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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의 음모와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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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9월호>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8:44).1979년 6월 28일 워싱톤 D.C.의 <카톨릭 스탠다드>紙는 펜사콜라 탈라하세 교구(신약성경 어디에도 ‘교구’라는 말은 없다)의 레네 그라시다 주교가 플로리다 주에서 발행하는 다섯 개의 신문들에 한 페이지 씩을 사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자신의 의견을 전면광고로 실었다고 보도했다. 이 주교는 지난 15세기 동안 정착되고 실행되어 온 카톨릭 교회의 교리와 실행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선언을 했던 것이다. 산 안토니오의 대주교(그는 그라시다 주교보다 한 계급 상급자이다)는 그라시다 주교의 반카톨릭적 이단 발언에 대해 단호히 반박했다. “... 미국의 카톨릭 지도층이 사형제도에 반대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카톨릭 당국은 1974년 11월 19일 이미 그라시다 주교의 의견을 부인한 바 있었다.
그런데 그라시다 주교는 자신의 종교에 관해 터무니 없는 발언을 하면서 사형제도에 반대했다. 그는 자기가 프로테스탄트들의 도덕에 관한 권위자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한 정부가 살인자들의 생명을 취할 권리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펜사콜라성경신학원은 신문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사형제도에 관해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성경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광고가 나가자 미국 전역에 배포되는 카톨릭 기관지 라는 신문의 1면 톱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등장했다. “플로리다에 편협한 신조가 유포되고 있음! 근본주의자들이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주교를 공격하다!” 몽시뇨르 솔라나 신부는 “뉴스저널지에 실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광고는 ‘명예훼손’이며 카톨릭 교회의 역사와 정신에 대한 사실들에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카톨릭 당국은 이 반박문으로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왜 그들은 명예훼손을 회복하려고 소송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카톨릭 당국이 출판한 책만을 가지고도 그리스도인들을 숯불 위에 올려 놓고 태워죽인 자들이 로마 카톨릭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편협한 태도를 보인 집단이(그것도 십 수세기 동안) 바로 카톨릭임이 법정에서 증명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제도 사형제도에 관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과 공개석상에서 토론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더군다나 법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자그마한 사건은 카톨릭 교회사가들이 교회사를 다루는 방식을 잘 예시해 주고 있다. 이미 여러번 지적했듯이 카톨릭 교회가 강력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카톨릭 교인들의 무지 때문이다. 무지한 자를 속이기란 쉬운 일이다. 제리 버터필드라는 로마 카톨릭 교도는 <뉴스저널>紙에 게재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광고에 대해 “그것은 명백한 사실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편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기 의로 가득찬 한 주교가 1500년 간에 걸쳐 유지되어 온 카톨릭의 교리와 실행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것은 괜찮고(이 주장은 바울이 로마서 13:1-6에서 말한 내용을 부인하고 있는데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죄”를 지었다고 거짓말하며, 정직한 광고를 실은 사람들을 명예훼손 죄로 몰아붙이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그 주교의 위선과 어리석음이 성경에 의해 정확히 반박되는 것은 “왜곡되고 편협한 주장”이라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로마 카톨릭 “정신”이다).
紙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자기들의 주교가 게재한 광고내용은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다. 버터필드와 솔라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수세기 동안 실행해 왔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자기들의 주교의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 주교는 카톨릭의 주교였기 때문이다. 그라시다 주교의 거짓말은 덮어두어야 하고 적어도 알리바이라도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주교 자신은 성경적이고 프로테스탄트적인 펜사콜라성경신학원의 광고에 대해 평을 했다. 그 주교가 보낸 편지는 신약성경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바울의 가르침에 모순되는 것이었으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 대한 비방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시킨 것이었다. 몽시뇨르 솔라나는 이 편지가 그 누구의 믿음에 대한 공격도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다. 후천성 거짓말쟁이가 있는가 하면 지금 보는 경우처럼 선천성에 가까운 거짓말쟁이도 있다.
이 20세기에 발생한 조그마한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카톨릭 교회사가들이나 작가들은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자기 회원들의 무지를 이용해서 모든 결론을 친카톨릭적으로 내려버린다는 사실이다.
