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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죽음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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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5월호>
8:12,13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 삼분의 일이 강타를 당하여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이 그 삼분의 일을 비추지 못하고 또 밤도 마찬가지더라. 내가 보고 들으니,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이는 세 천사가 이제 불려고 하는 다른 나팔 소리들 때문이라.”고 하더라.』이 모든 일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일곱 나팔이 환란 중간에 비로소 울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도들이 구하던 복수도 환란 중간이나 중간을 바로 지나서 시작된다. 그들에게 “잠시만 더 쉬라”(6:11)는 말은 이 나팔 재앙들이 환란 중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8:12의 하늘의 현상들은 6:12에서 일어나는 하늘의 현상들과 어울리는 구절이다. 따라서 계시록 7장은 삽입장임을 알 수 있다). 이 현상들은 환란 끝에 일어난다.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내가 보니, 하늘에서 별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데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를 받더라.』
이 별이 “그”로 지칭되는 인격임을 주목하라(계시록 1:20에서 우리는 별이 천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 이 구절은 학자들로 하여금 고민에 빠지게 하는 구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엉터리이며 동화나 전설 또는 허구라고 일축해 버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끝없이 깊은 구렁은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성경은 사탄이 바닥이 없는 특별한 구덩이같은 “구덩이 사면”에까지 내려갔다고 말한다(사14:15). 바닥이 없는 구덩이는 땅을 파내려 가면 가운데가 빈 도우넛과 같은 모양이다. 성경은 땅의 중심에 그러한 구덩이가 있다고 말한다(지구의 중심을 나타내는 지리부도와 지질도를 보면 알 것이다!). 섭씨 235도를 훨씬 웃도는 이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마귀의 세력들(6장에서 언급된 것처럼)이 환란기간 동안에 쏟아져 나온다. 마귀의 세력들은 나올 때에 “바닥”이 없는 구렁에서 나오는데, 이 구렁은 문자 그대로 “사면” 뿐이다.
9:2,3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을 여니,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는데 해와 공기가 그 구렁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더라. 또 그 연기에서 메뚜기들이 땅 위로 나왔는데 땅의 전갈들이 지닌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이것들은 초자연적인 “메뚜기들”이다. 보통 메뚜기들이라면 연기에 질식할 것이고 “왕이 없다”(잠30:27). 이 메뚜기들에게는 왕이 있지만(11절), 보통 메뚜기들은 “지도자” 없이 떼지어 다닌다. 이 메뚜기들은 흉폭한 괴물들, 즉 반인반마(半人半魔)의 형상이다. 중국, 몽고, 타타르, 독일, 이태리의 오랜 전통에 따르면 이러한 것들이 땅의 중심에서 나온다고 한다. 〔징기스칸이 땅에서 올라와 언젠가 미래에 “나타나서” 그의 군대가 유럽을 다시 격퇴할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9장의 이 군대들은 동쪽에서 오고(14-16절), “기병대”(16절)이며, “동방의 왕들”(계16:12)이라 불린다. 그러므로 몽고 군대에 관한 이야기는 신화나 허구가 아니며 실제적으로 곧 일어날 어떤 사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구렁에서 흉폭한 “메뚜기들”이 나온다. 마치 그리이스 신화에서 아폴로가 지옥에서 나오듯이, 유대 전통의 신화가 담긴 조하르(Zohar)에 “구세주”는 이스라엘 구원을 기다리며 지하 낙원에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바빌론 탈무드에서 바빌론 산헤드린 98 A난에는 “구세주가 로마의 문들에 나타날 것이다!”고 써 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이 미래 기간에 로마 교황을 구세주로 인정할 것을 의미한다[요한복음 19:15과 『짐승의 표』(말씀보존학회 근간)를 보라.]
9:4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땅의 풀이나 또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다만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하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치라고 하더라.』
이 짐승들(계 9장)이 7:3,4 후에 구렁에서 나오는 이유는 땅과 바다와 나무들이 7:3,4이 지나서야 비로소 손상시키도록 허락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시록 8:7의 일들이 7:3,4 뒤에 일어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계시록 7장이 삽입 장임을 뜻하는데 8:7,12과 9:4 전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9:5 『또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그 사람들을 죽이지는 말고 다섯 달 동안 고통만 주라고 하는데, 그 고통은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의 고통과 같은 것이라.』
여기서 고통이 다섯 달이나 계속되는 것은 대학살을 시작하는 자가 다섯번째 천사이기 때문이다. “다섯”이라는 숫자는 매우 흥미로운 숫자이다. 구렁을 여는 자는 “다섯번째” 천사이며, 5절에서 사람들은 다섯 달 동안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죽기를 찾으나 죽지 않는다(6절). 구약을 연구해 볼 때 “다섯”이라는 숫자는 항상 “죽음”을 나타내지(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다섯째 달의 다섯째 날에 멸망시켰다), 결코 은혜를 뜻하지 않는다(때때로 어떤 설교자들은 ‘다섯’이 “은혜”의 수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섯”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은혜의 수로 보는 가정에서 나온 실수이다. 다섯은 모든 사람의 죽음에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숫자 “5”가 은혜의 수단으로 성도들과 죄로 저주받은 세상에 흐르도록 열린 것을 뜻함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에 한 번 나타났다고 해서 그 숫자의 의미를 성경에 고정할 수는 없다). 구약과 신약에서 “다섯”이라는 숫자를 연구해보면 한 가지로 뜻이 명백해지는데 그것은 “죽음”이다. 확실히 성경은 “다양한 해석”에 대한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그룹들”에 관한 연구(계 4장)에서 우리는 그룹이 다섯이었음을 알았다. 보좌 주위에 네 그룹이 있고 “보좌 위에” “기름부음 받은” 다섯번째 그룹이 있었다. 이 그룹은 보좌를 “덮는” 특별한 그룹이었다. 성경은 이 다섯번째 그룹이 두 뿔 달린 소의 얼굴로 나타나는 “루시퍼” 또는 “사탄”인 “빛의 천사”임을 수십 개의 관련 구절들에서 제시한다. 이 그룹은 다섯번째 그룹이었기에 히브리서 2:14에서 우리가 읽듯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는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심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제거하시며』인데, 마귀는 그가 “다섯째” 그룹이기 때문에 “죽음의 세력”을 갖는다. 그는 “마귀”(Devil)라고 불리며, “죽음”(death)의 세력을 가졌고, “다섯째” 그룹이었기 때문에 “다섯”(fifth)이 죽음과 관계있음을 재확인한다.
