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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의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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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2월호>
이제 이탈리아에서의 박해에 관해 살펴보겠다.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1. 로마 카톨릭의 중심이며,
2. 교황의 자리이며,
3. 다른 나라에 자신들을 퍼뜨려서 수천의 마음을 미혹하고 인간의 명철에 미신과 편협함을 보급시킨 다양한 오류들의 원천이다.
로마 카롤릭의 박해는
1. 교황의 즉각적인 권력과
2. 종교재판의 힘과
3. 특별한 성직자 계급의 부추김과
4. 이탈리아 영주들의 편협을 통해 행해져 왔다.
가브리아에서의 박해
14세기에 프라그라와 아우피니의 많은 사람들이 가르라로 이주해서 그곳의 귀족들의 허가를 받아 몇몇 황무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부지런히 경작을 해서 황야와 불모지를 신록이 우거진 비옥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었다. 가브리안의 영주들은 이 새 백성들과 소작인들에 대해 대단히 만족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정직하고 조용하며 근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곳 사제들은 이들에 대해 몇몇 부정적인 불평을 했고, 그들 자신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은 것을 들어 비난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즉 그들이,
* 로마카톨릭이 아니라는 것,
* 그들의 아들 중 아무도 사제가 되게 하지 않았다는 것,
* 그들의 딸들 중 아무도 수녀가 되게 하지 않았다는 것,
* 미사에 참석하지 않으며,
* 그들의 사제들에게 헌물로써 밀랍초를 주지 않으며,
* 순례지를 여행하지 않으며,
* 우상들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가브리안 영주들은 이 사람들이 지극히 무해하며 로마 카톨릭을 해치지도 않으며 사제들에게 기꺼이 십일조를 내며, 그들이 이 나라에 옴으로 해서 그들의 수익이 상당히 증가했으며 결론적으로 그들에게 불평해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사제들을 잠잠케 했다.
이후로 몇년동안 상황이 관용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왈도파들은 두 개의 합병된 도시를 세우고 몇몇 마을들을 그들의 사법권 안으로 병합시켰다.
마침내 그들은 두 명의 성직자를 부르려고 제네바로 사람을 보냈다. 한 명씩 각도시에서 설교를 하게 하고, 그들이 가진 그들의 믿음을 공식적으로 고백하기 위해서 였다. 이런 사실이 교황에게 알려지자 피오 4세(Pius the Fourth)는 가라브리아에서 그들을 박멸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목적으로 그는 다른 두명의 수도승과 함께 알렉산드리노 추기경을 가라브리아로 보냈는데, 그는 매우 폭력적인 기질의 자인하고 편협한 사람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종교 심문관으로 활동하기로 되어 있었다. 권한을 위임받은 이 사람들은 왈도파들이 세운 도시 중의 하나인 세인트 식스트로 가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교황이 임명한 설교자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재산과 생명을 모두 잃을 것이라며 미사에 참석하기를 강요했다.
세인트 식스트 사람들은 미사에 참석하는 대신 가족들과 함께 숲으로 도망하였다. 그러자 추기경은 왈도파의 또 다른 도시인 라 가드로 가서 먼저 문들을 잠그고 모든 거리에 경비를 세우고서는 세인트 식스트에서 했던 것과 똑 같은 제안과 거기에 덧붙쳐저 세인트 식스트 거주민들은 즉각적으로 그 제안을 받아 들였으며 교황이 그들에게 설교자를 임명해 주는 것을 동의했다는 교활한 거짓말을 했다. 이런 거짓 계획은 성공했다. 왜냐하면 라 가드 사람들은 추기경이 그들에게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세인트 식스트의 그들 형제들의 본을 따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쪽 도시의 사람들을 미혹시킴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추기경은 다른 쪽 도시의 사람들을 살해하기 위해 숲으로 군대를 보내어 들짐승들처럼 세인트 식스트 거민들을 사냥했으며,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죽이라는 엄한 명령을 내렸다. 그들의 계획을 알기도 전에 왈도파들은 그들의 포악함에 희생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은 가능하면 자신들의 형벌을 더 귀하게 쓰기로 결심하고 몇몇 전투를 개시하여 반무장한 채 놀라만한 용기를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 양편에 많은 사상자를 내게되었다. 그리하여 추기경은 나폴리 영주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 영주는 즉각적으로 모든 범법자들과 탈주자들과 다른 규정된 사람들이 세인트 식스트 거민들을 대적하는 캠페인을 하고 이 사람들이 모두 박멸될 때까지 계속 군복무를 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의 죄를 확실히 용서해 줄 것이라는 포고문을 나폴리 전역에 알렸다. 그리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모아졌으며 그 영주도 정규군의 사령관으로 추기경과 함류해서 숲에 있는 가련한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했다. 어떤 사람들은 잡아서 나무에 매달아 놓고 그 나뭇가지들을 잘라 불에 태웠으며 사람들을 발가벗겨서 들짐승들과 새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오락용 게임으로 사냥되어졌다. 극소수만이 동굴등에 자신을 숨겼지만 기아에 희생되었다. 그리하여 이 가련한 사람들은 모두 여러 다양한 방법들로 죽임을 당하여 자비심 없는 박해자들의 편협한 악의를 채우는 데 희생되었다.
