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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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6월호>

눅 3:23『예수 자신은 약 삼십 세가 되어 사역을 시작하셨고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던 바) 요셉은 헬리의 아들이요,』
성경에서는 “사위”(son-in-law)도 “아들”(son)로 불린다는 사실에 주목하라(삼상 24:11,16). 헬리는 요셉의 장인(father-in-law)이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16에서는『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의 족보를,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족보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31절에서 두 사람 다 “다윗의 혈통”임을 주목하라(마 1:6).

눅 4:4『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시더라.』
모든 뉴에이지 역본들이 이 구절에서『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는 말씀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절이다. [게일 립링거(Gail Riplinger)의 <뉴에이지 성경 역본들, New Age Bible Version> 참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제거된 성경은 50년 이상이나 밥 존스 대학교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추천되었는데, 이 반 세기(50년)는 젊은이들의 인생 전부를 앗아간 셈이다.

눅 7:37『그런데, 보라, 그 성읍에 죄인인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예수께서 그 바리새인의 집에서 음식을 드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이 구절은 요한복음 9:31과 갈라디아서 2:15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필수적인 말씀이다. “죄인”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두 가지 용례로 사용되는데, 첫째로 그것은 두 다리로 서서 숨을 쉬는 피조물(사람) 전체를 가리키지만(롬 2,3장), 그 최초의 문맥에서(창세기 13:13에서 첫 번째 언급의 원칙에 주의하라.) 죄인은 “세리들과 죄인들”(눅 15:1; 18:13) 등과 같이 심히 부도덕하고 부패한 인간을 말한다. 이것이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과 바리새인들이 이 용어를 사용한 용례이다.

눅 11:4『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들도 용서하여 주옵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라.”고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99퍼센트의 헬라어 학자들과 90퍼센트의 히브리어 학자들의 눈에 조심스럽게 감춰진 위대한 예언의 “교리적” 진리에 주목하라. 누가복음에서는 유명한 마태복음 6:13 뒷 부분에 있는『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이라는 말씀이 생략돼 있는데, 이 사실은 왜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이방인 성경 변개자들이 마태복음에서 이 부분을 제거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들은 누가복음에는 이방의 화폐인 “므나”(pounds)를 가진 귀인(nobleman - 눅 19:13)이 나오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인의 화폐인 “달란트”(talents)를 가진 주인(lord - 마 25장)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태복음 6:13에 나오는『그 왕국』 속에는 이방인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누가복음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이방인들도 그 왕국 속에 포함되어 있는『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시다(눅 19:11). 산상 설교는 “율법 아래” 있는 “정통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 12:42-48에서도 “신실하지 못한 종”의 처우(47절)에 있어서 마태복음 25:30과 대조적인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한 경우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받는 이방인 성도이고, 또 한 경우(마 25장)는 “환란의 끝”에 심판받는 배교한 유대인이다. 이것이 바로 “므나”(pounds)와 “달란트”(talents)의 차이이다.]

눅 11:13『너희가 악하다 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시더라.』
이 구절은 인간의 악함에 대해서 잘 보여 주고 있는 아주 두드러진 말씀이다. 문맥 속에서 “악한” 사람은 기도하는 법에 대해서 강론을 요청한 그분의 제자들이다(1절).『너희가 악하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한 구절의 말씀으로 전미교회협의회(NCC:), 카톨릭, 국제연합(United Nations), 전국교육협회(NEA), 뉴스 매체의 모든 노력을 일거에 뒤집어 엎으신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악하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그분의 제자들도 포함된다(눅 14:26; 18:28).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선하게”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시 51:5).

눅 12:51『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니라, 오히려 분쟁케 하러 왔노라.』
이 구절은 절대적인 “증오 문학”(hate literature)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또한 누가복음 2:14에 나오는 천사의 성명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생 동안”에 “단 한 번”도 “땅 위의 화평을” 위해서 기도하신 적이 결코 없다(요 17:9). 누가복음 2:14에서 약속된 “땅 위의 화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류에게만 “한정”된 것이지 어떤 사람이나 대자연이나 진화나 과학이나 교육이나 “선한 뜻”이나 종교에 영광을 돌리는 인간에게 약속된 것이 아니다.

