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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글로 둔갑된 선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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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7월호>
마가복음 1:2-3<한글킹제임스성경>
2 선지서들에 기록된 바와 같이 “보라, 내가 네 면전에 나의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네 앞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라.’”고 하였더라.
<개역한글판성경>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마가복음 1:2은 말라키 3:1을 인용한 예언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
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하리라』(말 3:1). 또 마가복음 1:3은 이사야 40:3을 인용한 예언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곧게 하라』(사 40:3).
이상의 필사본 증거들을 통해서 볼 때 마가복음 1:2,3은 누구도 거짓말하지 못할 명백한 구절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어떤 사람이 마가복음 1:2을 “선지서들”이 아닌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라고 고쳤을까? 어느 무지한 자가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를 보고 이사야서로 단정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서도 성경에 관해 말하고, 성경에 관해 가르치는 현대의 알렉산드리아 이단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좋게 표현해서 ‘실수’라고 한다. 만일 이 실수가 성경에서 저질러지지 않았다면 그의 명성, 경력, 인지도 등에 따라 조금은 용납될지 모르지만 이것은 성경에 범한 실수이기에 하나님께 불경한 죄를 지은 것이요, 말씀을 변개시킨 죄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한 자는 과연 누구이며, 그 변개된 성경을 마치 바른 성경인 양 성경의 영감성, 무오성을 가르치며 강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런 자들은 스스로가 위선자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찾아내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들의 무지한 주장들을 참 지식인 양 자랑하면서, 시내사본이 어떻고 바티칸사본이 어떻고, 네슬판이 어떻고, ASV, NIV가 어떻고 하며 성경에 관해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하지 않았겠는가? 실제로 이들은 그런 행위를 하면서 “배를 채우는” 자들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이 점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보라.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이라 말하지도 못하고 ‘성서’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유세비우스와 어거스틴과 제롬은 성경 필사와 번역에 관여하면서 오리겐이 변개시켜 놓은 칠십인역을 사용함으로써 마가복음 1:2이 이사야 40:3을 인용한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이들의 추측으로 인해 생긴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영어개역본(RV), 미국표준역본(ASV), 영어개역표준역본(RSV) 등의 영어 성경들과 한글개역성경, 표준새번역 같은 대한성서공회 성서들도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실수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이들 성경 번역에 참여한 소위 자칭 학자들(사실은 학자가 아니지만)이 원문에 대한 시비가 있을 때 오리겐 등의 실수로 야기된 성경 변개를 옹호하고 나서는 점이다. 이들은 불의의 편에 서서 선을 힐책하여 배를 채우는 자들이 되었다.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경고하셨다.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과, 빛 대신 어두움을, 어두움 대신에 빛을 두며, 단 것 대신에 쓴 것을, 쓴 것 대신에 단 것을 두는 자들에게 화로다! 자기 자신의 눈에 현명하다 하고 자기 자신이 보기에 총명하다 하는 자들에게 화로다!』(사 5:20,21).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마가복음 1장 2절과 3절은 말라키와 이사야, 두 개의 선지서들을 인용한 것이다. 사탄이 변개시킨 성서들처럼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아니라, 보존된 성경대로 “선지서들”로 되어야 한다.
마가복음 1:2,3을 더 살펴보자. 여기에는 심오한 신학적 의미가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사실
말라키 3:1에는 『보라, 내가(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사자를(침례인 요한을) 보내리니, 그가(침례인 요한이) 내(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길을 예비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 1:2에서는 『보라, 내가(아버지 하나님께서) 네(예수님) 면전에 나의 사자를(침례인 요한을) 보내리니, 그가 네(예수님) 앞서 네(예수님) 길을 예비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구절을 비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리겐은 자신이 다루었던 마가복음 1:2이 말라키 3:1인 것은 알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시인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믿고 있었던 에비온(Ebionites) 학파였기 때문에 이 부분을 변개시켰던 것이다.
2. 침례인 요한의 역할
침례인 요한은 말라키 4:5에서 예언한 선지자 엘리야의 변신이다. 『보라, 내가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했더라면 침례인 요한은 엘리야가 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침례인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냐?”고 물었을 때 침례인 요한은 그 사실을 부인했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할 시대적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떠하셨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선지서와 율법은 요한까지 예언한 것이라. 만일 너희가 그 사실을 받을 의향만 있다면, 오기로 약속된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이니라』(마 11:13, 14)고 하셨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뚜렷이 구별하지 않고 왕의 오심(advent of the King)으로만 표현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초림 때 유대인들이 그분을 왕으로 영접했더라면 초림이 재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신약 복음서 특히 마태복음에서 초림과 재림의 중복을 구분할 수 없는 학자들 때문에 분명히 다른 두 용어인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짓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된 것이다). 결국 사도행전 7장에서 스테판이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를 전파했지만 그들이 스테판을 돌로 쳐죽임으로써 천국은 교회시대 뒤로 연기되었고 침례인 요한은 엘리야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천국복음이 거부되고 나서 은혜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다. 『그러면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졌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그들의 실족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그들로 시기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11:11). 주님께서 왕으로 오시기 전에 크고 무서운 “주의 날”이 앞서게 되어 있다. 교회는 신비였다. 특히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해서는 구약의 선지자들도 열심히 조사하고 살펴보았던 것이라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9,10에서 말하고 있다.
성경을 변개시킨 자들이 이런 진리의 지식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저자는 성령님이신데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변개시킨 자들에게 조명과 명철을 주시겠는가? 만일 그런 자들에게도 계시가 있다고 한다면 그들 안에 역사하는 영은 성령이 아니라 악령이다. 영적 지식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이에 대한 지식은 명철이니라』(잠 9:10).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성경을 함부로 변개시킬 수 없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