세인트 식스트 거민들이 박멸되자마자 추기경과 영주는 관심을 라 가드의 사람들에게로 돌렸다. 만약 그들이 로마 카톨릭의 주장을 포용하면 그들과 가족들은 해를 입지 않고 집과 재산을 다시 회복하며 아무도 그들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나, 반대로 이런한 자비를 거절한다면 가장 극단적인 수단으로 그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댓가로 가장 잔인한 죽임을 당하리라는 제안이 제기되었다.
한편의 약속과 다른 면에서의 악의에도 불구하고 이 존경할 만한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거나 로마 카톨릭의 오류를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이에 추기경과 영주는 너무나 격노해서 그들 중 30명을 즉각 고문대로 옮겨 나머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자 했다.
고문대로 옮겨진 사람들은 너무나 잔혹하게 다루어져서 몇명이 고문중에 죽었다. 특히 챨린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잔혹하게 다루어져서 그의 배가 파열되어 내장들이 밖으로 나왔으며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야만성은 그들이 의도한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고문 이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과 고문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같이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며 대담하게 육체의 고문이나 마음의 두려움으로는 그들의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할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뒤 추기경의 명령으로 몇명이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철채찍으로 채찍질을 당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큰 칼로 조각조각 잘려졌으며 어떤 이들은 큰 탑꼭대기에서 던져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역청을 뒤집어 쓴 채 산 채로 회형당하였다.
추기경을 방문한 수도승들 중의 하나는 천성적으로 야만적이고 잔인한 기질의 사람이었는데 추기경에게 요청하여 이 가련한 사람들의 피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흘리게 해달라고 했다. 그의 요구가 허락되자 그는 큰 칼을 꺼내어 80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의 목을 잘랐는데 그와 같은 수의 양들을 도살할 때 도축업자가 갖는 것 만큼의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았다. 모든 시체들이 네 조각으로 잘려져서 기둥에 매달린 채 30마일 내의 마을에 세워졌다.
라 가드의 4명의 지도자가 목 메달렸으며 성직자는 교회탑 꼭대기에서 던져졌다. 그는 심하게 난도질당했으며 단순히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주가 지나가면서 말하기를 “아직도 그 개가 살아있나? 그를 데려다가 돼지들에게 주라”고 했다. 잔인하게도 그대로 시행되었다.
60명의 여인들이 너무나 폭력적으로 고문을 받았다. 가는 줄이 그들의 팔과 다리를 죄어 들어가 뼈까지 이르렀으며 감옥으로 옮겨졌을 때 그들의 상처난 부분이 국부적으로 죽어감으로써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죽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에 처해졌다. 만약 어떤 로마 카톨릭 교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동정적이어서 개신교도들 사이에 끼어들면 그는 즉각 체포되어 이단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으로 인해 그와 똑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영주와 추기경은 각각의 이유들로 인해 다시 나폴리와 로마로 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라브리아에는 개혁종교를 가진 사람 중 살아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무해하고 악의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유와 재산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나서 마침내 다양한 방식으로 살해되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다는 이들의 미신에 희생하기를 거부하고 그들이 증오하는 우상숭배적인 교리들을 허용치 않고 그들이 믿을 수 없는 교사들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 때문이었다.
전제 군주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즉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과, 재산을 탈취하는 것, 마음까지 규정하고 독재하는 것이다. 처음 두 가지는 시민 군주로 불려지며 전 시대에 걸쳐 임시적인 절대권으로 행해져 왔으며 그들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그들의 불쌍한 백성들의 재산을 도둑질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마음을 규정하고 독재를 하는 세 번째 종류는 교회 군주로 불리는데 이것은 앞의 두 가지를 포함하는 가장 나쁜 군주이다. 왜냐하면 로마의 사제들은 그들이 박해하는 사람들의 몸을 고문하고 재산을 탈취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취하고 마음을 고문하고 가능하면 불쌍한 희생자들의 혼에까지 권세를 누리려 하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