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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들을 용서받지 못하게 하는 “죄사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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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6월호>
얼마 전 일간 신문에 보니(동아일보 5월 10일자) 소위 “구원파”라고 불리는 기쁜소식선교회의 박옥수 목사가 “참된 신앙, 참된 교회, 참된 종”이라는 제목 하에 자기네 교파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전면 광고를 낸 것이 나왔다. 사실 이것이 뭐 갑작스런 일은 아니다. 박옥수 목사는 그들의 대대적인 광고로 인해 이제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 중에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들이 잠실체육관에 모여서 대규모 집회를 할 때마다 거리거리와 지하철에 붙여놓은 성경세미나 광고 포스터를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이번에 신문에 전면으로 낸 그 광고는 “1. 박옥수 목사가 걸어온 신앙의 길,” “2. 왜 한국의 몇몇 기성 교단은 박목사를 비방하는가?” “3.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당부 드리는 말씀” 이렇게 세 가지 주제로 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 복음도 모르고 비성경적으로 가르치는 교회와 목사들이 많다는 것을 잘 드러내는 광고였지만, 자신을 너무 높이다 보니 아주 비성경적인 광고가 되어 버렸다. 다음은 그 중에 있는 광고 문구이다.
「근간에 그는[박옥수 목사]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어 월간중앙, 월간조선, 신동아 등 기자들의 집중적인 취재를 받아 그의 신앙, 삶과 활동, 기쁜소식선교회가 언론에 샅샅이 공개되었다... 어느 중견 언론인이 그의 기사를 실으면서 “목사님 같은 분은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 대해 말할 때, 결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알아 주고 있다면서 자신을 선전하지 않는다.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것은 너무도 한심한 선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아시므로』 사람들이 알아 주는 것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셨다(요 2:25). 세상 언론이 영적인 사람들인가? 세상 언론이 하나님의 판단을 대변하는가? 그 언론의 칭찬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이처럼 비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박옥수 구원파는 실제로 그들의 중심 교리가 아주 비성경적이다. 본 글에서는 일간 신문에 실린 광고와, 그들이 돌리는 성경 세미나 광고지에 실어 놓은 박옥수 목사의 설교들, 그리고 그 광고들에 선전해 놓은 박옥수 목사의 저서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통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그들이 구원과 복음을 얼마나 많이 왜곡하고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 대한 왜곡된 교리
자신을 선전하는 모습부터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던 그들은, 그 신문 광고에서 다음과 같은 부적절한 말들로 자기네 교리를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셨다면(요 1:29), 세상에 죄가 남아 있지 않아야 정상이다.」 이것은 박옥수 구원파가 쓰는 수법의 전형적인 예다. 바로 이런 식의 사고 방식, 이런 식의 질문으로 그들은 개개인의 죄 문제에도 접근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살펴볼 것이다. 그들은 어떤 성경 구절을 가지고서 얼핏 보면 “어, 정말...”이라고 할 만한 간교한 속임수를 만들어내는데, 이로써 진리를 옹호하는 데 서투른 그리스도인을 당황하게 하고 그들의 손아귀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성경 전체의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속임수일 뿐이다.
자, 위의 광고에 나온 말을 다시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죽으셨으니 이 세상에 죄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 세상은 지금 죄가 가득하다. 이 세상을 잠깐 살아본 꼬마라 할지라도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현재 온 세상이 『악함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요일 5: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제거”하셨지만 세상에는 죄가 남아 있다. 박옥수 구원파의 소위 “깨달음”으로는 도저히 이런 성경적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영접하지 않고 계속 그대로 남아 있다면 결국 그 죄들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이는 너희가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요 8:24). 죄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자의 머리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다(요 3:36).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으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세상의 그 누구라도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믿을 때 영원한 정죄인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도록 그분이 죄값을 치러 주셨다는 말씀이다. 만약에 세상 모든 사람이 100% 다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인다면, 100% 모두 다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대가가 이미 지불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러나 세상에서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세상에 사는 죄인들은 결국 영원한 정죄를 받고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2. “죄씻음받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왜곡된 교리
박옥수 구원파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의지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이렇게 묻는다. “죄가 있습니까?” 그러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았어도 자신의 육신 안에는 죄가 거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육신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 종종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롬 7장), “죄야 있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그들은 앞서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 대해서 다룬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아니, 죄를 용서받고 죄가 씻겨졌는데 어떻게 죄가 남아 있을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며 마구 밀어붙인다. 그러면 그들의 논리를 처음 들어 본 그리스도인은 말문이 막히고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박옥수 목사의 책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권 224쪽에도 버젓이 써놓은 수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았고” 또 “죄가 씻겨졌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아무런 죄도 없는 완전히 정결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죄값을 치러 주심으로써 우리가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도록” 용서받았고, “영원한 정죄와 관련해서” 마치 죄가 전혀 없는 깨끗한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께 판결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이다. 구원받은 것은 혼이며, 몸은 구원받기 전의 몸 그대로 죄의 몸이다. 그래서 구원받고 나서도 때때로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어서야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무런 죄도 없는 완전히 정결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만나게 될 그 날을 그렇게도 고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롬 8:23).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요일 3:2).
