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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이단 감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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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9월호>
요즘 한국 교계는 이단 규정에 관한 문제로 뜨겁다. 어떤 사람이 이단이니 아니니에 대한 논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최근 들어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이하 ‘예장연’)가 출간한 <정통과 이단종합연구서>라는 이단종합연구서 때문에 교계는 다시금 이단 문제로 시끄럽게 된 것이다. 보통은 각 교단 총회에서 이단을 판별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단 판별의 잣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고, 또 너무 무분별하다는 것이다. 특히 교단에서 규정하는 이단의 경우는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이단 정죄하고 또 이단에서 풀어 주는 일들이 허다하다.예장연에서 낸 이단자료집도 마찬가지인데, 특이한 것은 보통 이단이라고 알려져 있는 교회들을 대거 풀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기총을 포함한 여러 단체들은 이 자료집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 책을 “이단을 옹호하는 책”이라고 비평하고 나서기까지 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이단으로부터 “해방”받은 단체들은 좋아라 하며, 이 책을 통해 자기들이 이단에서 면제받았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단에서 면제받은 단체는 성락교회, 할렐루야기도원, 구원파, 다락방, 만민중앙교회(이재록), 안식교 등 15개 단체이며, 반면 여전히 이단으로 묶어 놓은 단체는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안상홍증인회(하나님의 교회), 천부교(박태선), 신천지예수증거장막성전(이만희), 영생교승리제단(조희성) 등 17곳이다. 말씀보존학회에 대해서는, 처음 교정본에서는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가, 후에는 자체 판단을 보류하고 한기총이 이단이라고 규정한 연구결과만을 수록해 출간했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47호(2004년 6월호)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그들은 어떤 기준을 갖고 이단을 정죄하는가? 또 어떤 기준을 갖고 이단에서 풀어 주는가? 이에 대해서 한기총이나 예장연은 동일한 기준을 갖고 있다. 즉 기성 교회들이 고백하는 신조와 다르지 않으면 정통이라는 것이다. 각 교단들은 교리에 있어서 서로 같은 것이 있고, 서로 다른 것이 있다. 이 경우 서로 다르더라도 그것은 견해 차이로 일축한 후, 서로를 인정해 준다. 예를 들어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그 구원론부터 큰 차이를 보이는 상이한 교리다. 만약 칼빈주의가 정통이면 알미니안주의는 이단이고, 알미니안주의가 정통이면 칼빈주의는 이단이다. 하지만 오늘날 장로교와 감리교는 서로를 인정하고 있으며, 교계는 이 두 교리 중 어떤 교리를 믿어도 정통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제도 교회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면 그것은 이단이 된다. 그들은 모두가 “이단 판단의 잣대는 성경이다.”라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비성경적 교리를 제시해도 기성 교단과 손을 잡고만 있으면 정통이 되는 것이다. 예장연에서 이단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교회들도 마찬가지다.
“해방”된(?) 이단들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가 이단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고 지옥을 부정한다. 통일교는 문선명이라는 교주를 섬기고, 몰몬교는 성경 위에 몰몬경이라는 경전을 둔다. 안상홍증인회도 안상홍이라는 자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다. 신천지교회(이만희)는 성경을 모두 은유적으로 해석한다. 이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단에서 풀어 준 단체들은 도대체 왜 풀어 준 것인가? 예장연의 보고서에는 각 단체들에서 직접 기술해 준 자료들이 있다. 그 자료들은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여기에 속으면 이단에서 풀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설교하고 펴냈던 책들을 보면, 그 자료들이 거짓임을 쉽게 알 수 있다.
1. 성락교회(김기동)가 문제시되었던 부분은 주로 귀신론 때문이다. 예장연의 자료에서도 김기동 목사는 귀신론의 정당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물론 자기들의 교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불신자의 사후가 귀신이 되어 사람들 속에 들어가 괴롭힌다는 말이 성경 어느 구절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필로와 요세푸스와 초기 기독교 문서들을 증거로 삼지만, 필로와 요세푸스가 누구인가? 배교한, 헬라화된 유대인으로서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 아닌가? 그들의 의견은 전혀 성경으로 입증할 수 없다.
하기야 한기총이든 예장연이든 결국 김기동 목사의 논리에 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한글개역성경>이 “귀신”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이라고 되어 있는 성경을 사용하고 있는 이상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을 절대 막을 수 없다.
김기동 목사는 이것을 자기들의 절대 교리가 아니라 단순히 이론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귀신론은 결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그들은 소위 “축사”(귀신 쫓음)를 매우 강조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질병은 모두 귀신 때문에 온다는 것, 그래서 사람을 붙잡아 놓고 귀신 쫓는 무당 행위를 하는 것, 이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김기동 목사만의 행위가 아니다. 순복음교회를 포함해서 모든 은사주의자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주의 교회를 정통이라고 말하는 한, 그 누구도 김기동 목사를 이단이라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은사주의는 성경을 통해 볼 때 분명히 이단이며, 미혹의 영이다. 물론 김기동 목사의 신학적 문제는 이 하나뿐이 아니다. “이중아담론”이나 “네피림” 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장연은 김기동 목사를 이단에서 풀어 주었다. 한기총은 여기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만, 그들도 곧 같은 입장이 될 것이다. 성락교회는 이미 충분히 커서 한국 교계에 위치를 점유했기 때문이다.