紙는 사형제도에 대해 성경을 단 한 구절도 인용하지 않았다. 이 잡지는 카톨릭 주교가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것이 왜 옳은지 성경적인 근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교회사에 있었던 단 한 가지의 실례도 언급하지 않은 채 이 잡지는 다만 “사랑의 정신”과 “종교간의 협조”를 내세우면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만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말로만 들먹거렸을 뿐 단 하나의 실례도 들지 않았다. 카톨릭 교인들의 무지에 힘입어 이들은 역사적, 성경적 사실들을 근거로 사형제도에 관한 올바른 입장을 제시한 자들을 편협한 자들로 몰아붙이고 말았다.
교회사를 올바로 배운 학생이라면 일곱 산 위에 앉아 있는 잔인한 살인마(계 17장)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언급한 사실로 인해 어리석고 위선적인 주교에 의해 고소당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 창녀에 대한 모든 자료는 수천 페이지에 달한다(맨하탄, 람버트, 블랑샤르드, 치니키 등). 더군다나 솔라나 신부는 이들 자료들이 잘 수집되어 있어 재판시 언제든지 증거로 제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A.D.1700년 이래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카톨릭 주교나 사제가 “카톨릭 교회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개신교도를 고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감히 나설 수가 없다.
카톨릭 교회의 침묵은 곧 시인과 다름이 없다. 먹이를 잡아챌 때까지는 낮은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들의 속임수는 카톨릭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교회는 경건하고, 영적이며, 공정하지 못한 “고집쟁이”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성경과 성경적 진리를 배제시키는 것은 카톨릭 교인들로 하여금 사실확인을 위해 성경을 공부하는 “위험”을 방지해 줄 것이다. 그 어떤 카톨릭 지도자도 성경 토론에 공식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카톨릭 군주(제임스 2세)가 영국의 보좌에서 물러나고 카톨릭 교도는 더이상 영국의 권좌에 오를 수 없도록 되자 영국은 전세계의 최강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1776년 미국에서의 13개 식민주를 잃긴 했어도 여전히 영국은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세계 최강국이었다. 북부 독일의 개신교 집안인 하노바 왕가로부터 시작된 영국의 하노바 왕조는 영국을 지상 최대의 강국으로 부상시켰다. 반면 로마 카톨릭 통치자들(1400-1789)에 의해 다스림을 받게 된 프랑스와 스페인은 최강국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여 결국 가장자리로 떨어지고 말았다. 카톨릭 군주였던 루이 14세와 카톨릭이었던 나폴레옹의 치리 시절 군사 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린 것을 제외하고는 프랑스는 과거의 영광을 결코 재현하지 못했다.
1870년 북부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출신 비스 마르크는 남부 독일의 카톨릭 오스트리아를 물리친 후 프랑스 카톨릭들을 지배했다. 만약 미국이 1917년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독일은 프랑스를 완전히 장악했을 것이다. 어쩌면 영국까지도 장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1917년의 영국은 반카톨릭적 입장을 포기한 채(1904) 해외선교 분야에서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 헬라어 본문을 출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건들은 세속사에 속하는 것으로 국제정치, 해외공관장 및 정치가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국이 점령했다.” 혹은 “스페인이 화란을 공격했다.” 혹은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라는 말은 정확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것임을 인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은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 살인은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질 뿐이다. 국가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조언이나 결정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러시아를 대항했다.” 혹은 “프랑스가 독일과 영국을 대항했다.” 이런 식의 표현이 중고교 및 대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은 사실을 은폐시키려는 시도일 뿐이다.
이러한 전쟁들에 관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려면 전쟁 혹은 조약들을 체결하는 당사자들의 교육, 성장과정, 철학, 동기, 행위 등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은 거대하고 강력한 정치조직이 갑자기 한 민족 전체(영국)의 지배권을 상실하고 이 민족이 세계 최강의 해군력과 식민지를 소유하게 되었다면 교황들, 주교들, 추기경들, 예수회 사제들, 대주교들, 수도승들, 수녀들 및 “교황청 대사들”로 이루어진 카톨릭 교회가 “좋아, 로마서 8:28 말씀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겠지 뭐! 자,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합시다.”라고 말할 것 같은가?
