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의 증언 분류
로마카톨릭의 유대인 학살과 전쟁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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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3월호>
주장 5로마카톨릭 조직이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 했다는 리베라의 주장은 틀렸다.
답변
이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A.D. 1215년 로마카톨릭 공회가 개최되고 있는 동안에 "유대인들과 개신교도들"이 이른바 이단들로 처형되었다. 이 공회에서 결의된 법령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결코 폐기된 적이 없다. 칙 출판사에서 출간한 찰스 치니키의 <로마 교회에서의 50년>이란 제목의 책 제13장의 56쪽에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인용문을 읽을 수 있다.
『로마카톨릭이 이단들을 처형하는 데 있어서 정의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겐 정의를 구현시킬 아무런 의무도 없다.』
『우리는 거룩하고 전통적인 카톨릭의 믿음을 대적해서 이를 훼손시키거나 부추기는 자들은 그들의 얼굴이 서로 다를지라도 그들의 꼬리들은 함께 묶여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불문하고 고소해서 추방하고 파문한다. 그런고로 그들은 현존하는 비종교적인 권력에 이양되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것은 유대인이 수세기 동안에 걸쳐 교황체제 하에서 박해를 받아왔다는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리베라 박사가 그러한 주장을 제기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독일의 오토 마크만(Otto Markmann)은 자신의 저서
1377년에는 유대인들이 바바리안 데겐도르프(Deggendorf) 마을에서 살육되었다. 세빌레(Seville)의 대주교 보좌관이었던 페랍트 마르티네즈(Ferrabd Martinez)는 "세례를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세빌레에서 세례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는 3만 명의 유대인 공동체를 멸망시켰다. 4천 명이 살해되었고, 나머지는 노예들로 팔려 나갔다. 혹독하게 박해받은 1만 명의 유대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의 강력한 회유책(개종 강요)에 굴복하였다. 그들은 "마라넨"(Marannen)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오토 마크만의 저서 역시 알베르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포가 아라곤, 카스틸리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그리고 말로카를 걸쳐 전 지역을 휩쓸었다. 성 비센테는 이 거룩한 전쟁을 거룩한 증오라고 이름 붙였다. 그 이름은 지금의 20세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종교 재판관 토마스 토르께마다(Thomas Torquemada)의 지시로 심문받는 동안 톨레도(Toledo)에서 3일 동안에 2,400명의 마라넨(Marannen)들이 불태워졌다.』
『1506년에는 리사본(Lissabon)의 수도사들이 "피의 결혼식"을 경축하였는데, 이틀간의 이스터 축제 기간 동안에 무려 2천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불태워졌다. 이 선택받은 민족에 대한 로마카톨릭 교회의 만행은 극악무도했다.』
아브로 맨하탄은 위대한 저서 <바티칸, 모스코바, 워싱턴의 동맹>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pp. 219-220).
『공산주의자/시온주의자/카톨릭의 정치 구조상으로 볼 때 종교적 본질을 인식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하다. 공개적인 성명에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시온주의자의 기치 뒤에는 시온의 모든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전 세계적인 신정국가의 도래를 갈망하는 고대 유대인들의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는 신정국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신정국가 창설의 망령은 카톨릭 교회의 밀실에서 자주 출몰되어 왔으며 여전히 그것은 막강한 두려움이다...
그러므로 바티칸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적인 히브리인의 신정국가인 천년왕국에 대한 동경은 카톨릭 교회의 종말론적 가르침들에는 심대한 타격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를 정치적 용어로 확고하게 표현한다면,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해할 수 없는 적개심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리베라의 주장에 대하여 한층 더 신뢰감을 주고 있는 최근 신문기사로 시각을 돌려보기로 하자.
