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핵심 구절 연구 분류
말씀을 변질시킨 거짓 예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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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0년 09월호>
예레미야 2:19『네 자신의 사악함이 너를 고치며 네 타락이 너를 책망하리니 네가 주 너의 하나님을 버렸고 나를 두려워함이 네 안에 없음이 악하고 쓰라린 것임을 알고 또 보라. 만군의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예레미야에서 12번이나 나오는 “타락”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나온 곳이다. “타락”이 민족적인 타락이 아닌 개인적인 타락을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곳은 잠언 14:14이다. “타락”이 신약의 구원과 연관해서 나오는 곳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예레미야 4:23
『내가 땅을 보았더니, 보라, 형체도 없고 공허하며 하늘들에는 빛도 없더라.』
이 말씀은 종종 교리적으로 창세기 1:2에 잘못 적용되는 구절이다. 만일 이 구절이 예레미야가 창조 당시에 일어난 일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언급이라면, 그의 환상은 즉시 두 구절의 문맥에서 바뀌어 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25절의 “하늘들의 모든 새들”은 창세기 1:2 당시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떤 성읍(26절)도 없었다. 창세기 4장 이전에는 성경에 어떠한 성읍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구절이 교리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예언적인 내용이다. 이 구절은 환란 때의 이 지상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다(26-30절, 특히 31절을 주목하라).
예레미야 7:18
『자식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비들은 불을 지피며 여인들은 가루 반죽을 하여 하늘의 여왕에게 과자를 만들며 다른 신들에게 술제물을 부어 그들이 나로 격노케 하였느니라.』
이 “하늘의 여왕”은 로마 카톨릭이 말하는 성모(?) “마리아”로 예레미야 44장에서는 세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되어 있다. 교황들이 한 유대 여인에게 붙여준 이 말은 아주 정확한 호칭이다. 재판관기 17:10에서 기원이 된 로마 카톨릭은 기독교(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는 브라만교(Brahmanism)나 자연 숭배 사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예레미야 8:8,9『너희가 어떻게 “우리는 현명하며 주의 율법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보라, 그가 확실히 그것을 헛되이 만들었으니 서기관들의 펜이 헛되도다. 현명한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나니 그들이 당황하며 잡히는도다. 보라, 그들이 주의 말씀을 거절하였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느냐?』
ASV, RV, NASV, RSV, NRSV, NIV, NKJV 등을 편집한 개정 위원회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이다. 『서기관들의 펜』은 모두 헛되다. 그들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1880년에서 1990년까지 <킹제임스성경>을 개정한 200여 종 이상 되는 영어 성경들이 산출해 낸 열매라고는 성경에 무지한 민족, 음행하는 은사주의자들, 동성 연애하는 신부들, 두 자리수 물가고(double-digit inflation), 선교지의 황폐화, 아마추어 심리학자에 지나지 않는 사역자들 아니면 성경에 대해 흠잡기 일삼는 파괴적 비평가들, 에이즈 같은 성병의 증가, 이혼, 강간, 로마 황제(네로 같은)도 깜짝 놀랄 만한 엽기적인 살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이 혼란스러운가? 『그들이 주의 말씀을 거절하였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느냐?』 그들에겐 지혜가 전혀 없다.
ASV, RV, NASV, RSV, NRSV, NIV, NKJV는 신구약 성경 어디에서도 만년필형 회중 전등(penlight)만큼의 빛줄기도 비춘 적이 전혀 없다.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느냐?』 전혀 없다. 성경은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잠 9:10)라고 말씀한다(사 66:2 주석 참조). 본문의 문맥에 주의하라. “평화, 평화”를 말하는 위선자들은 전혀 평화롭지가 않은 때에도, 평화만을 외쳐댄다(11절). 이것이 바로 “평화롭게 와서”(단 11:21), “평화로 많은 것들을 멸할”(단 8:25) 위선자들이다. 그들을 식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요 17:9)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한다.
예레미야 14: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하지 마소서. 우리와 더불어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파기하지 마소서.』
이 구절은 모든 무천년주의자들과 후천년주의자들과 캠벨주의자들과 카톨릭 교도들과 감독 교회 교인들의 전체 예언적 가르침을 한꺼번에 뒤엎을 만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마태복음 19:28과 25:31에서 발견되는 “그의 영광의 보좌”라는 표현은 하늘에 있는 어떤 보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모든 자들은 이 보좌가 누가복음 1:32에서 “야곱의 집”을 통치할 왕(눅 1:33)께서 앉으실 보좌로서 언급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보좌”(행 2:30)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통치하시고 계신 하늘에 있는 영적인 보좌라고 가르친다.
