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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침례라고만 말해 주면 좋아하는 군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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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7월호>
2004년 6월 4일자 <침례신문> 제12면에 ˝침례표기-개역개정판을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개역개정판> 성경 광고가 실렸다. 내용은 단순히 <개역개정판>을 선전하는 광고지만 ˝침례˝신문이기 때문에 ˝침례표기-개역개정판˝만을 선전하고 있었다.여기서 잠깐 설명을 하자면, <개역개정판>은 대한성서공회가 우리 나라 교회들에서 현재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개역한글판> 성경을 대체하기 위해 1998년에 내놓은 작품이다. 번역자들 자신의 말에 따르면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판>의 신약에서 12,823군데, 구약에서 59,889군데를 개정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침례표기-개역개정판˝이란 ˝침례교용-개역한글판˝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만든 성경에서 ˝세례˝라는 단어만 ˝침례˝로 고쳐서 침례교가 쓰도록 만든 것이다.
(1) 불변하는 반(反)그리스도적 교리
<개역개정판>에 담긴 교리와 신학은 이전에 쓰이던 <개역한글판>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신문광고에서 그들 자신도 이렇게 공언한다.
˝번역의 질이나 신학적 내용에 대한 검증은 지난 5년 동안 이미 끝났다. 침례표기-개역개정판과 개역을 비교해 볼 때 신학적으로 이 두 번역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이 지난 5년 동안에 검증된 셈이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반(反)그리스도적인 <개역한글판>의 실상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개역개정판>의 정체를 단번에 알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개역개정판> 역시 <개역한글판>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 완전히 반(反)그리스도적이다. 그것은 현대 성경 번역자들이 종종 말하는 것처럼 ˝원어˝와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부패한 마음과 관련된 문제이며,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영과 관련된 문제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1.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성경은 개정한 후에도 여전히, 사탄을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사 14:12, <개역개정판>).
계명성 곧 ˝새벽별˝은 요한계시록 22:16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이다. 과연 ˝원어˝에 그렇게 되어 있어서 그런 일을 했을까? 아니다. 원어에는 (헬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빛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바로 빛의 천사로 가장하는(고후 11:14) ˝루시퍼˝인 것이다.
욥기 38:7에서 하나님의 아들들, 곧 천사들을 다룰 때는 복수형으로 ˝새벽별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전혀 (헬렐)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 않다. (코크베 보케르)라고 두 개의 단어를 쓰고 있다. (헬렐)은 계명성이 아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독생자, 새벽별)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 새벽별들)도 아니다. 그는 그룹이었고(겔 28:14) 새벽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대한성서공회 성경들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이 사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을 붙여주었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반(反)그리스도적이다.
2.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성경은 개정한 후에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과는 달리 나중에 태어난 ˝또 하나의 신˝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들이 요한복음 1:1,14에서 말하는 ˝말씀˝이신 ˝하나님˝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개역개정판>의 요한복음 1:1에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했으니 <개역개정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속은 것이다. 그들이 말한 이 ˝하나님˝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 열일곱 구절 뒤에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개역개정판>).
원래부터 계셨던 아버지 하나님과는 달리 ˝독생하신 하나님˝ 곧 태어난 신이 하나 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어난 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정확히 여호와의 증인 교리와 일치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 태어나신 적이 없으시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독생자)이시지만,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시작도 태어남도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미 5:2). <개역개정판>이 말하는 ˝독생하신 하나님˝ 곧 태어난 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예수˝다(고후 11:4). 대한성서공회가 (호 모노게네스 휘오스), 곧 ˝독생자˝라고 되어 있는 ˝표준원문(TR)˝을 치워 버리고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거짓 교리를 지어낸 필사본을 채택한 것은, ˝다른 예수˝를 전하고 싶어하는 영이 그들에게 긴밀하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반(反)그리스도적이다.
3.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성경은 개정한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동일한 경배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길 거부하고 있다. 마태복음 8:2; 14:33, 요한복음 9:38 등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이심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고서 경배드리는 장면인데도 <개역개정판>은 ˝경배하다˝라는 단어를 ˝절하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마 8:2, <개역개정판>),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33, <개역개정판>),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요 9:38, <개역개정판>).
과연 ˝원어˝에 그렇게 되어 있어서 그런 일을 한 것일까? 아니다. 여기서 ˝절하다˝라고 번역해 놓은 그 원어 단어는 προσκυνω (프로스퀴네오)인데, 동일한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하나님께 쓰일 때는 그 단어를 ˝경배하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 11:16, <개역개정판>),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 22:9, <개역개정판>).
원어는 완전히 동일한 단어지만 하나님께는 ˝경배하다˝로, 예수 그리스도께는 ˝절하다˝로 번역해 놓은 이 짓은 바로 그들의 믿음이 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전혀 같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나타나신 참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난 신˝이라고 말했던 것이 실수가 아니라 완전한 고의였음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반(反)그리스도적이다.
<개역개정판>을 선전하는 자들의 말대로 개정하기 전에 쓰던 것과 개정한 것과는 ˝신학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이 검증˝되었다. 둘 다 신학적으로 반(反)그리스도적이다. 그러나 침례교회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교회들이 <개역개정판>을 좋아하고 있다.
