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구절 해설 분류
꺾여지는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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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12월호>
이구절 역시 난해구절 코너에서 다루었던 히브리서 6:4-6이나 야고보서 2:24 등과 같이, 한 번 구원받은 후 그것을 합당한 행실로 유지시키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는 알미니안주의나(히 6:4-6), 아예 구원은 믿음과 행위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으로(약 2:24) 우리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구절이다. 마틴 루터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사랑했고, 특히 갈라디아서에는 그의 아내의 이름을 붙여 주기까지 했다. 로마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Justification by faith)이며,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지켜지는 의로움(Justificaiton kept by faith)이다. 즉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요, 의로움이 지속될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믿음에 의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교리에 뿌리박지 못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본문(롬 11:21)과 같은 구절들이 나오기만 하면 구원에 대해 불안해 하거나 의심을 갖는다. 사실 많은 훌륭한 주님의 일꾼들 중에도(예를 들면 요한 웨슬리) 이러한 구절들(마 24:13, 히 3:6; 4:1; 10:26,27, 마 7:21-23, 계 3:5, 약 2:24 외 약 500여 구절이 있음)에 당황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타락하면 구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지 못한(딤후 2:15) 데서 발생된 것임을 본 학회지와 기타 여러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해 왔다. 이는 이 방법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요, 성경을 읽기 전에 반드시 채택해야 될 성경해석 방법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이단은 하나님께서 구분하신 유대인, 이방인, 하나님의 교회(고전 10:32)의 구분을 무시하거나 율법시대, 은혜시대, 환란시대 및 천년왕국 시대 등과 같은 구분을 무시하거나,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구분을 무시하고 성경 구절들을 문맥과 상관 없이 아전인수격으로 사사로이 해석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특히 환란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교리들(야고보서에서부터 유다서까지 일반서신의 일차적인 교리적 적용은 환란시대의 유대인에게 해당된다. 물론 영적인 적용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능하다.)을 교회시대에 적용시킴으로써 종말론 교리를 왜곡시켜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20세기의 이단들은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로마서 9-11장 부분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이스라엘, 그들의 메시야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이스라엘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롬 11:1)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회복하셔서 메시야가 다스리는 영원한 왕국을 세우신다. 바울은 참올리브 나무와 돌올리브 나무의 비유를 들어 비록 이스라엘의 실족은 참올리브 가지들 가운데 얼마가 꺾여진 것이며, 이때 이방인들인 돌올리브 나무가 접붙여져서 참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기름진 것을 함께 받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 로마서 11:21,22은 접붙여진 돌올리브 나무 역시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꺾으신 것처럼 아끼지 아니하시고 꺾어 버리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선한 교리로 무장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에서 또 한 번 나약한 양심에 의해 두려움과 의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조금만 살펴본다면 이 구절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구원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자들은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되려고 하는 자들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다. 갈 5:4).
로마서 11장의 문맥은 유대 민족과 이방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집단적”인 다루심이지 개개인의 구원이 아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이 있었듯이 비록 가지들의 일부는 꺾여졌어도 열두 사도들과 다락방의 120명, 그리고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듯이 남은 무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도행전 28장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 대해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령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우리 조상에게 잘 말씀하셨도다.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라.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 귀는 듣는 데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회심하지도 못하게 되어 나로 그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인들에게 보낸 것과 그들이 그것을 들을 것을 너희가 알라.”』(행 28:25-28).
이 말씀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거역하여 그들의 말대로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 합당한 보응을 받고 말았다. 과거에도 파라오의 치하에서 노예생활을 했고(출 2-12장), 이방인들에게 괴로움을 당했으며(판 4-5장), 산헤립에게 억압을 당했고(왕하 19장), 느부캇넷살에 의해 대량학살을 당했던(애 1-4장)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십자가에서 메시야를 죽인 이후 로마에 의해 살해당했고(A.D. 70년), 영국에서 추방당했으며(A.D. 1020년), 유럽에서 박해받았고(A.D. 1096년), 에드워드 1세 때 망명을 해야 했고(A.D. 1272년), 프랑스에서는 재산을 몰수당했고(A.D. 1306년), 독일에서는 화형을 당했으며(A.D. 1348-1350년), 스페인에서는 재산을 약탈당했고(A.D. 1492년), 히믈러와 히틀러에 의해 가스실에서 몰살당했다(A.D. 1935-45년). 그런데도 이 불에 타는 가시덤불은(출 3:2) 소멸되지 않고 살아 남아(말 3:6) 다시 접붙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이방인들(개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의 이방 민족들)은, 과거에는 육체로는 무할례자로 불리운 자들로,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었으며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는 하나님도 없었고 멀리 있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이 열렸고, 사도행전 28장 이후, 참올리브 나무의 일부가 꺾여진 때로부터 A.D. 1900년 정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방인들이 참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지는 축복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유대민족의 수난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러나 본문의 경고대로(롬 11:22), 믿음으로 서 있던 이방인들이 높아지려는 생각을 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롬 11:20)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꺾어버리셨다. 1881년에는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성서와 1884년에는 이를 저본으로 한 <영어개역본, RV>이 나오게 되었고, 1901년에는 <미국표준역본, ASV>이 나옴으로써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되었다. 특히 1904년에는 영국의 해외선교협회에서 그 간 사용하던 하나님의 성경인 <킹제임스 1611년 권위역본> 대신 마귀의 성서인 RV를 공식 성경으로 채택하게 되자 배교의 물결이 기독교계를 덮었고, 경고의 말씀대로 돌올리브 나무는 참올리브 나무로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독교계는 라오디케아 교회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남겨 두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파하는 성경대로 믿는 남은 자들을 기독교계에 남겨 두심으로써 아직은 작은 불빛들이 비추이고 있으며, 본 학회 또한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지금껏 애써 왔음을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주지하고 계시는 바이다.
이방인들의 돌올리브 나무가 꺾이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참올리브 나무를 다시 접붙이시기 위한(롬 11:24) 작업을 서두르셨다. 페르시아의 코레스에 의해 이스라엘이 바빌론 포로로부터 귀환했듯이, 영국의 발포아 외상의 선언으로 고취된 시오니즘운동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하여 본토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손길을 거부하고 유럽에서 안주하려는 유대인들을 내쫓기 위해(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예루살렘에 안주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박해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복음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될 수 있었듯이) 하나님께서 세계 1,2차 대전을 통해 유대인들에 대한 전례 없는 박해를 허락하셨다. 갈 데 없는 유대인들은 본토로 몰려들었고, 1948년 5월 14일, 드디어 카나안의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재건하였다. 그들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탈환하였고, 최근에는 수도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1993년 12월에는 2000년 동안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견지해 오며 자신들이 유대인이라고 자처하던(계 2:9) 로마 카톨릭 당국과 이스라엘의 국교수립으로 하나님의 예언은 종국을 치닫고 있다.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준엄하신 분으로,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로 취한 사람들이 결코 정죄에 이르지 않는다는 약속들(요 5:24; 3:36; 3:16; 10:28,29, 롬 8:38,39, 요일 5:12 등)을 굳게 믿으며, 비록 우리가 자책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그것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전 4:4)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그 믿음으로 의로움이 지켜진다는 사실을 믿는다(갈 2:16,21). 갈라디아서는 믿은 자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로움을 지키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를 이루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 내어드릴 때 우리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율법이 육신을 통하여서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 그 육신에 죄를 선고하셨으니 이는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우리에 의해서가 아님을 유의할 것)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롬 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