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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헌금과 돈에 대한 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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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9월호>
고린도후서 8:5-7에서 사도 바울은 “드리는 것”을 하나의 “은혜”라고 기록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특별한 은혜는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드리는 것”(giving)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먼저 자신들을 주께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었느니라... 따라서 너희가 매사에 넘친 것같이 믿음과 언어와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 은혜에서와 같이 넘치기를 바라노라』(고후 8:5-7).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를 통해 그의 생활을 특징짓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던 이유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은 “주는 것”(giving)으로 표시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속죄할 어린 양으로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 없으신 자신의 생명을 피값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준 대로 수고함으로써 약한 자들을 도와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하리라.”고 하더라』(행 20:35).
이와 같이 주는 것, 즉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특징짓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것”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를 공부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그 은혜”에 동참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1. 그리스도인이 첫 번째로 드려야 할 것은 자신의 “몸”입니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다. 많은 목사나 부흥사들은 저와 여러분의 헌신과 성별된 삶을 빼앗는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으로 오게 하십시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소유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소유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또 다른 거짓 가르침은 “당신의 삶을 그리스도와 나누십시오(sharing)”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의 몸 안에 계시지 않다면 당신의 몸을 소유하실 수 없습니다. 그때 당신의 몸과 삶의 많은 부분은 당신의 삶이며, 그것은 사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의 부분부분을 소유하고 제어하지 않으신다면 사탄이나 당신 자신이 통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첫 번째로 드려야 할 것은 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6:19,20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므로, 우리의 몸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영원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며, 사라져 버릴 지상의 부로부터 우리의 눈을 멀리하도록 합니다. 『너희 자신을 위하여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도둑질하느니라. 오히려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지도 않으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또한 드리는 것으로 가장 유익을 얻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준 대로 수고함으로써 약한 자들을 도와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하리라.”고 하더라』(행 20:35).
우리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드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6: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는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라.』
첫째, 우리는 “체계적으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단지 특별한 행사나, 정해진 어떤 때가 아니라, 일 년 가운데 『매주 첫날에』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는 그 집안의 가장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자녀도 모두 드리는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궁핍한 사람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차이는 드리는 것의 많고 적음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셋째, “균형잡힌 비례에 따라” 드려야 합니다.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 이전에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이전에,” 야곱도 “율법 이전에” 드렸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십일조는 기본적으로 균형잡힌 비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소한의 부분입니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율법에 의해서 그들 수입의 일정 양을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한 사람의 수입의 10분의 1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 외에도 유대인들은 다양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원하여 예물을 드렸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10분의 1을 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히스키야가 주의 전에 방들을 예비하라고 명하니 그들이 방들을 예비하여 예물들과 십일조들과 신실하게 봉헌된 것들을 가져왔더라...』(대하 31:11,12). 『오직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의 온 지파 가운데서 선정하실 곳, 즉 그분의 처소를 너희는 찾을 것이요, 너는 그곳에 갈 것이며 너희는 너희의 번제물과 너희의 희생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의 손으로 들어 올리는 제물과 너희의 서원물과 너희의 자원하는 제물과 너희의 소떼와 양떼의 첫태생을 그곳으로 가져와서 너희는 이것들을 주 너희 하나님 앞에서 먹고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 주셨던 모든 것, 즉 너희가 수고한 모든 것으로 너희와 너희 가족들은 즐거워할지니라』(신 12:5-7).
교회는 분명히 구약의 율법의 조항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가 오늘날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원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한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고전 10:11, 롬 15:4).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에 대해 강압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율법 이전에 은혜 아래에서” 십일조를 드렸다면, 확실하게 그리스도인들도 “율법 이후에 은혜 아래에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그가 가진 것을 드려야 하며, 고린도후서 9:6의 말씀에 따라 십일조 이상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보다 은혜 아래에서 더 많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일조뿐만 아니라 십일조 이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단지 그의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과 재능도 함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용서함으로(주는 것), 그를 고소하고 괴롭게 하는 자들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선으로 되돌려 주는 것으로 특징지워집니다(벧후 3:9). 주는 것, 즉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전체 삶을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넷째,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체계적으로, 단지 균형잡힌 비례에 맞게, 개별적으로만이 아니라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7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각 사람은 미리 마음 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우리가 건강하다면 우리는 어디서 건강을 얻은 것입니까? 우리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 그 직업을 얻은 것입니까? 우리가 좋은 인상을 지녔다면 어디서 좋은 인상을 얻은 것입니까? 우리의 가족이 구원받았다면 어디서 구원을 얻은 것입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 자원함으로 기쁘게 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셨던 것같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지셨던 모든 것을,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1-4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연보를 심한 궁핍함 가운데서 드렸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또 능력 이상으로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적으로 드리셨던 것”(희생제) 같이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이 드렸는가에 따라 측정하지 않으시고 얼마나 많이 남았느냐에 따라 측정하십니다.