(2) 침례표기만 해주면 고맙습니다!
실제로 장로교 통합측,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장로회, 기독교성결교회, 기독교침례회, 복음교회 등이 이미 <개역개정판> 사용을 결의했다. 침례신문의 광고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말이 있다.
˝실제로 침례표기-개역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는 교회들은 즐거워하고 있다. 자신들이 한 선택에 대하여 후회하는 교회는 드물다. 교회들은 이러한 개정판을 출판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으며...˝
<개역개정판>을 사용하기로 결의한 교회들이여, 당신들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믿고 있는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의 명칭이 동일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부터 계신 분이 아니라 나중에 태어난 신이며,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셨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이 나라의 침례교회들이여, 당신들은 당신들의 구세주를 거짓되이 소개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의 이단 교리를 가르치는 번역본일지라도 ˝세례˝만 ˝침례˝라고 말해 주면 ˝어이구, 고맙습니다!˝ 하는 것인가? 침례교에다가는 ˝침례˝라고 고쳐서 책을 팔아먹고, 다른 교단에다가는 ˝세례˝라고 써놓고서 책을 팔아먹는 그런 장사꾼들의 이단 교리 책을 당신들의 믿음의 기준이요 시금석이라고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성경을 읽어 보면 성경에 나오는 것은 물 뿌리는 세례가 아니라 물에 잠기는 침례가 되어야 함은 너무도 분명하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니』(마 3:16). 이런데도 세례인가?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리는데 물 속에까지 들어가서 무슨 물장난이라도 하셨단 말인가?
『요한도 살림 근처 애논에서 침례를 주고 있었으니 이는 거기에 물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더라』(요 3:23). 물 몇 방울 뿌리는 세례라면 하루에 물동이 한두 개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물이 많은 곳이 무슨 필요인가?
『그리하여 그들이 길을 따라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라고 하니』(행 8:36). 세례라면 ˝물이 있는 곳˝이 무슨 필요인가? 자기가 휴대하는 여행용 물병을 가리키며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라고 하면 되었을 것이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 올라오자 주의 영이 빌립을 데려가시니』(행 8:38,39). 손에 물 한 번 축여서 뿌리기 위해서라면 물가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텐데, 이 두 사람이 주책이 없어서 텀벙텀벙 물 속에까지 들어간 것인가?
이외에도 성경은 이러한 물침례가 상징하는 영적인 사건들을 말할 때, ˝...안으로 침례받는다˝(be baptized into)라는 표현을 곳곳에서 씀으로써 물 ˝안으로˝ 잠기는 ˝침례˝만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것임을 확증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롬 6:3),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롬 6:4),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고전 12:13),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 3:27).
<개역개정판>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이런 분명한 성경적 사실에 대해서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세례˝가 맞는지 ˝침례˝가 맞는지 이런 기본적인 지식도 없다. 성경에 있어서 문외한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위의 구절들에 억지로 ˝세례˝를 집어넣다 보니, 동일한 표현들을 일관성 없게 번역해 놓았다. ˝...안으로 침례받는다˝ 대신 어디서는 ˝...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로 번역하더니, 또 어디서는 ˝합하여˝란 말은 온데간데없고 대신에 ˝세례를 받아 ...이 되었다˝라고 번역했다. 이 나라 침례교회들은 성경에 관한 문외한들이 만든 책이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성경들은 개정 전이나 개정 후나 똑같이, 침례에 대한 교리까지 왜곡되어 있다. ˝세례˝라는 단어를 ˝침례˝로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역개정판>은 저주받을 거짓 복음인 ˝물 세례(혹은 물 침례)에 의한 구원˝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 다음을 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 <개역개정판>).
『구원하는 모형』인 침례를 ˝세례˝라고 써놓고서는 모형이 아니라 구원하는 ˝표˝라고 했다. 무언가 애매한 이 표현의 배후에는 그야말로 무언가가 있다. 난외주에다가는 이 ˝표˝를 다른 말로 ˝실체˝라고 써놓았다. 그러더니 구절 뒷부분에서는, 구원받은 사실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간증하는 의식, 곧 『선한 양심의 응답』인 침례를 바꾸어서 ˝선한 양심의 간구˝라고 써놓았다. 이로써 물세례나 물침례는 구원하는 실체이며,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의식이라는 거짓 교리가 생생하게 들어간 것이다.
사도행전 8:37의 구절은 <개역한글판> 성경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통째로 제거되어 있다. 주의깊게 읽어 보라.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절 없음)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 8:35-39, <개역개정판>).
자, 37절이 없으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가?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내시가 물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가 끝나 버린다. 복음을 전했는데, 믿는 장면은 없고 물세례받는 장면만 나오는 것이다. 37절은 바로 그 내시가 복음을 믿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행 8:37, 우리말로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
37절을 빼버리는 짓의 실체는 바로, 복음을 믿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물세례나 물침례를 받아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세례(혹은 물침례)에 의한 구원˝ 교리를 고수하는 <개역개정판>에서 ˝세례˝라는 단어만 살짝 ˝침례˝로 바꾸어 팔아먹었더니 즐거워하고 고마워하면서 그 성경을 채택하는 얼빠진 군상들이 바로 이 나라의 교단 침례교회들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a).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