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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가 20세기 성령운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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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12월호>

지난 호에 이어서 조용기 목사가 20세기 성령의 운동의 근거로 제시하는 “늦은 비” 사역에 대해 알아 보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 15장에서 그의 사역에 함께했다고 증거하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대한 조목사의 신유 해석을 성경적으로 짚어 보기로 하자.

1. “늦은 비”가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의 20세기 성령의 운동인가?
순복음 교단의 국제신학연구원이 편저한 <하나님의 성회 교회사>의 1998년 초판 인쇄 당시 동신학연구원 원장이었던 이영훈 목사는 책의 발간사에서, 20세기 초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늦은 비 성령의 운동의 역사는 오늘날 전 세계에 파급되어 초대 교회 오순절 성령 강림과 종교 개혁 운동을 뒤이은 ‘제3의 종교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기술했다. 1) 그가 발간사에서 처음부터 강조한 것은 ‘늦은 비’ 성령의 운동의 역사라는 것인데, 동서(同書)의 격려사에서 조용기 목사는, 늦은 비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는데, 이러한 성령의 운동은 과거 기독교회사에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수많은 운동들처럼 신앙 생활의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다가 그친 일시적인 운동이 아니라면서 2) ‘늦은 비’에 해당한다는 20세기 오순절 성령의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조목사를 위시한 순복음 오순절주의자들이 위와 같이 그들의 성령의 운동의 ‘성경적’ 근거로 즐겨 사용하는 ‘늦은 비’라는 표현은 야고보서 5:7, 요엘 2:23, 호세아 6:3, 신명기 11:13,14, 예레미야 3:3에 등장한다. 특히 그들이 20세기 성령의 운동의 주요 교리적 근거로 삼는 구절은 야고보서 5:7인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래 참나니』 이 구절은,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는 말씀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듯, 명백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구절이다. 이어지는 8절에서도 『너희도 인내하며 마음을 견고케 하라. 주의 오심이 가까움이라.』며 문맥이 재림과 관련되어 있음을 확증해 주고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늦은 비’는 동일 구절 내의 ‘이른 비’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따로 분리하여, ‘이른 비’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고, ‘늦은 비’는 조용기 목사가 말하듯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전 세계 곳곳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성령의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순절주의자들은 야고보서 5:7을 요엘 2장과 연결시켜 교회 시대의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요엘 2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게 될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된 구절이며, 3) 야고보서의 그 구절 역시 그들이 교회 시대에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성령의 운동을 지칭하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야고보서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명백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비”를 언급하고 있으며, 주님의 재림을 예언하는 사무엘하 23:4은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리하면 그가 해 돋을 때의 아침 빛같이 되리니, 곧 구름 없는 아침 같겠고, 비 온 후에 맑게 반짝임으로 땅에서 돋아나는 연한 풀잎 같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태양’이시다(말 4:2). 그리고 교회 시대는 밤이므로(막 13:35, 롬 13:12) 교회 시대가 막을 내린 뒤 오시는 주님의 재림은 천년왕국을 시작하는 새로운 아침이다. 따라서 사무엘하 23:4의 “해 돋을 때의 아침 빛”은 온 세상을 의로 통치하기 위해 7년 대환란 후 지상에 재림하시는 우리 주님의 찬란하신 모습을 묘사하는데, 이 구절에서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아침에 대해 “구름 없는 아침”이라고 한다는 점과, 천년왕국을 수립하기 위해 재림하시는 주님을 “비 온 후에 맑게 반짝임으로 땅에서 돋아나는 연한 풀잎”이라고 묘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 “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선행되는 문자적인 “비”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체 서른다섯 구절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는 시편 68편4) 역시나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비”를 언급하고 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흡족한 비를 내리시어 주의 유업이 곤비할 때에 주의 유업을 견고하게 하셨나이다』(9절). 이 구절은 교회 시대가 끝난 후인 7년 대환란 기간에 적그리스도의 박해로 곤비함 가운데 놓여 있던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고난이 끝났음을 알리는 표적으로서의 비를 말씀하는 것이다. 5)
오순절주의자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시간적 간격이 약 2천 년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성령 사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요엘은 두 계절에 내리는 이 비들이 같은 달에 한꺼번에 내린다고 말씀한다. 『...또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려 주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첫달에 내리게 하실 것임이라』(욜 2:2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과 천년왕국을 다루는 요엘에 속한 이 구절이 뜻하는 것은, 대환란이 곧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것이 한 달 동안 내리는 상당량의 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표적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호세아 6:3은, 『그의 나오심은 아침처럼 마련되어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비처럼 오시리니,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처럼 오리시라.』에서 보는 것처럼,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순서를 바꿔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재림에 선행되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순서와 관계없이 한 달 동안 한꺼번에 내릴 것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야고보서나 요엘 등에서 언급하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교회 시대의 성령 사역과는 무관한 것이며, 그것이 대환란이 끝났음을 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선행하는 많은 양의 문자적인 비라는 것이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의 ‘늦은 비’와 관련하여 성경이 스스로 해석해 주는 내용이다. 조용기 목사를 위시한 오순절주의자들의 20세기 성령의 운동은 ‘늦은 비’와 관련하여 그 성경적인 근거가 전무한 비성경적인 운동이며, 근본이 비성경적인 조목사의 신유론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사도 바울이 복음 증거를 위해 사용했다는 신유의 은사
조목사는 사도 바울이 복음과 관련해 사용한 신유의 은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는 구원과 신유의 은사를 동시에 받아들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면 병 고침도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주장합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 증거와 함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복음 증거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롬 15:17-19).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이 병 고침의 은사를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마땅히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6)
조목사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분명 그것은 그가 인용한 로마서 15:18에 등장하는 다음의 내용을 두고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시려고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것들 외에는 어떤 것도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겠노라. 그것들은 말과 행위로, 능력있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이룩하신 것이니라』(롬 5:18).