여섯째, 우리는 어디에 드려야 합니까? 우선적인 의무는 바로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모든 연보는 지역교회의 사역 내에서 사용됩니다. 고린도전서 16:1-3은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사역의 중심은 지역교회입니다. 교회 외에서 행해지는 어떠한 경우의 것들도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에서 행하고자 하는 것들을 희생해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연보를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과 섬기는 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드리는 것”은 십일조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당신의 몸과 재물을 조화롭게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연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시간과 섬기는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며(롬 8:2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으로 당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시는 것입니다(고후 9:8-15, 대상 29:8-13).
당신이 신실하게 십일조를 드렸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주님께서는 확실하게 당신에게 갚아주실 것이며, 복을 주실 것입니다(마 6:20).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나는 너희가 보낸 것을 에파프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하게 되었노라. 이는 향기로운 냄새요, 받으실 만한 희생제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빌 4:18).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교회의 사역자들과 운영을 위해(고전 9:13,14, 갈 6:6, 딤전 5:17,18), 교회를 통하여 지원되는 다른 하나님의 사역들을 위해(빌 4:15,16), 몸된 교회 안에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 중 신약성경의 정하는 한도 내에서 신실한 사람들로 입증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행 6:1, 딤전 5:16,9,10), 그 외에 교회의 인도자들에 의해 결정된 필요를 위해(고후 8:4,5, 행 11:27-30)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가난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가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인 고아와 과부를 위해, 교회의 필요를 위해, 복음의 증거를 위해 합당하게 쓰여져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복음증거를 위해 갈 수 없다면 드리십시오. 드릴 수 없다면 기도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드릴 것이 없다면 드릴 수 있는 것을 얻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 9:7).
돈과 재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직면하는 큰 유혹 가운데 한 가지는 “물질주의”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물질적인 풍요함이 성공의 척도라고 잘못 생각하게도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발견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많은 부분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돈과 재산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부유하게 되거나 가난하게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풍요함이나 물질의 부족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누구를 정죄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대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자세를 판단하셨습니다. 성경은 돈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았고 단지 말씀하시기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딤전 6:10)라고 하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사람들은 궁핍하지 않았습니다(욥 1:3,20-22, 눅 8:1-3, 요 12:3).
2. 어떠한 경우에는 돈과 재산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만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돈을 더 신뢰할 때(막 10:23-27, 잠 11:4,28), 하늘의 소유보다 땅의 소유에 더 관심을 둘 때(마 6:19-21, 골 3:1-4), 물질적인 소유로 영적인 면이 측정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눅 12:15, 삼상 16:7), 보다 많은 돈을 모으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때(잠 23:4, 전 5:10-12),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할 때(빌 4:19, 신 8:10-18)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깨어지며 정상적이고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삶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3. 물질적인 소유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상태를 마지 못해서 운명적으로 받아들임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복들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심에 만족하며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진 소유에 만족해야 하며(히 13:5, 딤전 6:8),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든지 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함으로 만족해야 합니다(빌 4:11-이 말씀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돈으로 살 수 없고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지혜(잠 16:16), 의로운 삶(잠 28:6; 16:8, 시 37:16), 편안한 잠(전 5:12), 하나님의 말씀(시 119:14,72,127), 건강(눅 8:43), 안식과 평안(전 4:6, 잠 15:16; 17:1)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축복하셨을 때 그분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며(신 6:10-12, 잠 30:7-9, 계 3:17),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를 취해 가실 때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욥 1:20-22). 또 다른 사람들의 부에 대하여 질투하지 말아야 하고(시 49:16-17, 출 20:17), “벼락부자”가 되고자 하는 계획을 버려야 하며(잠 20:21; 28:20,22), 이 시대의 문화가 방송이나 광고를 통해서 물질주의에 대하여 좋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스스로를 그것들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4. 돈과 소유에 대한 자세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잠언 11:1은 말씀하기를 『속이는 저울(balance)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공정한 추는 그의 기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물질적인 필요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으며(마 6:25-34), 동시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불신자들보다 더 악하다고 했습니다(딤전 5:8). 또한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말씀하며 이와 함께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니라.』(딤전 5:17,18)고 했습니다. 이 구절들은 모순되는 것들이 아니라 물질적인 소유를 대하는 균형적인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돈과 소유”에 관해서 “성경이 제시하는 바에 따라” 믿고 실행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실하게 발견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