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을 찾아서 분류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1892-1983) 이야기 [2] - 예수님은 승리자이시다!
컨텐츠 정보
- 530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3월호>
독감으로 앓아누워 꿈속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계속되는 버저 소리와 소란스런 기척이 들려와서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우리가 우려하던 게슈타포의 급습이 기어코 들이닥친 것이다. 유대인들이 내 방의 은신처로 모두 대피하자마자 방문이 홱 열렸다. 게슈타포는 이미 지하 조직에 대해 알고 온 듯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모른다는 나의 대답에 연신 주먹을 날렸다. 거실로 내려가니 벳시 언니의 얼굴에도 검푸른 멍과 붓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제자리에 걸려 있는 "간판 신호"였다. 우리 집이 위험하다는 신호로 황급히 떼어 낸 간판을 게슈타포가 눈치채고 다시 걸어 놓은 것이다. 이제 우리 『텐 붐 시계방』은 함정이 되어 버렸다. 이로써 기도회 때문에 방문한 빌렘 오빠와 놀리 언니까지 붙잡혔을 뿐 아니라, 우리 집에 게슈타포의 급습을 예고하러 연락을 취한 30여 명이 모두 체포되었다. 그중에는 피크위크 씨도 있었다. 감옥으로 이송되는 버스에서 나는 한 장면의 기억이 떠올랐다. 독일의 침공이 있던 날, 기도할 때 보았던 그 장면에서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광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게슈타포는 "다시는 이런 일에 가담하지 말라!"며 연로하신 아버지를 풀어 주려고 했다. 그때 꼿꼿한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오늘 내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내 집에 도움을 청하러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그가 누구일지라도 다시 문을 열어 줄 거요!" 이로써 아버지는 석방되지 못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열흘 뒤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셨다.나는 조직의 우두머리로 지목당한 데다가 결핵 조짐이 보여 독방으로 이송되었는데 다행히도 성경 한 권을 구할 수 있었다. 하루는 차고 딱딱한 바닥에서 홀로 생각했다. 사복음서에 펼쳐진 장대한 구원의 드라마에서도 우리 주님께서는 철저히 패배하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패배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전개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작전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나는 누추한 독방을 둘러보며 이곳에서 과연 어떤 승리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몇 달 후 연합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해서, 여자 죄수들은 소지품들로 불룩해진 베갯잇 보따리를 들고 기차에 올라야 했다. 기차는 총격을 당해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숨 쉬기도 곤란한 인파 속에서 야위고 창백해진 벳시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4개월은 난생 처음 언니와 헤어져 있던 시간이었고,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재회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석방되었고, 언니는 몰래 가지고 있던 성경을 수감자들에게 읽어 주며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벽장 속 시계들(유대인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이었다. 게슈타포들이 시계포를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집의 유대인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셨던 것이다. 우리는 기나긴 날 동안 기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슈타포의 총에 스무 살짜리 아들을 잃은 어머니,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 여인, 함께 붙잡힌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내... 모두들 이제는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윽고 간절한 기대와 함께 도착한 곳은 독일의 라벤스부르크, 악명 높은 "여자 집단 처형장"이었다. 건물에 다다르니 남색 제복을 입은 여자 간수들이 달려와 고함과 함께 채찍을 휘두르면서 우리를 끌어당겼다. 나는 어깨에 성경이 든 보따리를 더욱 단단히 메며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긴 행군 끝에 삼베로 만든 거대한 막사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이가 득실거렸다. 그날 여자들은 서로 긴 머리를 잘라 주었고, 나도 언니의 머리를 자르며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셋째 날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로 도착한 죄수들의 검문이 있었다. 여자 죄수들은 남자 감독관들 앞에서 모든 소지품을 꺼내 놓고, 입고 있는 옷까지 모두 벗은 후 샤워실로 들어가야 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우리에게는 성경이 꼭 필요했기에 나는 애타는 심정으로 기도했다.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귀한 책을 우리에게 주셨고 숱한 검문들을 통과할 수 있게 숨겨 주셨지요.' 언니가 공포에 질려 내게 기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 간수 하나가 지나가기에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그는 샤워실을 가리켰다. 주춤거리며 들어간 샤워실에는 흰 곰팡이가 피어 지저분해진 나무 의자가 있었는데 그때만큼은 최고급 소파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성경을 숨겨 놓고, 다시 나와 검문을 통과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샤워실로 들어가 새로 갈아입는 옷 안에 성경을 숨길 수 있었다. 그렇게 샤워실을 나오니 이번에는 감독관들의 몸수색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의 여자는 세 번이나 수색을 당했고 벳시 언니도 수색을 당했다. 그러나 내 차례가 되자 감독관이 거칠게 나를 밀어내며 "옆으로 가! 줄을 막고 있잖아!" 하고 소리쳤다. 그렇게 해서 기적적으로 수색을 피해 8호 막사 안으로 성경을 들여올 수 있었다.
