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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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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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8월호>

한여름의 날씨는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태풍의 상륙 소식과 더불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컴컴한 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중동의 기상도 종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같다. 들려오는 소리들도 여간 변화가 무쌍한 것이 아니다.
가만히 지구본을 보고 있노라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 넓은 지구에서 한낱 점처럼 너무나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는 그곳을 주목하며 그곳의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왜 그러할까? 바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 거하는 땅이요 하나님이 마련하신 땅이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야말로 전세계의 중심이 될 바로 그 땅이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이 사실을 모를지라도 말이다.


캠프 데이비드에 대한 기대


나날이 변해가는 중동의 상황은 마치 공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대기 상태처럼 향방이 묘연하다. 하기사 급변하는 중동의 정세속에서 누구도 그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지난호에도 다룬 바 있지만 중동평화협상이라는 배는 항해하면서 순풍을 만나기도 했으나 난항도 거듭해왔다. 지난 6월에는 바라크 연정의 붕괴위기 바로 직전에서 메레츠당의 각료 사퇴 결정으로 샤스당이 연정 탈퇴 선언을 취소하여 바라크 연정이 가까스로 자리를 지킨 적도 있었고 알 나크바(팔레스타인 유랑민이 발생한 날을 말함, 1948.5.14)를 기념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로 인하여 잠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으며 예루살렘 통치 강화법이 가결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부 레바논에서 22년만에 이스라엘군이 철수를 했고 예루살렘 인근 3개 마을의 팔레스타인 이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또한 6월에 클린턴 미 대통령의 중재하에 워싱턴에서 회담이 재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중동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7월 3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9월 13일 독립선포를 강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독립선포 요지는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동 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 가자 지구 등 이스라엘이 67년 점령한 모든 지역을 포함하며, 동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될 것이며 모든 팔레스타인 난민은 귀환하여야 하고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들은 완전 철거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팔레스타인이 중동평화협상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쯤되자 미국은 서둘러 중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번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의 3자 회담은 바로 이러한 중동의 상황 변화를 조정하기 위한 해결책 중의 하나이다. 캠프 데이비드는 지난 1978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평화협상을 타결한 곳이기도 하다.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회담은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의 최초의 평화 협상이었다는 점에서 마치 오슬로 협정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협상의 시작이요 모체로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일로 인하여 베긴과 사다트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으며 이는 오슬로 협정을 한 이후 라빈과 아라파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과도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캠프 데이비드를 미국이 회담 장소로 택한 것은 이곳이 지닌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바로 돌파구를 찾자는 미국의 기대치가 부여된 회담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기대치에 과연 회담의 결과가 따라올지 아직까지는 불투명하다. 많은 난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쟁점 사항들은 섣불리 말할 수 있는 평이한 문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라파트는 동예루살렘을 자국의 영토로, 수도로 삼을 것이며, 주권국으로 군대를 창설할 것이고, 1948년 이후의 팔레스타인난민들(약 300만 명)이 모두 귀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1967년 점령한 모든 영토를 돌려달라고 주장한다. 반면 바라크는 동예루살렘이 영원한 이스라엘의 영토이기때문에 예루살렘은 절대로 분할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정착촌이 많아 영토를 다 돌려줄 수 없으며 난민도 돌아올 수 없고 군대 창설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 대해서도 성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섣불리 전망할 수 없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바라크 총리도 이번 회담의 성과 가능성에 대해 50 대 50이라고 밝혔으며 클린턴은 이에 대해 “희생 없는 평화는 없다”며 서로 양보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이스라엘 국내 상황도 좋지가 않다. 바라크 연정은 총 6개 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메레츠, 하나의 이스라엘, 중도, 이스라엘 베알리야, 민족종교, 샤스 당), 이번 평화회담건과 관련하여 샤스당, 민족종교당, 이스라엘 베알리야 당이 바라크 총리의 과도한 양보를 우려하며 7월 9일 연정탈퇴를 선언했고, 야당은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이번 연정 탈퇴로 인해 바라크 연정은 의석수가 42석으로 줄게 되며 120석에서 과반수에도 못미치는 소수연정이 되어 사실상 정책 추진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행히 바라크 총리가 캠프 데이비드로 오기 전, 불신임안 투표에서 찬성 54 반대 52로 가까스로 재신임을 받기는 하였으나 어깨가 무겁기는 여전한 것이고 중동평화협상에 대해서도 편치 못한 것이다. 이것은 아라파트 수반도 마찬가지이다. 알 나크바 시위는 바로 이스라엘에 너무나 많이 양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불만의 표출이었고, 이에 아라파트는 회담의 결과와 관계없이 9월 13일에 독립국가를 선포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한 것이다. 강수를 둔 아라파트로서는 이제는 피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또한 클린턴으로서도 이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회담은 마지막 승부수이기도 하다. 권력 말기 레임덕 현상으로 인해 더 이상 권력 행사도 어려울 것이고 사실상 9월 이전에 중동평화협상을 마무리지어야만 임기시 업적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브라이트 장관이나 클린턴은 G-8 회담에 참석하는 것도 포기하고 이 일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래저래 캠프 데이비드에 모인 세 사람은 마음이 불편하고 또한 그만큼 이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 거는 기대치도 높은 것이다.


