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구약의 교훈 분류

하나님의 일꾼이 되려면 "에스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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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3월호>

성경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설교자'로 부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관하여 피터 럭크만 목사는 다음의 "다섯 가지 조건"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 성경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자신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똑똑하며 잘났는가를 드러내 보이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성경적 지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돕기 위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2. 어떤 상황에서든지 종교적인 논쟁이 일어날 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한다.
3. 마음속에 죄인들을 지옥에서 구해 내려는 참된 영적 부담이 있다. 이는 지옥의 실재와 주님께서 지옥에 대해 하신 말씀들을 사실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4. 사역이 아닌 다른 여러 직업을 경험해 보았지만 즐겁다거나 만족할 수 없었고, 심지어 성공할 수도 없었다. 물론 무슨 일 하나 제대로 못하는 그런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5.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들이 지속적으로 열린다 (감옥의 죄수들, 요양원, 주일학교, 거리설교, 순회설교 등). 가끔씩 『크고도 효과적인 문』(고전 16:9)이 열리기도 한다.

이상 "다섯 가지"(최소 세 가지 이상)가 삶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임이 확실하다. "하나님의 부르심"(Divine Calling)에 관한 한, 주님께서는 친히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시고, 원하시는 사람을 쓰시며, 원하시는 사람을 붙드신다. 이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속해 있으며,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그런 뜻과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실 때면, 그가 다른 일에 열심히 종사하고 있을 때 부르시는 경우가 많다. 어부들이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고 있었고(눅 5:1-11),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열성적으로 교회를 박해하고 있었으며(빌 3:4-6), 세리 마태는 세무소에 앉아 로마를 위해 부지런히 세금을 걷고 있었다(눅 5:27,28). 베반스 웰더 목사는 미국 제일은행의 은행장이었고, M.R. 디한은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였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신다. 『누가 나를 위하여 행악자들을 대적하여 일어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죄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여 일어날까?』(시 94:16)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랴?』(사 6:8)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려는 열정이 있는가? 당신의 심장은,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고후 5:15) 살고 싶은 열망으로 터져 버릴 듯이 뛰고 있는가? 과연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진리의 지식으로 온전히 무장함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에 관한 좋은 본을 "에스겔 3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인자야, 네가 본 것을 먹으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에 말하라.』(1절)라고 명령하신다. "보라, 먹으라, 가서 말하라."라는 세 가지 명령을 주신 것인데,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두루마리)을 부지런히 "보고"(읽고), "먹고"(소화하여 영양소를 섭취하고), "가서 말해야"(전파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데 게으른 성도는 결코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남달라야 하는데, 때로는 사도 요한처럼 "봉인된 말씀"을 보고 싶고, 깨닫고 싶은 마음에 눈물어린 호소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계 5:4,5). 당신은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는 이유로, 또는 성경을 너무나 알고 싶은 마음에 사도 요한처럼 "울어 본" 경험이 있는가? 또한 성경을 읽고 깨달아서 성경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었다 해도 입을 꾹 다문 채로 담대히 나가서 전파하지 않는 성도 역시 진정한 일꾼이 될 수 없다. 복음과 진리에 관한 한 "침묵은 절대로 금이 될 수 없는 법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일꾼은 말씀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그는 『그것이 내 입에 꿀처럼 달더라.』(3절)라고 말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시 19:10)라고 고백했다. 성도라면 성경 말씀의 단맛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다가 밤을 새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른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말씀의 단맛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가? 너무 달아서 성경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의 경험을 해 봐야 하는 것이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말씀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들이 얼마나 좋았던지 성경을 내려놓지 못한 채 성경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열 페이지만 읽기로 마음먹었다가 삼십 페이지를 읽어도 자리를 뜨지 못했으며 눈이 충혈될 때까지 계속 읽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쓰기까지 하다. 사도 요한은 천사가 주는 작은 책을 먹었을 때 『내 입에는 꿀처럼 다나 먹고 나니 내 배에는 쓰더라.』(계 10:10)라고 말했다. 『먹고 나니』, 곧 충분히 십고 목구멍으로 넘겨 배 속에서 소화하고 나니 쓴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해서 깨달은 진리의 말씀들을 삶 속에서 실행으로 옮기다 보면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위협이나 협박, 박해, 고난 등이 다가와서 굉장히 쓴맛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즉 세상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지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요, 사랑스럽지 않고, 비협조적이며, 분리주의자에, 분열을 일으키는 자요, 급진주의자,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이단자 등으로 몰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쓴맛도 경험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일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딤후 3:12)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런 "쓴맛"을 경험했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가 없다. "맷집"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몇 번을 치고, 잡아 흔들어도 전혀 끄떡하지 않고 강하게 버티고 서 있는 "거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은 주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는 자들 앞에서 강하고 담대한 용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뻔뻔하고 말씀에 경청하지 않는 마음이 완악한 죄인들과(7절) 용기 있게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그분의 일꾼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신다. 『보라, 내가 네 얼굴을 그들의 얼굴들에 맞서도록 강하게 하였으며 네 이마를 그들의 이마들에 맞서도록 강하게 하였도다. 내가 네 이마를 부싯돌보다도 단단한 금강석 같게 하였으니 그들이 반역하는 집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들의 용모에 놀라지도 말라』(8,9절). 하나님의 사역은 인간의 지혜나 능력 또는 "만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일꾼으로 세우시고 어디론가 보내시면서 사명을 맡기실 때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 혹시라도 엄습해 올지 모르는 두려움까지 차단해 주시려고 담대한 용기도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대적들 앞에서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인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군사"이다. 군사는 기본적으로 고난을 견뎌 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정한 군인의 첫째 요건은 "용기"이다. 군사가 어떤 고난이라도 견뎌 내려면 바위처럼 단단해져야 하는데, 선지자 에스겔처럼 "단단한 금강석" 같은 이마를 적들을 향해 들이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을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박해, 욕설, 비방, 조롱, 건강 문제, 돈의 부족, 먹을 것과 입을 것의 부족, 세상의 반대, 미움과 상처, 교회 내 위선자들, 육신적인 성도들, 영적인 권위를 뒤집으려는 교회 안에 무질서한 자들, 낙담한 자들 등 어떤 두려움이든지 간에 그것을 견뎌 낼 수 있는 강철 같은 견고함이 필요하다.

