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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각을 드러낸 교황의 제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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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8월호>
이 세상에 로마 카톨릭을 교회라고 부르는 사람만큼 무식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을 교회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이렇게 표현하신다. 『이는 그가 교회를 말씀에 의한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깨끗게 하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서 점이나 주름진 것이나 또는 그러한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이것이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인 그리스도인이다.한편 로마 카톨릭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일곱 호리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와 대화하며 말하기를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그 큰 창녀의 심판을 네게 보여 주리라. 땅의 왕들도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도다.”라고 하고 그가 나를 영 안에서 광야로 이끌어가니라. 또 내가 보니, 한 여자가 주홍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또 그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하고 손에는 금잔을 가졌는데 그 잔은 가증스런 것들과 그녀가 행한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더라.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더라. 또 내가 보니,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더라.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보고 크게 의아해 하며 놀랐노라』(계 17:1-6).
하나님께서는 로마 카톨릭을 창녀라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자신의 신부라고 부르자 사탄도 자신의 신부인 종교적인 몸을 가진 것인데, 그것이 로마 카톨릭이다.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것을 인간이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교회사에서 로마 카톨릭을 교회국가(Church-state)라 부른다. 교회가 곧 국가라는 말이다. 존 칼빈은 이 말을 바꾸어 국가교회(State-church)를 스위스에 세웠다. 국가가 주관하는 교회라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 둘은 형제이거나 아니면 사촌쯤 되는 셈이다.
1. 그들은 바티칸이라는 국가(state)로서 행세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교회라면 어떻게 다른 나라들과 국교를 맺을 수 있겠는가!
2. 그들의 관심은 복음과 진리 전파에 있지 않고 다른 나라들을 종교라는 미명 아래 지배하고 주관하려는 데 있다.
3. 이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교회와는 무관한 세상적인 일, 특히 정치적인 일들뿐이다. 교황은 물론이요, 추기경, 대주교들이 성경을 강론하지 않고 세상사에 관해서 말할 뿐이다.
그런데도 땅의 왕들은 모두 그의 밑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교황은 종교적인 명분을 가지고 정치력을 행사함으로써 종교와 정치적 권한을 한 손에 거머쥐는 것, 이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A.D. 325년 콘스탄틴 이래 로마 카톨릭이 자행해 온 일이다.
어디를 보아 이들이 교회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을 교회라고 부른다. 그런 모독스런 명칭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로마 카톨릭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선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원칙을 만들어 놓고 일한다. 이것은 쿠테타를 일으킨 정부 전복자들, 마피아, 조직 폭력배 등 목적을 위해 악한 방법, 즉 살인, 유괴, 고문, 폭력, 거짓말, 배신 등을 불사하는 자들의 상투 용어이다.
로마 카톨릭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세계를 자기 수중에 넣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신론자이건, 유대인이건, 모슬렘이건, 불교이건, 힌두교이건, 통일교이건, 은사주의건, 장로교이건, 감리교이건 가리질 않는 것이다. 샤를마뉴로부터 히틀러, 뭇솔리니, 케네디, 카스트로, 디엠, 마르코스, 빌 클린턴 등은 모두 정권을 당대의 교황에게 바쳤다.
우리 나라의 김 대통령도 지난번 유럽 방문 때 바티칸에 초대되어 교황을 알현하였으며, 북한을 방문해 달라고 애원했었다. 또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에게 교황의 방북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 나라의 한 일간신문은 금년 6월 19일자 신문에 이렇게 기사를 썼다. “로마 카톨릭 교회 교황청은 1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양 방문을 희망하는 남북한의 초청장을 받았다고 확인하고 대신 교황 방문을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려면 북한 당국이 평양교구도 책임지고 있는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을 먼저 초청해야 한다. 교황이 방북을 위한 전제조건에는 북한이 카톨릭 교회를 인정하고 카톨릭 교회 신부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 등도 포함돼 있다.”
분단 55년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 동족이 이제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번영의 길로 나아가자는 이 마당에 왜 난데없이 폴란드 영화배우 출신의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바티칸 나리의 도움이 필요하느냐는 점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위해 어떤 점을 기여할 수 있다고 독자 여러분은 생각하는가?
만일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뭔가 기여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면 지난 55년 동안, 아니 그가 교황이 된 지(1978년) 22년 동안이라도 뭔가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바티칸은 분쟁국가에 대해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대통령이 카톨릭인임을 알고 분단 55년만에 가까스로 대화의 문을 열자 이것이 기회다 하고 그들 특유의 수단을 발휘한 것이다. 사탄의 세력들은 교활하다. 1개 중대의 병력도 없는 바티칸이 UN의 이름으로 평화군을 파견하는 것이 그것이다.
코소보는 엄연히 유고슬라비아 안에 있는 유고의 영토이다. 알바니아의 카톨릭 교도들은 코소보에 인구유입을 늘려 이 땅을 차지하려고 PLO처럼 코소보 해방전선인 모슬렘 테러 집단 KLA를 결성했다. 유고의 세르비아인들이 자국 영토에서 이런 테러 집단이 세력강화를 하며 코소보 해방을 들고 나왔을 때 용납하겠는가?
발칸 반도의 전쟁은 모슬렘인 보스니아와 카톨릭인 크로아티아와 희랍 정교회인 세르비아와의 내전인데 교황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을 사주하여 유고를 폭격하게 하였다. 이는 곧, 세르비아인들을 죽일 의향을 가지고 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유고에서 로마 카톨릭은 세르비아인 250,000명을 살해하였다(잭 T. 칙, <연막>, 말씀보존학회 참고). 어떤 학자들은 그 숫자를 500,000명 혹은 700,000명이라고도 한다. 지난 번 유고 내전 때, 세계 언론은 세르비아인들이 유고에서 인종청소를 시도했다고 혹평하였다. 하지만 세르비아인들은 그들이 당한 피해를 보상했을 뿐이었다.