2. 할렐루야 기도원(김계화)은 왜 문제인가? 우리 나라 여느 기도원처럼 북치고 장구치고 소리지르고 방언하고 신유, 축사하는 것은 똑같은데, 소위 “성령수술”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김계화 원장이 기도한 후 손으로 환자의 환부를 긁는데 거기에서 시뻘건 피와 함께 암덩어리, 종양덩어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자는 나았다고 간증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무슨 불을 봤다든지 뜨거워졌다든지 하는, 은사주의적 체험을 이야기한다. 몇 해 전 TV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사기였다고 보도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예장연의 보고서에서 김계화 원장측은 이에 대해 변명성 해명을 했고, 예장연은 그대로 받아들여 이단에서 풀어 준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예장연은 은사주의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다. 사실 할렐루야 기도원은 단순한 교리적 이단이 아니라, 그 행태에 있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비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이 기도원이 일반 은사주의 교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반 은사주의 교회에서도 “안찰”은 수없이 있지 않은가? (안수가 손을 얹는 것이라면, 안찰은 손으로 때리는 것이다. 너무 심하게 때려서 다치거나 죽는 사례도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신유 사역에 대해서는 이재록 목사(만민중앙교회)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그러나 몇 해 전 TV를 통해 방영된 만민중앙교회의 예배 모습은 거의 사이비 집단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특히 이재록 목사에 대한 환상과 신격화는 보통 은사주의의 도를 넘어 극단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예장연은 그에게 “정통”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3.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유병언)에서는 웹페이지를 통해 예장연의 보고서를 크게 제시하며, 자기들이 이단에서 풀렸다는 것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들을 구원파라고 말하는 것은 항상 구원만을 말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특히 기성 교회들에 다니는 구원받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은 구원파가 접근해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기쁠 리가 없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대속 사역을 열심히 설명하기는 하나, 구원받은 사람은 죄가 없으므로 자백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자기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면 예수님의 보혈을 의심하는 것이기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등, 구원론에 있어 심각한 오류를 보이고 있다. (구원파의 여러 계열 중 이에 일치하지 않는 곳도 있다.) 또한 예수님을 의지로 “영접”하지 못하게 하고 단지 깨닫는 가운데 믿어지는 것만을 강조하며, 구원받은 이후에도 구원에만 머물러 있게 하고 성장할 수 없게 한다. 구원파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구령 한 명 제대로 못한다. 구령은 목사 혹은 교회의 대표자가 하게 되어 있고, 평신도는 그냥 교회로 인도할 뿐이다. 또 어떤 곳에서는 세속적인 사업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속여, 회원들에게 사업 투자 강요, 노동력 착취 등 매우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예장연을 비롯, 제도 교회들에서는 구원파의 사회적 문제 외에는 지적하지 못한다. 이들이 복음 전하는 스타일을 싫어하기만 할 뿐이지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실제로 그들 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어찌 이들을 이단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예장연은 그들을 이단에서 풀어 주었지만, 아직도 한기총 등 교계의 여러 단체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있는 실정이다.
4. 안식교는 어떤가? 그들은 아직도 구약 시대에 살고 있어 금요일 저녁 여섯 시부터 토요일 저녁 여섯 시까지를 성일로 지키고 있다. 신약에서 공식적으로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예배를 일요일에 드리느냐 토요일에 드리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안식일이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표적(출 31:13, 겔 20:12,20)이라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성도가 되었기 때문에 안식일과 무관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생활은 다분히 율법적이다. 레위기에 있는 규례에 따라 음식을 먹기도 한다. 물론 레위기를 철저히 따라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동성 있게(?) 한다. 과거에는 율법, 특히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는 교리를 조금 수정해서,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구원받은 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안식교를 이단이라 취급하지 않는 교회가 많다. 그래서 예장연에서도 이 이유를 들어 우리 나라에서도 안식교를 이단에서 풀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기야 유대인과 이방인을 교리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안식교뿐이겠는가? 무수한 제도 교회들이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많은 교회들이 신약 시대에 살면서도 구약적인 율법의 삶을 살고 있다. 마침 국가적으로도 주 5일 근무제까지 도입되어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으니, 이런 상황에 안식교를 이단이라 말할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안식교에서는 지옥을 부정한다는 것을 아는가? 안식교는 “혼의 수면”을 가르친다. 즉 죽은 사람들은 백보좌 심판을 당할 때까지 무의식상태로 있기에 지옥에서의 고통이 없다는 것이다(안식교 기본신조 25). 또 심판 후에 형벌을 받는다 해도,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생을 얻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소멸해 버린다고 주장한다(안식교 기본신조 26).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원토록 저주를 하시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흡사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과도 비슷하다. 그런데 안식교가 이단이 아닌가? 도대체 예장연은 무슨 근거로 이들을 이단에서 풀어 준 것인가? 그것은 단 하나, 교세가 크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회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사주의를 반대하면 이단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말씀보존학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예장연 보고서에서는 말씀보존학회에 대해서 자체 판단을 유보했지만, 한기총 이단 연구 자료를 그대로 실음으로써 한기총의 의견에 동의함을 보여 주고 있다.) 한기총에서 말씀보존학회를 문제삼은 것은 <킹제임스성경>을 절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들은 <킹제임스성경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는 허위사실도 유포시켰지만, 이것이 허위임은 이미 밝혀졌다. 그러나 예장연의 이론에 따르면 이는 이단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우 <킹제임스성경>을 절대시하는 교회는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우리를 이단으로 보면 그들도 모두 이단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에 감히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를 이단으로 모는 또 다른 기준이 제시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은사주의를 반대하면 이단이라는 것이다. 말씀보존학회를 이단으로 취급한 이유는 <킹제임스성경> 때문이 아니라, 우습게도 “기적종료설” 때문이었다.
