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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권위자에게 순종한 사르밧 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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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2월호>
『엘리야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말고 가서 네가 말한 대로 행하라. 그러나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조그만 과자 하나를 먼저 만들어 내게 가져오고 그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주가 땅에 비를 보내는 날까지 가루통도 고갈되지 아니하고 기름병도 비지 아니하리라.' 하시느니라." 하더라』(왕상 17:13,14)."어머니"라는 말은 "자녀를 둔 여자"라는 뜻이며, "자기를 낳아 주신 분을 부르는 호칭 "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머니"란 단어에는 그 말뜻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녀로서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과정 중에 우리 마음 안에 형성된 그 무엇인데,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어린 시절 불편한 몸으로 태어난 자기를 헌신적으로 양육한 어머니를 회고하며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표현은 자녀를 위해 불편, 고통, 위험, 수치, 비난 등을 감수하는 희생적이고 끈기 있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 말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그것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자기들의 마음속에 담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도 어머니들이 나온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가 어머니이거나 예비 어머니이므로, 성경에 나온 거의 모든 여자들은 어머니의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어머니의 인생이 성경에 다 드러난 것은 아니며, 하나님께서 기록하고자 하신 몇몇 어머니들의 단편적인 모습이나 일화가 기록되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셨을 때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열왕기상 17장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다 아시 는 주님께서 엘리야 를 부양하게 하려고 정하신 사람은 사르밧의 한 과부였다. 그때 마침 그 여인은 먹을 양식이 한 끼 분량밖에 남지 않아 마지막 끼니를 먹은 후 아들과 함께 죽을 생각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하기를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거니와 내게는 과자가 없고 통에 한 줌 가루와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이니이다. 보소서, 내가 나뭇가지 두어 개를 주워 가지고 가서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우리가 먹고 죽으려 하나이다." 하니』(12절). 당시 사르밧 과부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으므로 정상인의 정신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 그녀가 엘리야 를 만난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영적 권위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전달하시는 경우가 있다.
사르밧 과부는 부족한 양식을 매우 아껴 먹고 있었을 것이기에, 마지막 남은 식량 이 자기와 아들이 먹고 엘리야의 몫까지 구울 수 있는 양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엘리야의 요구는 그녀를 매우 당황스럽게 했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조그만 과자 하나를 먼저 만들어 내게 가져오고 그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13절). 집에 가서 얻어먹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먼저 먹은 후 조금 남긴 양으로 과자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 아니고 엘리야의 것을 먼저 만들어 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순종한다! 자신과 아들의 생명을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마지막 한 끼 식사와 영적 권위자의 말 사이에서 과감히 영적 권위자의 말을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의 말이니까 일단 믿어 보자."는 심정이었을 수 있다. 물론 그녀는 자기의 죽은 아 들이 살아난 후에야 엘리야에게 진심으로 믿음의 고백을 했다. 『그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제 이 일로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과 당신 입에 있는 주의 말씀이 진리임을 아나이다." 하더라』(24절). 따라서 사르밧 과부가 복을 받은 이유는 그녀가 영적 권위자의 "말," 곧 "그의 입에 있는 진리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믿음은 미약했을지 모르지만, 믿음의 순종을 통해 복을 받게 된 것이다.
만약 사르밧 과부가 자기와 아들의 음식을 먼저 만들어 먹고 남은 것으로 엘리야의 과자를 굽고자 했다면, 그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이 먹기에도 양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명령에 순종하자마자 바로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엘리야의 것을 먼저 만들게 하셨고, 그녀와 아들은 그의 것을 만든 후에 그날 식사부터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주의 말씀대로 가루통도 고갈되지 아니하고 기름병도 비지 아니하였더라.』(16절)고 성령께서 기록하셨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복을 받는 원칙에 있어서 우선순위의 문제를 분명히 보여 준다. 첫째는 당면한 현실보다는 그 현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르밧 과부가 현실만을 생각했다면 남은 한 끼에 연연한 나머지 엘리야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복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는 영적 권위자의 조언이나 명령을 자신의 생각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 권위자의 말을 듣고도 자기 생각으로 돌 아가 버린 사람은 결국 자기 생각으로 그 권위자 의 말을 불신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순종하기 어려워진다. 사르밧 과부 역시 엘리야의 명령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순종하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는 영적 권위자의 말은 제시된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시된 대로 순종해야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했던 복을 "온전히 " 다 받을 수 있다. 반쯤만 순종하면 온전한 복을 받지 못한다. 그녀는 영적 권위자가 제시한 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아사 (餓死)의 위기에서 모면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아 들이 죽었을 때에도 다시 살릴 수 있었고, 자신은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24절).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도 영적 권위자의 말에 순종함으로써 복을 받은 여인이었다. 아도니야가 왕권을 잡으려 했을 때(왕상 1:5), 밧세바는 당시의 영적 권위자인 선지자 나단의 조언에 충실히 순종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아들의 생명을 살렸음은 물론, 자기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만일 밧세바가 늙은 다윗에게 그의 약속대로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할 만한 실제적인 힘이 없다고 제멋대로 단정한 채,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나단이 제시하지 않은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면, 설혹 그 방법이 성공해서 자신과 아들의 생명을 보존했다 해도 솔로몬이 왕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밧세바는 나단이 조언한 그대로를 실행했으며, 그 결과 아들인 솔로몬은 그의 머리에 기름이 부어져 왕이 되었고 그녀 자신은 왕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왕상 1:11-53).
엘리사가 사역하던 시절, 선지자들의 아들들의 아내들 중에 좀 더 적극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엘리사에게 먼저 부르짖었다. 『그때 선지자들의 아들들의 아내들 중 어떤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죽었나이다. 당신은 당신의 종이 주를 두려워하였음을 아시나이다. 그런데 채권자가 와서, 내 두 아들을 취하여 그의 종으로 삼고자 하나이다." 하자』(왕하 4:1). 엘리사는 이 과부에게 그릇들을 많이 빌리게 하여 남아 있던 기름병의 기름을 그 그릇들에 붓게 했고, 그릇들에 가득 찬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게 했다. 사르밧의 과부처럼 이 과부도 영적 권위자의 명령에 순종했다. 적극적으로 부르짖은 그녀는 자기가 원한 것, 즉 빚을 갚아 아들들이 종이 되지 않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당분간의 생계 문제를 해결할 여유까지 얻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영적 권위자의 명령에 단순히 순종하는 것을 넘어서 영적 권위자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원하는 것 이상으로 더 풍요롭게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당신은 어머니인가? 자녀의 생명과 번영을 위해 기도하는 여인인가? 어머니인 당신은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노력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를 위한 최상의 선택은 자녀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당신은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양육하고, 그래서 자녀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자기 뜻대로 양육하고 있진 않는가? 주님께서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구체적인 영적 조언을 해 줄 영적 권위자를 우리 곁에 두신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신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악한 현 시대에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 길러지겠거니 하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녀로 양육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또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 양육을 위하여 영적 권위자가 제시하는 최상의 조언에 대해 다양한 핑계를 대며 회피함으로써 자녀가 받을 더 큰 복을 가로막고 있다. 영적 권위자에게 적극적으로 나 아가 자녀를 위한 조언을 얻으라. 그리고 그 조언에 순종하라. 당신의 그러한 순종은 결국 자녀의 유익임을 유념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