서 내게 하는 것은 협잡과 사기행위입니다. 그 외에도 각종 헌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은 삯꾼들이 하는 도둑질이요 강도질입니다.
미국의 교회들이 부흥했던 것은 십일조가 복받는 근원임을 선대로부터 전수받았었기 때문입니다. 록펠러, 페니(J.C. Penny) 백화점, 펩시콜라(Pepsicola), 콜게이트(Colgate) 치약 등 그 이름을 다 댈 수 없을 만큼 일반적인 일입니다.
미국의 큰 대학들도 후원하는(십일조) 부자들이 있었기에 그처럼 큰 규모의 학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밥 존스(Bob Jones) 대학교는 맥켄지(Mckenzie)가, 하일스 앤더슨 대학(Hyles-Anderson College)은 러셀 앤더슨(Russell Anderson)이, 펜사콜라 기독대학(Pensacola Christian College)과 베카 북(Beka Book)은 코벌리(Coberly) 형제에 의해서였습니다. 그 누구나 은사주의자들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십일조와 헌금의 질서가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수입이 없으면 십일조는 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수입이 있는데도 십일조를 속이게 되면 그는 자기의 복받을 근거를 없애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연보는 자원함으로 냅니다. 주일의 두 번의 예배에서 자기가 원하면 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형제들에게 권하여 그들이 너희에게 먼저 가서 너희가 전에 알려 준 너희의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노라.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연보 같고 억지로 한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후 9:5).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면 연보를 하지만, 예배가 아니면 연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리 준비했다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넉넉하게 심는 자는 넉넉하게 거둔다는 것이라』(고후 9:6).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고후 9:7).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모든 필요를 아시기에 필요하면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실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이 들어오면 어떻게 써야 합니까? 그 순서를 정하면, 첫째, 목사의 월급. 둘째, 건축헌금(전체 수입에서 1/10). 셋째, 교회운영비 및 차량운용과 직원급료. 넷째, 선교헌금, 그리고 성도 가정의 경조사와 가난한 성도의 가정을 지원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 다음은 전도지, 책 출판, 순회 설교 비용 등에 사용합니다. BB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