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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특강 - 호세아 (1) : 간음한 아내인 이스라엘의 심판과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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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2월호>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Hosea]』는 “바빌론 포로기 이전”에 활동한[B.C. 785-725, “어셔”(Ussher) 주교의 연대표] 선지자로, 『유다[남왕국]의 왕들로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와 히스키야의 시대요, 이스라엘[북왕국] 왕으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에』(호 1:1) 예언을 했고, “이사야,” “아모스,” “미카”와 동시대에 사역했다. 『유다의 왕들, 곧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키야의 시대에 아모즈의 아들 이사야[Isaiah]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상이라』(사 1:1). 『유다의 웃시야왕의 때요,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의 아들 여로보암의 때 지진이 나기 이 년 전에 트코아의 목동들 가운데 있었던 아모스[Amos]의 말씀들로, 그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본 것이라』(암 1: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키야의 날에 모라셋인 미카[Micah]에게 임한 주의 말씀으로 그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것이라』(미 1:1).“호세아”란 이름은 “구원,” 곧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오, 하나님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며, 이것은 “여호수아”에게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다. 『에프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오세아[Oshea]요... 이것은 모세가 그 땅을 탐색하도록 보낸 사람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오세아[Oshea]를 여호수아[Jehoshua]라 불렀더라』(민 13:8,16). 따라서 “히브리어”로 “호세아,” “오세아,” “여호수아,” 이상 “세 이름”은 모두 “여호와께서는 구원이시다.”(구원자이신 여호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여호수아”에 해당하는 “신약”의 “헬라어 이름”은 “예수”( ]Ihsou#v)인데, 그 이름의 뜻은 “여호수아”란 이름의 의미와 동일하다.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JESUS]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니라』(마 1:21).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사도행전 7:45”과 “히브리서 4:8”에서 “여호수아”란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예수[Jesus]』라는 이름으로 “음역”해 놓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C.I. 스코필드”는 그의 역작 <스코필드주석성경>에서, “호세아의 예언은 비약적인 데가 있었고, 은유적이었으며, 또 비유적이었다.”라고 썼다. 물론 이 말은 “성경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비유적, 은유적, 영적으로’ 해석해야 된다거나 예언이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선 “비약적”이라는 말은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논리적인 순서대로 예언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론 ․ 본론 ․ 결론” 등의 논리적인 순차적 방식이 아닌, 재림에 관한 예언을 말하다가 갑자기 초림에 대해 예언하는 방식으로, 이런저런 예언들을 순서에 관계없이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호세아”뿐 아니라 다른 소선지서의 내용들도 순차적인 방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 예언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그러한 순서를 따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은유적”이고 “비유적”이라는 말은, “호세아”가 예언할 때 종종 “비유”를 사용해서 예언했다는 의미이다. “호세아”의 인생 자체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 주는 비유로 제시되면서 어떤 예언적인 진리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호세아”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며, 선지서 대부분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호세아”는 주로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름인 “에프라임”에 관한 언급이 “37회”로 자주 등장한다(호 4:17; 5:3; 7:1; 9:8; 11:3; 14:8 외). 북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 대한 언급도 “6회” 나온다. 물론 “남왕국 유다”에 관한 내용이 전혀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호 1:7; 5:5; 6:4; 12:2 외). 그러나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매우 강도 높게 책망했고, 이에 반해 “남왕국 유다”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인 언급”도 하고 있다. 『에프라임은 거짓말로, 이스라엘 집은 기만으로 나를 에워싸나,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그 성도들과 더불어 신실하도다』(호 11:12). 왜냐하면 당시 “남왕국 유다의 상황”이 아직까지는 “선한 왕들의 시대”(호 1:1)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세아”가 “유다”에 대해 칭찬만 한 것은 아니다. 결국 “유다” 역시 죄짓고 “배교할” 것이기에 강력하게 책망도 했다(호 5:5,10,14; 6:4; 8:14 외).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의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에프라임은 그들의 죄악 가운데 패망할 것이요, 유다도 또한 그들과 더불어 패망하리라』(호 5:5).
