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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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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1월호>
『그들의 등은 주의 성전을 향하고 그들의 얼굴은 동쪽을 향하였으니 그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하더라』(겔 8:16).연말연시가 되면 누구나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희망차게 맞이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당연한 마음이다. 한 해를 마무리함에 있어서, 성취하고자 계획했던 일들이 원래의 계획대로 잘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반성하는 일이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그 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 중 하나는 계획했던 일들을 잘 이루어 보고자 노력했을 때 도움을 주었던 분들에 대한 감사이다. 특히 구원받은 성도들은 한 해 동안 온전히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다음 해에 자신이 주님을 위해 어떤 헌신으로 보답해 드릴 것인가를 묵상하고 결심함으로써 표명할 수 있다. 새해에 어떤 헌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것인가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즉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의례적인 행사, 즉 어떤 외적인 계기를 통해 오는 감각적인 요소에 그런 결심을 의존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감각에 의존하여 어떤 계기를 마련하는 방식을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계기로 삼는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해맞이 행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새해 첫날 주로 동해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행사는 그것과 연계된 상업성 때문에 매년 세계 곳곳에서도 성황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일부 지방에서는 지역 내에 있는 산 정상이나 중턱에서 새해 아침 해맞이 행사를 열기도 한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해맞이 행사든, 산에서 이루어지는 해맞이 행사든 그 본질은 동일하다.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의 어두움과 차가움에 대비해서, 태양이 떠오를 때의 그 하늘의 빛깔과 눈부심, 그리고 밝아짐과 따뜻해짐에서 오는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느낌"에 의존하여 왠지 모르게 새해에는 뭔가 잘될 것 같은 "기분"을 느껴 보고자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해맞이 행사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과 기분에 도취된 채 태양을 바라보면서 새해의 건강과 성취를 "기원"하게 된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하루 또는 새해를 새 아침의 상쾌한 호흡과 함께 시작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그 감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염원을 싣고, 하루나 한 해의 기원을 담는다면 그것은 결국 우상 숭배의 행위가 된다. 우상 숭배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닌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님이 아닌 존재에 염원을 싣고, 하나님이 아닌 존재에 기원을 담는 것이 우상 숭배 아니겠는가? 굳이 무릎 꿇고 고개를 숙여서 엄숙한 태도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만이 우상 숭배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탐심"도 우상 숭배라고 하셨다(골 3:5). 탐심이 무엇인가?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염원과 기원을 가지는 것이 탐심 아니겠는가?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무언가를 기원했다는 것은 이미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교도들은 자연환경 속에서 자기들에게 영향을 주는 무생물들에 "애니 미즘적인 사상"(생명이 없는 대상에게 생명과 감정을 부여하는 종교관)을 결부시켜 그것들을 인격화할 뿐만 아니라 인간 이상의 능력을 부여하여 신격화함으로써 자기들이 숭배할 우상들을 만들어 낸다. 또한 동식물 중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특성을 가진 존재를 그들과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조상으로 생각하고(토테미즘), 더 나아가서는 그것에 신격화를 더하여 우상으로 섬긴다. 태양, 달, 별, 산, 바위 등의 무생물을 숭배하는 것이나 곰, 호랑이, 독수리, 참나무 등의 동식물을 숭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태양을 숭배하는 것은 이교도들에게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이는 태양이 자연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된 원천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숲과 경작지에 거주하는 이교도들은 태양이 나무와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스의 태양신 아폴론, 이집트의 태양신 라, 수메르의 태양신 우투, 우라루트의 태양신 아르티니스, 앗시리아와 바빌론의 태양신 샤마쉬,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동아시아의 태양신 삼족오 등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태양신" 또는 "태양신 신화"가 존재한다.
성경은 태양 숭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에스겔 8장에는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신 "네 가지" 우상 숭배 행위가 나온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들어 올리셔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그곳 『북쪽을 향해 바라보는 안쪽 대문의 문』에서 『질투를 유발시키는 질투의 형상의 자리』를 보여 주셨다(3절). "질투의 형상의 자리," 즉 "사탄의 자리"를 보여 주시고는 『네가 더 큰 가증함들 을 보리라.』(6절)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스라엘 집의 노인들이 어두운 곳, 각기 자기 형상의 방 안에서 행하는 것』(12절)을 보여 주셨다. 그렇게 "자기 형상의 방"을 보여 주신 다음에는 또다시 『너는 그들이 행한 더 큰 가증함들 을 보리라.』(13절)라고 말씀하시면서 선지자 에스겔을 『북쪽을 향한 주의 집의 대문의 입구』(14절)로 데려오셨는데, 그곳에서 『여인들이 탐무스를 위하여 울며 앉아』(14절) 있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너는 이것들보다 더 큰 가증함들 을 보리라.』(15절)라고 하시고는 『주의 집의 안뜰』로 데려오시어 『주의 성전의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명의 사람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16절). 결국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네 가지 가증함들 중에서 가장 큰 가증함은 "태양을 경배하는 것"이었다.
