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전쟁 분류
여리코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컨텐츠 정보
- 1,647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10월호>
그리스도인은 “훌륭한 군사”이다(딤후 2:3). 훌륭한 군사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사”이지, 패배하는 군사가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군사는 이기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굳이 지는 싸움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손무가 쓴 고대 병법서 <손자병법>에는 “항상 승리하는 군대는 이미 승리를 한 다음에 적들과 싸우지만, 항상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시작한 다음에 승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씌어 있다. 즉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는 군대는 적들과 싸우기 전에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략과 조건”을 완벽하게 갖춰 놓고 전쟁에 임하는 것이다. “전쟁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고, 존립과 패망의 향방을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싸우는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항상 승리를 쟁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저주받은(수 6:17) “여리코”는 카나안 땅에서 가장 먼저 정복해야 할 성읍이었다. 요단 강 서쪽으로 약 8km 떨어진, 해발 2,400m의 평원에 자리를 잡은 여리코는 카나안 땅에서 가장 큰 성읍 중 하나로서 철옹성처럼 견고한 요새였다. 면적이 약 10,000평으로 20평짜리 아파트 1천 가구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성읍 주위를 견고하게 두른 성벽은 두께가 약 2m인 외벽과 내벽의 “이중 구조”에 높이가 18m(아파트 6층 정도의 높이)나 되었다. 특히 당시는 성 안에 식량을 충분히 비축할 수 있는 “추수 때”(수 3:15)였으므로 그 안에서 성문만 굳게 걸어 잠그고 있으면 적들의 어떤 파상공세에도 몇 년이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방비가 잘되어 있고 요새화된 성읍이라 할지라도 인류의 역사와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수 6:5).
이에 전쟁에 능력 있으신(시 24:8) 하나님께서는 여리코 전투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다섯 가지 필승 전략”을 여호수아의 군대에 명령하신다.
1. 식량을 준비하라(수 1:11). 잘 싸우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하므로 “전투 식량”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예로부터 전투 식량은 “전략 물자”로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보급품은 중요도에 따라 1종에서 10종까지 분류되는데, “식량”은 가장 중요한 1종 보급품에 해당한다. “작전”은 “전투”에서 이기게 하고 “군수”는 “전쟁”에서 이기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수를 잘 운영하면 부분적으로는(전투에서) 패배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전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나폴레옹은 “군대는 잘 먹어야 잘 싸운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사울은 적을 완전히 쳐부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아주 어리석은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는데(삼상 14:24), 그야말로 쓸데없는 맹세와 서원으로 군대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유능한 군대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배고픔을 해소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군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양식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항상 영적인 식량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식량 보급로가 차단되는 순간, 그것은 곧 영적 전쟁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언약궤를 따라가라(수 3:3). 여리코를 향해 진군할 때 선두로 나선 것은 “언약궤”였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특히 그 안에는 “생명의 빵”이자, “부활”이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세 가지 물건, 곧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히 9:4)이 들어 있었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언약궤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했는데,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고, 또 어느 길로 가는지 주시하면서 언약궤를 따라가야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진리의 성경”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 말씀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어느 쪽을 향해 가는지 주시하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신 5:32).
3. 성결하게 하라(수 3:5). 이것은 “죄로부터 성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요단강을 건넌 이후에는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수 5:2).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 나을 때까지” 진영 안 각자의 처소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사실 이것은 전략이나 전술적 행동 하나로도 전세가 바뀔 수 있는 전시 상황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이었다. 지금 바로 코앞에 적이 있다! 이런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어떤 군사적인 훈련이나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니고, 은밀한 전략 회의를 한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적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할례를 행하는 가운데, 그것도 다 나을 때까지는 처소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으니 그야말로 “자충수”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다 나을 때까지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리코 사람들이 성문을 열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창 34:24-29).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할례를 행하는 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확인시켜 주는 “언약의 표”로서(창 17:11),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이방인들과 구별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로부터 구별(또는 성별)되지 않은 백성을 이방인들인 카나안 거민들과의 전쟁에서 도와주실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려면 반드시 “성별된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받고 다 나을 때까지 진영에 머물러 있는 동안 적들이 감히 쳐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원수들의 면전에서 식탁을 마련하시는(시 23:5) 하나님께서 전쟁의 모든 상황을 주관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그 명령에 순종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호수아는 그렇게 성결하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수 3:5). 성도가 주님께서 행하시는 위대한 능력을 보고 싶다면 “성별”해야 한다. 주님의 능력 가운데 역사하시는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죄로부터 성별해야 한다. 성도의 삶에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밤새도록 기도해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악인들의 기도는 주님께 가증하기에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별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대한 능력을 그들의 눈앞에서 행하신다. 믿음과 신뢰의 기도는 성별된 그리스도인에게만 어울리는 것이다!
