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다시 읽는 이송오 목사 분류

종교와 신앙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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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4월호>

종교(religion)란 숭배자가 자의건 타의건 선택한 절대자나,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자신을 위탁하고 심신을 바쳐 충성하는, 혼을 통한 행위를 말한다. 그들이 숭앙하는 대상은 대개 무생물이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이기에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없다. 신이라고 섬기는 대상 역시 숭앙하는 자가 그의 상상으로 그것이 무엇일 것이라는 정도로 여길 뿐이지 규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숭앙자가 생각나는 대로 숭앙하는 대상의 감정과 의지를 정한다. “이렇게 하면 좋아할 것이다. 비린내 나는 생선은 싫어할 것이다. 돼지머리 삶은 것을 좋아할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 묘를 쓰면 좋아할 것이다. 돈을 많이 내면 좋아할 것이다. 새벽녘에 찬송가 부르고, 기도하면 응답을 잘 해 줄 것이다. 무릎으로 기어 성당까지 가면 마리아가 알아 줄 것이다. 소가 상점을 들이받으면 상점을 더 크게 늘리라는 신호이다. 악어에게 고기를 던져 주면 악어 신이 자식들을 더 늘려 줄 것이다. 성령님이 나에게 교회 건물을 더 크게 지으라고 하셨다. 집사와 장로는 수입이 없어도 십일조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내야 한다.”

길게 쓸 것도 없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즉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알아준다는 추측이 종교이다.
이쯤 되고 보면 종교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불교, 힌두교, 천주교, 유교, 이슬람, 도교, 신도교, 통일교, 김일성 주체사상, 유대교, 몰몬교, 대순진리교, 무신론자, 진화론자, 우상 숭배자, 잡신을 섬기는 자들까지도 그들만의 종교가 있고, 그 종교를 숭앙한다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바위, 산, 호수, 강, 바다, 무덤, 하마, 소, 호랑이, 사자, 악어, 뱀, 독수리 등을 숭앙하기도 한다.

혼적 달관(達觀)은 사람이 겪을 수 있고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근심, 걱정, 위험, 위기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망각하거나 체념하고 그런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이 설정해 놓은 가치관과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을 진리인 양 붙들고 사는 삶의 한 방편이요 자세를 말한다. 대개 이런 사람에겐 가족이나 가정이 없기에 먹고사는 일, 성취, 베풂, 욕망이 있을 수 없다. 세상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유아독존 한다. 삶의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다. 이것이 석가모니나 크리슈나가 택한 삶의 방편이었는데, 이런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티베트나 네팔, 스리랑카, 부탄같이 된다. 이런 혼적 달관을 철학(philosophy)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 대학에서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배우는 학생들로 하여금 인생에 대한 해답도 없이 미궁 속에서 헤매게 하는데, 이것 역시 또 다른 헛짓이다. 성경에서는 이런 철학을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헛된 속임수”이니 노략질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골 2:8).

그렇다면 철학을 포함한 종교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이며, 누가 만들어 주관하는 것일까? 우주에서 두 번째로 세력을 가진 마귀이다. “정사들, 권세들,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이 그들의 권세로 수많은 인간의 혼들을 정복하여 거짓된 종교를 지배 수단으로 쓰고 있다.
불교, 힌두교는 폐쇄적이지만 천주교, 모슬렘, 공산주의, 주체사상 등은 강압적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세상을 등지고 더럽게 산다. 마귀에게 정복을 당하면 정복한 자의 종이 된다(벧후 2:19).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 된다”(요 8:34).

사람들이 종교를 숭앙하면 어떻게 되는가? 개선이 없게 되는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숭앙자가 이름 붙이는 대로 되는 기분만 갖게 된다. “내가 부처에게 절을 몇 번 했더니 웃는 것 같더라. 시주를 많이 했더니... 절을 크게 지어 줬더니... 돈 많은 새 신도들을 데리고 갔더니...” 평생 동안 마귀를 좇고 이런 헛소리하는 지도층이 하라는 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가? 생이 파멸된다. 마귀는 인류에게 빛과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파멸시킨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아폴루온”으로 “멸망”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6:25). 그런 사람은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은 그와 같은 마귀를 멸망시키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거짓 종교 신봉자들을 구출하시려는 데 있었다.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또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려 함이니라』(히 2:14,15).