당시 태양 숭배는 "현관과 제단 사이," 즉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태양 숭배는 그 특성상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장소에서 행하기가 어렵다. 태양이 떠 있는 시간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양 숭배를 행하는 자들은 자기 형상의 방 안에서 은밀히 우상 숭배하는 자들보다 훨씬 대범하고 뻔뻔스럽게 우상 숭배를 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태양 숭배"를 다른 우상 숭배보다 더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태양 숭배의 역사는 이집트의 노예 생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심판하셨을 때 그곳에 "짙은 어두움"을 내리신 것은(출 10:21-29)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그 태양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생활할 때에도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네가 네 눈을 들어 태양과 달과 별들, 즉 하늘의 모든 군상을 보고 그것들을 경배하고, 그것들을 섬기도록 이끌려서는 안 될지니, 그것들은 주 너의 하나님께서 온 하늘 아래 모든 민족들에게 나누신 것이니라.』(신 4:19)라고 경고하셨다. 선지자 아모스도 『오 이스라엘 집아,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내게 희생제들과 제물들을 드렸더냐? 오히려 너희는 너희의 형상들인 몰록과 키운의 장막을 지녔은즉, 이는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너희 신의 별이라.』(암 5:25,26)라고 질책했고, 사도행전 7장에서는 스테판이 그들의 조상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 있었을 때를 언급하면서 『우리 조상은... 그들의 마음이 이집트로 다시 돌아서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로 하늘의 군상을 섬기도록 내버려 두셨으니... 참으로 너희가 몰록의 장막과 너희의 신 렘판의 별을 택하여 경배하고자 모형들을 만들었으니...』(39-43절)라고 설교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인들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를 배워 광야에서도 그대로 행했던 것이다. 카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주를 두려워하고 성실과 진리로 그분을 섬기라. 너희 조상들이 하수 저편과 이집트에서 섬겼던 신들을 버리고, 너희는 주를 섬기라』(수 24:14).
이스라엘 민족은 카나안 땅에 정착한 뒤에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이집트, 지중해의 해양 민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이교도들의 종교적인 영향을 막아 내지 못했다.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부터 그들 안에 이미 심겨 있었던 우상 숭배를 제거하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교도들의 종교적 영향을 막아 냈어야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하늘의 군상들에 대한 우상 숭배를 그치지 않았다. 유다 왕 요시야에 관한 기록은 요시야 이전의 유다 왕들의 그런 가증한 죄들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잘 보여 준다. 『또 그가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폐하였으니, 유다의 왕들이 명하여 ... 바알과 태양과 달과 행성들과 하늘의 모든 군상들에게 분향하던 자들이었더라』(왕하 23:5). 『또 그가 유다의 왕들이 태양에게 바친 말들 을 외곽 지역에 있는 주의 전의 입구, 즉 시종 나단멜렉의 집 곁에서 제하여 버리고, 또 태양의 병거들 을 불살랐으며』(왕하 23:11). 유다의 왕들은 태양신에게 말들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태양신에게 바쳐진 말들이 끄는 『태양의 병거들』까지 만들어 전쟁에 나갔던 것이다. 태양신에게 말들을 바치는 것은 군대의 열병식처럼 공개적인 행사로 치러졌을 것이며, 『태양의 병거들』도 태양신을 상징하는 어떤 표식을 달아 구별되게 했을 것이다. 유다의 왕들은 이러한 행사들과 표식들을 통해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했을 것인데, 유다의 왕들에게 있어서 그들 "군대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태양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군대의 신"으로서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일은 유다의 멸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일까?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는 어떤 식으로든 "군대의 신"을 역사 속에 다시 등장시킬 것인데, 분명 그는 유다의 왕들이 그들 "군대의 신"으로 "태양신"을 숭배했던 것과 유사한 일들을 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리에서 그가 군대의 신을 공경하리니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했던 신을 그가 금과 은과 보석과 보물들로 공경하리라』(단 11:38). 적그리스도는 그가 공경하는 『군대의 신』을 모든 사람이 숭배하도록 요구할 것이며, 그 『군대의 신』을 "태양"과 연결시켜서 "해맞이 행사"를 거대하게 진행하고, 전 세계의 모든 해 뜨는 장소에서 태양을 경배하게 하되 『그의 조상들이 알지 못했던 신』의 이름으로 경배하게 할 것이다.
어떤 대상을 보고 무언가를 기원하면 그 대상을 숭배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 기원의 대상이 뭔가 해 줄 수 있다고 의식적으로든지 무의식적으로든지 믿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해맞이 행사"를 새해를 "기분" 좋게 맞이하기 위한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사고방식이다. 그 배후에는 감각과 느낌을 통해 태양 숭배를 조장하는 사탄의 계략이 숨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새해를 의미 있게 맞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새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성경을 읽으며 진지하게 묵상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지난해를 온전히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새해에도 당신의 삶을 주님께 의탁하고 모든 것을 그분의 보호하심에 맡기겠다고 말씀드리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