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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에 투입될 수 없는 영적 기형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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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4월호>
이송오 목사 / 한글킹제임스성경 번역자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각인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드러날 수 있다. 복음을 거절한 사람, 나중 기회로 미룬 사람, 즉석에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다. 복음을 미룬 사람이나 거절한 사람은 설령 교회를 다닌다 해도 마귀의 종의 위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여전히 마귀의 종으로 남아 있게 되는데, 그가 어떤 사고나 재앙이나 질병이나 다른 원인으로 죽게 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 사람의 나이가 몇 살이었든지 간에 운명의 갈림길은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와 그 이전으로 나뉜다.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사람이 거듭나지도 않은 채 어떤 교회를 선택하여 다닌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새벽에 다녔다고 해서, 혹은 수십 년 다녔다고 해서, 혹은 제직을 맡아 봉사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은 영적인 일을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무익한 존재일 뿐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영을 살려 내는 데 있다. 복음 설교를 하는 목적 역시 영을 살려 내는 데 있다. 영을 살려 내는 일을 하지 못하면 육신의 일이 된다. 육신의 일들에 거창한 이름을 붙여 선교니, 사역이니, 교회 성장이니, 부흥이니 하는 말들은 헛소리요 거짓말이다.
위와 같은 영적 기형아들은 그 양상을 몇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거듭나지 않고서 교회에 다니는 자들인데, 실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들은 로마카톨릭 사제들, 그러니까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태어난 지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강보에 싸서 요람에 뉘어 놓고 아기 예수라 부르며 장난질하는 로마카톨릭 사제들만큼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관계가 없다. 사실 이런 사람은 영적 기형아도 못 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명칭을 붙인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일단 종교심일망정 영적 세계에 관심을 두기에 그렇게 불러 준 것뿐이다.
둘째, 복음을 듣고 믿어 거듭나기는 했지만, 거듭나기 이전의 삶과 달라진 것이 없기에 영적 기형아가 되어 버린 자들이다. 아기가 태어났으면 씻기고, 젖으로 먹이고, 잘 자고 잘 놀 수 있는 영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게 돌보지 않고 내팽개쳐 놨다면 그 아기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아기를 낳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낳은 아기를 잘 기르는 일 역시 중요한 것이요, 그 일을 하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가 순수한 양우리가 되지 못하고, 족제비나 여우, 개, 늑대, 쥐, 뱀 같은 더러운 짐승들과 섞여 있다면, 그 양들이 거기서 견뎌 낼 수 있겠는가? 그런 곳은 이미 신약 교회가 되기를 포기한 곳이다. 그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라! 그런 곳에서 맛있는 양식이 있는 싱싱한 초장으로, 맑고 깨끗한 시냇가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그런 데서는 초기부터 기형을 만들 수밖에 없다.
셋째, 그 다음 부류는 거듭났고 정상적인 단계로 접어들어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영적인 사람으로서 영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목사가 자기 교회는 교단에 속하기에 교단 교리를 따라야 한다며 망쳐 버리는 경우이다. 특히 극단적 칼빈주의 교회들은, 인간은 의지까지 타락해 버려 스스로 회개하거나 믿을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을 만큼 무능력하기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조건 없이 선택하지 않는 이상 구원받을 소망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런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구원받고 싶어도 선택되지 않았다면 자기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며, 거기다가 성경의 이런저런 것들을 갖다 대며 하나님의 주권만이 죄인을 구원시키는 것이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고 주입하기에 혼란에 혼란을 가중시켜 결국 영적으로 병이 들어 기형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는 자들을 만들어 낸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교단은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어도 끝까지 견뎌야 구원이 효력을 갖게 된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 자들 역시 영적 기형아들을 양산해 내고 있을 뿐이다.
넷째, 위의 세 번째 경우도 비성경적 교리 실행이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예 그들의 추종자들을 속이고 세뇌시켜 자기들만이 특별한 은사들을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병을 낫게 하는 시늉을 하고, 방언을 하며, 귀신을 쫓아낸다며 마치 그런 일들을 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교회이고 그렇지 못한 교회들은 능력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거짓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은사주의 교회들이다.
