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송오 목사 분류
대각성과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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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0월호>
모든 영적인 일들은 성령님께서 주도하신다. 그렇다면 그 일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주관되고 인도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일이 성경대로 행해지고 이루어진다면 그 일은 성령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거나, 성경적 교리가 아닌 것을 하나님의 일로 둔갑시키는 것은 성령이 아니라 마귀의 사주를 받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악령의 능력을 성령의 능력으로 오해한 자들이 나와서 자기들만이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고, 사도행전의 이적들을 흉내 내며 방언하고, 병 고치고 귀신 쫓는다고 속여 기독교 신앙을 부패시키고 있다. 이들은 막 싹트려고 하는 어린 믿음들까지도 깡그리 황폐화시켜 버리면서 그들에게서 돈을 갈취하여 교회 건물들을 크게 짓고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이라고 사기 친다. 더욱이 어설픈 교단 교회들이 분별없이 그런 추악한 일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을 흉내 내려고 애썼고, 지금도 그 기운과 풍조가 소위 교단 교회라는 곳들에 팽배해 있다.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성경에 무지하여 사도행전을 교리서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글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이었을 뿐이요, 율법 시대와 교회 시대 사이를 잇는 전환기적인 책이지 결코 신약 교회의 교리서가 아니다. 신약 교회의 교리는 사도 바울에 의해 정립되었다. 『이런 까닭에 나 바울은 너희 이방인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가 되었으니, 과연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진대 이것은 그분이 계시로 내게 신비를 알게 하신 것이며 (내가 전에 간략하게 쓴 것과 같으니 너희가 읽을 때 거기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있는 나의 지식을 이해하게 되리라.) 그것이 성령으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지금 계시된 것처럼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며 그의 약속에 동참자가 된다는 것이니라』(엡 3:1-6).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은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이다. 이 중 히브리서를 제외한 13개의 서신서는 신약 교회의 교리서지만,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 사이를 잇는 전환기적인 책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을 불러서 들어 쓰시지 않는다. 이 점은 2천 년 교회사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일들을 성령의 역사라며 거짓말하는 자들은 모두 마귀의 하수인들인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거듭났다 해도 자신의 몸을 주님께 드리지(롬 12:1,2) 않았다면, 즉 헌신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도 들어 쓰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들을 감당하기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몸, 의지, 소유, 삶의 우선권을 주님께 내드리고, 성령님께서 주관하시게 해야 한다. 이런저런 것들에 실패한 백수가 되어 어떤 교회에 얼쩡거리다가 목사가 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실업자를 쓰시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우리나라도 장로교 합동에서 육신적 싸움으로 쪼개진 교단들 때문에 목사 안수가 싸구려 경매같이 되어 대거 목사라 불리는 자들이 나왔듯이, 미국, 캐나다, 브라질, 필리핀 등의 한인 교회들에서도 무자격자들이 목사와 선교사 행세를 하며 목회와 선교를 생계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마귀의 하수인들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도 않고 들어 쓰시지도 않는 사람들이 영적인 일들을 하려 하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가? 누군가는 그것을 기관차를 자기 힘으로 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관차를 가게 하려면 기관사가 레버를 전진으로 놓으면 되는데, 내려서 민다고 생각해 보라.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없는 자들, 하나님께서 종으로 부르시지 않은 자들이 먹고살려고 그런 짓을 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 안에는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그가 주님께 헌신하고 성령님께 뜻을 구하고 순종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능력을 주신다.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말하자면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행 1:8).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전파자들이나 설교자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 방언 같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방언하는 자들이여! 그런 방언으로 복음을 전해 보라. 그것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이 있겠는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방언이나 하는 자들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성령님께서 성도들 안에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보라.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이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이라』(요 16:13,14). 지난날 성령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들어 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셨을 때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고 복음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왜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와 같은 대각성 운동과 복음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주님께서 쉬고 계시는가, 아니면 고개를 돌리고 계시는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무관심하신가? 결코 그러실 리가 없다. 지금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고, 재물을 신으로 삼은 세상에서의 술, 음행, 마약, 거짓말, 도둑질, 도덕적 타락 등이 그 끝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 지금 이 시대는 마치 중한 병에 걸려서 숨을 헐떡거리는 환자가 그의 눈동자에 초점을 잃은 채 삶의 마지막 몇 초를 남겨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세상이 망해 가고 있는 것이다.
대각성 운동은 1727년에 보헤미아(지금의 체코)에서 시작되었다. 로마카톨릭의 무자비한 박해와 살인 행위는 한때 개신교도들로 하여금 자위책으로 무장을 하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로마카톨릭은 보헤미아의 존 후스(John Huss, 1369-1415)가 존 위클리프의 책들을 모국어로 번역하여 배포했다고 하여 그를 이단으로 분류했었는데, 후스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설교하고 책을 썼다. 그는 성당이 아닌 곳에서도 언제든지 설교했으며, 교황의 무오성을 부인했고, 참 교회는 베드로가 아니라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다고 설교했다(고전 10:4, 벧전 2:8, 신 32:4). 한때 보헤미아의 전 국민이 이와 같은 후스를 따랐으며, 로마카톨릭은 결국 그를 1415년에 화형에 처했다.