신앙(faith)은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히 11:1)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신앙을 지닌 사람은 믿을 대상이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신앙은 거듭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거듭나야만 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를 전가받고 태어난 인간은 모두 영이 죽어서 태어났기에 영을 살려 받아야만 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하시더라』(요 3:8).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영이 거듭나지 않으면, 죄인은 혼이 마귀에게 속해 있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요 3:3,5).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신봉하는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모아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만,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에게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다른 사역들(선교, 아이들 교육 등)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역군들을 길러내야 한다.

많은 교인들이 종교와 신앙을 구별하지 못한 채 종교가 신앙인 줄로 오해하고 생활하는 것을 볼 때 매우 실망스럽고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종교심은 그 사람의 기분을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게 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그 사람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왜 그런가? 종교심에는 거듭남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람을 회개시킬 수 없다. 그를 주관하는 것이 마귀의 일시적인 세력은 될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주관하는 인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죄인이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죄인 됨을 자백하는 대상인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는데, 죄인이 그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다가서지 못한 채 자신의 기분으로 다가서서 눈물, 콧물 흘리며 울고불고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경청해 주시고, 승인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이 어떤 집회에 가서 감정에 복받쳐 울고불고했던 것을 회개라고 여기며 거듭난 것으로 간주하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종교심이라 해도 종교심 자체는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없다. 반면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지하고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성경대로 알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했다면 울고불고 눈물, 콧물 흘리지 않았어도 그 순간에 거듭남(regeneration)이 이루어진 것이며 무려 38가지나 달라진 것을 차차 알게 된다. 그 사람에게서 나타난 처음 현상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적 배고픔이다. 아무나 바른 성경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거듭난 사람의 생활에는 변혁이 있지만, 종교심에는 변혁이 없다. 카톨릭, 공산주의, 주체사상, 불교, 힌두교, 유대교, 몰몬교,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들, 통일교, 구원받지 않은 개신교까지도 인생에 변혁이 없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그들의 종교들을 부인하고 버릴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성도들은 신앙을 목숨과 바꿀 수 있고 실제로 수많은 순교자들을 내었다.

종교심으로는 그 사람의 나쁜 습관들을 버릴 수 없다. 로마카톨릭 사제들은 담배를 피우고, 거의 습관적으로 술을 마신다. 카톨릭의 종교심으로는 그런 나쁜 습관조차도 단절할 수 없기에 차라리 수용해 버린 것이다. 개신 교회들은 담배와 술보다 더 나쁜 습관들을 공공연히 행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한다. 즉 그들은 교회통합운동(Ecumenical Movement)을 공공연히 실행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교단 교리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 교단 교리를 지킨다고 해서 또 안 지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니 없니 하며 서로 적대시했을 뿐이다. 존 칼빈과 알미니우스도 서로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는데 적대시했을 뿐이다. 그들의 후예들은 지금 교회통합운동에 동참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손에 손잡고 폼 잡고 앉아서 정치에 개입하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를 쓰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그들의 종교 집단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데 주력할 뿐 막상 하나님의 교회가 해야 할 거듭남의 재생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적 열매, 즉 구령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이지 종교적 깜부기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고 실행할 의지가 없다.

영계의 법칙은 성령 하나님께서 거듭난 사람의 영에 역사하시고, 그 영은 혼에게, 그 혼은 몸의 행동을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명령 계통을 이루지만 종교에는 그런 체계가 없기에 무서워서 따르는 체하거나(공산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억지로 따르는 체하거나(카톨릭, 이슬람), 무지해서 따르는 체한다(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 신도교). 개신교는 몸과 영혼이라는 이분법을 신봉하기에 성경적 교리가 그들 안에 뿌리내릴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은 혼이 달관하는 것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영이 거듭나는 것을 가르치거나 실행할 수가 없기에 세례로 물을 뿌리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암송하면 교회 명부에 이름을 올려 구원받은 성도로 간주하고 있다. 오! 그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틀림없이 지옥으로 간다. 성경은 인류가 존재하면서 내놓은 책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는 책인데(히 4:12, 요 6:63) 그들은 그 책을 죽은 책으로 만들어 죽을 사람들에게 거짓되고 무용한 것들을 교단 교리로 가르친 극악한 죄를 지은 자들이 되었다. 성경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성경을 말하고, 가르치고, 설교했다면 이 세상에서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가증한 죄를 지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성경적 믿음을 전하는 신약 사도들이 아니라 기독교란 종교를 전하는 종교쟁이들이다. 카인의 종교와 아벨의 신앙도 구분할 줄 모르는 종교쟁이들이다. 그 결과 그들에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아니라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셨던 것이다(벧전 2:7,8).
성경적 믿음이 없이 종교를 따라가면 지옥문에 다다르게 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임을 잊지 말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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