그러나 박옥수 구원파는 귀를 막고서 계속해서 이렇게 우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죄가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구원받은 죄인, 믿는 죄인’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말이 안 된다.」(신문 광고)
또 그들이 돌리는 성경세미나 광고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죄인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안한 일이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의롭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또 “죄가 씻겨진” 우리에게 그럼에도 “죄가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하면서, 박옥수 구원파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 속이는 사기꾼들이요, 진리가 그들 안에 있지 않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나』(요일 1:8). 사도 요한은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결코 배제될 수 없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이 박옥수 구원파처럼 자기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가 “하나님과 다른 마음을 가졌는지”는 성경으로 판별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죄가 씻겨졌다”고 할 때 그것은 자신이 죄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정죄”를 완전히 면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또 그리스도인이 자기에게 “죄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자신이 “영원한 정죄”를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혼은 죄의 형벌에서 완전히 구원받았으나 아직 우리 혼이 죄의 몸 속에 들어 있고, 그래서 (당연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실제로 종종 죄에 연루되고 있다는 뜻이다.
성경을 그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정죄와 관련하여 “죄가 깨끗이 씻겨진” 후에도 실제로 자신에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죄에게 순종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영적인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롬 6:12,13). 또한 그리스도인이 육신을 따라 죄를 지으면서 살면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엡 4:30) 또 징계와 같은 일시적인 정죄를 받을 수 있으며(롬 8:1, 고전 11:34), 이렇듯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 죄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7). 여기서도 역시 사도 요한이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말씀을 유의해 보라. 영원한 정죄와 관련해서는 “죄가 깨끗하게 씻겨진” 그리스도인이지만,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에 있어서는 또다시 “깨끗하게 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3. “죄를 자백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왜곡된 교리
이러한 필요성을 인지하여 자기가 지은 죄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나아가서 용서를 구하는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박옥수 구원파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리며 매도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 겸손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 나의 이 죄를 못 씻었잖아요. 지금 좀 씻어주세요.”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성경세미나 광고지)
박옥수 목사는 계속해서 “영원한 정죄”에 관련된 부분과 “하나님과의 교제”에 관련된 부분을 혼동하며 뒤섞어 놓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하는 박옥수 구원파를 위해, 사도 요한은 다시 한 번 말한다.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또다시 “우리”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련하여, 죄들을 자백하여 죄들을 “용서받고” 또 “깨끗하게 될” 필요성을 지니고 있다. 죄를 지었기에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어야 할” 필요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저를 깨끗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욕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욕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용서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용서를 구해야 한다. 깨끗해질 필요가 있는 사람은 깨끗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지한 자백에는 죄지은 것에 대해 괴로워하는 마음이 동반된다(시 32:3-5). 또한 진정한 자백에는 완전히 용서하고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박옥수 목사가 만일 구원받았을지라도 자기의 이론대로 믿고 있다면 그는 죄를 짓고서도 죄들을 자백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죄들이 용서되지도 않았고, 그 죄들이 깨끗하게 되지도 않은 것이다. 만일에 박옥수 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이 구원받고 나서 정말로 모두 그 목사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제 나는 죄가 없다,” “이제 나는 죄가 없다”라고 되뇌기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들을 진정으로 자백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두 구원받자마자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며(요일 1:8), 구원받은 후 생긴 더러움을 전혀 씻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간교한 거짓 교리를 가르치면서 자신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인 듯이 행세하고, 또 그리스도인들을 꾀어 더러운 상태에 있게 만들면서 자기들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박옥수 구원파에게 아주 잘 들어맞는 성경 구절이 있다. 『자기들의 눈에는 순결하나, 아직도 자기들의 더러움을 씻어내지 아니하는 세대가 있느니라. 오, 그들의 눈이 얼마나 거만한가! 그러한 세대가 있나니 그들의 눈꺼풀은 높이 들렸느니라』(잠 30:12,13).
