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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장을 “불발탄” 표적으로 만드는 순복음 신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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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11월호>
지난 호에 이어서 순복음의 신유론을 계속 살펴보도록 하자. 조용기 목사는 마가복음 16장을 예로 들며 신약의 구원의 메시지가 항상 신유와 함께함을 주장한다.『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주신 중요한 명령을 기록하고 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5-18). 구원을 받기 위해 신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원의 메시지는 항상 신유와 함께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유는 초대 교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1)
조목사는 마가복음 16:15-18을 주님께서 신약의 교회들에게 주신 명령이라고 주장하며 신유를 강조한다. 그 구절들은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함을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들이 따르리니, 즉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내고 또 새 방언들로 말하리라. 그들은 뱀들을 집을 것이요,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되리라.”고 하시더라.』
조목사가 신약 교회 시대의 사역을 위한 명령으로 알고 있는 마가복음 16장의 위임사항들은 현 교회 시대와는 무관한 명령이다. 거기에 제시된 능력은 ‘왕국 복음’의 표적들이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그것들은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지기 전에 실행될 것들이었다.
성경에 따르면,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까지도 제자들은 지상에 임할 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주여, 이 때에 이스라엘에 그 왕국을 다시 회복하시겠나이까?』(행 1:6)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했을 때는 그들이 이미 주님으로부터 문제의 “마가복음 16:14-18”과 마태복음 28:19,20, 누가복음 24:45-49의 명령을 들은 뒤였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의 지각을 열어 주시므로 성경을 깨달은 상태에서(눅 24:45) 지상명령을 받은 제자들이 ‘그 왕국의 회복’에 관하여 주님께 질문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가복음 16장을 비롯하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지상명령들은 제자들이 사도행전 1장에서 한 질문에서처럼 “그 왕국”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 왕국”과 관련된 지상명령들
조목사의 지상명령 왜곡을 다루기 위해서 먼저 마태복음 28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배교한 신학자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목사들은 흔히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을 교회에게 주시는 명령으로 여기고 있지만, 그것은 왕국 복음의 전파와 관련하여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0절)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에는 마태복음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천국 복음과 관련된 모든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즉 병든 자를 치유하고, 문둥병자를 고치고, 마귀들을 내어 쫓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가고, 산상설교의 내용들을 지키는 것 등 신약 교회 시대에는 결코 적용시킬 수 없는 왕국 복음에 속한 모든 것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주님은 같은 절에서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세상’은 헬라어 ‘아이온’에 해당하는 “시대”(age)를 뜻한다. 주님이 말씀하신 세상 끝이란 특정 시대의 끝을 말하는데, 성경이 말씀하는 “끝”(the end)의 의미는 마태복음 24장이 밝혀 준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13,14절). 여기서 말씀하는 ‘끝’은 ‘왕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오는 끝’이다. 특정 시대의 끝이란 교회 시대가 끝나고 도래할 ‘대환란 시대의 끝’인 것이다. 교회가 휴거되고 지상에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임하면 그때 다시 전 세계적으로 왕국 복음이 전파되며, 그 날들에는 대환란이 끝날 때까지 믿음과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만 구원을 받아 천년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이 근본적으로는 7년 대환란의 유대인들과 관련이 있음에도 오늘날의 교회 시대를 향한 지상명령으로도 믿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구약과 신약의 과도기에 있는 마태복음이 은혜의 복음을 향해 나아가면서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사도행전 7장에서 유대인들이 주님을 민족적으로 거부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왕국 복음이 이방인들을 향한 은혜의 복음으로 서서히 그 방향을 전환한 것에서 기인한다. 둘째, 주님으로부터 제자들에게 위임되었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주님의 영으로 거듭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위임되었기 때문이다. 땅 위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세는 본시 주님이 가지신 것이었으나(마 9:6), 그 영적인 권세는 베드로(마 16:19)와 다른 제자들(마 18:18)에게도 주어졌다. 그들은 주님을 그들의 “왕”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에게는 죄사함을 선포하고,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저주를 선포할 권세를 지니게 되었으며, 받은 그 권세를 바탕으로 왕국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한편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고후 5:20)이라고 불린다. 그들 역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대사로서의 직분을 지니고 있다. 제자들에게 위임되었던 그 영적인 권세는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위임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권세를 통해 “은혜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죄를 대속해 주신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죄사함을 선포하고,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선포할 권세를 지닌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제시하느냐 구주로 제시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주님을 증거의 기준으로 하여 죄사함과 저주를 선포할 수 있는 권세를 지녔다는 점에 있어서는 제자들이나 신약 그리스도인들이나 서로 동일한 것이다.
