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다시 읽는 이송오 목사 분류

하나님의 경이로운 일들을 숙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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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6월호>

욥기 37장은 엘리후가 욥에게 충고하고 조언하는 부분이다. 1절부터 14절까지를 읽으면서 “자연 현상”이 나올 때면 손가락으로 짚어 보기를 바란다. 『이것으로 내 심장도 떨리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도다. 그분의 굉장한 음성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해서 들으라. 그분은 온 하늘 아래에 그 음성을 내보내시며 그분의 번개를 땅 끝까지 보내시는도다. 그후에 음성이 울려 퍼져 나가니, 그분이 자신의 탁월하심을 드러내는 음성으로 천둥을 치시는 것이라. 그분의 음성이 들리면 그것들을 멈추게 하지 않으시리라. [이 부분은 사실 환란 성도의 휴거를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음성으로 놀랍게 천둥 소리를 내시며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큰 일들을 행하시는도다. 그분이 눈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땅에 있으라.’ 하시며 작은 비와 그의 힘을 보여 주는 큰 비에게도 이같이 하시느니라. 그분이 각 사람의 손을 봉인하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그의 역사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때는 짐승들이 굴에 들어가서 그들의 처소에 머물리라. 남쪽에서는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고 북쪽에서는 찬 바람이 불어오리라. 하나님의 입김으로 인하여 서리가 내리고 물의 너비가 줄어드는도다. 그분은 또한 물을 대심으로 두꺼운 구름에 짐을 지우시며 그의 빛나는 구름을 흩으시는도다. 구름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돌아다니니 이는 그것들로 그분이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나 땅에 있는 세상의 표면에서 이루게 하려 함이라. 그분이 구름을 오게 하시는 것은 바로잡음이나 그의 땅이나 자비를 위해서니라. 오 욥이여, 이것에 경청하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경이로운 일들을 숙고하라.』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신뢰하는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성경을 과학으로 설명해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성경은 과학의 모든 부분을 설명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 짧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지 못하고, 성경에서 자기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보면 의문을 품곤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대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보는 책이요, 믿음이 없이는 볼 수가 없는 책이다.
우리나라에도 창조과학회가 있고, 미국에도 헨리 모리스 박사가 이끄는 창조과학회가 있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미국의 창조과학회는 “성경”이 그 바탕에 있다. 모름지기 “창조과학”이라 하면 세상 학문, 즉 일반 과학보다도 성경적인 사실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해 보이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의 창조과학회는 중심에 성경이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성경 없이 어떻게 창조과학이 일반 과학보다 우월하다는 걸 보일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나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창조과학회의 김영길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모리스 박사는 내게 “이제는 한국에도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나왔으니까, 한국 창조과학회에서 이 성경을 쓰기를 바란다.”라고 편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창조과학회에 소속된 사람들은 여전히 성경 그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고, “과학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일해 놓으신 것,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어 놓으신 현상을 가지고 분석하고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과학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만 믿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비 오는 날에는 해가 없어진다고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구름만 바라보고 구름의 이동 상태를 가지고 날씨를 논할지 모르겠으나, 비가 오는 것은 비구름 위에서 여전히 열기를 내뿜고 있는 태양에 의한 것이고, 그보다 더 위에는 하나님께서 계신다. 그러나 지상에서 구름과 비와 폭풍을 맞닥뜨리는 인간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타락한 아담의 성품 때문이다. 그 성품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늘 대적하는 위치에 서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읽은 욥기는 38장, 39장, 40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을 통제하신다는 점에 대해 소상하게 제시한다.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그분을 인정하려면 “성경”을 읽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이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단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다. 어디서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기근이 들고, 벼락이 치고, 토네이도가 수많은 사람을 덮치는지가 우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비는 당연히 오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정해진 대로 오고가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자연 현상의 변화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심판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는 우연이란 게 없다. 만일 우연이란 게 있다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욥기 본문에서 보았듯이 자연 현상과 변화는 우연히 발생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섬세하신 손길로 행하시는 일인 것이다. 가령 구름이 어떤 나라를 덮을 때, 그 나라 안에서도 구름에 덮인 곳이 있고, 덮이지 않은 곳도 있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여름철 호치민시(사이공)에는 소나기가 한바탕씩 내리는데, 일방통행로를 잘만 돌아다니면 비를 하나도 안 맞고 다닐 수도 있다. 그 조그만 도시에 살면서도 비를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보라, 하나님은 위대하시니 우리가 그분을 알 수도 없고 그의 연수를 헤아릴 수도 없느니라. 그가 물방울을 작게 만드시나니 그 물방울들이 그 수증기대로 비로 쏟아지느니라. 구름은 수증기를 물방울로 만들어 사람 위에 많이 떨어뜨리는도다. 누가 구름이 펼쳐진 것이나 그의 장막의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으랴?』(욥 36:26-29)

자연 현상의 변화

자연 현상의 변화는 주님의 심판과 재앙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예레미야 29:17에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쓰신다고 말씀한다. 기근을 비롯한 자연재해는 우상을 섬기는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다. 일본, 중국, 인도 등 우상 숭배에 바쳐진 나라들과 파키스탄, 이란, 모로코 같은 이슬람 국가들, 그리고 이탈리아, 칠레, 멕시코 등의 로마카톨릭 국가들이 이런 경고의 대상이 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말씀대로 집행될 것임을 보여 주시기 위함인데, 인간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선을 넘을 때면 지진, 홍수, 가뭄, 해충, 산불 등의 재앙이 닥치게 되어 있다.