미국이 낳은 제2차 세계대전의 명장 조지 패튼은 이렇게 말했다. "제군들이여, 공격하라! 공격하라! 피로가 극심할 때까지 공격하라! 피로가 극에 달해 쓰러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서 공격하라. 두려움은 1분간만 참으면 용기로 바뀐다. 나라를 위해 죽지 말라. 그 대신 적들이 그들의 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배교의 시대에 미국이 낳은 믿음의 명장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전진하는 사람이다. 두렵지 않다면 용감한 것이 아니다. 두렵지 않다면 용기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두렵지만 그것을 이기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그 두려움을 주는 존재를 훨씬 더 능가하시고 그 두려움을 단번에 제압해 버리실 수 있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두려워하는 데서 나온다.

하나님의 일꾼은 듣든지 안 듣든지 죄인들에게 경고를 줌으로써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10,11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집에게 파수꾼으로 세웠나니 내 입에 있는 말을 듣고 내게서 나오는 경고를 그들에게 주라』(17절). 하나님의 일꾼은 "파수꾼"이다. 파수꾼의 임무는 감시하고 경고를 주는 데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충직한 "워치독"(watchdog), 곧 "감시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왕국 유다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갈 무렵,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 오늘날 타락하고 배교한 마지막 교회 시대의 목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눈먼 개들이기에 지옥의 불구덩이로 빠지고 있는 수많은 죄인들을 향해서 어떤 경고도 하지 못한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짖지 못하는 개들이며, 그저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꼬리나 흔들고 있는 애완견들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경고도 받지 못한 채 죽은 악인들의 피 값을 그 파수꾼에게서 요구하신다.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그에게 경고도 주지 아니하고 그 악인에게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경고하여 그의 생명을 구하라고 말하지도 아니하면 바로 그 악인은 그의 죄악 가운데서 죽을 것이나 나는 네 손에서 그의 피를 요구하리라』(18절). 깊은 잠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이여, "파수꾼의 책임"을 물으시는 이 경고가 두렵지 않은가? 이제라도 잠에서 깨어나 파수꾼으로서의 임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너희에게 전해 주었음이라』(행 20:26,27).

또한 하나님의 일꾼은 이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곳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외부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말씀들만을 기다렸다(24절). 다시 말해 완전히 하나님 안에 갇힌 상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것은 그 어떤 것도 임의로 행해서는 안 되는 그런 상황으로 들어간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그를 묶이게 하시고(25절) 벙어리가 되게 하셨는데(26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아니면 아예 입을 열지도 말아야 하는 일종의 "사전 연습"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엄격한 기다림의 훈련"이었다. 그러나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명령하실 때에는 주저하지 말고 담대하게 입을 열어 말해야 하는 것이다(27절).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고, 들어가라고 하시면 들어가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시면 들어가지 말고, 무언가를 말하라고 하시면 말하고,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하시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임의로 행동했다가는 반드시 일을 그르치게 되어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실 때까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한다 할지라도 그에 대해 아랑곳하지 말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놓으신 문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그 과업만을 온전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밥 존스 시니어 목사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생 동안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여러 문들을 통과해 들어가면서 방들을 깨끗이 정리해 왔다. 그것이 크든 작든, 깨끗하든 지저분하든, 정리하는 일이 완료되었든 완료되지 않았든, 하나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시면 들어갔고, 정리하라고 하시면 정리했고,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하시면 옮겼던 것이다. 언젠가 나는 주님의 명령대로 또 다른 방에서 열심히 정리하고 있을 것이지만, 그날에는 다른 날과 달리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밥,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이제 이곳 하늘로 올라올 때가 되었구나.' 그리고 나는 아무런 미련 없이 그곳으로 올라갈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하늘의 본향으로 갈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주신 문들을 통과해 들어가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하라고 지시하신 일을 해야 한다. 경고하라고 하신 것들을 경고해야 한다.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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