이처럼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은 문제의 마가복음 16장의 명령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왕국 복음과 관련이 있다. 제자들은 이와 같은 지상명령들을 이미 들은 상태에서 주님께 “이 때에(at this time),” 즉 주님이 아직 지상에 계신 “이 때에” 왕국을 회복시키시겠느냐고 여쭙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마가복음 16장에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표적의 능력을 행사하여 왕국 복음을 증거하면 왕국이 당장이라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이 기대가 무효하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의 왕국의 회복이 구약성경에서 500구절 이상이나 다뤄지고 있으며,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의 누가복음에서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의 왕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눅 1:32,33). 그만큼 왕국의 회복에 대한 제자들의 기대는 가장 성경적이고 논리적인 기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늘의 아버지께 맡겨 드린다. 『너희에게는 그 때나 시기를 알게 하신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셨느니라』(행 1:7). 제자들의 질문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왕국의 회복이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신 것이다. 십자가 이전에라도 그것은 회복될 수 있었지만 유대인은 그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 그러나 이후라도 그들이 왕국 복음을 받아들이면 왕국은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단 그 때나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일이라고 주님은 못박고 계신다. 주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예언하고도 그 예언이 무슨 내용인지 깨닫지 못했던 시대(벧전 1:10-12), 즉 교회 시대를 염두에 두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주님이 마가복음 16장에서 ‘마귀를 내쫓음, 새 방언들로 말함, 뱀들을 집음,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음, 병자 안수를 통한 신유의 표적들’을 능력으로 주신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과 관련이 있었으며, 그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왕국의 회복을 주님께 여쭌 것이다. 만일 위의 표적들을 통해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으로 믿고 영접하면 주님은 천년왕국을 가져오실 계획이셨으나, 그들은 스테판을 통한 주님의 최후 통첩을 거부하고 그를 죽였고, 그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민족적으로 끝까지 거부해 버렸다. 그리하여 왕국 복음은 사도 바울에게 계시된 은혜의 복음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어 초림과 재림 사이에 감추어져 있던 “교회 시대”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마가복음 16장의 표적들”을 동반하는 왕국 복음은 교회 시대가 끝나는 약 2천 년 뒤로 연기되었으며,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는 현 교회 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환란 시대가 임하면 다시 전파되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권한에 두신 왕국의 회복을 다시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조목사가 마가복음 16장의 왕국 복음의 표적을 신약 교회 시대의 신유에 적용한 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 왕국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목사는 또한 마가복음 16장의 명령과 관련하여 스스로 혼란을 겪고 있는데, 그는 17,18절을 근거로 주님이 치료에 대한 “유언”까지 남기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질병의 치료를 복음 전도와 함께 중요한 과제로 맡겨 주셨으며(마 10:1, 눅 10:8,9) 마지막 승천하실 때에는 치료에 대한 유언까지 남기셨다고 말하고 있다(막 16:17,18).2) ‘유언’이란 죽을 자가 살아남아 있는 이들에게 남기는 말이다. 그런데 마가복음 16장에서 주님은 이미 죽었다가 부활하신 상태이다. 조목사의 말대로라면 주님은 마가복음 16장 이후로 또 죽으실 예정이시다. 신유만을 너무 강조하려다 보니 단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혼란을 빚어 진리를 또 한 번 가린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목사를 포함한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은 마가복음 16장의 신유의 표적을 재차, 삼차 강조하면서도 뱀들을 집거나 독을 마실 엄두는 내지 못한다. 그들이 신유 은사의 증거구절로 삼는 마가복음 16장의 표적들은 그들 비성경적인 은사주의자들은 물론, 신약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과는 무관한 표적들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3에서 『내가 할례받은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온 율법을 행할 의무가 있는 자라.』고 했다. 마가복음 16장의 표적들 가운데 있는 치유의 표적을 신약 교회 시대로 가져오는 은사주의자들에게는 나머지 표적들도 행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결코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의 비성경성을 입증하고 있다.
