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송오 목사 분류
구원의 복음과 종교를 혼동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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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년 월호>
이송오 목사 / 한글킹제임스성경 번역자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신앙을 종교심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독교계 안에 많다. 그중에서도 소위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선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는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제도적 혹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하나님의 일로 알고 실행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Divine Calling) 없이 자기의 유익과 편의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다.
생명의 씨는 그 어디에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솟아 나오는 힘이 있다. 어떤 씨는 콘크리트 계단 사이를 비집고 나와 싹을 내고 어떤 것은 꽃을 피우기도 한다. 이것이 곧 살아 있다는 생명의 증거이다. 만일 죽은 씨앗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생명의 징표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뻔하다. 침체와 정지는 부패하게 되며 부패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어느 한 날 베다니에서 나오실 때 시장하셔서 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가 있는가 보셨으나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 저주를 받았던 나무는 그날로 말라 버렸다(막 11:12-22). 그 말라 버린 나무를 본 베드로가 주님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보소서,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나이다.』(막 11:21)라고 하니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22절)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없이 시작한 종교들은 물론이요 성경을 말하면서도 성경을 무시한 기독교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외면한 채 인간의 땀과 열성으로 영과 진리를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영과 진리를 무시한 인간의 노력은 카인의 제사로 간주되기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수 없는 제사일 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교 놀이를 하며 쓸데없는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누구나 교회에 속하고 세례나 침례를 받고 정기적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십일조와 헌금을 바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누구든지 하나님을 섬겨 보겠노라고 아무 신학교나 나와서 목사 안수 받으면 사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마귀가 쳐 놓은 덫과 파 놓은 함정이 있는데 영적 눈이 열리지 않은 자들은 이 점을 보지 못하고 실제로는 그 덫에 걸리고 함정에 빠진 채 자기 노력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하기에 열매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의 기준에 따라 저주받은 대상이 되었다. 일찍이 카인과 아벨의 신앙 자세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듯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이 점을 누구나 알게 해주셨다(창 4:1-12). 카인은 땅에서 난 열매로 주께 제물을 드렸다가 거절당했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찐 것들을 드렸더니 주님께서 받으셨다(창 4:3-5). 카인은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격노했고 아우인 아벨을 죽였던 것이다. 카인이 농부였기에 무성의하게 제사를 드린 것인가? 아니다. 카인도 나름대로는 열성을 다해서 제사를 드렸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진리의 교훈은 너무나 쉽고 분명하다. 그것은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점이다(히 9:22).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섬기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거라는 것이지만 이것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인간이 지어낸 발상이다. 거의 모든 종교들이 제시한 교리는 바로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경 없이 시작한 종교들은 물론이요 성경을 말하면서도 성경을 무시한 기독교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외면한 채 인간의 땀과 열성으로 영과 진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과 진리를 무시한 인간의 노력은 카인의 제사로 간주되기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수 없는 제사일 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쓸데없는 짓들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카톨릭 의식과 전통에 따른 예배요, 새벽기도요, 철야, 금식이며,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구제요, 유대인들에게 주신 구약 규례들을 신약 교회로 가져와서 실행하는 난센스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증거가 없는 자들을 사역자로 세우는 일들이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는 계시지도 않으시고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신다고 명시하셨는데도 성경을 무시하고 그들 나름의 발상대로 인조 성전 안에다 하나님을 가둬 놓고 카인의 제물들을 바치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막연한 열성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니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니 이는 그분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심이라』(행 17:24,25).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사람의 혼을 구원시킨다는 데 있다. 가장 중요한 이 일을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반복하여 권면하기에 오히려 이 점이 희석되거나, 또 듣는 사람들이 너무 자주 들은 것이라서 간과하거나 냉소적으로 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각종 설교자들이 분별없이 써먹기에 실제로는 구원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일어난 것처럼 간주해 주는 엉터리 사역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계를 좀먹는 또 하나의 병폐가 되기도 했다. 2008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인 남침례교는 약 4만 명의 교인이 줄어들었는데 그 원인은 지나친 구원 강조에 있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런 결과는 교인 수를 늘려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미국 남침례교 지도자들의 오래된 사역 습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들은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 습관적이고 요식적인 복음 전파를 흉내 내며 복음의 핵심과 중요성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듣는 사람들을 식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치 남루하게 외양을 갖춘 사람이 외양을 잘 갖춘 사람에게 옷 입는 매너를 말하는 것과 같다. 김수환 추기경의 서거로 카톨릭은 교인이 30% 증가되었다고 한다. 그들 역시 거듭남이 없이 종교를 붙잡은 카인의 후예들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수한 복음을 통해서 카톨릭으로 입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난 성품은 아담으로부터 받은 죄의 성품이기에 영이 죽어 있는 채로 태어난 것이다. 이 영이 다시 살 때까지는 그 누구도 자기의 종교 행위로 혼이 구원받을 수 없다.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자기를 구원해 줄 합법적인 구세주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하고(요 3:16) 그분을 믿고 영접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엡 2:8,9, 롬 10:9,10, 요 1:12). 그리고 주님을 성경대로 믿고 영접했으면 성령님이 개입하시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음을 알아야 한다(요 3:18,36, 요일 5:12). 영이 거듭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혼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의 혼은 마귀에게 점유되어 있는 것이다.
