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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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뛰어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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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6월호>

1:4-9 『그는 이처럼 천사들보다 더 월등하게 되셔서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이름을 유업으로 받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중 어느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적이 있느뇨? 또 다시, 그 분께서 첫째로 나신 이를 세상으로 데려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하라.”고 하셨으며 또 그 천사들에 관해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는 자기 천사들을 영들로, 자기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나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 무궁하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의 홀이니이다. 주께서는 의를 사랑하고 죄악을 미워하셨나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주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두셨나이다.”라고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4부터 펼쳐지는 본문은 히브리서의 주제에 걸맞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우월하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4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그 이름에 있어서 월등하시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중 어느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5절).
없다. 결코 없다. 천사들은 아무도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다.
이 말씀은 시편 2:7의 인용인데, 시편 2편의 문맥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느냐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시기를 놓고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먼저 존 칼빈이나 개혁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기 1장 이전에, 즉 영원 전에 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영원 전에 구원받을 자를 택하셨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비성경적인 철학에 근거한 것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피조된” 신이 된다. 그들은 시편 2:7을 창세기 1장 이전의 사건으로 놓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깎아내리고 있다.
다음으로 가드너 테드(Gardner Ted)나 허버트 암스트롱(Herbert Armstrong) 같은 근본주의자들은 이 “낳았다”는 시기인 “오늘”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에 적용한다. 그러나 부활을 탄생이라고 말하는 성경구절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오늘”에 대한 유일한 성경적인 해석은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성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셨듯이 성자 하나님도 영원 전부터 계셨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면 그것은 육체로 태어나신 것 외에는 적용할 길이 없다. 예수님께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과 같은 몸으로 세상에 오실 때 성령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5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하는 것이다.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적이 있느뇨?』(5절)
이 구절은 사무엘하 7:14의 인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과 언약을 세우실 때 그에게 영원한 왕국과 그 보좌를 약속하셨다. 이 언약은 솔로몬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성취된다. 사무엘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재림하실 때 다스릴 왕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그 부분에서 예수님의 탄생 부분만을 인용해 온 것이다. 물론 히브리서 1장의 내용도 8절에 나오는 그 분의 재림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그 분이 초림과 재림에 있어서도 천사들보다 “월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 무궁하며 주의 왕국의 홀은 의의 홀이니이다』(8절).
예수님께서는 통치에 있어서도 천사들보다 우월하시다. 7절에서 천사들은 “사역자”로 등장한다. 그들에게는 섬김만 있을 뿐 통치권은 없다.
본문의 인용은 시편 45:6의 인용이다. 이것은 아들 하나님께 주어지는 왕국에 대한 영원한 언약인데, 이 언약은 또한 앞에서 언급되었던 사무엘하 7장의 “다윗의 언약”과 일치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아들로 오셔서 다윗의 보좌에 앉아 영원히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통치권을 뜻하는 이 “홀”(scepter)은 이미 창세기 49장에서 등장한다. 『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실로가 올 때까지 입법자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니 그에게 백성의 모임이 있을지어다』(창 49:10).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에서 나오시는 통치자시다. 그분은 영적인 통치권 뿐 아니라 실제적인 땅의 통치권을 가지셨다. 그 분이 재림하실 때 그 분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다윗의 보좌에 앉으셔서 온 땅을 의로 통치하실 것이다.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8절).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한다. 아들이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아들을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부르는 것은 디모데전서 3:16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성경은 그 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개된 성경들은 “...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라고 변개시킴으로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가려버린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주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두셨나이다』(9절).
이 구절에는 삼위의 하나님께서 모두 나타나신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성부), 곧 주의 하나님께서 주께(성자) 기쁨의 기름(성령)을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두셨나이다』. “기쁨의 기름”은 성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성령이 기름으로 유형화된 것은 구약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에서 확인될 수 있다(시 133:2). “주의 동료들”은 문맥적으로 주님과 마찬가지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을 말하는데, 곧 아론이나 그의 아들들 같은 제사장들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주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계신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성령의 기름이 다른 모든 제사장들이 받은 기름보다 월등하다는 말이다. 다른 모든 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보다 월등하실 뿐 아니라 모든 제사장들보다 월등하시다. 또한 시편 133편에서 기름이 아론의 머리 위에 부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왜냐하면 그 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이다.


1:10-14 『또 “주여, 주께서 태초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하늘들도 주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이니이다. 그것들은 멸망할 터이나 주께서는 영존하시오니 그것들은 모두 겉옷처럼 낡아지리이다. 주께서 그것들을 옷처럼 말아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그것들은 바꿔질 것이나 주는 동일하시며, 주의 연대는 끝이 없으리이다.” 하셨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중 어느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느냐?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