복음과 진리의 씨앗은 생명을 낳기에 발아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헤미아에서 존 후스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카톨릭의 탄압을 피해 1722년 독일 드레스덴의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이주했는데, 그 수가 백여 명에 이르렀다. 그들이 바로 “모라비안”(Moravian)이라고 불리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생명의 씨앗은 결코 죽은 채로 있지 않는다.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에서 비집고 나온 새싹들을 보라. 소금 사막에 자라난 꽃나무를 보라. 복음의 불길을 안은 가슴이 뜨거워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복음 전파이다. 이 일은 결코 죽은 보수주의자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 거짓 복음주의자들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바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읽고, 믿고, 공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만 드러나는 열매이다.
좋은 설교를 통해 영적 양식을 먹고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알게 된 성도들은 그 말씀으로 힘을 얻어 성경과 복음 전도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담에게서 전가된 죄 때문이기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교회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려는 얄팍한 야바위 짓과 판이하게 다른 영적 충동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곧 그가 나타나실 때와 그의 왕국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로 돌리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딤후 4:1-5).
설교자의 임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삶을 진리를 위해 쓰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많은 교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하고,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자기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데, 이 점이 바로 교회를 죽이는 요인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종교적 의식이 아닌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5).
순교자들이 가장 많았던 영국, 보헤미아, 스위스 등을 포함하여 현재 유럽 전역은 기독교 신앙이 장사된 지 오래되었다. 성적 타락을 넘어 동성연애자들의 천국이 되었으며, 일부는 이슬람 세력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런 데서 어떻게 대각성이나 부흥의 불쏘시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반면에 진젠도르프 백작 영지의 모라비안들은 그 수가 300명으로 늘었고, 복음 전파에서 소외된 나라들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운동을 벌여서 영국, 독일, 미국을 넘어 그린란드, 라플란드, 러시아, 그루지아, 남미의 수리남, 남아프리카, 알제리와 세인트 토마스 섬까지 선교사를 보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그들 안에 깊숙이 개입하셨다는 증거이다. 그뿐 아니라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윌리엄 캐리, 뉴저지에 화란 개혁교회를 세운 목사 프릴링하이젠(Frelinghuysen), 펜실베이니아의 장로교 목사 길버트 테넌트, 영국의 복음 전파자 클래팜(Clapham), 스웨덴의 복음 전파자 샤르타우(Schartau) 교수, 찰스 피니, 셰이커스(Shakers), 플리머스 형제단의 존 넬슨 다비, D.L. 무디, 윌리엄 브라이언트(William Bryant) 등은 대서양을 넘나들며 미국과 영국을 복음으로 휘저어 놓았고, 수백만 명이 구원을 받았다. 웨슬리는 40만km 이상을 말을 타고 다니며 설교했고, 웨슬리와 휫필드의 사역은 감옥에 갇힌 것을 제외하고는 사도 바울의 사역에 필적할 정도였다. 그들이 설교하는 곳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웨슬리는 50년간 일주일에 20번 이상 설교했으며, 18,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20,000번의 설교를 했다. 휫필드는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설교했으며, 더블린에서는 카톨릭교도들의 돌에 맞아 몸에서 피가 흐르고 거의 실신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킹제임스성경>으로 설교했으며, 두 사람 모두 거리설교자요 순회설교자였다.
웨슬리를 뒤이어 샘 존스, 찰스 피니, 피터 카트라이트, 채프만, 밥 존스 시니어 등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위대한 설교자들이 나왔다. 웨슬리의 청중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구원받은 죄인들이었던 반면, 현대의 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지 않는 교인들에 불과하다. 오늘날 이 나라의 강단에 선 설교자들은 자신도 믿지 않는 성경을 가지고서, 역시나 성경을 믿지 않는 회중에게 설교 아닌 설교를 하기에, 거기서 부흥은커녕 숨소리 같은 반응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설교자 머레이 맥체인(Murray McCheyne)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거듭나지 않은 설교자가 죽어 있는 죄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다. 죽은 시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또 구원을 받아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수 있는데, 믿음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앉아 복 받기만을 바라고 있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부흥이 없는 더 큰 원인은 교회가 세상 풍조를 따르는 데 있다.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음 없는 쭉정이들이 모여 세상 방식으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한 데 있는 것이다. 현대의 교인들은 TV 드라마, 코미디, 폭력, 음란, 범죄 영화, 인터넷을 통한 불륜, 동성연애, 혼전 성교 등이 그들 안에 보편화되어 성경이 필요 없는 교인들로 변모되어 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받는 대우가 일류 기업 근로자들의 수입을 능가하기 때문에, 그러한 탐욕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진리에 대한 욕구를 무력화시켰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조차 기도의 제단이 사라졌고, 어린아이들은 성경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세상 학교 등에서 세상 풍조에 길들여져 진리와 무관한 이야기들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재력이 있고, 군대가 강하고, 땅이 넓고, 과학자가 많으면 이 세상이 건재하게 되는가? 그러한 노력으로는 세상이 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고전 7:31). 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하고, 또 그분을 믿어야 하는가? 종교적 갈등과 대결, 전쟁, 자연재해, 기근, 치명적 질병, 범죄, 죽음 등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믿지 않는 악인과 민족들은 지옥에 던져지게 됨을 알아야 한다(시 9:17).
바른 성경을 외면하고 복음과 진리의 지식을 무시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런 교회들은 아무리 많다 해도 하나님과 무관하다. 자신의 구원은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이 점을 이루지 못했다면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다. 『땅 끝들에 있는 모든 자들아,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22). 이것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구원을 위해 피흘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면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주인공이시자 달력의 주인공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