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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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21,22의 "꺾여지는 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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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5월호>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너도 아끼지 아니하실까 주의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시니 만일 네가 그분의 선하심에 머물면 그 선하심이 너에게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아니하면 너도 꺾이리라』(롬 11:21,22).
위의 로마서 말씀은 현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머물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잘못 가르쳐지는 구절이다. 『만일 네가 그분의 선하심에 머물면』이라는 이 조건절과 관련하여, "성도가 끝까지 견디지 않는 한 복음에 그 어떤 안전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성도의 인내가 상호작용하는 것이 복음의 본래의 취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 시대의 죄인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16에서 강조한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갈 2:16).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롬 3:28)고 하면서 이 교회 시대의 "믿음으로 인한 구원"에 대해 확고한 결론을 내려 준다.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의 구원의 보장은 『네가 그분의 선하심에 머물면』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갔기에(고전 12:13) 아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를 떼어 놓을 수 없으므로 그의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다(롬 8:38,39).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다시 타락하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론이 아니다. 이 이단 교리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성경을 사적으로 해석했기에 나온 결과이다. 로마서 11:21,22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성령님께서 로마서 11장의 "올리브 나무의 비유"에서 다루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로마서 11장에서는 총 4구절에 걸쳐 그들의 실체를 설명해 주는데, 11,12,13,14절이 그 구절들이다.
『그러면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졌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그들의 실족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그들로 시기하게 하려 함이니라』(11절). 11절은 "유대인의 실족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한다. 이 구절은 유대인들을 "한 집단"으로, 이방인들을 또 "한 집단"으로 다룬다. 유대인들이 『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에 걸려 넘어져 복음을 거부하자(롬 9:32)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실족함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그들의 쇠퇴가 이방인들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은 어떠하겠느냐?』(12절) 12절은 "유대인들의 실족함"을 "세상의 부요함"과 "이방인들의 부요함"과 대조시킨다. "세상"과 "이방인들"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이 역시 유대인들을 "한 집단"으로, 유대인들을 제외한 세상의 이방인들을 "한 집단"으로 다루며 대조하고 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이기에 나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나니 이는 아무쪼록 내가 나의 동족을 시기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 얼마라도 구원하려 함이라』(13,14절). 13,14절은 『나의 동족』 곧 바울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그가 사도(『이방인들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들고 간 "이방인들"과 대조시키고 있다. 여기서도 두 부류를 각각 "한 집단"으로서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집단에 끼일 수 없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일단 구원받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교회가 되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유대인이나 이방인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아무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전 10:32). 따라서 로마서 11장에서 다루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로마서 11:17은 『또한 만일 가지들 가운데 얼마가 꺾여지고 돌올리브 나무인 네가 그들 가운데 접붙여져서 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기름진 것을 함께 받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참올리브 나무의 가지들 전체가 꺾인 것이 아니라 『가지들 가운데 얼마』 곧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꺾여졌고, 대신 그 자리에 돌올리브 나무인 이방인들 가운데 믿는 자들이 접붙여져 참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기름진 것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참올리브 나무가 아니라 그 가지들이다. 그 가지들에서 얼마가 꺾여진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생명" 나무의 예표이며, 올리브 기름은 "성령"의 예표이다. 따라서 올리브 나무는 구원받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기회를 묘사한다. 이방인들 가운데 믿는 자들이 접붙여져 참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기름진 것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통해 "성령님"의 "생명"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한 민족으로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거절했고, 이방인들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다. 사도행전에는 성령님께서 "유대인들을 다루심"에서 "이방인들을 다루심"으로 옮겨가는 세 차례의 "전환점"이 있다. 유대인들이 스테판을 통해 마지막으로 전파된 "왕국복음"을 거절한 후(행 7:54) 성령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 20:24)을 제시하셨는데, 유대인들은 바울의 사역에서 이 복음을 세 번 거절했다. 즉 아시아에 있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거절했고(행 13:46, 첫 번째 전환점), 그 뒤 유럽의 유대인들이 그 복음을 거절했으며(행 18:6, 두 번째 전환점), 마지막으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다(행 28:28, 세 번째 전환점).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복음을 유대인들에게서 "한 집단"으로서의 "이방인들"에게로 돌이키셨다.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었으며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던 이방인들이(엡 2:12) 복음을 믿음으로써 "성령님"의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형세가 역전되고 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그들의 죄의 충만함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죄가 충만해질 때까지만 완고할 것이고, 그후로는 민족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현재 이방인들은 그들의 죄가 충만해지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거절할 뿐 아니라, 교회들에서도 순수한 복음이 거절되고 있으며, 그 배교한 교회들에서는 바른 말씀 또한 거부하고 변개된 성경들을 붙들고 있다. 1881년에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변개된 헬라어 신약성경이 나오고, 1884년에 이를 저본으로 번역한 영어 개역본(Revised Version)이 출간되자,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 <킹제임스성경>(1611)을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한다고 하는 자들조차도 그 성경이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뜯어고치기에 여념이 없다. 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버리셨기에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교회에게 주어졌다고 거짓 주장하는 자들이 활개를 쳤고, 이로써 교회가 믿음으로 선 것을 강조하며 유대인들을 깔아뭉개는 거짓 교리가 교회들 안에 주요 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여졌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아지려는 생각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너도 아끼지 아니하실까 주의하라』(롬 11:20,21).
이처럼 이방인들의 죄는 모든 면에서 충만해지고 있으며, 이방인들이 꺾여지고 있다. 이방인들, 곧 돌올리브 나무가 꺾여지기 시작한 후 하나님께서는 참올리브 나무의 가지들을 다시 접붙이시는 일을 서두르셨다. 영국의 밸푸어선언(1917)으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본토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재건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거절하고 유대인들을 멸시하며 생각이 교만해진 이방인들에게서 등을 돌려 유대인들에게로 향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유대인들을 한 민족으로서 다시 다루기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편애하기 시작하시면 이방인들은 긴장해야만 한다. 그들은 출애굽 당시의 열 재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의 편애는 이방인들에게 닥칠 큰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회복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네가 본래의 돌올리브 나무에서 꺾여 본성을 거슬러 참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졌는데 하물며 본래의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본래의 올리브 나무에 얼마나 더 잘 접붙여지겠느냐?』(롬 11:24) 이 일은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완전히 회심하게 될 때 절정에 달할 것이다. 이방인들이 꺾이고 유대인들이 다시 접붙여지면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옷자락을 붙잡고서 애걸하게 될 것이다. 『정녕,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 계신 만군의 주를 찾으러 와서 주 앞에 기도하리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 날들에는 열 사람이 민족들의 모든 언어에서 나와 붙잡으리니, 즉 유대인인 사람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하리라』(슼 8:22,2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