기적종료설이라 함은 사도 시대 이후로 표적은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에는 성령의 역사로 어떠한 기적도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행하던 그 천국 복음의 표적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방언, 신유, 축사 등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의 교리를 반대하는 것이다. 즉 오늘날도 믿음의 기도를 통해 병이 나을 수는 있지만 조용기 목사식으로 방언 기도나 특정 “신유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오늘날도 마귀를 대적하여 쫓을 수는 있지만 김기동 목사식으로 불신자의 사후 영인 귀신들을 쫓아 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난잡한 방언 기도로 사람들을 혼미케 하여 이상한 체험을 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고전 14:33).
이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교리이다. 성경이 기록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표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시지 않는다. 간혹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복음 전파의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그 시대가 끝나감에 따라 표적이 점차 사라져 갔다(딤전 5:23, 고후 12:7-9).
과거에 이 교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었다. 웨슬리, 무디, 피니, 스펄전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키면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러나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기적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려 한다.
또 과거 은사주의가 처음 도입되기 시작할 무렵, 많은 교회들에서는 방언하고 소리지르고 날뛰는 그러한 행태를 이단으로 정죄했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장로교 통합측은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었다. 그들이 대표적인 “기적종료론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순복음교회는 계속 확장되었다. 순복음교회는 교세도 키웠지만, 그 막대한 돈으로 신문사도 만들고 문화시설도 만들면서 교회나 사회 단체들에 친교의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 손을 잡은 것이다. 또 순복음 집회에 참석하여 그 “뜨거운 열기”를 맛보고 나니, 그 체험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 같은 데서는 “경배와 찬양”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들여오면서, 토론토의 극단적 은사주의자들의 웃음 예배 등을 시도하고 젊은이들에게 방언 찬양 등, 록 음악 형태의 은사주의 운동을 심어 놓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리자, 은사주의의 불길은 교계를 완전히 휩쓸어 버린 것이다. 또한 은사주의자들은 교회일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은사주의와 카톨릭의 연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최근에는 조용기 목사가 “불교의 구원”을 운운하기까지 했다.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진 교단들이 일치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공통분모를 가져야 하는데, 이는 니케아 신조나 사도신경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갖고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교리적 차이점들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은사주의적 “성령체험”이다. 이 체험을 하고 나면 교리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너도 나도 성령체험을 했는데 교리 갖고 싸울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제는 기적종료설을 주장하는 것이 거꾸로 이단이 되어 버렸다. 과거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예장연의 이단 판별 기준은 “교세”였으며, 이 보고서로 인해 예장연은 은사주의자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만 것이다. 예장연은 최삼경 목사라는 사람도 이단으로 분류했는데, 그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는 최목사가 갖고 있는 다른 신학 사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특히 그가 기적종료설을 주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은사주의를 부정하면 이단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 김기동, 이초석, 김계화, 이재록을 풀어 준 것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은사주의자들이 아니라 이상한 행동으로 비난받았던 자들이며, 김기동을 제외하고는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켰던 자들이다. 하지만 은사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어차피 동일한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예장연은 이 <정통과 이단종합연구서>를 선전함에 있어서, “본 연구서는 「정통과 이단」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통교리에 입각한 이단판별기준을 만들어 신학자들의 감수를 받아 한국 교회 최초로 기준대별과 대상자들에게 변증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객관적 검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의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지 몇몇 이단들을 “해방”시켜 준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해방”된 집단들의 입지를 굳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기총에서는 자기들이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를 마음대로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이단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이단 감별사가 하나 더 생겨 서로 다른 기준을 내놓아 혼돈만을 가중시키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철저히 성경을 근거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는 성경적으로 연구했다고 하지만, 교단 교리와 학자들의 견해와 교세와 정치적 상황과 전통 등이 성경보다 훨씬 위에 올라가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이러한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라. 바른 말씀으로 돌아와서 어떤 편견도 버리고 오직 말씀을 통해서 교리적 기준을 분명히 세우라.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 나라는 이단들의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