13,14절에서는 9절에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우월하시다는 내용이 계속되는데, 문맥 중간에 창조주로서의 능력과 영원성을 다루는 세 구절이 삽입된 것이다(10-12절).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영원하다는 것과 그 분의 보좌 또한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것만큼이나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것들은 멸망할 터이나 주께서는 영존하시오니 그것들은 모두 겉옷처럼 낡아지리이다. 주께서 그것들을 옷처럼 말아 버리시리니』(11,12절).
11절에서는 우주가 낡아진다(waxed)고 말하고 12절에서는 우주를 옷처럼 말아버린다(fold up)고 말한다. 진화론은 모든 것은 점진적으로 발전(진화)한다고 하나 성경은 멸망한다고 한다. 성경에 따르면 우주는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우주는 옷처럼 낡아질 것이다. 이 사실은 이사야 51:6에서도 제시되어 있으며, 성경의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는 바이다(마 5:18, 막 13:31, 시 102:26, 벧후 3:7, 계 20:11). 『너희 눈을 하늘들로 들어올리고, 그 아래로 땅을 살펴보라. 이는 하늘들이 연기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요, 땅이 옷처럼 낡아지며 거기에 거하는 자들은 같은 모양으로 죽으리라. 그러나 나의 구원은 영원할 것이며 나의 의는 폐기되지 아니하리라』(사 51: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옷”으로 비유하시는데, 이것은 우주가 소멸된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새 우주를 창조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벧후 3:13).
우주는 하나님의 옷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옷을 벗으시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때 군사들에 의해 벗겨진 것이고, 다른 한 번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옷인 현재의 우주를 벗어버리시는 것이다. 첫 번째의 벗겨짐은 “수치스러운 벗겨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 죄가 되시고(고후 5:21) 저주가 되셔서(갈 3:13) 수치스럽게 옷 벗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분이 받으신 수치는 사실상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였다.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되고 그 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우리의 수치는 면해졌으나 대신 주님께서 그 모든 수치를 지고 죽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 그 분의 의를 받기를 거부한 자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벌거벗은 채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히 4:13).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는 벌거벗었을지라도 그 분의 의를 입었으므로 책망을 면할 것이나, 그 분의 의를 입지 않은 죄인들은 그 벌거벗음으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벗으시는 그 날, 즉 하늘과 땅을 불로 소멸하시는 그 날에 주님께서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그 분은 큰 위엄과 권능으로 우주와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때에 그 분의 영광은 크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벗으심은 “영광의 벗으심”이다. 첫 번째 벗겨지심은 죄를 정결케 하는 벗겨지심이고, 두 번째 벗으심은 심판의 벗으심이다.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14절)
여기서 천사들은 “섬기는 영들” (ministering spirits)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하나님의 어떠한 일들을 맡아 사역하는 존재들이다. 어떤 천사들은 “전달자”의 역할을 하나 대부분의 천사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섬기는 영들”이다.
우리는 보통 “수호천사”라는 말을 듣는다. 어린이들이라든지 선교사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천사들이 돕는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것은 본문에서 천사들이 “섬기는 영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태복음 18:10을 근거로 한 생각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 천사들은 우리들을 도울 수 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도 한 천사가 도왔고(눅 22:43), 광야에서 시험받으셨을 때도 천사들이 힘을 돋워 드렸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특별한 경우로서, 천사들이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미 구약에 예언되어 있던 부분이다(시 91:11). 바울도 풍랑을 만났을 때 배 안에서 천사와 함께 있었다(행 27:23).
그러나 본문에서 천사들은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섬기는 영들이다. 그러면 누가 구원의 상속자들인가? 누가 구원을 유업으로 받는 자들인가? 분명한 것은 이 시대, 즉 교회시대에는 아무도 구원을 “유업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업이라는 말은 단순히 아들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경에서 유업은 대부분 어떠한 행위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받도록 수고했을 때 유업을 받는다(롬 8:17, 골 3:24). 산상설교에서는 온유한 자들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고 했다(마 5:5).
그러나 이 시대에는 아무도 구원을 유업으로 받지 않는다. 이 시대에 구원은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지 결코 행위로 얻는 유업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천사들이 “구원의 상속자들”, 즉 구원을 유업으로 받는 자들을 섬긴다는 말은 교리적으로 교회시대와는 상관 없는, 어떤 다른 시대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왕국복음이 다시 전파되는 “마지막 날들”(히 1:2), 즉 대환란 기간이 된다. 그 기간에 왕국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왕국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 대환란 직전에 교회는 이미 휴거되어 올라갔기에 그때 남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왕국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구원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또 왕국의 상속자들이라는 말은 “왕국의 자녀들”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마 8:12).
그러므로 이들은 일차적으로 왕국복음의 대상자들인 유대인들이다. 대환란 기간 중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행위”를 해야 한다(계 12:17). 천사들은 바로 이렇게 수고를 하여 왕국을 상속받는 자들을 돕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유대인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8:11,12에서는 원래의 왕국의 자녀들 중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나가고 이방인들이 그 왕국을 유업으로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왕국의 자녀들은 바깥 흑암에 던져져서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고 있을 것이라』(마 8:11,12). 분명 이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구원에서 떨어져나갈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3,4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환란 때 행위로 왕국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들 외에도 구원의 상속자들이 또 한 부류 있는데, 그들은 천년왕국 때에 구원받은 부모에게서 원래부터 구원을 받은 채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지금 교회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후에 구원을 받아야 하나, 천년왕국 때에는 사람들이 구원을 상속받고 태어난다. 왜냐하면 천년왕국 자체가 구원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구원은 지금 신약시대의 구원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들이 특별한 죄로 인해 저주받지 않고는 구원을 유지한다(사 65:20). 천사들은 바로 이러한 자들, 즉 계시록 20장 이후에 천년왕국에 있는 부모들로부터 구원을 상속받아 태어난 자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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