지진으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한번 보자. 우선 일본의 경우 1857년에 지진으로 15만 명이 죽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때는 14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1995년 고베 지진 같은 경우는 5,300명이 죽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15만 명이면 군수나 시장을 뽑는 지방선거의 유권자 수 정도가 된다. 그 정도의 사람들이 한 번에 죽은 것이다. 이슬람권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많이 거절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지진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자연 현상의 변화는 주님의 심판과 재앙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예레미야 29:17은 하나님께서는 심판의도구로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쓰신다고 말씀한다. 기근을 비롯한 자연재해는 우상을 섬기는 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경고이다. 즉 일본, 중국, 인도 등 우상 숭배에 바쳐진 나라들과 파키스탄, 이란, 모로코 같은 이슬람 국가들, 또로마카톨릭 국가들이 그 경고의 대상이다.)

중국은 1905년에 선교사와 그 가족들 135명을 죽였다. 15년 뒤인 1920년 10월, 간쑤성에서는 무려 18만 명이 지진으로 죽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1935년에 3만 명이 사망했다. 1960년 2월 모로코에서는 1만 2천 명이 사망했다. 1990년 이란에서는 3만 5천 명이 사망했다. 로마카톨릭 국가 칠레에서는 1939년 2만 5천 명이 사망했다. 멕시코에서는 5천 명, 이탈리아 메시나에서는 1908년 7월에 8만 2천 명이 사망했다.

“홍수”라는 재앙도 있다. 1703년에 일본은 홍수로 20만 명이 사망했다. 1887년에 중국에서는 황하가 범람하여 무려 150만 명, 양쯔강이 범람하여 10만 명이 죽었다. 선교사를 죽인 직후의 일이었다. 1915년에 광둥성에서는 10만 명이 사망했다. 1931년에는 황하가 범람해서 전 지역을 휩쓸어 버렸다. 수백만 명이 죽어 통계도 내지 못했다. 같은 해에 양쯔강의 범람으로 또 20만 명이 죽고, 1941년에 또 20만 명이 죽었다.
인도인들은 소를 경배하고 동물을 숭배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힌두교의 환생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 미신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인도에서는 1903년에 60만 명, 1904년에 100만 명, 1905년에 50만 명, 1906년에 35만 명이 사망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이겠는가?

예레미야 17:9은 이렇게 말씀한다.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인간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을 신뢰하는 것은 헛되다. 같은 책 17장 5절에는 인간을 신뢰한 결과가 무엇인지가 제시되어 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나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이 저주는 어떤 저주인가? 이어지는 6절에서 말씀한다. 『그는 사막에 히스 나무같이 되어 좋은 일이 오는 때를 보지 못하고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살지 않는 바싹 마른 곳들에 거하리라.』 비가 오지 않는 사막에서 바싹 말라가는 나무처럼 물을 얻지 못해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7,8절에서는 『주를 신뢰하고 주께서 그의 소망인 사람은 복이 있도다. 그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강가에 그 뿌리를 뻗침과 같아서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못하고 그 잎이 푸르러 가뭄의 해에도 염려하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라고 말씀한다. 인간적인 도구인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도 이와 같다.

과학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재창조 이래로 세상이 6천 년이 되었다고 말씀하지만, 과학은 수십억 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껏 근거라고 대는 것이 고작해야 화석이나 뼛조각 몇 개인데, 그것으로 수십억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에 비해 성경은 그 6천 년이라는 세월을 아주 찬찬히 설명해 준다. 아담이 창조된 때로부터 연대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계보를 이름과 지명까지 다 거명하면서 말이다. 어느 쪽이 참이겠는가?

장차 있을 대환란 때도 역시 자연재해로 인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사야서 29:1-6을 보라. 『다윗이 거했던 성읍 아리엘, 아리엘에게 화로다. [아리엘은 예루살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너희는 해에 해를 거듭하여 그들로 희생제물들을 잡게 하라. 내가 이제 아리엘을 괴롭히리라. 거기에 애곡과 슬픔이 있으리니 그것이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내가 너를 대적하여 사면으로 진을 치며 산으로 너를 포위할 것이요, 내가 너를 대적하여 보루들을 쌓으리라. 그러면 네가 끌어내려져 땅에서 말할 것이며 네 말소리가 티끌 중에서 낮아질 것이요, 네 목소리가 부리는 영을 지닌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는 티끌 중에서 속삭일 것이라. 그뿐 아니라 네 대적의 무리는 작은 티끌 같을 것이요, 포악한 자들의 무리는 소멸하는 쭉정이 같으리니 정녕,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이루어지리라. 너는 만군의 주로부터 천둥과 지진과 큰 소리와 폭풍과 쏟아지는 폭풍우와 삼키는 화염으로 감찰받게 되리라.』 우리가 예언을 가르치고 배우는 목적은 마지막 때를 분별하기 위함이다.

처음에 보았던 욥기 37장으로 가서 12절에서 16절까지 보도록 하자. 『구름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돌아다니니 이는 그것들로 그분이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나 땅에 있는 세상의 표면에서 이루게 하려 함이라. 그분이 구름을 오게 하시는 것은 바로잡음이나 그의 땅이나 자비를 위해서니라. 오 욥이여, 이것에 경청하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경이로운 일들을 숙고하라. 하나님께서 언제 구름들을 배치하셨고 그의 구름의 빛을 빛나게 하셨는지 당신은 아느뇨? 당신은 구름의 균형잡힘과 지식이 완전하신 그분의 경이로운 일들을 아느뇨?』 “당신은 자연 현상을 관장하시는 분의 경이로운 일들을 아는가?” 참된 그리스도인은 선한 양심을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긴말이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모든 자연 현상을 통제하심을 믿는 사람이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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