창세기 5:5 『아담이 살았던 모든 날 수는 구백삼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우연의 일치로 이 땅의 처음 사람은 성경에서 오장 오절에서 죽는다! 죽음은 다섯 번째 그룹이고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와 관련이 있다. 사도행전 5:5에서 한 사람이 쓰러져 죽는다. 계시록 9:5에서 다섯째 천사는 이 메뚜기들이 쏘는 고통을 알리며, 메뚜기들은 다섯 달을 고통주고 사람들은 죽음을 찾는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메이 데이”(May Day)는 전투 조종사들에게 공중 전에서의 경보 신호이다. “메이”(May)는 다섯째 달이다. 해상에서 조난 신호는 다섯이다(즉 다섯은 배가 해상에서 침몰될 때 부여된 숫자이다). 국제 조난 주파수는 500킬로 싸이클이며 S.O.S.를 발한다. 해군에서는 사람이 배 밖으로 떨어지면 호각을 다섯 번 분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창세기 35:18 『그녀의 혼이 떠나려할 때 (그녀가 죽을 때) 그녀가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베냐민이 태어날 때 그의 어미가 죽는다. 자, 어떤 일이 이어서 일어나는지 보라. 여러분이 단지 읽음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요셉이 자기 앞에서부터 그들에게 음식을 집어 주는데 베냐민의 음식은 그들 중 누구보다 다섯 배나 되더라. 그들이 요셉과 함께 마시고 즐거워하더라』(창43:34). 『그들 모두에게 그가 옷 한 벌씩을 각자에게 주더라. 그러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 개와 옷 다섯 벌을 주더라.』 (창45:22). 어떤 사람이 “당신은 구절들을 짜맞추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문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구절들이 짝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알기 위해 구절들을 찾아보려는 수고조차 해보지 않았다. 성막을 만들 때 제물을 드리는 번제단의 가로 세로는 오 규빗씩이다(출27: 1). 구약의 예배 때에 피를 뿌리는 모든 번제단은 가로 세로가 각각 “오 규빗”이었던 것이다.〕
사무엘하에서 뜻밖에 우리는 죽음에 관련하여 언급된 사람들의 다섯째 갈빗뼈를, (세 번) 보는데 심지어 아담의 다섯째 갈빗뼈도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다. 아담은 아내를 얻기 위하여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옆으로 돌이키기를 싫어하니 아브넬이 창 뒤 끝으로 그를 다섯번째 갈비뼈 아래를 치니 창이 그 뒤로 나온지라. 그가 거기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으니라. 아사헬이 쓰러져 죽은 곳까지 왔던 자들이 멈춰 섰더라』(삼하2:33). 『그들이 밀을 가지러 온 체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다섯번째 갈비뼈 밑을 찌르고 레갑과 그의 아우 바아나는 도주하니라』(삼하4:6). 『아마사는 요압의 손에 있는 칼에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다섯번째 갈비뼈를 찌르니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져 나와 다시 찌르지 아니
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그리하여 요압과 그의 아우 아비새가 비기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니라』(삼하20:17).<개역성경에는 ‘다섯번째 갈비뼈’에서 ‘다섯번째’라는 말이 삭제되어 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죽음같은 무의식의 깊은 잠이 들었을 때(마지막 아담의 죽음의 모형), 하나님께서 그의 옆구리에서 한 갈비뼈를 취해 여자로 만드셨다. 아담은 그리스도처럼 그의 신부를 얻기 위해 죽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몸이 그 분의 신부이듯이 아담의 아내는 그의 몸에서 나왔으며 그녀가 나온 부분은 다섯째 갈비뼈이다.
『남편들아, 너희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엡5:25). 첫 남편과 아내는 아담과 이브였는데, 여기서 한 가지를 확실히 정리하면 여러분의 아내는 여러분의 다섯번째 갈비뼈이며, 그녀는 죽음과 연관된다! 아담은 그녀를 얻기 위해 죽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경우 그것은 “은혜”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일한 은혜의 경우로 여기서도 죽음이 여전히 내재한다. 옛날 노래에도 “그 분은 다섯 군데나 피흐르는 상처를 지니셨네”라고 되어 있다. 다섯 군데의 상처이다! 한 군데는 이 손에, 두번째는 저 손에, 세번째는 오른 발에, 네번째 상처는 왼 발에, 그리고 다섯번째 상처는 심장 아래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음(DEATH)을 당하셨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