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고고학 분류
고고학으로는 성경을 증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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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2월호>
성경을 믿지 않는 모든 학자들의 불신과 편견, 무지와 완고함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창 1:1)는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라는 전제 속에서 모든 증거 자료들을 찾고 조사하는 것이다. 결국 성경에 대한 과도한 의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자기들도 모르는 것을 비방하고 주장하다가 멸망을 자초한다.거듭나지 않은 고고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지명들, 성읍들, 사건들을 역사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고증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성경을 신화나 전설로 치부해 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덕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는 인정해도,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책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성경을 하나님께서 쓰신 책이 아니라 인간의 저작물 정도로 여기고 만다.
이들은 소위 "증거의 부재는 곧 부재의 증거"라는 유치하고 편협한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눈으로 확인하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성경을 믿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도마가 지녔던 불신의 영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강력하게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또 내 손가락으로 그 못자국에 대어 보고, 나의 손으로 주의 옆구리에 넣어 보기 전에는 결코 믿지 않겠노라."고 하더라』(요 20:25).
그런데 문제는 성경의 "증거"가 충분치 않거나 불확실한 데 있지 않다.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성경만큼 무오하고 확실하며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책도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언, 곧 앞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역사를 미리 기록한 책이다. 성경이 미래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미리"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시는 하나님, 인류 역사의 끝에서 뒤를 돌아보시며 모든 사건의 전말을 증거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께서 그 책을 친히 기록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성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증거들을 보면서도 믿지 않으려는 학자들에게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거부하고 신화적인 책으로 만들려는 자들의 편견이요 고집이다.
일례로 여리코는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던 성읍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저주하셨다(수 6:17). 이 저주에서 제외된 대상은 창녀 라합과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람들뿐이었다. 그런데 여호수아 당시의 여리코는 B.C. 1451년경에 무너진 이래로 꽤 오랜 시간 땅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성읍과 그와 연관된 사건들의 역사성 자체를 의문시해 왔다. 하지만 1908년 첫 발굴이 이루어졌고, 1930년에는 존 가스탕(John Garstang, 영국의 고고학자)이 약 6년 동안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여리코에 관한 성경의 증거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객관적인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여리코는 해발 2,400m에 위치해 있었고, 전체 크기가 약 9,850평(32.5km2 정도)이나 되는 커다란 성읍이었다. 서울의 경우, 땅 1만 평 정도면 20평형 정도의 아파트 일천 개의 가구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이다. 성벽은 외벽과 내벽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 지어진 집들은 내벽과 외벽에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외벽은 두께가 약 2m, 높이가 전체 12m 정도 되었다(아파트 4-5층 정도 되는 높이). 이처럼 여리코는 성벽의 두께도 두껍고, 또 이중 성벽이기 때문에 식량만 풍부하다면 몇 년이고 버틸 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여호수아 3:15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여리코에 다다른 시점은 "추수" 때였다. 이것은 여리코 성 안에 식량이 충분히 비축될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발굴 당시 찾아낸 항아리들 안에 곡식이 가득 들어 있던 정황들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식량도 준비되어 있었으니, 요새화된 성 안에서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만 있으면 그들을 포위한 이스라엘의 어떠한 파상공세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리코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전쟁이 장기간으로 돌입되면 오히려 그들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공격하는 이스라엘 편에서는 공성전이 불가피했다. "공성전"이란 성을 비롯한 방어시설에 의존하고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요새화된 성을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격하는 측의 병력이 방어하는 쪽의 병력보다 3-5배 정도는 더 많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보통 성을 공격할 때는 성으로 연결되는, 식량이나 무기 및 탄약의 보급로를 가장 먼저 차단하게 되어 있다. 그런 다음 성벽 높이만한 토산이나 공성탑을 높이 쌓아 올린 뒤, 그 위에서 성 내부를 공격한다. 쇠갈고리나 커다란 돌을 날려서 성벽의 주요 부분을 부수기도 하고 불화살을 날려 성 안의 목조 건물들을 불태우기도 한다. 어느 정도 성을 제압했다 싶으면 사다리를 이용하여 성벽을 기어 올라간다든지, 각종 공성무기로 성문을 부수는 등의 공세를 펼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사용했던 전략은 일반적인 전쟁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수 6:1-16). 이들에게는 성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공성무기들이 없었다. 성벽을 오를 수 있는 사다리도 없었다. 무기라고 한다면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 소리"와 "백성들이 외치는 큰 함성" 그리고 "선두에 무장한 자들의 칼들"이 전부였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만일 이스라엘이 사다리나 공성무기를 이용하여 성벽을 부수고 밀어붙였다면, 성벽은 성읍 안쪽으로 무너졌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그런 무기들이 없었고, 다만 마지막 날에 마지막 일곱 바퀴를 다 돌고 나서 나팔을 불고 소리를 지르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을 뿐이다. 그것도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성벽의 내벽과 외벽은 그 위에 걸쳐 있던 집들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벽이 내벽을 끌고 가듯이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린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었다. 만일 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졌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져 내려 높게 쌓여진 진흙벽돌 무더기 위를 올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어 성읍 안으로 진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깥쪽으로 무너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깥으로 무너진 벽돌들은 완만한 경사면이 되었고, 백성들은 이를 계단처럼 쉽게 밟고 올라가 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벽이 무너져 내렸을 때, 여호수아 6:20에서는 『백성들이 각자 자기 앞으로 곧장 성읍으로』 들어갔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발굴팀의 보고서 안에 외벽과 내벽 사이에 걸쳐진 집들 가운데 오직 한 부분만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수직으로 그대로 세워져 있던 흔적을 발견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두 정탐꾼과의 약속대로 성벽 위의 집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보호받을 수 있었던(수 2:15,17-20) 라합의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또한 여호수아 6:24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코를 불로 완전히 태웠다고 말씀한다. 『그들이 불로 그 성읍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웠으며』 이것 역시 발굴 당시 발견된 숯과 재로 형성된 큰 지층, 불로 그을려진 성벽의 폐허들, 넘어진 성벽 주변에 완전히 타버린 흔적들로 입증이 되었다.
이렇게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안 되다 보니, 사람들은 오랫동안 여리코 사건을 전설 속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이런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여리코의 역사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성읍이 무너진 지 3,380년 정도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고고학은 결코 성경을 따라올 수 없다. 사실 이런 증거들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성경의 확실성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며,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역사성이 퇴색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인간이 제시하는 외부적인 증거 없이 성경 자체의 증거만으로도 그 역사성은 충분하고 완벽하다.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은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기록들은 세상의 어떤 역사문서보다 더 확실한 사실이며 진리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고고학적인 발견 유무에 관계없이 성경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가장 확실하고 무오한 "증거들"을 가질 수 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히 11:1). 성경과 학자들의 의견이 다를 때는, 항상 학자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하도록 하자.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