그렇다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패망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당연히 “하나님을 대적하여 지은 죄”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황폐하게 되리라. 이는 그녀가 그녀의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하였음이니, 그들은 칼에 쓰러질 것이며 그들의 아기들은 내던져져 산산조각날 것이요 그들의 아이를 밴 여자들은 찢겨지리라』(호 13:16). 다시 말해 “호세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 곧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관계”를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이 그 관계를 무시하고 깨뜨린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고 버림받게 되는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이는 너희가 내 백성이 아니요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않을 것임이라』(호 1:9). 특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정하는데, 이러한 관계는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도 잘 제시된다. 이런 사실은 다음 “두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너를 지으신 분이 네 남편이니 만군의 주가 그의 이름이며, 너의 구속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 그가 ‘온 땅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리라』(사 54:5).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이는 그녀가 내 아내가 아니고 나도 그녀의 남편이 아님이라. 그러므로 그녀로 그녀의 모습에서 음행을 지우게 하고 그녀의 가슴 사이로부터 간음을 지우게 하라』(호 2:2). 이상 두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현재”(교회 시대) 그들의 죄로 인해 “버림받은 상태”라 해도, “나중에”(재림 때)는 반드시 “신부”이자, “아내”로 회복될 것이다.
신약의 “교회 시대 관점”에서 “신부”라고 하면,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를 말하지만, “구약 시대의 관점”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신부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호세아”를 가르칠 때 전자의 관점으로 섣불리 해석해 버린다. 물론 “영적으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는 거듭난 성도들 개개인이 “호세아”에 나오는 “음란한 여인”처럼 종종 죄를 지었다가도 다시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해석하거나 “교리적으로” 적용할 때는 “교회”에 적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음란한 여인”이 아니라 항상 “순결한 처녀”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후 11:2). 비록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개개인”은 때때로 더럽고 추한 죄를 지었다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 자체”를 언급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히 씻겼다는 의미”에서 “결코 타락할 수 없는 순결한 처녀”로 묘사된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불순종의 자녀들』(엡 5:6)의 상태에서 부름을 받았지만, 일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으로 들어와 택함을 받고 “하나의 진주”를 형성하게 된 이상, 절대 변질될 수 없고 타락할 수도 없는, 그리고 결코 버림받지 않는 “순결한 처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교회”와 다르다! 이스라엘 민족은 택함을 받은 이후,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요, 아내”가 되었다 해도, 죄를 짓고 타락하여 “버림받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버림받았다가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와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택함” → “타락” → “회복”). 이에 반해 “아들 하나님의 신부요, 아내”인 “교회”는 한 번 택함을 받고 나면 결코 타락하여 “버림받을” 수 없고, “순결한 신부”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택함” → “순결한 신부”).
이렇듯 성경에는 “두 신부” 또는 “두 아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을, “아들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와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간음한 아내”로 묘사하거나, 그렇게 “간음한 아내”가 다시 “회복된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내용은 “이스라엘”에게 적용된다. 이처럼 “호세아”에서는 “음란한” 아내, 곧 “하나님을 버리고 간음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 주면서, 그들을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할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런 타락한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음란한 아내”인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시기 위해, 선지자 “호세아”에게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얻어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는 그 땅이 주로부터 떠나 크게 행음하였음이니라.』(호 1:2)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러한 명령을 그대로 수행해야 했던 “호세아” 한 개인의 삶으로 보면 참으로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하나의 “표적”으로 제시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호세아”는 주님의 “어떤 명령”이라도 순종해야 했다. 이에 그는 “음란한 여인”인 “고멜”을 아내로 취했고(호 1:3), 그녀에게서 자녀들을 얻게 되는데, 그들의 이름은 각각 “이스르엘”(호 1:4)과 “로루하마”(호 1:6)와 “로암미”(호 1:9)였다.
이 이름들은 “이스라엘의 심판과 회복”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우선 “이스르엘”이란 이름은 심판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흩으시다”(호 1:4; 8:8)는 뜻과, 회복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심으시다”(호 2:23)는 의미를 갖고 있고, “로루하마”는 “자비를 얻지 못하다” 혹은 “사랑과 동정을 받지 못하다”는 뜻의 이름이며, “로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의 이름이다(참고로, 히브리어에서 “로”는 “not”의 의미임). 『그녀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이는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집에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을 완전히 제하여 버릴 것이기 때문이라』(호 1:6).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이는 너희가 내 백성이 아니요』(호 1:9). 이렇듯 “자비를 얻지 못하고 버림받은 이스라엘,”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방인들 가운데로 흩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다시 “회복되어” 그들의 땅에 “심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것인가? “죄,” 특히 “우상 숭배의 죄” 때문이었는데, 바로 이 죄가 “호세아”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진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