방법은 약간씩 다르겠지만, 교회라는 곳들이 그런 어리석은 짓들을 했기에 교인들이 선천적으로 영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기형으로 자랐거나, 정상적으로 태어나서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다. 자기 장애에 익숙한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정상으로 변모되는 길을 모색하거나 갈망하지 않게 되어,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그렇게 살다가 죽고, 알미니안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전도관 사람들은 간장이나 팔고, 여호와의증인들은 파수대나 들먹거리고, 몰몬교도들은 몰몬경이나 말하고, 구원파들은 스쿠알렌이나 팔다가 지옥으로 가며,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이나 지키다가 역시 지옥으로 가고 있다. 그리스도의교회 교인들은 침례가 구원인 줄로 오해하고 침례나 붙들고 있다가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영적 장애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그 문제점을 모르면서 살기에 치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한복음 9장의 태어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좋은 예이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주님 자신이 세상의 빛이심을 알게 하셨고 그는 그대로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발라 주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소경은 그대로 씻어서 보게 되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고, 소경은 정확하게 답변해 주었으나, 그들은 믿지 않고 거듭거듭 되묻기만 했다. 그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되심을 증거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 누군가가 소경으로 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으니 만일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리라』(요 9:32,33). 이 소경이었던 사람은 보지 못하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을 믿고 눈도 떴고 구원도 받아 육체적 장애와 영적 장애 두 가지를 모두 해결 보았으나, 바리새인들은 『우리도 소경이란 말인가?』(요 9:40)라고 반응하면서 예수님께 대들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응은 『만일 너희가 소경이라면 죄가 없을 것이나 이제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본다.’고 하므로 너희 죄가 남아 있느니라.』(요 9:41)였다.
어느 편이 장애인인가?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진리를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없는 영적 장애인들인데도, 그들 스스로 나서서 다른 영적 소경들을 인도하려고 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이끄는 자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라나선 자들도 함께 망한다. 자신이 소경이면서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요,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없으면서도 인도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한 복음이 세상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원인은 영적 안목이 없는 소경들이 다른 소경들을 인도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영적 눈이 열리지 않은 자들이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육신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 즉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이 하는 일들로 인해 오히려 복음이 변질되어 교회가 사회 기구보다 더 타락하자, 그들은 이상한 짓들을 하며 자기네 교회들을 돈 버는 곳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을 교회 성장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이른 것이다. 『실로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는 것은 헛된 것이라』(잠 1:17). 세상 사람들도 이와 같이 자기들을 잡으려고 그물을 치는 새잡이들을 본 것이기에 복음을 전하면 교회에 와서 돈 내라는 말로 바꿔 해석해 버린다. 그들의 행보는 단순히 복음만 변질시키고 무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복음 사역과 선교 전체를 무력화시켜 버린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시킨 죄를 지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시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사람들로 단순히 기독교란 종교에 귀의해서 교회에 속하고, 교회에 다니라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인간이 만든 종교로 구분시키는 일이 아니잖는가! 그까짓 종교가 기독교이면 어떻고, 다른 종교면 어떤가? 기독교란 종교 자체가 사람의 영을 거듭나게 하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의 혼을 마귀에게서 이겨올 수 있는가? 그런 성경 구절이 있는가 보라! 능력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지 기독교란 종교가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이것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니, 즉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요 6:39).
당신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도 믿고, 마귀의 존재와 활동도 믿는가? 당신은 낙원과 지옥이 있음도 믿는가? 당신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게 되는가,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가? 당신이 아는 성경에 따르면 하늘나라에 가는 길이 몇 개나 되는가? 교회만 다니면 하늘나라에 자동적으로 가게 되는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종교가 선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롬 6: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요 8:24).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누가 영적 기형아인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이 거듭나고 교회에 다녀야지, 교회에 다니면서 거듭나려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이 모이는 양우리이기에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들을 양육하는 곳이다.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제자 훈련 같은 것을 시켜도 효용이 없다. 교회는 마귀의 계략과 음모와 공격을 격퇴시키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양육시키는 영적 전쟁의 집결지요, 요새이다. 영적 미숙아나 영적 장애인, 영적 노숙자, 영적 기형아들이라면 영적 전쟁에 투입시킬 수가 없다. 실로 그런 사람들만 몽땅 안고 있는 곳은 결코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음을 알라. 『너희는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 이는 너희가 악한 날에 저항할 수 있으며 또 모든 일을 다 이루기까지 서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서서 진리로 너희의 허리띠를 두르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화평의 복음을 준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짐으로써 능히 너희가 악한 자의 모든 불붙은 화살을 끌 수 있을 것이라. 또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성도들을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깨어 있으라』(엡 6:11-18).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