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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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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10월호>
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최저라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가 잘한다, 못한다는 평가의 결과는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 달려 있는데, 지난 대선 때 그에게 표를 주었던 열성 지지자들까지도 등을 돌린 상황인지라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이 이뤄졌다. 모 언론의 분석을 보니,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었다.첫째, 윤 대통령은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영장 청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관련 압수수색 등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정상적 사법시스템을 정치논쟁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라고 강한 불쾌감을 표출했다. 실로 “너도 했으니 나도 한다”는 식의 반응이었는데, 차라리 그 앞말만 하고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를 말하지 않았더라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이 현 정부의 검경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하자 “이전 정권에서도 보편적으로 벌어진 일이라서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인데, 이에 대한 언론의 판단은, 그것은 “감정적 맞대응”에 불과하며 “정치적 대결만 격화시킨다”는 점에서 지도자다운 처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검찰 편중 인사’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과거에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인사 때)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한 발언이 그것이었다. 이 역시 “너희가 했으니 나도 한다”는 식의 대응이었고, 언론은 이를 가리켜 “윤 대통령의 옹졸하고 편협한 인식을 보여 줄 뿐”이라고 일갈했다. 사실 이전 좌파 정권의 내로남불식 독주를 생각하면 현 정권의 독주는 새 발의 피이고 우파 국민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좌우로 갈라지고 이도저도 아닌 중도파가 사방에 깔려 있는 현실에, 이러한 나라를 이끌어야 할 우파 대통령으로서 보인 감정적 대응은 국민의 약 70%에 해당하는 좌파와 중도파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는 매우 적절치 못한 “대통령의 언어”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부실인사, 인사 실패라는 지적이 있다. 인사는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반복되는 인사 문제들이 사전에 검증 가능한 부분이 많았다”는 지적에는 손가락을 옆으로 흔들며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세요.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 말한 뒤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들을 발탁한 것을 문제로 삼고서 전문성 위주로 인재를 뽑는 현 정부와 비교해 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역시 이전 좌파 정부를 끌어들여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 것에 불과했다. 이전 정권의 부정적인 프레임에 대통령 본인의 “감정”을 덧대어서 새 정부의 정책과 인사를 부각시키려 하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기왕이면 전 정권을 감정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정책과 인사를 추진해 나갔더라면 국민적 반감을 최소화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남 핑계 대지 않고 건전한 비전을 제시하며 나아갔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지지율 하락은 없지 않았겠는가 생각된다.
윤 대통령 역시 이를 의식했는지 지난 8월 25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하여 “좋지 않은 성적표와 국제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권이 출범했다. 더 이상은 국제 상황에 대한 핑계나 전 정권에서 잘못한 것을 물려받았다는 핑계도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정이 하나 되어 오로지 국민만 생각할 때 모든 어려운 문제가 해소되고 신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지율이 아직까지도 좀체 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감정적 대응에 국민적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평온하게 섬길 수 있도록 이 “자유”대한민국을 잘 이끌어주고, 대통령과 당국자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하되 왕들과 권세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청렴함 가운데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기뻐하실 만한 일이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이와 같은 정치적 현실을 생각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떠올릴 수 있는 성경의 비유는 단연 “새 천조각과 낡은 옷 /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의 비유”(눅 5:36-39)이다. 낡은 것과 새 것은 함께 갈 수 없다는 비유를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주께서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 천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것도 해어진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새 것에서 자른 천조각과 낡은 옷도 어울리지 아니하느니라.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붓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망가지리라. 그러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하나니, 그리하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 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즉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이는 그 사람이 말하기를 ‘묵은 것이 더 좋다.’ 함이라.”고 하시더라』(눅 5:36-39).
주님께서는 새 천조각이든 새 포도주든 그것을 “낡은” 것에 사용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하셨다. 새 천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기우면 낡은 옷은 새 천조각이 당기는 힘에 그만 찢겨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 천조각도 볼품없게 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낡은 옷을 기우려면 낡은 옷이 견딜 만한 강도를 지닌 천조각을 사용해야 한다. 그만큼 낡은 것과 새 것은 함께 있기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새 포도주 역시 낡은 가죽 부대에 부으면 문제가 생긴다. 물론 이 경우 새 포도주는 “포도송이의 새 포도주”(사 65:8), 곧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뜻한다. 포도송이에서 갓 짜낸 포도즙을 낡은 가죽 부대에 담아 놓으면 그것이 발효되면서 생기는 가스로 인해 낡은 가죽 부대가 팽창될 것이고, 포도즙의 발효는 계속될 것이므로 결국 부대가 터져서 손상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죽 부대도 망가져 못 쓰게 되고 새 포도주 또한 쏟아져서 마시지 못하는 이중 손해가 발생한다. 새 포도주는 그것의 발효 특성상 튼튼한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포도주와 가죽 부대가 둘 다 보존된다.
