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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과 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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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4월호>
히브리서 8장8:1-6 『지금까지 말한 것들의 요점은 그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계시다는 것이라. 그분은 하늘들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성막에서 섬기는 분이시라. 그 성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모든 대제사장은 예물과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나니, 그러므로 이분 역시 그 무엇인가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느니라. 만일 그가 땅 위에 계신다면 제사장이 되실 수 없으시리니, 거기에는 율법을 따라 예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음이라.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본보기와 그림자라. 모세가 성막을 지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 지시를 받은 것과 같으니,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너는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여 준 모형을 따라 지으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좋은 약속들 위에 제정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만큼 더욱 훌륭한 직분을 얻으셨느니라.』
“지금까지 말한 것들의 요점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히브리서 8장은 서술한 그대로, 4,5,6,7장에서 설명한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이다. 8장에서 10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관련해서 그분이 맺으신 언약의 우월하심을 다루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
7장에서 멜키세덱을 중심으로 설명한 이후로, 8장부터 10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예수께서 단번에 드리신 속죄, 성막에서 지켜지던 규례를 대신하는 새로운 규례, 그분의 중보 사역 등의 기본적인 교리가 이 세 장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의 구원에 관해서 중요하고 기본적인 교리가 되기에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젖”으로 섭취할 수 있는 말씀들이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특수한 위치 속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교리들이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질긴 “고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히브리서는 교리적으로 환란기의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이 교회시대와 환란시대의 과도기적인 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교회시대의 성도들에게 분명히 적용되지만(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점에서), 환란기의 히브리인들에게도 그 사역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분은 하늘들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으니』(1절).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하늘에 “앉아” 계신다. 과거에 그분은 한 번 “서 계신” 적이 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테판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이다(행 7:56의 주석을 참조하라).
이 “일어서심”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그분이 내려오시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이 내려오시면 성도들을 공중으로 취해가실 것이고, 땅에는 대환란이 시작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일어서심”은 다니엘의 70째 주가 시작된다는 하나의 신호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분을 공식적으로 거부하자 주님은 대환란기가 올 때까지 약 2000년 동안 그의 “일어서심”을 연기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고 계신다.
『모든 대제사장은 예물과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나니』(3절)
레위의 직분과는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제사장이시라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하기 위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드리는 제물은 레위의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물들보다 월등히 뛰어난데, 그것은 그들이 하지 못했던 “죄의 제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번에 드리심으로 죄들을 제거하심
지상의 어떠한 제사장들도 죄들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율례에 따라 드리는 제사로 백성들의 죄들이 “덮어지고”, “사해지고”, “용서”되기는 했지만, 그 죄들 자체가 “제거”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드러난 죄들을 감추기 위해서 계속 예물과 제물을 드려야 했으나, 그리스도의 드리심은 완전하고 영원하기에 한 번 드리심으로 죄를 제거하실 수 있었다.
『만일 그가 땅 위에 계신다면 제사장이 되실 수 없으시리니, 거기에는 율법을 따라 예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음이라.』(4절)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므로 땅 위에 있는 제사장들과 같지 않은 “더 위대한”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이 땅에 계셨을 때는 제사장이 아니셨다. 그때는 율법에 따른 제사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 “선지자”로서 사역하셨다(막 6:4, 요 9:17).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이셨으며(요 3:16), 하나님의 제물이셨으나(히 10:5), 제사장으로 사역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좋은 약속들 위에 제정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만큼 더욱 훌륭한 직분을 얻으셨느니라.』(6절)
땅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에 대한 “모형”으로서 사역하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본문은 출애굽기 25:40을 인용하며 설명한다(5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사역하시는 곳은 땅에 있는 성막의 “원형”이 되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우월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사실을 6절에서는 “더 좋은 약속들”과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와 “더욱 훌륭한 직분”이라는 세 가지 말로 설명한다. “더 좋은 약속들”은 요한복음 5:24과 8:51, 로마서 10:9,10, 고린도전서 15:40-58 등과 같은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부활과 영생을 보장받는다는 약속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 5:24).
예수님께서는 이 약속들을 이루시기 위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셔야 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중보자는 필요없다. 그분은 유일하신 중보자이신데(딤전 2:5), 이는 그분의 중보자로서의 직분이 어떤 다른 제사장들의 직분보다 “더욱 훌륭한” 직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직분이 얼마나 훌륭한지, 단 한 번 희생제물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새 언약
8:7-13 『만일 그 첫 번째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것이 요구될 여지가 없었으리라. 그들에게서 허물을 발견하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보라, 그 날들이 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그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잡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 속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주가 말하노라. 그 날들 이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율법들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그들이 자기 이웃이나 형제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를 알라고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며,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느니라. 그가 말씀하시기를 “새 언약이라.”고 하셨으니, 그가 먼저 것은 옛 것이 되게 하신 것이라. 이제 낡아지고 오래 된 것은 사라져 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심을 말하기 위해서 본문은 “새 언약”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7절의 “첫 번째 언약”과 구약의 율법에 대조되는 신약의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보는 것은 구약의 레위 제사장들이 여러 번 드림으로써 할 수 없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히 드리심으로 그분의 몸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완성하셨다는 것으로, 수용할 만한 견해이다.