빌 클린턴은 분별없이 교황의 요청에 순종하여 세르비아인들을 공격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그는 모슬렘과 카톨릭을 돕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던 것이다. 이점 역시 교황이 나설 일이 아니잖는가? 이 지상의 어느 전쟁이 선전포고도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국과는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는 한 나라의 내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이름으로 공격해도 되는 것인가? 유고가 NATO의 그 어느 나라에 먼저 공격을 했단 말인가?
로마 카톨릭은 이처럼 그들의 영향력 행사를 위해서라면 분단국이든, 내전국이든, 전쟁터이든 할 것 없이 끼어 들어 자기 몫을 챙기려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런 일들을 하겠는가?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일, 즉 세상 사람들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와 사탄의 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도 없고 좋은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도 없기 때문이다(마 7:15-20).
만일 소위 세상의 교회들이 모두 카톨릭과 교회협의회처럼 정치적, 사회적(세상적) 일들에 분망하다면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누가 하겠는가? 복음과 진리의 전파가 국가나 사회의 체계화된 제도로 이뤄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누가 로마 카톨릭을 교회라 부르는가? 거듭나지도 않고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들이 누구인가? 사탄의 자녀들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며 따르는 것은 마귀들의 책동이라는 점이교황은 “죄의 사람”으로 결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
다. 참된 교회의 특징은 대개 아래와 같다.
1. 성경이 다르다. 참된 교회가 쓰는 성경은 시리아 안티옥에서 온 비잔틴 계열의 원문인 반면 거짓 교회는 알렉산드리아 계열 원문이다.
2. 참된 교회는 외경을 거부하는 반면 거짓 교회는 외경을 포함시키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계열 원문을 따른 한글 개역성경 등이 제대로 갖추려면 외경이 들어 있어야 한다.
3. 구원계획이 다르다. 참된 교회는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완성해 놓으신 일을 믿는 믿음에 근거를 두는 반면 거짓 교회는 어린 아기들에게 물을 뿌려 구원을 흉내내고 있다.
4. 교리가 다르다. 참된 교회는 구원의 확신을 가르치는 반면 거짓 교회는 죽을 때까지 구원의 여부를 알 수 없다고 가르친다.
5. 최종권위가 다르다. 참된 교회는 바른 성경을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반면 거짓 교회는 그들의 전통과 교부들과 공회와 철학과 학자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카톨릭은 교황이 최종권위이다.
6. 참된 교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구원받음을 고백하는 경우에만 침례를 주는 반면 거짓 교회는 구원받음과 상관없이 침례나 세례를 준다.
7. 참된 교회의 주요사역은 구령하는 전도자, 목사, 성경 교사 등에 의해 수행되는 반면 거짓 교회의 주요사업은 복음과 진리 전파와는 관계없는 정치적인 활동으로 교황청 대사, 예수회, 교회협의회 등의 로비를 통해 이루어진다.
8. 참된 교회는 성령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반면 거짓 교회는 죽은 성자들에게 기도하며 때로는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9. 참된 교회는 어느 때에라도 이 세상으로부터 환대를 받아본 적이 없지만 거짓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 기독교계 전체를 대표하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
10. 참된 교회는 구령하기 위해 복음 전파와 영적 각성에 열중하고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고 선교에 정진하는 반면 거짓 교회는 A.D. 300년 이후 한번도 성경을 강론하거나 배우는 그 어떤 부흥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 없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오직 정치적인 것뿐이며 종교적 권위를 통해 정치세력을 거머쥐려는 계략으로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계략이며 이제 참된 교회가 곧 들림받고 나면 이 지상에서는 그러한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무섭게 맛보게 될 것이다.
소위 교회들이 복음 전파를 중단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면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 육신적인 방법이나 세상적인 수단으로 이룩될 수 있는가? 이 일은 오직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쓰임받을 수도 없다. 기구와 체계만 가지고 있을 뿐 정작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이 세상적으로 겉돌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이다.
세계범종교회의, 카톨릭과 루터교의 화해, 카톨릭과 힌두교와의 화해, 한국 카톨릭이 불교에 손짓하는가 하면, 김수환 추기경이 유교 선각자의 묘에 절하는 등의 일들은 하나님의 교회와는 무관한 일들이다. 분단 55년, 그 긴 세월 동안 한반도의 분쟁을 위해 입 한번 뻥끗하지 못한 카톨릭이 남북 화해 무드의 낌새를 맡고 그들 본연의 마각을 드러내며 북한이 교황을 초청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인정받으려고 한다. 하긴 카톨릭과 공산주의는 호형호제하지 않았던가? 성경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데는 맥을 같이하니 말이다.
한 순간도 떨리는 팔을 멈출 수 없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북한에 가서 공산주의 붉은 군대 앞에서 공산주의식 카톨릭 교회를 인정해 달라고 할 셈인가? 북한 당국이 그것을 형식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그것을 포교로 간주할 것인가!
그런 카톨릭이 북한에 있으면 어떻게 되고,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존재와 무”의 가치란 존재하면 이롭고 없으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있으나 없으나 매 한 가지라면 왜 있어야겠는가? 로마 카톨릭은 55년만의 남북 화해의 무드를 타고 그들의 세력을 행사하려는 속셈을 보인 것이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갈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