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작사자들의 신앙 분류
하나님의 사랑과 안식을 노래한 찰스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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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11월호>
찰스 웨슬리는 "영국의 부흥"을 주도하고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요한 웨슬리의 동생으로 그의 형 못지않게 복음 전파에 열정적이었던 설교자이자 찬송가 작사자였다. 웨슬리 형제들은 성경에 제시된 "방법"(method)을 따라 살아가고자 애썼는데, 이런 자세로 인해 이들은 "감리교도"(Methodist)의 시조가 되었다. 웨슬리 형제들은 구원을 받았고 바른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으며 그 말씀대로 믿고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는데, 이는 종교적이고 형식적으로 변질되어 버린 오늘날의 감리교도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감리교도들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교인들이, 본 글에 소개된 "찰스 웨슬리"를 통해 자신의 구원의 문제와 구원의 영원한 보장 및 확신 그리고 성경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발견함으로써, 입술로만 부르는 찬양이 아닌 진정한 믿음의 고백으로서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계기를 갖기 바란다.찰스 웨슬리는 1707년 12월 18일, 영국 링컨셔 주 에프워스에서 사무엘 웨슬리와 수산나 웨슬리의 19명의 자녀들 중에 18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이 자녀들 중에서 총 10명의 자녀들, 곧 7명의 딸들과 3명의 아들들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게 되었는데, 살아남은 아들들이 바로 사무엘 웨슬리, 요한 웨슬리, 찰스 웨슬리였다. 1716년 9살의 나이에 웨스트민스터학교에 입학한 찰스 웨슬리는 1721년에 왕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학비를 면제받았다. 1726년에는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 입학하여 4년 뒤인 1730년에 졸업했다. 1735년에는 그의 형 요한 웨슬리와 함께 인디언 선교를 위해 미국 조지아 주로 떠났지만,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고 건강만 악화된 채로 1736년에 귀국했다. 사역의 실패로 낙담에 빠진 웨슬리는 건강을 돌보며 지내다가 1738년 5월에 모라비안 교회의 "피터 뷜러"를 통해 극적으로 회심하게 되었고, 회심한 후에는 6,500여 편의 찬송가를 작사했다. 영문 찬송가학의 권위자인 존 줄리안 박사는, 찰스 웨슬리가 이처럼 많은 찬송가를 작사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의 내용 면에서도 뛰어났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뛰어난 찬송가 작사자 한 명을 지목해 보라고 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찰스 웨슬리를 꼽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숙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건강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찰스 웨슬리는 건강 문제는 물론, 인생을 살면서 겪은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찬송가 작사를 지속해 나갔다. 비록 어려움 속에서 작사된 찬송들이었지만 그의 찬송의 주된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의 찬송들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주님을 향한 그의 굳건한 믿음이 깃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1740년에 작사한 『폭풍 몰아 칠 때와』(<영광을 주께> 416장)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을 아름답게 고백한 찬송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 찬송을 작사했을 당시는 폭풍우가 심하게 치는 어느 날 밤이었는데, 그때 그는 그 폭풍우 소리에 잠을 깼다. 아무리 해도 다시 잠이 들지 않자 그는 가운을 입고 서성이다가 잠시 창문을 열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비바람에 밀려 창가에 서 있는 찰스 웨슬리의 품속으로 떨어졌다. 그는 새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후 곧바로 책상에 앉아, 오늘날까지 많은 성도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이 유명한 찬송을 작사하게 된다.
이 찬송에는 구원자의 도움을 바라는 한 성도의 개인적인 기도가 담겨 있다. 안식과 위로를 갈망하면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헤매는 성도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는데, 결국 그는 평안하게 안식할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포악한 자들의 발악이 성벽을 향한 폭풍 같을 때 주께서 가난한 자에게 힘이 되시고 고난 속에 있는 궁핍한 자에게 힘이 되시며 폭풍으로부터 피난처가 되시고 더위로부터 그늘이 되셨음이니이다』(사 25:4). 웨슬리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 안에 거하라고 권면한다. 당신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았는가?(엡 1:7, 골 1:14) 우리의 "혼"은 피난처가 필요하며, 그 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신다(마 11:28,29). 당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라!(고후 13:5) 자신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지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라!(롬 10:9,10) 그렇게 하면 웨슬리의 품에 안겼던 한 마리의 새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폭풍 몰아 칠 때와
세상의 거친 폭풍 몰아 칠 때와 깊은 바다 물결 거세게 일어날 때
주님 품속으로 날아가 쉬게 하소서
인생의 거친 폭풍 지날 때까지 나의 혼 숨겨 주시고
평안한 저 하늘로 인도하소서
피난처는 오직 주님뿐이니 무기력한 나의 혼 의탁하나이다
나 홀로 내버려 두지 마시고 힘과 위로 채워 주소서
나의 모든 신뢰와 도움 주님께 있사오니
불쌍한 나의 혼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감싸 주소서
전능하신 주 예수께 내 모든 소원 있사오니
넘어진 자 일으키시고 낙심한 자 힘을 주소서
병든 자 치유하시며 눈먼 자 인도하소서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그 이름이 의롭고 거룩하시오니
불의와 거짓과 죄악으로 가득한 이 죄인 구원하소서
풍성한 은혜 주님께 있사오니 내 모든 죄 은혜로 덮으시고
풍성한 치유의 물결로 나의 혼 정결케 하소서
생명수는 주 예수시니 값없이 마시게 하시고
영원토록 내 맘속에 샘물 솟아나게 하소서
찰스 웨슬리는 1749년에 사라 그윈과 결혼하여 슬하에 8명의 자녀들을 두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다가 1788년 3월, 80세의 나이에 주님 곁으로 갔다. 찬송가 <영광을 주께> 안에는 그가 작사한 찬송이 모두 9곡 실려 있다(14장, 25장, 33장, 50장, 55장, 57장, 223장, 248장, 416장).
웨슬리 형제들을 회심시킨 모라비안 형제들은 독일의 경건파에서 나온 독일의 용사들로서 다음과 같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그 어떤 것도 성경의 권위를 대체할 수 없다. 둘째,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죄인들을 구원시켜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이끌어야 한다. 셋째, 인간은 성사나 규례 등의 행위와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을 믿음으로써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넷째, 그리스도께서는 천년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돌아오실 것이며, 주님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이 땅에 천년왕국이 결코 세워지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은 오늘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정확히 일치한다. 모라비안 형제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웨슬리 형제들은 영국에서 영적인 부흥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많은 찬송가들을 작사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킹제임스성경>을 갖고 있었으며, 그 성경만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서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과거의 영광만을 회자하는 감리교도들과 영국과 미국의 부흥을 운운하며 이 땅의 개혁과 부흥을 부르짖는 교계 지도자들이 쉽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교회사를 통관해 볼 때 개혁과 부흥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모라비안 형제들과 웨슬리 형제들이 갖고 있었던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지닌 성경, 곧 <한글킹제임스성경>이 1994년에 출간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도 모라비안 형제들이나 찰스 웨슬리처럼 참된 믿음과 참된 마음으로 찬송을 올바르게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구원의 확신도 없이, 바른 성경에 대한 올바른 믿음도 없이, 416장과 같은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참된 회개 속에서 구원의 확신을 올바르게 갖고 바른 성경에 대한 믿음으로 돌아서야 한다. 이런 성도들만이 찬송을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