조목사의 강조점은 개역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능력”에 있는데, 즉 “표적들과 이적들”과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말하고자 함이 분명하다. 그는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여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는 일에 성령의 능력을 통한 표적들이 행해졌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여 순복음 은사주의에서 나타나는 비성경적인 신유나 방언 현상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사실 바울이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려고 표적들과 이적들을 사용했다는 내용은 순복음을 신약 교회 시대의 교리로 내세우기에 매우 합리적이고 적합한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이 구절을 바울의 사역과 관련된 전체 맥락에서 보지 않는다면 그런 오류에 빠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순복음 신유론은 바울의 사역 대상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옮겨간 것을 적용할 줄을 모른다.
바울이 18절에서 자랑스럽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것』, 즉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하여 행하신 『말과 행위』, 『표적들과 이적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이룩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하여 행하신 이 모든 것들은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시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물론 바울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능력있는 표적들과 이적들』은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들과 이적들이다. 바울은 비록 이방인들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어도 그의 사역 초기에는 유대인의 사도로서 이러한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하였다.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하여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롬 1:16)라고 말한 것은 바울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의 처음 대상이 유대인들이었음을 뜻한다.
적어도 사도행전 기간 중에는 하나님께서 주로 유대인들을 다루고 계셨기 때문에 유대인 사도들에게는 표적들과 이적들이 주어진 것이며, 바울 역시 유대인 사도였기 때문에 이러한 표적들과 이적들을 한시적으로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더 이상 상대하시지 않게 되었을 때 유대인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표적들과 이적들은 모두 철회되고 말았다.7)
바울이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는 일에 표적들과 이적들을 언급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사역 초기에 대유대인 사역에 쓰였던 표적들과 이적들이 궁극적으로는 이방인들을 복음에 순종하게 하는 복음 전파 사역에 전초가 되었다는 뜻이다. 주님이 바울을 통하여 이룩하신 모든 것은 “말과 행위”로 이룩되기도 했고(행 9:20-22; 13:14-43; 14:21, 고전 15:10, 빌 4:8,9), “표적들과 이적들”로 이룩되기도 했으며(행 14:3,8-10; 20:6-12, 고후 12:12),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이룩되기도 했다(고후 13:4, 살전 1:5). 바울은 주님이 그를 통하여 이룩하신 그러한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는 이방인들의 순종을 가져왔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가 로마서 15:18의 다음 구절인 19절에서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쿰 근방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파하였노라.』고 한 데서 더 밝히 드러난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 범위를 언급하기 위해서 대유대인 사역의 본거지인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던 소아시아의 마케도니아 지역까지 포괄하고 있다. 로마서의 기록 연대는 바울이 로마로 끌려가기 전인 A.D. 60년으로, 그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지기 전에(행 28:28) 로마서 15:18,19에서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을 짧지만 총괄적으로 회고하고 있는 것이며, 그 모든 사역 가운데 주님께서 『말과 행위』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바울을 통해 이룩하신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표적들과 이적들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한 조목사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 곧 성령의 능력을 『표적들과 이적들』에만 국한시켜 순복음의 병 고침 현상을 뒷받침하려 했지만, 로마서의 그 본문은 『말과 행위』와 더불어 이 셋을 따로 분리시키고 있다.
“성령의 능력”과 병 고침을 습관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은 주님을 증거하는 일에 나타나며(행 1:8), 병 고침의 은사들이 중단된 현 교회 시대에는 주님이 증거되는 곳에서 치유의 표적 없이 나타난다.
따라서 로마서 15:18에서 바울이 언급한 “표적들과 이적들”은 사도행전의 과도기가 끝나고 사도의 표적들이 중단된 후의 현 교회 시대 복음 전파 사역과는 무관한 것들로서, 이것을 순복음식 신유론처럼 현재의 복음 전파에 적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일이다. BB
주석)-----------------------
1) 이영훈, 『발간사』, 『하나님의 성회 교회사』 (서울: 서울말씀사, 2005).
2) 위의 책.
3) 오순절주의자들이 행 2:17-21과 더불어 그들의 성령의 운동의 근거로 삼고 있는 욜 2:28-32은 7년 대환란이 끝나기 직전 “피와 불과 연기 기둥들과 같은 하늘들과 땅의 이적들”이 있고(30절), “해가 흑암으로, 달이 피로 변하고 주의 위대하고 두려운 날이 이른”(31절) 뒤 있게 될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과 관련 있는 구절들이다. 요엘의 이 두려운 현상은 사도행전 2장에서 조금도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직결된 요엘 2장의 전체 문맥을 무시하고 그것을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요엘 2장의 그 일들이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것”(행 2:16)이라고 말한 것은 앞선 1-6절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요엘이 예언한 “마지막 날들에 있을 일들”(17-20절)에 대해 말하려고 한 것인데,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소선지서(말씀보존학회, 2004)와 사도행전(말씀보존학회, 1997)을 참조하기 바란다.
4) 피터 S. 럭크만, 『피터럭크만의 주석서 시편』, 박종률 역, (서울: 말씀보존학회, 2002), p.322.
5) 피터 S. 럭크만,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히브리서』, 김기준 역, (서울: 말씀보존학회, 2000), p.123.
6) 조용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서울: 서울말씀사, 2002), p.134.
7) 피터 S. 럭크만,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사도행전』 (서울: 말씀보존학회, 2003), pp.422-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