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작사자들의 신앙 분류
구원의 감격을 노래한 아이작 왓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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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9월호>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는(A.D. 1500-1900)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시어 부흥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던기간으로서, 요한계시록 2,3장의 2천 년 교회사를 대표하는 교회들 중에서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의 시대였다.이 시기의 성도들 안에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순수한 믿음과 복음을 전파하려는 불붙는 열정은 현 라오디케아 교회시대의 성도들에게 훌륭한 본이 된다. 특히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중에는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에 작사되었던 노래들이많이 있는데, 당시 작사자들의 신앙과 그들이 남긴 찬송들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을 향한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일깨우고 열정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찬송가 작사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살펴볼 사람은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왓츠"(Isaac Watts, 1674-1748)이다. 그는 1674년 7월 17일 영국 사우스햄프턴에서 태어났다. 당시영국은 비국교도들을 박해하는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 청교도였던 아버지 에녹 왓츠는 영국 국교회의 관습에반대하다가 두어 차례 투옥되었고, 특히 아이작 왓츠가 태어났을 때도 갇혀 있었기에 그의 어머니는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감옥으로 가야 했었다. 이처럼 비국교도 집안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아이작 왓츠는 네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라틴어를 배웠고, 아홉 살에는 헬라어를, 열한 살에는 프랑스어를, 열세 살에는 히브리어를 배워서 언어에 아주 능통했으며,일곱 살 때는 첫 번째 시를 쓰는 등 어려서부터 총명한 자질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은국교도만 입학할 수 있어서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 대신 런던 스토크 뉴잉턴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여 1694년까지그곳에서 공부했다.
그 이후 아이작 왓츠는 2년 6개월 동안 찬송가 작사 등 여러 가지 집필 활동에 몰두하다가 1696년에 레스터셔의 존하토프 경의 가정교사가 된다. 1698년에는 그의 생일날 생애 첫 설교를 했고, 그다음 해인 1699년에는 런던 마크레인에 있는 어느 유명한 독립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다. 1702년에는 담임목사가 되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1712년에목사직을 내려놓게 된다. 이때 토마스 경과 애브네 여사가 요양을 목적으로 그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청했는데, 몇 주만 머물예정이었던 아이작 왓츠는 그 이후로 36년 동안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초창기에 작사했던 찬송가들을 제외한거의 모든 작품들을 그곳에서 썼다. 비록 그가 병약함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의 연약함까지도 들어 쓰셔서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셨던 것이다.
아이작 왓츠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키는 150cm에 불과했고, 창백한 잿빛 피부에 작고 쭉 찢어진 눈과, 얼굴 전체를차지할 만큼 커다란 매부리코는 그의 첫인상을 나쁘게 만들었다. 이런 외모로 인해 자기가 사랑했던 여인에게서 거절을당하기까지 했는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을 당하자 그는 남은 생애를 독신으로 지내게 된다. 이렇듯 외모 때문에어려서부터 자기 자신을 더욱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아이작 왓츠는, 외모로 보나 내면으로 보나 비참하기 짝이 없고 벌레보다못한 자신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피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을 때 그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감동적인 찬송시를 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찬송가 <영광을 주께> 201장에 실려 있는 『웬 말인가 날위하여』이다. 나중에 이 찬송은 파니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의 회심에 큰 영향을끼치기도 한다. 특히 그녀는 5절 가사의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마지막 한 소절을 듣는 순간하나님의 부르심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오늘날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교회들은 『나는 부자며,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계 3:17)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주님께 드리는 것에 있어서는 매우 인색하다.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피 값으로 사신 성도의 몸을 원하신다. 당신은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는가?그 찬송 가사를 진심으로 믿지도 않으면서 형식적으로만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식의 찬송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입술의 열매(히 13:15), 곧 "찬양의 영적인 제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아, 어찌하여 나의 구주께서 피를 흘리셔야 했는가?
어찌하여 나의 왕께서 죽으셔야 했는가?
왜 그 거룩한 몸을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바치셨단 말인가?
내 지은 죄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 위에서 고통 당하셨으니,
나를 향하신 주님의 놀라운 긍휼과 은혜,
그 한없는 사랑 알 길이 없도다
전능하신 창조주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피조물인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셨을 때,
태양은 어둠 속에서 빛을 잃고
그분의 찬란한 영광도 사라져 버렸도다
그 고귀한 십자가 내가 대할 때
너무나 부끄러워 내 얼굴 들지도 못하리
그 은혜 너무도 감사하여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네
깊은 슬픔 속에 눈물만 흘려도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 어찌 갚을 수 있으랴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이 몸 주께 드립니다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주께 바칩니다
아이작 왓츠는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찬송시를 작사했지만, 앞선 201장의 『웬 말인가 날 위하여』와 217장의『주 달려 죽으신 십자가』처럼 구원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을 고백하는 형식의 찬송들도 더러 있다. 특히 217장을 부를때면 죄로 얼룩진 우리 자신의 모습 때문에 마음속 깊이 사무치는 후회와 통탄에 잠기곤 하지만, 그렇게 더럽고 추악하여마땅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인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인간의몸을 입게 하시고 그 위에 우리의 모든 죄를 지우시며 또한 대속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그 크고 깊으신사랑을 뼛속 깊이 사무치도록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구원의 간증이 있어야 한다!
아이작 왓츠는 1748년 11월 25일, 그의 나이 일흔네 살에 주님 곁으로 갔다. 그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남겼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실 것인지' 그 뜻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찾아 그 뜻을 실행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만약 주님께서 나를 병상에서일으켜 세우시어 잃어버린 혼들을 구령하는 데 쓰신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남은 생을 참으로 가치 있게 쓰는 일일 것이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데려가신다 해도 그분의 은혜를 통해 나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노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다.주님, 저의 모든 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주님, 언제라도 오셔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아이작 왓츠가 작사한 찬송가는 무려 600곡이 넘는데, 찬송가 <영광을 주께> 안에도 총 11곡의 찬송이 실려있다(42장, 58장, 59장, 169장, 201장, 217장, 363장, 448장, 453장, 460장, 536장).이처럼 한 성도가 지녔던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열정은 찬송가를 통해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남아 있어 우리 모든성도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그 마음과 실행이 찬송가의 가사에 일치하지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이라도 찬송을 부르는 자기 자신이 그 가사를 참된 믿음으로 동의하며 부르고 있는지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주님을 향해 돌이키고 새롭게 하여 주님을 향한 열정을 다시 한번 불태우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