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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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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2월호>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유명 (신학)대학의 학위는 분별력 없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마치 사탄의 말을 듣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본 하와와 같이.
이처럼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학문의 영역 가운데 하나가 철학이다. 철학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의 실상을 모르면서 단지 심오한 어떤 진리가 있는 것으로, 또는 객관덕이고 관용이 넘치는 어떤 가르침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이에 관해 공부한 사람들이나 학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생각에 동조할 분만 아니라 한 두 명의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태도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2:8). 성경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철학은 진리를 담고 있는 사상체계가 아니다. 철학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고, 거짓을 혼합하며, 씨를 물어가는 새와 같이 “말씀을 노략질하는 ‘아름다운 모습’(사탄의 모습처럼)의 존경받는 학문”일 뿐이다.
이제 지혜의 시작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임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절대적 진리로 믿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진리의 말씀을 삭제하고 첨가할 수 있었던 사상적 근거를 필로 유대우스(B.C.20-A.D.50)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필로는 훌륭한 교육자요, 철학자이며, 신학자라고 불리고 있느나 그는 성경변개의 근원지인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학교의 사상적 기초를 세웠고, 그 영향 아래서 오리겐이 성경변개의 절정을 장식하게 된다. 비록 필로는 하나님과 모세를 언급하면서 성경을 인용했지만 정작 성경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주의할 사실은 그의 저작을 통해 성경의 진리가 일부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의 핵심적인 글들의 대부분이 성경의 진리를 벗어난 이단적인 사설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현재의 이단들 역시 성경의 진리를 일부 믿고 가르치지만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게 하는 그들의 핵심적인 교리들이 그 일부의 믿음으로 인해 용납될 수 없지 않은가?
필로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큰 회당의 랍비로 추정되지만 예레미야 42:43과 신명기 28:68에 근거하여 볼 때,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배교한 유대인으로서 구약을 믿지 않았으며, 신명기 16:16에서 유대인들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것으로 명명된 세 가지 중요 절기(무교절, 칠칠절, 초막절)를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레위기 17장에 있는 제사들을 행하지 않았다. 이런 필로는 철학사와 대다수의 책에서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유대의” 헬라적인 철학자로 기록되지만 사실상 이름만 가진 배교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유대주의와 헬라 철학이라는 두 체계 안에서 교육받았다. 그의 저작 가운데 중요한 대부분은 구약성경의 어떤 한 주제에 대한 철학적인 논술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헬라철학에 의거하여 성경의 가르침들을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주의가 그리스의 사고체계와 가장 밀접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필로는 그의 저작에서 모세가 플라톤의 옷을 입고 외적인 모양만 갖춘 상태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헬라적 이상이 모세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이처럼 모세와 플라톤을 구분하지 못한 필로는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영원히 존속하는 이데아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에서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찾았다. 일례로 그는 창세기 1장에서 건축가의 계획에 따른 한 형상과 같은 이데아적인(물질적으로 실재하지 않고 단지 관념적인)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이데아의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했고, 그 후에 2장에서는 이것이 물질적인 모습으로 다시 생겨났다고 믿었다. 즉, 그는 성경이 인건의 창조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을 하고 있다고 플라톤의 용어들로 설명했던 것이다. 창세기 1:27의 사람은 일반적인 인간 배후에 있는 사람의 이데아이지만, 창세기 2:7에서 흙으로부터 만들어진 사람은 지상의 물질적인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필로는 헬라철학의 측면에서 유대교를 재진술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필로의 개념은 자신이 여러번 설명한 신플라톤주의의 가르침과 같은 것으로 완전히 이원론적이었으며, 우주론에 관한 플라톤의 대화편인 <티마이오스, Timaeus>로부터 추론된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신에 대한 개념들에 익숙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내재하심, 그리고 신성에 관한 필로의 개념들은 스토아 학파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헬라 사상들은 초기 기독교계를 곤란하게 했던 많은 이단들의 체계 안에 나타난다. 영지주의자들은 플라톤과 필로의 개념들을 강화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물질세계 사이에 데미우르고스(Demurge,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세계를 구성한 자)와 로고스, 그리고 두 개의 분리된 통합체로서 그리스도와 예수님을 위치시켜 놓았다. 이런 이유로 성육신에 대한 이단적 관점들이 교회사의 초기에 계속되었던 것이다. 읻르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이 실제적이지 않고 외적인 모습에만 국한된다는 도세티즘(Docetism)과 예수님이 단지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로고스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또 침례받으실 때에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어답션이즘(Adoptionism),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세 개의 방식이라는 사벨리아니즘(Sabellianism) 등이 있다. 결국 이러한 거짓 가르침들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아들dmf 창조했다는 “아리우스의 논쟁”으로 그 절정에 달한다. 이러한 상화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연관된 성경구절들이 변개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필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플라톤의 사상을 자신들의 신앙과 혼합하도록 배웠고,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주의는 헬라적 요소들에 영햐을 받아 필로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유대주의의 사상을 전향하게 되었다. 이렇게 유대의 플라톤주의는 필로에 의해 형성되었고, 기독교계 안의 플라톤주의는 클레멘트와 오리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필로는 생각하고 저술할 때에 플라톤을 따랐고,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했으며, 호머에 대한 헬레니즘적인 어떤 해석가들과 같이 성경을 철학의 쳬계로 파악했다.
