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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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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3월호>
표준 새번역의 문제점 가운데 잠언 11:30은 그저 한 구절만을 예로 들었을 뿐이다. 창세기 2:1의 “하늘들”부터 시작해서 계시록 끝까지 그 숱한 오류들을 우리는 하나씩 밝혀 원문비평학적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구령하는 자는 현명하니라』를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라고 번역했다면 그 외의 난해한 부분들은 구태여 찾아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 영국의 그 “간음하는 성경”이 보급을 포기했듯이 이 “폭력 성경”도 그 배포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한 때 영국에서 한 가지 성경을 출판해 냈는데 한 단어가 틀려서 판매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 단어는 다름아닌 십계명 중 일곱번째 계명인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에서 ‘말라’(not)를 빠뜨렸던 것이다. 이 성경은 출판과 동시에 『간음하는 성경』으로 별명이 붙여져서 시판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표준 새번역』의 잠언 11:30은 『의인이 받는 열매는 생명의 나무요,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우리 새성경의 번역은 원문대로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며 구령하는 자는 현명하니라』이다. 이 구절을 개역성경에서는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해서 원문이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일손을 얻거나 집에 새식구를 맞는 사람은 지혜로운 것같이 해석했을 것이다. 개역성경의 틀린 번역은 다른 성경을 선택할 수 없었던 불행한(?) 성도들에게는 늘 가시가 되어 왔다. 왜냐하면 개역성경이 구령의 의미를 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한술 더떠서 성서공회는 표준 새번역을 통해 완전히 그들의 무지를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구령하는 자는 현명하니라』를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라고 번역함으로써 몇 가지 중대한 사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첫째, 성서공회는 그들이 마치 변개되지 않은 원문을 사용한 것처럼 구약은 맛소라 원문(슈투트가르텐시안)에서 신약은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y) 희랍어 신약성경 제 3판을 사용했다고 했다. 구약의 맛소라 원문은 그랬다 치고(후에 언급하겠음) 신약의 희랍어 신약 3판은 네슬-알란드(Nestle-Aland) 제26판을 말한다.
네슬-알란드 26판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이미 ‘표준신약’이란 명칭으로 NASV(New American Standard Version)에서 번역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서공회가 표준 새번역을 번역해 낸 것이다. 미국에서 성경대로 믿는 교회들이 이 성경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사탄의 걸작품”이라고 부른다. 이 26판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Kurt Aland 저 <신약사본>, pp.218-307 참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 292페이지에 소개된 “26판의 삭제된 구절들”이다(마17:21, 18:11, 23:14; 막7:16, 9:44,46, 11:26, 15:28; 눅17:36, 23:17; 요5:3b-4; 행8:37, 15:34, 24:6b-8a, 28:29; 롬16:24 등). 삭제된 구절이 있는 성경이 삭제 안된 성경보다 우세하단 말인가? 무엇과 비교해 보니 삭제되었던가? 새성경이 번역된 표준원문(Textus Receptus, KJV)과 비교해 보니 삭제된 것이다. 하늘 아래 이 성경 외에는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Kurt Aland, 그는 평생을 원문비평학에 몸바쳐온 학자다. 여러 면에서 기여한 공로가 크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학자가 삭제된 성경구절이 있는 성경을 연구했다면 인생의 낭비가 아닌가? 무엇을 위한 연구인가? 연구를 위한 연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기 위한 연구인가?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노력인가? 가짜 성경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치다니, 한 마디로 “천재 속에 우둔함이 있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먼저 성서공회는 원문선정에 실패했다.
둘째, 성서공회는 이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국내의 유수한 학자들로 구성해서 10년 간의 각고 끝에 이룩해 낸 걸작처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이 거명한 학자로는 서병주, 오병세, 이상근, 이성화, 정진경 목사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학자들이 10년에 걸쳐 이룩해 낸 번역이 『구령하는 자는 현명하니라』는 말씀을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인가? 이것은 이 나라 성경 독자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며, 세계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 때 그 수치스러움을 어찌하려는가? 어찌 여기에 참여한 고명하신 인물들뿐이겠는가? 성서공회 내의 민영진 박사를 위시하여 혁혁한 성서학자들은 뭘 하고 있었는가? 히브리 맛소라 원문과 70인역에 그렇게 되어 있던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무관한, 할례받지 않은 손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 손을 대면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는 일꾼들이 스스로 일꾼들임을 자처할 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고 이보다 더 엄청난 일들이 이제 하나씩 공개될 것이다. 『현명한 자는 영광을 상속받아도 미련한 자가 높임을 받으면 수치가 되느니라』(잠3:35)고 했으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여러 사람들과 같지 않고...』(고후2:17)라고 이런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구령이란 말을 쓰지 않음으로써 신학교리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교회가, 목회자가 구령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는 구령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목사들을 여러 명 만난 적이 있다. 이 세상 제도는 사탄이 관장하고 있으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마귀의 수하에 있는 것이다. 이들이 종교생활을 하든지,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있든지, 교회의 회원이 된 지 몇 년이 되든지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오는 것이 구령이다. 영적 싸움을 통해서 그 사람의 혼을 이겨 오는 것이다.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28:19,20의 지상명령을 주셔서 이행하게 하셨다. 교회는 선교사들을 왜 파송하는가? 택정함을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을 구별하러 다니는가? 아니면 물 뿌리러 다니는가? 구령하지 않는 교회도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구령은 성경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인가?(롬8:9). 성경에서 구령을 가리는 것은 사탄의 계략이며 이 사탄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쓰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이시며 지혜의 원천이시며 생명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쉬워서 그 분의 자녀가 아닌 사람을 그 분의 사역에 쓰시겠는가? 신약 교회사상 어느 경우에 그렇게 하신 적이 있으셨는가?
세째, 성서공회의 무책임이다. 성서공회는 왜 표준 새번역을 내놓아야 하는가?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이 성서를 내놓았다. 어떤 신문기자가 이 성서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성서도 “신생, 성장, 사멸” 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막13:31) 그 기자는 예수님과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예수님은 삭제하거나 덧붙이면 안된다고 하시는데 성서공회는 삭제하고 덧붙이고 있다. 왜 성서공회는 개역성경, 공동번역, 새번역 등 삭제되고 변개된 성경만을 출판하여 이 나라 성도들을 오염시키고 있는가? 어찌 그런 짓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참으로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성서공회의 일이 하나님의 일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잠언 11:30은 그저 한 구절만을 예로 들었을 뿐이다. 창세기 2:1의 “하늘들”부터 시작해서 계시록 끝까지 그 숱한 오류들을 우리는 하나씩 밝혀 원문비평학적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구령하는 자는 현명하니라』를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라고 했다면 그 외의 난해한 부분들은 구태여 찾아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 영국의 그 “간음하는 성경”이 보급을 포기했듯이 이 “폭력 성경”도 그 배포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