4. 군대 대장을 신뢰하라(수 5:13-15). 여호수아는 이제 곧 시작될 전쟁을 앞두고 여리코 근방에서 이스라엘 편에 서 계신 “주의 군대 대장”을 만났는데, 이것은 여리코 전투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시고, 이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대적 편이냐?』(수 5:13) 이 질문은 영적 전쟁에는 중립 지대가 없음을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또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흩뜨리는 자니라.』(마 12:30)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눅 16:13).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든지, 한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경시하게 되든지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백성들에게 던졌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너희가 택하라』(수 24:15). 선지자 엘리야도 배교한 백성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희가 얼마나 더 두 의견 사이에서 지체하려느냐? 주가 하나님이시면 그를 따르라. 그러나 만일 바알이면 그를 따르라』(왕상 18:21).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미지근한 것”이다. 덥든지 차갑든지 해야 한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향해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냉랭하고 차가운 마음을 싫어하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싫어하시는 것은 미지근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미지근한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를 토해 내시겠다고 말씀하신다(계 3:16).
5. 명령에 순종하라(수 6:1-16). 전략상 “공성전”(攻城戰)이 불가피한 전투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전쟁사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전략으로 싸우게 하셨으니, 곧 “7일 동안 성읍을 도는 전략”이었다. 우선 백성들은 대열을 갖추고 6일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돌되 아무런 소리도 내서는 안 되었다. 유일한 소리는 일곱 제사장이 부는 나팔 소리가 전부였다. 그런 다음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아야 했는데, 일곱 바퀴를 다 돈 후에는 제사장들이 양 뿔 나팔을 길게 불고 백성들은 일제히 큰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성벽을 완전히 무너트리실 것이고, 백성들은 무너진 성벽의 경사로를 통해 성 안으로 진격해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여리코를 무너트리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능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보여 주심으로써,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 위대한 승리와 능력이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온다는 사실을 온 이방 가운데 선포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그분의 능력의 온전함이 변질되거나 퇴색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이다. 이 전략 중에서 아주 특이한 부분은 백성들이 여리코 성을 도는 동안 특별한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들은 40년간의 광야 생활 내내 틈만 나면 불평했던 자들이다. “이집트에서 잘 살던 우리를 왜 광야로 끌고 와서 죽게 만드는가?” “먹을 음식은 어디 있는가?” “마실 물은 어디 있는가?” “매일 만나만 먹으니 지겹다! 고기도 좀 먹고 싶다!” 등등의 불평들을 끊임없이 쏟아 냈던 것이다. 이런 백성들의 입을 다물라고 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셨다. 다물지 않으면 여리코 성읍을 정복할 수 없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여리코 성벽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기는 싸움을 싸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전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전쟁을 배워야 한다. 『나의 힘이신 주를 송축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치시어 전쟁에 임하게 하시고 내 손가락을 가르치시어 싸우게 하시나니』(시 144:1). 온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훈련 교관으로부터 영적 전쟁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배워야 한다. 군대 대장이신 주님께서는 영적 전쟁을 위한 훈련 교범으로 “성경”을 주셨다. 영적 전쟁에서 성경을 모르면 절대로 이기는 싸움을 싸울 수 없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동안 반복되어 온 패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손에 좋은 무기와 병법서가 들려 있다 해도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르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배웠으면 영적 전장에서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수많은 영적 전쟁의 참호 속에서 실전에 적용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영적 전장 한복판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