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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병거는 “천리마 병거”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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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4월호>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보통 전쟁에도 관심이 많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현존하는 국가든 역사 속에서 사라진 국가든, 태동과 발전, 번성과 쇠퇴, 부흥과 소멸의 와중에 전쟁이 없었던 국가는 거의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많은 전쟁과 전투 이야기들을 기록하셔서 그 내용을 읽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게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은 성도라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전쟁 이야기들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통해 교훈과 통찰을 얻으려 할 것이다. 전쟁 이야기 중에는 단순히 국가 간의 이해관계, 전쟁의 원인, 전쟁의 진행 과정이나 결말만 들어 있는 사례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전쟁을 일으킨 통치자의 개인적인 야욕이나 그 군대의 성향, 국민성,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식량, 전리품, 승패를 막론하고 전사한 병사들의 가족이 겪는 슬픔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 함께 녹아 있다.전쟁을 일으키고 수행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전쟁의 기본 전략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로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전쟁은 고대 전쟁이나 현대 전쟁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는 장비는 많이 달라져 왔고, 전쟁 무기도 과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고도로 발전해 왔다. 전쟁 장비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대화되기 이전에는 실제 전투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 다름 아닌 “군마”였다. 그래서 전쟁 기록을 보면 전쟁을 수행한 병사들의 수와 함께 기마병이나 병거의 수가 기록된 경우가 많다. 마치 현대전에서 탱크나 미사일 또는 전투기가 전쟁에 몇 대나 동원되었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과 유사하다. 고대 전쟁에서는 군마의 수가 병사의 수와 더불어 한 국가의 전투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본 척도였던 것이다. 고대의 전쟁에서 이렇게 “말”이 중요하다 보니, 전쟁 이야기 곳곳에서 “말”이 등장한다. 동양에서는 “전쟁터”를 “활과 말 사이”라는 의미로 “궁마지간”(弓馬之間)이라 칭했고, 전쟁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경험 많은 늙은 말을 앞장세워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이런 고사성어들은 전쟁과 말의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전쟁에서 말은 말 탄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므로, 군주들이나 장수들이 자기가 탈 말을 신중히 고르고 애지중지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들이 탔던 말 중에는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도 있으니, 동양에서는 항우의 “오추마”와 관우의 “적토마”가 대표적이고, 서양에서는 알렉산더의 “부케팔로스”와 나폴레옹의 “마렝고”가 그러하다. 특히 관우의 “적토마”는 “천리마”로도 유명한데, “천리마”는 낮에는 천 리, 밤에는 팔백 리를 가는 명마를 일컫는 용어이다. 천리마가 처음 언급된 것은 전국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인 초나라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서였다. 중국은 시대마다 “리”(里)의 거릿값이 달랐는데, 주나라 때는 1리가 298.65m였으므로 당시의 천 리는 약 300km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천리마는 낮에 300km, 밤에 240km, 하루에 총 540km를 달리는 “상상 속의 명마”인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말이 하루 동안 갈 수 있는 거리는 얼마일까? 몽골 칭기즈칸의 기병대가 호라즘 제국을 정벌했을 당시 하루에 최대 134km를 이동한 것이 역사에 기록된 “최고 속도”다. 일반적으로 말은 사람을 태우고 하루에 50km 정도 갈 수 있으며, 훈련된 군마는 병사를 태우고 하루 최대 80-100km 정도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기병대가 아닌 일반 육군 보병의 하루 행군 속도는 얼마일까?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보병은 페르시아를 정벌했을 당시 하루 최대 24km를 이동했고, 카이사르의 로마 군단병은 하루 최대 33km의 거리를 이동했으며, 나폴레옹의 프랑스 육군은 오스트리아를 공격했을 당시 하루 최대 40km를 이동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장한 군인이 걷는 속도는 하루 최대 40km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사람과 말의 이동 속도가 상황 전개에 매우 극적인 영향을 미쳤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출애굽 때”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걸어서 이동했던 반면, 파라오의 군대는 병거를 타고 그들을 추격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라메세스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숙콧, 에담, 피하히롯에서 진을 쳤으므로(민 33:5-7) 홍해를 건너기 전에 “세 번” 진을 친 것이 되고, 이를 거리로 계산하면 라메세스에서 숙콧까지 40km, 숙콧에서 에담까지 40km, 에담에서 피하히롯까지 70km, 총 150km를 이동한 것이 된다. 참고로 라메세스에서 피하히롯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135km이다.
하나님께서 에담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하히롯으로 가라고 하신 후에 이집트의 파라오가 추격을 시작했으므로(출 14:1-4), 하루에 한 번씩 진을 쳤다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3일 만에 피하히롯에 도착한 것이 되고, 파라오 역시 주야로 병거를 몰아 하루 만에 피하히롯에 온 것이 된다. 그러면 파라오의 병거가 하루 만에 150km를 달린 셈이다.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은 출애굽 한 지 일곱째 날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틀에 한 번 정도 진을 치면서 6일간 이동한 것이 되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이동 속도는 하루에 25km, 파라오의 병거는 하루에 75km를 달린 셈이 된다.