라벤스부르크에서는 새벽 4시 반이면 막사 앞에 모두 집합해야 했는데 막사 바로 옆에는 "징벌 막사"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사람을 내려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일정한 리듬에 따라 정연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어떤 감정도 배제된 잔혹함의 소리였다. 나는 벼룩과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숙소에서 이제 어떻게 사느냐고 언니에게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언니는 이 부분에 대해 기도 응답을 받았다면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읽게 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언니는 여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이 방에 함께 배정된 것을 감사하자!" 나는 화가 나려는 걸 꾹 참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여기 들어올 때 수색을 받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방에 주님을 만나게 될 사람들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아주 많아서 감사합니다. 성경을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벼룩에 대해서도..." 나는 언니의 말을 확 자르며 한마디 했다. "언니, 그건 너무 심했다. 나는 벼룩에 대해서는 감사할 수 없어!" 그러자 언니는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면서 기도를 이어갔다. 나는 이번에는 언니가 틀렸다고 확신했다.
날이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났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기도하는 날이 많아졌다. 매주 금요일마다 받는 건강 진단은 특히 굴욕적이었다. 난방도 안 되는 병원 복도에서 쉰둘의 나이에 굶주려서 불룩 튀어나온 배를 내보인 채로 간수들 앞을 지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래 놓고도 벌거벗은 죄수들에게 하는 건강 검진은 목구멍과 손가락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모순된 상황을 괴로워하던 어느 금요일, 성경 한 페이지가 가슴에 다가왔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앞에서 발가벗겨지셨던 것이다! 앞에 있는 언니의 등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는 "오, 코리야... 그분은 이것마저도 경험하셨구나." 하고 놀라워했다. 삶은 나날이 끔찍해졌지만 성경은 갈수록 새로워졌다. 나는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던 이야기를 천 번쯤 읽었다. 군인들이 그분을 얼마나 때리고, 비웃고, 채찍질했는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그 성경이 우리 앞에서 실제 얼굴과 목소리를 입고 현실로 재현되고 있었다. 밤이 되면 언니와 나는 벼룩이 설치는 숙소에서 방 안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이로써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여자들은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죄수들은 성경 앞에 도움과 소망을 바라며 모닥불처럼 모여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롬 8:35,37). 가난과 증오심과 배고픔으로 곤경에 처할 때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이긴 자들이었다. 당시 언니의 감사 기도는 놀랍게 응답되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밤마다 성경을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벼룩" 때문이었다. 감독관들이 벼룩 때문에 우리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몸이 약해진 언니는 4개월 후에 주님 품으로 갔지만, 채찍 자국을 가리며 "코리야, 이것은 보지 마. 예수님만 봐." 하고 당부하는 언니는 평온해 보였다. 그리고 그달에 나는 석방되었다. 언젠가 라벤스부르크를 다시 방문했을 때 내가 석방된 것이 누군가의 실수였으며, 내가 석방된 지 일주일 후 내 또래들은 모두 가스실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명을 연장받은 나는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라벤스부르크의 교훈"을 증거했다. 그것은 내게 승리를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미치지 못할 만큼 깊은 수렁은 없다. 승리자이신 예수님 한 분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승리자인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