그렇다면 박옥수 구원파는 그처럼 분명한 요한일서 구절들을 도대체 어떻게 오해하기에 그런 왜곡된 교리를 전파하는 것인가? 그들의 거짓된 이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사도 요한이 “우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실제로는 “우리”가 아니었다고 해석한다. 성경을 거짓으로 해석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둘째, 요한일서의 이 말씀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는 모습을 다루는 것이라고 우긴다.
이런 엉터리 주장을 보강하기 위해 그는 성경에서 “죄”라고 단수로 표현된 것은 우리가 “짓는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러한 죄를 가져온 “죄의 근본”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자신이 근본적으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죄인이 구원받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이라고 결론을 짓는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권 35쪽).
이것은 오역된 <한글개역성경>을 근거로 만든 거짓 교리이다. <한글개역성경>은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되어 있으나, 원래 성경에는 『죄들을 자백하면』이라고 “죄들” 곧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다(우리말로 온전히 번역된 <한글킹제임스성경> 및 원어 성경과 영어 성경을 살펴보라). “죄의 근본”이 결코 아닌 것이다. 박옥수 목사의 왜곡된 교리는 중요한 단수, 복수의 구분이 엉망으로 번역된 성경을 근거로 삼아서 성경 구절을 원래 의미와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한 거짓 교리인 것이다.
기쁜소식선교회의 성경세미나 광고지에 나오는 박옥수 목사의 잠실체육관 설교문은 무려 신문 두 페이지 분량이나 되는데, 구약성경과 복음서의 이런 일화, 저런 일화, 이런 비유, 저런 비유를 영적으로 적용하면서 장황하게 설명함으로써 아주 길어졌을 뿐, 내용은 별게 없다. 그 설교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데, 우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져야 한다고 시작하여, 사람들은 모두 더럽고 악하다고 이야기하다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다고 복음을 잘 전하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예수님이 죄를 다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하셨으니까 이제 죄 없다고 믿고서 다시는 하나님께 절대로 용서를 구하지 말라는 해괴한 거짓 교리로 끝을 맺는다. 그냥 그뿐이다.
사실, 박옥수 목사가 거짓 교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가 죄가 없다고 하니 죄들을 자백할 리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와 교제하시지 않아 그에게 진리의 조명을 주시지 않는 것이다. 설령 누군가가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을지라도, 그가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박옥수 목사의 거짓 교리로 무장되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 수가 없다. 복음을 전하는 듯하면서 곧바로 이런 엉터리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박옥수 구원파의 행위는, 혹 다행히 구원은 받게 할지라도 믿음의 행보를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과의 교제가 엉망이 되는 절름발이 그리스도인을 양산해 내는 짓이다. 기쁜소식선교회와 구원파에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이제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전했던 그 어마어마한 죄들을 참회하고 마음을 찢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죄들을 자백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마귀의 간교한 속임수를 뿌리치고 올바른 성경과 올바른 지식에 따라서 진리의 길에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올바른 성경적 토대 하에서 박옥수 구원파와 같은 이런 간교한 거짓 교리들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정리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잘 무장해야 한다. 자,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기 전에는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정죄받을 죄인”으로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고 그분을 우리 안에 영접함으로써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요 1:12,13, 갈 3:26).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녀”로 있다. 심판자는 죄인에게 형을 내린다. 그 형벌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극형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런 관계가 아니다. 이제는 자녀이다. 그러나 자녀이면 죄가 없다든지, 자녀이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수많은 죄에 연루되곤 한다. 모든 불의가 죄이며(요일 5:17),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이며(롬 14:23),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것이 죄이다(약 4:17). 그러나 올바른 아버지는 자녀가 짓는 “죄들”로 인해서 자녀에게 야단을 치고 매질을 하기는 해도 결코 자녀를 극형에 처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우리의 죄는 영원히 제거되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우리는 영원히 의인이 되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짓는 죄들은 집안에서 우리와 마주 앉으신 아버지의 무릎 앞에 놓여 있다. 그분의 회초리는 우리를 징계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해준다. 그분의 매는 우리가 경건한 삶을 유지하게 해주어 면류관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다. 자녀는 아버지 앞에서 죄를 지었을 때 진솔하게 용서를 구하고서 돌이켜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를 슬프시게 하는 죄를 짓고서도 “난 아버지의 자녀니까 죄가 없어요!” 하는 미련한 자녀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