동예루살렘의 지위


금번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중동평화협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꼽으라면 무엇보다도 동예루살렘의 지위 문제가 될 것이다. 서로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로 삼겠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고, 이스라엘 또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생각에 변함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착촌 문제라든가 난민 귀환 문제, 영토 반환 문제도 만만치 않으나 예루살렘의 지위야말로 정치적인 것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어 양 민족들 간에 감정까지 건드리는 문제이다. 최근 중동평화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바라크 총리의 평화정책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인들은 바라크가 아라파트에게 예루살렘의 열쇠를 넘겨주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단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권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해서 여간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시절, 이스라엘 정부가 외국 대사들에 대해 동예루살렘에 있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비공식 본부인 오리엔트 하우스에서 팔레스타인 관계자들과 만나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었을 때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 점령 서부 지역을 포함, 예루살렘 전지역을 ‘독립체’로 간주하며, 예루살렘에서 PLO측 관계자들과 접촉해온 관례를 변경할 의사가 추호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1999년 3월에는 유럽연합(EU)은 예루살렘이 국제법상 이스라엘로부터 독립된 도시라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즉 지난 1947년 유엔 결의안에 따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는 독립된 국제도시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미국을 위시한 각국 대사관들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에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텔아비브를 이스라엘의 실제 수도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무언중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이 팽배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그들을 지탱해 준 큰 기둥이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흩어져 있었던 디아스포라 시절,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소망이요 염원은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였다. 이 소망은 그들을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주었고 서로를 위로하는 큰 위로가 되었다. 다윗 왕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져 있던 곳이었고, 그들의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이 가있던 곳이었다.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이스라엘은 너무나 감격스러워 했고, 통곡의 벽을 찾아가 사진을 찍는 것이 그네들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성전이 있던 성전 산에는 현재 이슬람 사원이 서있고, 동예루살렘은 아랍인,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팔레스타인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의 예루살렘이 그동안 수세기에 걸쳐 많은 민족의 지배하에 종교의 싸움터가 되었던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각 종교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고 또한 쟁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라파트에 대한 새로운 평가


중동평화협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아라파트는 중동평화협상으로 인해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바 있고 실질적인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정신적 지도자로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다. 지금의 중동평화협상의 진전과 더불어 전세계는 아라파트를 주목했고 그를 재평가했다. 그가 처음 팔레스타인 해방군을 창설하고 계속 이스라엘을 위협하며 또한편으로는 테러를 일으켜 그들에게 국제적인 관심이 쏟아지도록 유도할 때만해도 그는 요주의인물이었고 세계적인 테러리스트였다. 1970년 검은 9월 사건은 너무도 유명한 사건으로 그로 인해 세계는 그들의 힘을 눈여겨 보게 되었고 또한 이것은 요르단 국왕의 세력에 위협을 가하는 세력이 되어 이일로 아라파트는 그들의 군대와 더불어 요르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을 남부 레바논에 정착하게 한 계기가 되었음은 지난호에서도 말한 바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이들을 축출하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PLO에게 레바논을 떠나 피신하라고 한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미국이었다(이후 아라파트가 1992년 리비아 사막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것도 미국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라파트가 있어야 중동협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는 튀니스로 망명한 후 각국 지도자들을 만나서 외교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어야 하는 부당함을 알렸고 이것과 더불어 남부 레바논에서 일어난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는 팔레스타인난민에게 세계의 동정심이 쏟아지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세계는 이제 이스라엘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라파트는 더 이상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혁명의 화신이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자로 추대받게 되었고 1993년 오슬로협정 체결로 1994년에 남부레바논으로 화려하게 다시 돌아왔다. 그에 대해 재평가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실례로 우리나라 모방송도 아라파트를 혁명 운동의 기수로 재해석하는 다큐멘타리를 제작한 적이 있는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잘못을 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은 중동평화회담에서 부당함을 받았다는 시각을 담고 있기도 했었다. 미국이나 여타 다른 나라들이나 할것 없이 세계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돕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동정하고 있는 편이다. 이는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온 세상이 대적하리라는 것을 단편적으로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동 평화협상은 어디로


과연 중동평화협상이 지향하고 있는 항구적인 평화가 올 것인가? 이번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과연 괄목할만한 성과가 있을 것인지는 이 글을 쓰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예전 베긴과 사다트 간의 협정도 무려 11일 간의 비밀 협정 끝에 막판 타결되었던지라 이번 바라크 총리와 아라파트 수반 간의 캠프 데이비드 회담도 마라톤 회담이 될 것이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를 반환하게 된다는 것과 팔레스타인이 곧 독립국가 창설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지금 당장 몇 %가 반환되느냐가 관건인 것이지 이미 조금씩 영토는 반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 문제나 정착촌 문제등은 미국의 지원금으로 해결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예루살렘의 지위문제는 향후로 미룬 상태에서 부분적 합의가 도출될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회담 결렬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라는 강수도 있을 수 있다.
중동은 평화로 가는 배를 타고 있다. 때로는 안개 속을 항해하기도 하고 빙산을 만날 수도 있지만 배는 계속 항해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 두 국가가 존속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우리는 거짓 평화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다윗의 보좌에 앉아 예루살렘에서 다스리기 이전에 적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낼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내는 우상 목자라고 또한 성경은 말씀한다.
이스라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메시아의 출현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반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현상은 세속파 유대인에게 두드러지며, 또한 미, 유럽계 이민자로 지성인이라고 불려지는 아슈케냐짐계에서 더 두드러진다고 한다(중앙일보, 7.1). 지금도 정통파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에 엎드려 땅의 반환불가를 부르짖고 있으나 다른 유대인들은 “평화를 가지고 돌아오라.”고 바라크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둔감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적그리스도가 거짓 평화를 가지고 나타날 때 분별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 대환란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비로소 그들은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고, 올바른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 『죄악을 용서하고 그의 유업의 남은 자의 죄과를 간과하시는 주와 같은 하나님이 누구니이까? 주는 자비를 기뻐하시고 그의 분노를 영원토록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는 다시 돌이키시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리니, 주께서는 우리의 죄악들을 정복하실 것이요, 주께서는 그들의 모든 죄들을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는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야곱에게는 진리를, 아브라함에게는 자비를 행하시리이다『(미 7: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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