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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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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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8월호>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수많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차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며, 바쁘고 피곤한 하루 일과가 끝나기를 지친 마음으로 기다리기도 한다.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학생들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출산을 앞둔 산모는 빨리 탯속의 아이를 만나 보기를 원할 것이고, 군에 간 아들을 둔 부모는 그 아들이 제대하는 날을 기다릴 것이며, 소풍을 앞둔 아이들은 전날 밤 기대감에 잠을 설치면서 내일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보다 간절하고도 더 가슴 설레는 기다림이 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기도는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다. 그리스도인과 주님과의 관계로 예표되는 솔로몬의 노래 역시 자신의 왕을 기다리는 술렘 여인의 독백으로 끝난다. 성경에서 무수한 구절들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만이 갖는 이런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될 것이다. 거듭난 경험이 없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없든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든 썩어져 가고 사라져 가는 이 땅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다. 셋 중 어떤 경우에 속하든, 그 사람은 “복된 소망”(딛 2:13)을 자신의 “소망”으로 붙들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아침에 눈 뜨는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주님께 물을 것이다. 『오, 주께서는 언제 내게 오시겠나이까?』(시 101:2).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간절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몸이 구속을 받기 때문이다(롬 8:2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공중으로 불러내시는 그날 우리는 매순간 우리를 죄로 끌어내리는 이 육신을 벗어 버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완전한 몸, 썩지 않고 영원히 사는 몸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전 15:53). 주께서 부활하신 후 입으신 몸과 똑같은(요일 3:2) 몸을 입을 날을 우리는 “속으로 신음하며” 기다리고 있다.
또 주께서 오실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열심히 섬긴 대가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계 22:12). 그뿐 아니라 신랑이신 주님과 혼인식을 치를 것이고(계 19:7), 우리가 유업으로 받을 새 예루살렘성의 순금으로 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의의 면류관(딤후 4:8)을 약속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고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벧전 1:8) 그분을 직접 만나 보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그분, 피값으로 나를 구속하시고, 나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 주신 그분, 나의 능력이요 기쁨이요 노래시며, 나의 모든 것이신 그분,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그 안에 거하는 분, 바로 그분을 우리는 만나 보기 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랑 되실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원하는 것보다 더 신부인 우리를 만나기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린다. 교회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솔로몬이 술렘 여인을 향해 고백하는 말을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솔 2:13). 『바위틈과 가파른 산 은밀한 곳에 있는 오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용모를 보게 하고, 나로 네 음성을 듣게 하라. 네 음성은 달콤하고, 네 용모는 아름다움이라』(솔 2:14).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비둘기의 눈 같은 순전함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기 원하신다. 땅 위의 어떤 것도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퇴색시킬 수 없다. 아무리 중요한 기도의 응답도, 그 어떤 세상 즐거움도, 심지어 멸망으로 향하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 땅 위에서 주님을 위해 펼치는 막중한 사역이라 할지라도, 저 하늘에서 주님 만나기 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앞지를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신 때로부터 약 2000년이 지났다. 바울을 비롯한 초대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간 대부분의 믿음의 선배들은 살아서 들림 받고 주님 만나기를 고대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은 그들과는 다르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시대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라오디케아 시대의 맨 끝에 와 있는 지금, 우리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6)는 말씀이 실현될 가능성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소망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어떤 이유에서든 하루, 이틀 지체하실지라도, 1년, 2년, 아니 10년, 20년 지체하실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우리가 처음에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성경적으로 듣고 믿었을 때보다 약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매일 매순간 더욱 깊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이여, 서두르소서, 향기나는 산들 위에 있는 노루나 어린 사슴같이 되소서』(솔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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