반카톨릭 경향으로 비난받은 적이 없는 신문인 <웨스트 오스트랄리안, West Australian> 1985년 12월 4일자 75면에 "고위 성직자 : 용서를 구하기엔 시기상조"(Prelate: Too Soon To Ask Forgiveness)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세기 동안의 박해에 대하여 유대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카톨릭 교회에 있어서는 시기상조라고 어제 바티칸 추기경은 말했다. 이태리의 한 단체는 최근에 유대인의 용서를 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하여 주교 회의에 청원할 탄원서에 서명하였다.』
이 신문은 소위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유대인들이 집단수용소에서 끝까지 고문받고 학살된 후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그들의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들에 대하여 용서를 기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앤드류 싱클레어의 책 <위대한 침묵 속에 숨어 있는 음모, The Great Silence Conspiracy>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8쪽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1판 제2권 37쪽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물론, 로마카톨릭 교회는 항상 반셈족주의의 근원이다. 반셈족주의는 1772-1795년의 폴란드가 분할된 이후까지 짜르의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의 반셈족주의는 폴란드의 로마카톨릭으로부터 동화되었다. 스페인의 "거룩한 심문"은 스페인의 유대인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창안된 것이다.』
리베라와 칙이 오늘날 말하고 있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 시대의 저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확증되고 있는 자료들을 더 많이 인용할 필요가 있다.
주장 2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키는 데 예수회가 연루되었다는 리베라 박사의 주장은 거짓이다.
답변
다음에 언급된 내용은 폴 피터슨 신부의 책 <최근에 발견된 베드로의 무덤>의 63쪽에 기술되어 있다.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유럽의 모든 전쟁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교황들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이를 사주해 왔다.』
우리는 또 에드몽 파리가 저술한 책 <바티칸의 유럽 통제>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동방정교회를 증오하고 있는 교황 피오 10세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프란시스 조세프 황제로 하여금 세르비아인들을 징벌하도록 지속적으로 부추겨 왔다. 사라예보 사건(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 사건) 이후, 1914년 7월 26일 교황청(Holy See)의 바바리안 대표 바론 리터는 그의 정부에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 교황께서는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강압적인 조치를 용인하시며, 독일을 대항하는 전쟁에서도 러시아와 프랑스의 군대들과 큰 견해차가 없으시다. 교황청의 추기경 비서는 오스트리아와 지금과 같은 관계가 지속된다면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진정한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은, 겸손하시고 평화의 사도이시며, 전쟁의 발발 소식을 듣고 죽기까지 슬퍼하시며, 모든 경건한 권위자들을 대표하시는 거룩하신 교황성하님이시다.』
계속해서 47쪽에서는,
『그러므로, 그들이 지존의 카톨릭 황제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기고 있었을 때, 피오 10세와 그의 교황청 비서는 그들이 행동에 옮겼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로써 프랑스와 러시아에 대항하는 중부 유럽 제국들의 세력재편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일반 분쟁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냉철하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계획하였음이 입증되고 있다...
그들은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 상이한 세력들의 힘을 정확하게 평가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거룩한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이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영국 전쟁에서의 참전 세력이었는데, 결국 전 앵글로-색슨계 세력의 참전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계획들은 좌절되었고, 이 참전세력이 프랑스에 우호적으로 기울게 됨으로써 동방정교회 소속 주민들은 비엔나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범죄에 대한 책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이는 4년 이상에 걸친 극악한 범죄행위는 완전히 사전에 계획된 천인공노할 짓으로 수백만 이상의 꽃다운 유럽의 젊은 그리스도인 시체들을 납골당에 처넣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1914년 참혹한 일련의 전쟁들은 로마카톨릭이 촉발시켰다고 아주 특별히 언급한 바가 있다. 로마카톨릭이 항상 사람들로부터 착취해온 피의 조공은 당시에 실제적으로 아주 급격하게 증가되기 시작했다.』
위의 책은 물론, 다른 책들도 알베르토 리베라가 언급한 주장들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증거들로 가득 차 있다.
최근에 출간된 에드몽 파리의 저서 <예수회의 비밀역사>도 역시 유사한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칙 출판사에서 출간한 찰스 치니키의 <로마 교회에서의 50년>이란 제목의 책에서도 유사한 사실들을 읽을 수 있는데, 296쪽에서는 아브라함 링컨도 알베르토 리베라에게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미국의 남북전쟁)은 예수회의 사악한 영향력 없이는 결코 가능한 전쟁이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땅이 이 땅의 귀한 아들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그대로 천주교에 되갚아 주어야 한다. 노예 문제에 있어서는 남과 북 사이에 큰 견해차가 있었을지라도, 돈과 로마카톨릭의 무기와 그리고 프랑스의 무기까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한 예수회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면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제이프 데이비스나 연방정부의 지도자들 중의 어떤 사람도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감히 북을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스스로 로마카톨릭이 그녀의 사악한 손으로부터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렸다는 사실의 증언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리베라는 옳다. 알베르토가 주장하는 바 대로, 예수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배후에 있었던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