정황상 라메세스에서 피하히롯까지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6일보다 더 걸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세가 『삼 일 여정으로』(출 5:3; 8:27) 광야에 들어가서 희생제를 드린다고 했으므로 광야의 끝인 에담까지 가는 데 3,4일보다 더 걸렸을 리 없고, 또한 에담에서 동쪽 광야로 들어가지 않고 남쪽 피하히롯으로 방향을 돌린 것을 파라오도 알고 즉시 추격을 시작한 것으로 보아, 파라오의 병거가 150km를 추격하는 데 2일보다 더 걸렸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한편 출애굽 경로와 이동 속도에 관해 위와 같은 상식적인 해석이 가능한데도 과도하게 억지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 출애굽 경로”를 주장하는 론 와이어트, 밥 코르누크, 마일러 존스 등과 이들의 영향을 받은 김승학이 그러하다. 이들은 시내반도 서쪽 “수에즈만의 홍해 기적”이 시내반도 동쪽 “아카바만의 홍해”에서 일어났다고 억지 주장을 한다. 성경의 “시내산”이 “시내반도”에 있는 시내산이 아니라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라오즈산”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출애굽 경로와 이동 속도를 무리하게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이다.
신 출애굽 경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라메세스 - 숙콧 - 에담 - 피하히롯”의 경로에서 “에담”의 위치를 수에즈만 북쪽의 숙콧 부근이 아닌, 아카바만 북쪽의 “에시온게벨 부근”으로 규정하고, 에시온게벨의 남쪽 “누웨이바”를 성경의 피하히롯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경적 근거도 없이” 이동 일정을 무리하게 늘려서 숙콧에서 에시온게벨 부근까지 3일 여정, 에시온게벨 부근에서 누웨이바까지 3일 여정을 제시한다. 숙콧에서 에시온게벨까지는 시내반도를 횡단하는 거리로서, 직선거리는 350km이고 도보거리는 500km이다. 3일 만에 500km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신 출애굽 경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170km 정도의 이동 속도로 시내반도를 횡단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들 모두 “축지법”을 썼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셨다면 하루 만에 가지, 왜 3일이나 걸렸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3일 만에 500km를 걸었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것은 “파라오의 병거”다. 파라오의 병거는 이스라엘 백성이 에담에서 피하히롯으로 출발한 후에야 추격을 시작했으므로(출 14:1-4),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려면 시내반도를 횡단하여 누웨이바까지 500km를 하루 이틀 만에 달려야 한다. 그것은 앞에서 “천리마”가 하루에 540km를 달린다고 했거니와, 파라오의 병거뿐만 아니라 파라오의 군대의 모든 병거가 “천리마 병거”였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350km나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이 누웨이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에 대해 파라오는 어떻게 알고 추격을 시작했을까? 그들의 주장은 억지의 연속이다.
신 출애굽 경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수용하려면,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도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그를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하시려고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천리마 병거”가 되게 하셨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제시간에 도착해서 홍해에 빠져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신 출애굽 경로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숙콧에서 에시온게벨 부근까지 3일 동안 500km를 이동했다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에시온게벨 부근에서 누웨이바까지의 50km 정도의 거리는 “성경적 근거도 없이” 3일 여정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급하게” 왔다가, 왜 갑자기 거기서부터는 천천히 걸었는가? 파라오의 병거가 도착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하루밖에 안 되는 여정을 고의로 3일이나 되는 여정으로 늘려 주었단 말인가? 그들의 주장 곳곳에는 이렇게 논리적인 허점을 메우기 위한 허접한 눈속임이 들어 있다.
신 출애굽 경로를 주장하는 자들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갈 4:25)을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시내산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바우어 헬라어 사전> 등의 사전들에는 “시내반도와 아라비아반도가 모두 아라비아로 불렸다”는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더군다나 성경이 『필리스티아인의 땅의 길』(출 13:17)과 『홍해의 광야 길』(출 13:18)을 분명하게 대비하고 있거니와, 시내반도 북부가 “필리스티아인의 땅”일진대 어떻게 그들의 주장대로 시내반도가 “이집트의 땅”이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시내반도는 필리스티아인들과 더불어 “아라비아인들의 땅”이기도 했다(대하 21:16; 26:7). 모세가 파라오에게 “광야”에서 희생제를 드리겠다고 했을 때 파라오가 무어라 대답했는가?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제를 드리라.』(출 8:25)라고 했다. “광야,” 즉 시내반도는 “이 땅,” 곧 이집트가 아닌 것이다.
왜 신 출애굽 경로를 주장하는 자들은 시내반도를 이집트의 땅으로 주장하려고 애쓰는가? 그렇게 해야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광야를 아라비아반도라 주장할 수 있고, 아라비아반도의 라오즈산을 시내산이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정확한 “연대 측정의 증거도 없이”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몇 개의 바위들과 돌들과 암각화들이 무조건 모세 시대의 증거물들이라고 우긴다. 우기면 진실이 되는가?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항상 돈이나 명성이 있다. 새롭고 신선한 것을 주장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또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한 성경적 근거가 없는 끼워 맞추기식 주장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정확한 근거도 없는 새로운 주장에 마음이 이끌리기보다는 『건전한 생각의 영』(딤후 1:7)을 통해 신중한 자세로 올바른 성경 지식을 쌓음으로써 항상 견고한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