“주의 보좌”는 하늘이 아닌 예루살렘에 있게 될 것이다(렘 3:17). 이 보좌는 “다윗의 보좌”(렘 13:13)인데, 여기서는 “주의 영광의 보좌”라고 불린다. 이 보좌는 예레미야 22장에서 세 번씩이나 언급되는데, 이 보좌는 솔로몬, 르호보암, 여호사밧, 여호야킴, 요시야, 시드키야가 앉았던 바로 그 보좌이다. 이것은 이 지상에 있는 한 나라의 한 도성 안에 있는 한 장소 위에 마련된 보좌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19장과 25장에 등장하는 “그의 영광의 보좌”이고, 예레미야 14장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보좌”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18:7-10
『내가 한 민족과 한 왕국에 관하여 그것을 뽑아 버리고 붕괴시키고 파멸시키리라고 말할 경우에 만일 내가 말했던 그 민족이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생각했던 그 재앙에서 돌이키리라. 내가 한 민족과 한 왕국에 관하여 그것을 세우고 심으리라고 말할 경우에 만일 그것이 내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내 음성에 복종하지 아니하면 그때는 내가 그들에게 유익을 주리라고 말했던 그 복에서 돌이키리라.』
이 구절들은 공립 학교 어디에서나 어떤 공립 학교의 기록에서도 인용됐을 리가 없다. 미국 시민 자유 연합(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에서는 각 국가의 수도에 있는 국가 건물 어느 곳에서도 이 말씀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민족들의 운명에 관해서 명령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들을 무시하는 자들을 파괴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한 민족』과 『한 왕국』에 대해 철저히 주목하라. 이 명령은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명령은 어떤 민족과 어떤 왕국을 위한 것이다. 예루살렘을 불태운 느부캇넷살은 다른 어떤 민족의 표본이다. 『만일... 그 민족이...』 이 민족의 신원은 불확실하다. 이 민족이 누굴지 한번 맞춰 보라. 이집트, 페르시아, 앗시리아, 바빌론, 그리스, 로마, 영국, 독일, 인도, 러시아, 미국,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등등.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을 뽑아 버리시고, 붕괴시키시며, 파멸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을 심기도 하시고 또 세우기도 하신다. 이것이 이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바이다. 국제 연합(UN)의 모임은 이것을 믿지 않으며, 또 어느 누가 UN에서 이것에 관해 언급하도록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 23:16-18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경청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로 우쭐하게 하며 그들 자신의 마음의 환상을 말하고 주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아니하느니라. 그들은 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여전히 말하기를 “주께서 말씀하시나니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며 또 그들은 자기 마음의 상상대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말하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누가 주의 계획에 참여하여 그의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그의 말을 주의하여 들었느냐?』
예레미야 23:21
『내가 이 선지자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음에도 그들이 달리며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는데도 그들이 예언하였도다.』
예레미야 23:25
『내가 그 선지자들이 말하는 바를 들었는데 내 이름으로 거짓들을 예언하여 말하기를 “내가 꿈을 꾸었도다, 내가 꿈을 꾸었도다.” 하는도다.』
예레미야 23:28
『꿈을 가진 선지자는 꿈을 말하며 내 말을 가진 자는 내 말을 신실하게 고할지니라. 쭉정이가 밀에게 무엇이겠느냐? 주가 말하노라.』
예레미야 23:35,36
『너희는 각기 자기 이웃과 각기 자기 형제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주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고 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너희는 “주의 엄중한 말씀 이라.”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켰음이라.』
1880년 이후의 모든 성경 개정자들과 다른 성경 역본들로 가르치는 모든 성경 교사들을 바로잡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들 중의 한 부분이다. 이 구절들은 인가난 어떠한 주요한 기독교 대학이나 신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말씀이다. 문맥에서 모든 구절들은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1. “주의 입”(16절)은 그분의 말씀들(왕상 13:21, 삼상 15:20,22,23 참조)을 언급하는 것이지, “믿음의 근본 사항들”이나 “주요 교리들”이나 “성경적인 원칙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 모든 거짓 교사들은 긍정적이고, 긍정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
3. 18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분의 말씀들(29,30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 말씀들은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문자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21절)을 전파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것도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전파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적도 없다.
5. 잭 케네디(Jack Kennedy, 음행하는 우상 숭배자)와 마틴 루터 킹 2세(M. L. King Jr., 음행하는 마르크스주의자)는 둘 다 미국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꿈”에 관해서 말했다.
6.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35절)이 전파될 것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믿음의 근본 사항”이나 “긴장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근본주의 회의에서 “투쟁적인 입장”에 서는 것을 언급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들(36절)과 함께 역사해야만 한다(35,36절).
이 말씀들은 말씀을 강탈하는 도둑들(30절)에 의해서 변질되어 왔다(36절). NKJV는 성경에서 500구절 이상, NASV는 10,000구절 이상을, NIV는 30,000구절 이상을 강탈했다. 이것이 바로 고등 학력으로 인가받은 어떤 신학원의 교실이나 인가 없이 인정받는 어떤 보수주의나 근본주의 학교에서도 이 구절들이 가르쳐지지 않는 이유이다.