나을 수도 있고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신유의 은사’
조목사는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신유의 은사로 병이 나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신유는 성령의 은사 중 하나입니다. 보편적으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으로서 특별히 성령으로 신유의 은사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으면 전격적인 신유가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신유는 복음 증거의 좋은 방법입니다... 1000번 설교 듣는 것보다 한 번의 신유 체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느끼는 데 더욱더 효과적입니다. 물론 그 중에는 낫는 사람도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낫지 않는 사람을 보고 염려할 것이 아니라, 낫는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3)
조목사는 신유의 은사에 대한 근거로 마가복음 16장을 몹시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인용한 지 불과 한 페이지도 지나지 않아서4) 위와 같이 자신의 근거구절과 모순되는 주장을 한다. 그는 “물론 그 중에는 낫는 사람도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마가복음 16장의 근거 구절은 그와 다르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들이 따르리니, 즉... 병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되리라』(17,18절). 표적들이 따르는 “믿는 자들”이란, 표적을 행하는 당사자를 지칭한다. 이 구절의 신유의 표적의 경우로 들자면, 믿는 자들은 피안수자가 아닌 “안수자”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가 “병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되리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피안수자의 믿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방적인 표적으로, 믿는 자가 안수하면 “낫는 사람도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고침을 받는 표적이었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물질을 원하는 그를 일방적으로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3-8절). 심지어 그들은 주님의 경우처럼(마 8:13, 요 4:50) 안수하지 않고도 그 병자를 치유했는데, 주님이 사도들에게 주신 권세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또한 사도행전 5장에서도 보면 “사도들의 손을 통해” 많은 표적과 이적이 백성 가운데 일어났으며(12절), 무리가 예루살렘 근처 성읍에서 병든 자들과 더러운 영들에게 괴로움 당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낫는 사람도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치유되더라”고 말씀하고 있다(16절). 한마디로 사도들의 신유에는 조목사와는 달리 “불발탄”이 없었던 것이다.
“믿는 자들”이 ‘안수하는 자들’이라는 것은 조목사도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손을 얹는 것은 예수님의 치료의 능력이 나타날 것을 믿는 신앙의 표현이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을 때 치유의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5) 그러나 안수를 통한 병 고침의 표적은 신약 시대의 교회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게 주신 표적이다. 앞서 인용했듯이 “사도들의 손을 통해” 많은 표적과 이적이 일어났으며, 또 성경은 “사도의 표적들”이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서 “지극히 위대한 사도들보다 아무것도 뒤질 것이 없는” 사도 바울을 통해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력 행함으로 판명되었다고 고린도후서 12:11,12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시대의 사도들에게 신유의 표적이 주어졌던 것은 당시 교회 내에 표적을 필요로 했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고전 1:22; 14:22). 그 표적은 사도들의 것이었으며, 사도들 가운데 마지막 사도인 바울이 죽음으로써 사라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사라져 버린 사도의 표적들 가운데 하나인 병 고침의 안수를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신 약속이며 오늘날도 계속되는 약속”이라고 하거나,6) “오늘날에도 성도가 예수의 이름으로 병자에게 안수할 때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7) 고 가르치는 것은 비성경적인 일이다. 오늘날 거짓 은사를 자랑하며 병자를 위해 안수하는 모든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을 명백하게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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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용기, <신유론>, (서울: 서울말씀사, 2001), p.47.
2) 조용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서울: 서울말씀사, 2002), p.165.
3) 조용기, <아들아, 네가 험한 길을 살았구나!>, (서울: 서울말씀사, 2005), pp.151-152.
4) 위의 책, p.150.
5) 조용기, <신유론>, p.88.
6) 위의 책, p.88.
7) 조용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