W.F. 하워드는 비록 “70인 역”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견지하지는 못했지만 변개된 헬라어 성경에 플라톤의 용어와 스토아 학파의 말과 그 밖의 그리스 용어들이 성경 용어들을 대신하여 사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필로를 위시하여 그의 계승자인 클레멘트와 오리겐이 플라톤과 헬라철학을 바탕으로 성경을 얼마나 변개시켰는지 증명해 준다.
필로는 철학적으로 절충주의자였으며, 유대주의를 그리스 세계에 소개하는데 있어서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나 스토아주의와 플라톤주의, 신피타고라스주의를 함께 합치는 일을 했으며, 구약성경을 비유적인 방법으로 해것하였고, 모세와 플라톤의 철학을 조화시키려고 했다. 결국 필로가 구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있어서 기준이 된 것은 헬라첳락, 즉 당시의 플라톤주의와 스토아주의, 신피타고라스주의의 종교철학이었다. 그러므로 필로는 스토아학파와 신피타고라스주의자들과 비유의 방법을 사용하는 다른 그리스의 작가들과 같은 해석방법을 취하였던 것이다.
필로는성경에 두 가지 으ㅟ미가 있다고 가르쳤다. 첫째는 본문의 문자적인 진술에서 명백히 나타나는 “낮은” 수준의 의미이며, 둘째는 비법을 전수받은 사람들에게만 지각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의미 또는 감춰진 의미이다. 그는 헬라인들이 그 감춰진 의미를 밝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비유”라는 형태의 설명이라고 판단했으며, 그 비유가 황금광맥과 같이 구약을 관통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필로는 구약을 해석함에 있어서 비유적인 방법을 적용했고, 그로 인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필로에게는 문자적으로 “우유”였던 것이ㅣ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고기”가 되었다. 그는 성경의 각 부분에서 “표현이 이중적일 때, 이미 알려진 사실이 반복될 때, 단어들에 약간의 변화가 있늘 때, 표현이 일상적이지 않을 때, 문법상의 수나 시제가 비정상적일 때”에는 비범한 어떤 뜻이 숨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창세기 22:11의 경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내세에서 살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또한 필로는 구약에 문자적으로 애해할 수 없는 진술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창세기 2:21을 인용할 때, 아듬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든 것은 신화적인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출애굽기 33:1,3의 “약속받은 카나안 땅”이 육신으로 나타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는 과거의 수세기 동안 지식인들이 인도의 경전 <베다, Veda>에 대한 신비적인 해석을 해 왓으며, 이교도 주석가들은 호머의 시와 다른 고대 작품들을 비유로 해석하는 것을 즐겨 사용했던 것에서 볼 수 있는 예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강단에서 행해지는 무분별한 비유적인 해석방법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하지만 그 이상에는 헬레니즘 문화와 이교도들의 영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구약성경은 철학체계 가운데 어떤 것도 가르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필로는 비유적인 방법으로 구약성경에서 철학의 가르침들을 도출해 냈으며, 그 결과 구약을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비유적인 해석을 하면서 성경의 한자한자를 다른 말로 대치시키거나 삭제하고 첨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성경변개의 주역이 된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은 기독교계의 존경받는 인물이 되고자 기독교 교육을 첫번째로 시도했으며, “고등교육”을 위해 처음으로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그곳의 기초는 창세기 3:1이었으며, 그 이상한 학교의 주된 원리는 요한복음 5:44이었다. 그 학교의 교과과정은 골로새서 2:8과 디모데전서 6:20이 신약성경에는 없는 말씀으로 가장함으로써 이교도 헬라 철학과 헛된 속임수와 지식과 과학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플라톤(구원받지 않은 그리스 철학자), 필로(성경을 거부한 배교한 유대인), 판태누스(이교도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초기 성경변개의 절정을 장식한 오리겐 등을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교허ㅣ, 유니테리언교도(Unitarians;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킨 무리들), 그리고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의 근원적인 신념이 유래했다. 이것 뿐만 아니라이들의 원문비평과 성경의 개적은 유세비우스와 제롬, 어거스틴 등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새미국표준역본(NASV)과 새국제역본(NIV), 개역표준역본(RSV), 리빙 바이블(Living Bible) 등의 수많은 영어 성경들과 한글 개역성경을 비롯한 기존의 변개된 성경들이 출간되는데 영향을 기쳤다.
지금까지 ㅣ살펴 본 필로주의가 교회사의 초기에 미친 영향과 성경 해석 방법이 성경에 대한 경외감을 없애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여 성경을 삭제하며 첨가할 수 있었던 것은 클레멘트와 오리겐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배후에는 헬라 철학에 근거한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학교가 있으며, 필로, 판태누스, 클레멘트, 오리겐 등의 손을 통해서 인간 중심적인 학문적 권위의 미명 아래 가장 악한 일들, 즉 성경변개가 수행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개정된 헬라어 사본들과 시리아역 사본들은 북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등에 유포되기에 이르렀으며, 이렇게 변개된 헬라어 사본들과 영어 성경들에 근거를 둔 기존의 한글 성경들 역시 변개의 선상에 있게 된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