마귀도 종교적이다. 마귀도 예수님을 알며(행 19:15), 예수님을 믿고 떨기까지 한다(약 2:19). 따라서 마귀에게 점유되어 있는 자들이 종교 행위를 하고 교회를 다니며 열성을 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이 거듭난 성도를 흉내 낼 수 없게 하시려고 성경 곳곳에 표식을 세워 두셨다.
1.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요 3:3,5).
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나는 그 생명의 빵이라』(요 6:48).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요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요 11:25) 믿는 자는 그의 이름으로 인하여 죄들을 사함받고 의롭게 될 수 있다(행 10:43; 13:3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롬 9:33; 10:11). 이런 진리를 알고 성경대로 믿고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왜 구원의 확신이 없고 생활에 변화가 없는가? 이것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그나마 생각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제시하겠다.
1. 순수한 마음의 결여로 복음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구주를 말씀대로 믿고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이 살아날 수 없어 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영접하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2.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으면 성별을 해야 하는데 갖가지 연유로 썩은 웅덩이에서 나와 말씀의 물로 씻기지 못한 채(엡 5:26,27) 새 사람으로서의 삶의 자세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고후 5:17, 엡 4:17-29).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어린 아기가 되어(고전 3:1,2) 습관적으로 교회만 다니면서 자리를 채우는 일을 하며 종교 생활만 하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성경적 믿음을 구축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지 않으면서 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죄를 두려워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무관하게 교회 놀이만 하는가 보라!
4. 교회 놀이를 하는 교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어도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 사람들에게 자기 교회와 목사를 자랑하고 사람 수를 자랑하고 회원 중 전문 직업인들과 유명 인사들을 자랑하며 결혼, 취직, 출세의 줄대기 등을 제시하며 사람들을 유인한다. 그런 일을 칭찬하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도 전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령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들과 같아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밝혀 주셨다.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마다 그분께서 제거해 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마다 정결케 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을 통하여 깨끗해졌느니라.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역시 그렇게 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들이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 15:2-5). 구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눈물로 씨를 뿌린 적이 없는 사람은 열매 맺는 일을 할 수 없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생활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를 내고(갈 5:22,23) 잃어버린 혼들을 복음으로 이겨와서 구령의 열매도 맺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렇지 못한 채 생활을 통해서 육신의 일들만을 드러내고(갈 5:19-21) 복음을 통해서 혼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이겨오지 못한 사람은 알곡이 아니라 쭉정이이다. 쭉정이가 알곡 흉내를 내는 것이 종교인이 보이는 종교 행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 행위를 하면서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는가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생명의 씨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요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한 유기체이기에 그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 인간적 방법을 택하여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한 사람은 종교는 지녔을지 모르나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못 된다.
쭉정이들은 말씀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생겨나지 않았기에 평생을 육신과 혼 사이를 오가며 종교 행위만 하고 지상 생명을 끝내게 되지만 거듭난 사람은 말씀의 소중함을 알고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기에 그 말씀이 구원받은 혼을 거쳐 영에 닿을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감을 이루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의 기도는 주님께 상달되지만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주님께 상달될 수 없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기도에 응답받았다고 자랑하는 것은 경마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써먹는 것과 같을 뿐이다.
5. 그런 자들은 항상 배워도 진리의 지식에는 이를 수 없다(딤후 3:7). 왜냐하면 성경을 성도에게 가르쳐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요 16:13). 성령님께서는 그런 가식적이고 흉내 내는 자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주시기를 싫어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6:9,10을 인용하시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노니, 이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또 깨닫지도 못함이라. 또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또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는 데 둔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눈을 감았으니, 이는 그들이 어느 때라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이라. 그러나 너희 눈은 볼 수 있고 또 너희 귀는 들을 수 있으니 복이 있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기 원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기 원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3-17). 왜 <개역성경>을 100번 이상 읽고 30-40년을 넘게 설교한 목사들이 진리의 지식에 눈뜨지 못한 채 거짓 교리인 줄도 모르고 설교하고 가르치며 교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가? 이는 성경을 치워 버린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치워 버리고 교단의 종노릇하는 자들은 실제로 주님께 쓰임받는 주님의 종들이 아님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성경을 보라! <개역성경/개역개정판>이다. 틀린 잣대로 아무리 재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틀린 것들은 매한가지이다.
왜 많은 교회들이 주일 하루만 법석대다가 끝내 버리는가? 그들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채우고 하나님의 일인 양 부산을 떨지만 거기에는 성령님의 계획이 부재한 종교 행위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어떤 교회든지 정녕 자랑해야 할 것은 매주 혹은 매월 몇 명의 혼들을 그리스도께 이겨왔는가이다. 그들 교회 안에 구령자나 거리설교자가 몇 명이나 되며 그들이 쓸 수 있는 복음전도지가 얼마나 되는가를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종교 행위는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해도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카인의 행보로는 결코 아벨의 제단을 마련할 수가 없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