비유에서 『새 천조각』(36절)과 『새 가죽 부대』(38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고후 5:17)을 상징하고, 『낡은 옷』(36절)과 『낡은 가죽 부대』(37절)는 “아담의 옛 본성”을 상징한다.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이 합당치 않듯이, 아담의 옛 본성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고후 5:17)은 혼합될 수 없다. 만일 그 둘을 혼합하면 옛 본성이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원래 그대로 있고, 대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의 효력이 사라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만일 그렇게 하면 새 것도 해어진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36절). 따라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신 안에 형성된 새로운 생명이 질식되지 않도록 육신의 옛 사람 안에 있는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죽여야 한다. 즉 자신의 옛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죄의 몸을 멸하여 자신을 죄에게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산 자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롬 6:6, 11). [이 일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죄에게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여겨야” 한다.] 또한 구원받기 전에 몸에 붙잡혀 있던 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에 의해 그 몸에서 분리되어 해방되었으므로(골 2:11) 이제부터는 법문의 낡은 것이 아닌 영의 새로움으로 섬겨야 한다(롬 7:6). 주님께서 우리를 새 언약의 능력 있는 일꾼이 되게 하신 것은 법문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신 것이기에, 죽이는 법문이 아닌 생명을 주는 영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고후 3:6). 여기서 “영”은 하나님의 영이나 인간의 영이 아닌 신약 그리스도인이 지니는 새로운 “태도”를 말한다. 법문, 곧 율법은 가두고 감시하는 것이기에(갈 3:23) 생명을 부여할 수 없었지만(갈 3:21),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전달하는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그 희생적인 사랑을 율법적인 정죄가 아닌 사랑이라는 “올바른 태도”로 전할 때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달할 수 있다. 십자가의 복음을 태도의 변화 없이 여전히 율법적으로만, 오직 정죄하기 위해서 전달하려 할 때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러한 잘못된 태도로 인해 질식되고, 복음은 전파되지만 열매는 거두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태도의 변화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주님께서는 비유의 마지막에 이르러 한 말씀을 더 해 주셨는데, 그것은 『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즉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이는 그 사람이 말하기를 ‘묵은 것이 더 좋다.’ 함이라.』(39절)라는 것이었다. 새 것이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묵은 것을 더 좋아하는 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물론 『묵은 포도주』, 『묵은 것』(39절)은 “율법”을 상징하고, 『새 포도주』(39절)는 “성령”(행 2:4,13, 엡 5:18)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마 26:29, 요 2:3,4)를 상징한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인 안에 영원히 내주하려고 오셨고(요 14:16),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유일한 구속 수단으로 제시되었다(엡 1:7). 그럼에도 여전히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심(요 3:6), 자유케 하심(고후 3:17)과 무관하게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거나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지옥에 던져 넣는 어리석은 태도이다. 한국 교회에는 그런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지만 구원을 위해서는 행위를 붙드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이 점은 “묵은” 한글개역성경을 버리고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보기 시작한 이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변개되지 않은 바른 성경임을 알고서 읽기 시작했지만 그의 종교적 실행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알았다면 한국 교회가 지난 130여 년간 실행해 온 온갖 비성경적인 방언과 신유, 주기도문, 사도신경, 새벽기도회 등으로부터 탈피하여 참신한 믿음으로, 오직 성경에서 명령하는 것들만을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라는 새 포도주를 여전히 한국 교회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성경의 효용이 떨어지게 된다.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낡은” 전통들을(막 7:13) 버리고 바른 교리와 바른 실행을 위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할 때 변개되지 않은 성경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낡고 묵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라. 새 것으로의 성별만이 그 새로운 것을 온전히 향유하는 길임을 결코 잊지 말라.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