눅 16:15『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아시느니라. 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움이니라.”고 하시더라.』
이 구절에서도 성경의 “증오 문학”(hate literature)은 계속 이어진다. 이 말씀은 모든 예술, 음악, 교육, 생활 방식, 보도 내용, 복식(服飾) 규범, 헤어 스타일, 과학적 발견들, 철학 사조들, 역사적 사건들, 명사들, 종교들을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이 말씀은 그것이 계시된 이래로 모든 문명, 문화, 진보, 과학, 정부의 형태를 “심판”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절대 기준이다.

눅 17:30『이와 같이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하리라.』
휴거가 아니라 재림을 언급하고 있는 “날”(the day)이라는 단수형 명사에 주목하라. “날들”(days)이라는 복수형 명사는 재림의 “날”이 있기 전인 “노아와 롯”의 경우에 사용된다. 이것은 “휴거되기 이전”의 날들이 창세기 4-6장의 상황과 같고, “재림하시기 이전의 ‘날들’”은 창세기 11-13장의 상황과 같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눅 23:38『그의 위에는 헬라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명패도 있더라.』
인종의 삼중성에 주목하라. 헬라어가 “야펫”을 대표하고, 히브리어가 “셈”을 대표한다면, 함을 대표할 수 있는 것으로는 라틴어만이 남는다. 라틴교회는 “아프리카” 교회이다[말씀보존학회 刊 피터 럭크만 저 <짐승의 표, The Mark of Beast>를 보라.].

눅 23:42『예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니』
이 말씀은 “뉴 에이지를 위한 모든 우주 시대 역본들”에서 제거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절이다. 강도의 기도 중에서『주여』라는 말은 삭제되었다. “누군가가 죽은 강도가 그의 마지막 고통의 순간에서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죄인을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찌 “좋은” 사람들인가?

눅 24:33『당장 그 시간에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열 한 제자들과 그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them) 다 모여 있는 것을 보자』
이 구절은 카톨릭 교황과 그의 사제들이 “거룩한 명령”(Holy Orders)에 관해서 (50번이나) 또다시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말씀이다. 죄들을 “그대로 두”거나 “용서”하는 권세(요 20:23)는 단지 사도들이나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한정됐던 것이 아니었다.『제자들이 모인 곳에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며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이 죄사함을 받게 되며,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게 되리라.”』(요 20:19-23)는 말씀에 주목하라. 요한복음 20장에서 지칭하는 “그들은”(요 20:19,20,21,22) 바로 누가복음 24:33의 “그 사람들”(them)인데, 그들은 사도들이 아니었다.

눅 24:39『나의 손과 나의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고』
이 구절은 “부활한 몸”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필수적인 중요한 말씀이다. 창세기 2:23과 고린도전서 15:49,50을 보라. 아담의 최초의 몸이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는 “피”가 없었다. 모든 히브리어와 헬라어 학자들은 1900년 동안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참조 구절들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눅 24:44『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런 것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말했던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들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던 그 말이니라.”고 하시고』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애 이전과 이후의 모든 “정통 유대인들”에 의해서 인정된 기본적이고도 전통적인 구약의 정경을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께서는 로마 카톨릭에 의해 트렌트 공회의에서 규정된 성경의 정경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바티칸은 그들의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에, 주님께는 이것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로마는 ‘기독교’라고 자칭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공식적으로 저주한 유일한 조직체이다.

눅 24:51,52『주께서 그들에게 축복하실 때 그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니라. 그들이 주를 경배하고 기쁨이 충만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경배하고』와『하늘로 올라가시니라.』는 말이 90년 이상이나 네슬의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모두 삭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절이다. 이 말씀들은 “1970년 이후”에 그것에 대해서 1880년 당시만큼도 못한 어떠한 필사본 증거에 대한 제시도 없이 갑작스럽게 다시 네슬판에 나타났다. 이 사실은 1880년과 1970년 사이에 범했던 오류를 우리가 47년 동안 그것에 대해서 지적한 것에 따라 <킹제임스성경>을 근거로 헬라어 본문을 바로잡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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