히브리서는 지금까지 계속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위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새로운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그분이 교회시대의 성도들만을 위한 제사장이 아니라, 먼저 유대인들의 대제사장이 되어야 함을 충분히 보았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새 언약”도 이 시대를 향한 “신약”의 의미 이상의, 유대인들을 위한 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구약의 율법과 대조되는 것은 신약의 복음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는 “testament”로서의 언약이다. 이 단어는 우리가 흔히 “구약”(Old Testament), “신약”(New Testament)이라고 말할 때 쓰는 단어로서,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백성과 맺으신 새 언약이며, 바로 신약시대를 이끄는 언약이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covenant”로서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교회시대를 다루는 언약과는 거리가 멀고, 하나님께서 원래부터 왕국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이루려고 진행시키시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그분의 경륜들과 관계되는 언약이다. 성경에서 “testament”로서의 언약은 두 가지가 있으나(이 말은 “유언”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언약으로서, 언약을 세운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covenant”로서의 언약은 일곱 가지가 등장하며, 이것들은 모두 왕국(“천국”)과 관련이 있다. (“왕국” 또는 “천국”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주석의 「천국」 부분을 참조할 것.)
일곱 언약
첫째는 “에덴의 언약”(창 1:28-30; 2:15 -17)이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땅을 다시 채우고”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주신, 아담에게 주어진 왕권위임사항이다.
둘째는 “아담의 언약”(창 3:14-19)이다. 아담이 땅에 대한 통치권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주며(왕국을 잃었다.), “여인의 씨”만이 찬탈자인 사탄을 물리치고 왕국을 회복하는 진정한 왕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째는 “노아의 언약”(창 8:20-9:17)인데, 이것은 “에덴의 언약”과 비슷한, 역시 왕국위임의 언약이다.
네째는 “아브라함의 언약”(창 12:1-3)인데, 이것은 아브라함과 그 씨를 축복하신 언약이다. 이 언약은 부분적으로 교회에게 적용되기도 하나, 전체적으로는 유대인과 그들이 차지할 팔레스타인 땅에 적용된다. 이스라엘에게 유업으로 주신 그 땅은 천년왕국 때에 메시야 왕국으로 완성된다.
다섯째는 “모세의 언약”(출 20장, 신 28-30장)이다. 이것은 모세에게 준 “율법”과 더불어,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그 “땅”에서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 땅에 관한 언약을 “팔레스타인의 언약”이라고 따로 분리하기도 한다.]
여섯째는 “다윗의 언약”이라고 불리는데(삼하 7:4-17), 이것은 메시야 왕께서 다윗의 씨로 오신다는 것과, 그의 왕국과 그의 보좌를 영원히 세우시겠다고 하신 “메시야의 언약”이다.
일곱째가 바로 우리가 히브리서 8장에서 다루려고 하는 “새 언약”(New Covenant)이다. 이 언약은 예레미야 31:31-37에 약속되어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맺으신다고 하셨다.
유대인과 맺으실 “새 언약”
그러므로 이 “새 언약”의 대상은 분명히 유대인이 된다. 교회를 영적인 유대인이라고 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으나,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는 “집”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는 이상 이 언약은 이방인들이나 신약교회와는 무관한 언약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언약은 아직 맺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이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보라, 그 날들이 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히 8:8). “그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날은 주께서 그분의 백성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실 때이다(렘 31:34). 지금은 그들의 죄가 없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죄는 대환란을 겪은 이후 천년왕국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과거에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그 민족의 마음에서 제거되었고, 현재에도 그들은 복음을 거절하지만, 그때는 하나님의 법이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때는 예수님께서 실제적인 땅의 보좌에 앉아 눈에 보이도록 다스리시기 때문에 아무도 “주를 알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렘 31:34, 히 8:11). 구원의 계획이나 복음이나 그 외의 주님에 대해 가르치는 모든 예언들은 멈추게 된다. 만약 그들이 예언을 하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된다(슼 13:3). 증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해질 것이다(히 8:11).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임하시는 그때에 이스라엘 민족과 이 “새 언약”을 맺으시게 된다. 그러므로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몸”, 심지어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과도 관계가 없다. 오직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씨인 유대인들, 그것도 환란을 통과한 유대인들과만 맺어지게 되는 언약이다.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교회시대의 교리를 다루는 로마서에서조차 이 진리는 분명히 제시된다. 로마서 11장은 미래에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새 언약을 맺게 되는 것을 하나의 “신비”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와 같이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이 시대에 이스라엘은 반역하여 나갔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결국은 온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새 언약”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맺으시는 새 언약이고, 두 번째는 영적으로 교회에게 적용되는데,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다. 이 두 번째 의미는 9장과 10장에서 다시 설명되는데, 9장에서는 특별히 이 두 번째 의미의 새 언약을 “new testament”라고 따로 분리시킨다. 하지만 8장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맺은(7절) “새 언약”이다.]
이 일곱 가지 언약은 세대주의 신학의 기초가 된다. 사실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 두 개의 언약밖에 제시하지 않는다. 그 두 개는 “옛 언약”(구악)과 “새 언약”(신약)인데, 성경은 이것도 “covenant”가 아니라 “testament”라는 용어를 써서 따로 분리시키고 있다. 하지만 8장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맺을(7절) "새 언약"이다.]
히브리서 8장 본문은 이 언약을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 맺어진 언약과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언약은 “모세의 언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언약 속에서도 온전히 행하지 않았기에 결국 배도하여 이방 가운데 흩어졌다. 그 언약은 조건적인 언약이고 일시적인 언약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으실 언약은 조건적이지도 않고 일시적이지도 않다.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언약의 대조는 구약과 신약의 대조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