예레미야 30:7
『슬프도다! 그 날이 크므로 어떤 때도 그와 같지 않나니 그 날은 야곱의 고난의 때라. 그러나 그는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교회의 휴거가 환란 전에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하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요한계시록 7장과 15:3과 함께 다니엘의 칠십째 주에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시대에는 “구원받은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구원받은 유대인들”은 전혀 없다. 그러나 다니엘의 칠십째 주에 이들은 두 개의 구별된 그룹이다. 환란 시대는 “교회의 고난의 때”가 아니라 『야곱의 고난의 때』이다. 고난에서 구원받는 대상은 “야곱”이지(구절을 보라), 이 시대 지상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문맥에서 “야곱”은 “그리스도의 몸”(10절)과 어떤 식으로든지 연관이 없다.
예레미야 36:21-24
『왕이 예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자 예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왕과 왕 옆에 서 있는 모든 고관들의 귀에 그것을 읽어 주었더라. 그때 왕이 아홉째 달에 겨울 궁에 앉았고 그의 앞에는 화덕 위에 타오르는 불이 있더라. 예후디가 서너 장을 읽고는 그것을 손칼로 잘라서 화덕에 있는 불에 던지니 온 두루마리가 화덕에 있는 불에 다 탔더라. 그 왕이나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씀들을 듣고서도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더라.』
예레미야 36:1-32까지의 모든 구절들은 성경 개정자들과 첨가하고 삭제하는 자들과 비평가들을 빗대어 기록된 말씀이다. 이 구절들은 성경에서 “축자 영감”에 대해서 정의내리고, “성경의 상이한 판본들”과 “영감받은 번역본들”과의 차이점을 정의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미국에 있는 모든 보수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의 신학원에서는 사역에 헌신한 자기 학생들에게 예레미야 36장의 주요 내용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10년 동안 태평양 연안 성서 침례 대학(PCBBC)에 가서 공부하고, 밥 존스 대학교(BJU)에서 4년 간, 달라스(그레이스) 신학대학원[Grace Theological
(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서 5년 간 더 공부해 본다 해도, 결코 예레미야 36장을 접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장에 있는 모든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 당신은 왜 이 구절들이 프로반, 로스, 쿠틸렉, 던칸, 헛슨, 민턴, 밥 존스 3세, 웹, 프리억슨, 윌밍턴, 제임스 프라이스 등과 같은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을 성경 전체에서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1. “축자” 영감은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말하는 것이 “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2,4,17,18절). 이것은 바로 모든 배교자들(NKJV, ASV, RV, NASV, NIV, RSV, NRSV)이 『예언은 ···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고 기록된 베드로후서 1:21을 변개시킨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영과 호흡(영감)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욥기 32:8과 욥기 27:3; 33:4을 비교해 보라.
이것은 또한 성경의 필사에 있어서 우리가 “축자적인 영감”이라는 용어를 최초의 원본에만 한정시키고,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말은 우리가 가진 성경 사본들(딤후 3:16)에 한정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직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만이 이 위대한 진리를 볼 수가 있었다.
2. “최초의 원본”이 기록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는데(8,11,17,22-24절), 이는 그들이 이사야 66장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지금 여기 24절에서 언급되어 있다.)
3. “최초의 원본”이 파괴되었을 때, 그 말씀은 원본과는 다른 부가적인 말씀들과 함께 “다시 기록”되었다(32절).
4. 두 개의 다른 사본들은 모두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었고, 비록 부가적인 기록들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서로 다른 복음서들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부분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지 주목하라. 사복음서는 모두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복음서들 사이에는 전혀 모순된 것이 없다.
5. “원본”을 필사하고 보존하라고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10절, 20절과 26절에서처럼 “서기관,” 바룩은 서기관이었다.) 예레미야를 죽이기 원했던 것은 바로 성경 필사자와 개정자였다(렘 37:15, 서기관 요나단). 어떤 서기관도 창세기에서 사무엘하까지 기록된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필사본의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원본이 제시되자, 그들은 그 말씀을 없애버리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새로이 발견된 고대 필사본”이나 “원어에 대한 향상된 지식” 또는 “최근의 고고학적인 발견들” 등은 성경의 “보존”이나 “판매 촉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바로 사람들의 마음의 자세가 대중들에게 유용한 무엇을 생산해 내고, 무엇을 잔존시키며, 무엇을 만들어 낼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필사하고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은 공식적인 서기관들은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하는 가장 위험한 대적들로 변하고야 말았다(마 7:29; 9:3; 12:38; 15:1,2; 16:21; 20:18; 21:15; 23:2,13-15,23,27,29,34; 26:3; 27:4).
오늘날 이들 배교한 비평가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나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구약의 모든 서기관들이 공언했던 것을 그대로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요 9:28,29).
예레미야 50:20
『주가 말하노라. 그 날들과 그 때에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아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유다의 죄들을 찾아도 발견되지 않으리니 이는 내가 남겨 놓은 그들을 내가 용서할 것임이니라.』
로마서 11:26과 히브리서 8:8-12과 조화를 이루는 이 구절은 히브리서 8장의 “새 언약”이 교회 시대에는 전혀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