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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위에 나부끼는 그의 깃발은 사랑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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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11월호>
토요일마다 시내 중앙 파출소 앞에서 거리 설교 모임이 있는데, 하도 자리가 좋아서인지 가끔 정부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이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일군의 젊은이들이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정부에게 무언가를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모인 형제들과 함께 ‘중앙 공원’으로 갔다. ‘국채보상운동 기념 공원’도 있지만, 그곳에도 무슨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사실, ‘중앙 공원’보다는 ‘국채보상운동 기념 공원’이 복음을 전하기에는 더 좋다. 국채보상운동 공원은 최근에 생긴 곳으로 규모도 훨씬 크고 사람들도 더 많다. 중앙 공원은 그에 비해 규모도 작고 모이는 사람들도 삶에 찌든 이들이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술취한 사람이나 노숙자들도 많이 섞여 있다.
그날 그 공원에서 그 아저씨를 만났다.
내가 처음 그 아저씨를 보았을 때 그는 도로변에 인접한 벤치에 앉아 무슨 공상에 잠긴 얼굴로 멍하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교회 다니십니까?”
그렇게 말하며 내가 다가서자 그는 천천히 전도지를 받으며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 아내가 교회 집사입니다.”
“아저씨는 교회 다니십니까?”
뭐 별로 중요한 질문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복음 쪽으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전도사예요?”
그가 내게 느닷없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냥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교회는 다녔어요. 아내 때문에요. 아내가 좋아하니까, 가야 되는 건데, 하지만 뭐, 담배도 못 끊구... 가야 하는데, 아내한테 잘못한 게 참 많거든요...”
이야기가 갑자기 그 쪽으로 치우쳤다. 아마 담배를 피우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억지로 가로막지 않고 그가 말하는 대로 가만히 두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예요, 담배 끊고 교회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저씨는 지금 구원받아야 돼요!’라고 다그쳤다간 마음을 꽉 닫아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창 때 사업을 했어요. 그러다 IMF 때문에 다 말아 먹어 버렸죠. 지금은 횟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젠 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버렸고 해서 더 이상 일어설 기력도 없어요. 그냥 횟집이나 하면서 요모양 요꼴로 살아야 될 것 같아요... 아내한테 참 미안하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아내한테 사죄를 했었어요. ‘나를 용서해 주시오.’라고 말했더니 오히려 나를 위로하면서 ‘난 당신을 벌써 용서했어요.’라고 하더군요. 정말이지, 전도사님, 전 있잖아요, 제 아내를 위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심정이예요. 참 고운 사람이었는데 제가 너무 고생을 많이 시킨 것 같아요...”
“저, 아저씨, 그런데요...”
이제 내가 나서야 될 때다. ‘주님께서 물꼬를 터 주셨으니, 이제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을 앞에 두고 자기 아내를 위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아저씨를 사랑하셔서 아저씨를 위해 죽어 주신 분이 있어요. 아저씨가 부인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 이상으로 아저씨를 사랑하셔서 정말로 아저씨를 위해 죽어 주신 분이 있어요...”
그는 그제서야 정면만 응시하고 있던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그를 통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요일 4:9,10).
“아저씨는 아주머니가 지금껏 아주머니에게 잘못한 것을 다 용서해 준다고 한 말을 그대로 믿으셨어요?”
“예, 물론이죠.”
“그러면 아저씨와 아주머니 사이에서 그 문제는 끝이 난 거네요?”
“예, 그렇죠.”
“아저씨, 말씀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저씨를 위해 죽으셨어요.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용서해 주셨단 말입니다. 그 사실을 단순히 믿기만 하면 아저씨와 하나님 사이의 죄 문제는 완전하게 해결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용서하셨고 아저씨가 그 말을 받아들여서 두 분 사이의 문제가 끝이 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저씨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마음에 믿으면...”
나는 그에게 아주 차근차근 복음을 전했고, 역시나 그는 흔쾌히 복음의 초청에 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다. 영접 기도까지 끝낸 후, 눈을 뜨고 보니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해져 있었다. 마치 쓰고 있던 ‘우울한 얼굴’이라는 탈을 벗어버린 것 같았다.
“목사님, 제 아내한테도 이 복음을 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 가게가 바로 요 앞이거든요.”
그는 구원의 기쁨을 아내와 함께 누리고 싶어했다.
“예, 물론이죠.”
그러나 바로 앞에 있다는 가게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또 그의 아내와 마주치
기도 했지만, 토요일이고 해서 분주했던지, 주방에서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안타까워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한 10분정도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복음을 전할 시간을 얻지 못했고, 결국은 만화 전도지 한 장만 놓아두고 가게를 나왔다.
그는 가게 앞에서 말했다.
“목사님!”
“아뇨, 저는 목사가 아닙니다.”
나는 그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다음에 이쪽으로 오실 일이 있으시면 꼭 한번 들러 주세요.”
“예, 예. 꼭 그러죠. 꼭 들르겠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돌아가는 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가 또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땐 거리가 좀 떨어진 후였기 때문에 목소리를 다소 높여서 대답해야 했다.
“저는 목사 아니예요! 안녕히 계십시오! 나중에 꼭 들를께요!”
그의 아내가 주님께서 마련하신 그 기쁜 복음의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가 나를 잔칫집으로 안내하였으니, 내 위에 나부끼는 그의 깃발은 사랑이었도다』(솔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