예를 들면 1760년경 로마 카톨릭 교회는 독일의 절반, 영국과 스코틀랜드 전부, 아일랜드의 상당부분, 미국의 13개 식민주에 거주하던 대다수의 주민들을 상실했다. 프랑스에서도 미묘한 상황이 전개되어 20년 뒤에는 민중혁명이 발생해서 카톨릭 교회의 전재산을 몰수해 버렸다. 만약 여러분과 여러분의 친구들이 프랑스, 영국 및 아일랜드와 군주들을 오랫동안 지배해 오던 15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정치조직의 일부라고 한다면 당신들은 이러한 사태에 직면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우리는 이미 사유재산 제도와 민주주의를 항상 믿어 왔었는데 잘된 것 같소!”라고 말할 것인가? 만약 당신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들이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말을 믿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여기 필라델피아 교회시대에는 만여 명의 목사, 교사, 선교사, 복음전도자들이 손에 <킹제임스성경>을 들고 전세계를 누비면서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힌두교도, 불교도, 도교신자, 모슬렘 그리고 심지어는 몽고인들까지(예를 들면 1843-1891년 사이 몽고 선교사로 갔던 제임스 길보아) 전세계에서 모든 인종들을 그리스도께로 회심시키고 있는 동안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에서 번역된 <림즈 듀웨이> 성경은 아무 열매도 없이 바티칸 도서관에서 썩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이 당시(1800-1900)의 바티칸 당국에 관여하고 있었다면 어떻게든 오리겐에서 유래된 제롬의 아프리카 본문을 가지고 에라스무스의 <표준원문>을 대체하려 하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세련된 감각”을 지니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비하시도록 하기 위함이다. 앞으로 전개되는 내용들이 어떤 분에게는 “역사적 사실들”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분들에게는 “명예훼손”이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나, 만약 당신이 로마 카톨릭 교도라면 감히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카톨릭 당국의 눈에는 모든 반카톨릭적 “사실”들은 “편협된 왜곡”일 뿐이다.
맥아더 장군은 한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들은 평화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평화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신학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평화계획”에 교회 말고 그 누가 더 관심이 있겠는가? 맥아더 장군과 같은 세대였던 존 케네디는 유엔 연설에서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1963. 9. 22). “우리는 종교적인 불의를 정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케네디가 말하고 있는 우리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 전체가 소속되어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인가? 그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저주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법과 교령집에도 모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반 카톨릭일 경우 이들은 이단이며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케네디는 자신이 속한 그 교회의 신학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던가?
맥아더는 “평화”는 신학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존 케네디는 자기 교회의 주교들과 교황들이 프랑스에서 1002, 1077, 1114, 1172년에 불태웠던 카타리들에 관해 알고 있었을까? 그는 교황 중 한 사람(알렉산더 3세)이 프랑스에 살던 성경대로 믿는 모든 알비겐스들을 저주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도대체 “종교적 불의” (religious injustice)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자기가 속해 있는 그 집단이 종교적 불의의 대명사인 줄도 몰랐단 말인가?
우리는 교회사에서 등장하는 온갖 불의들이 역사가들에 의해 교묘히 다루어지고 있음을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살펴본 바 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 때의 시대 분위기였을 뿐이다.” 그들은 이러한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은 후 역사가들 모두가 자기들처럼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라토레는 루터가 유대인들의 학교를 불태우는 데 찬성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는 과연 학교를 불태웠는가? 그것은 루터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었는가? 1554-1555년(루터와 동시대) 교황 피오 5세는 유대인들에게 강제로 침례를 주라고 명령했다. 거절하면... 그 다음은 뻔한 일이었다. 로마에서는 2430명의 유대인들이 침례를 받았고 그 중 몇 사람은 교황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루터는 그 어떤 유대인에게도 강제로 침례를 주지 않았으며 그 어떤 유대인 학교도 불태운 적이 없다. 어째서 라토레는 쓸데 없는 짓을 하는가?
루터와 동시대였던 피의 메리(1585)는 250명의 프로테스탄트를 불태웠다. 역사상 250명의 절반이라도 카톨릭 교도를 불태운 프로테스탄트 통치자가 있으면 세 명만 이름을 제시해 보라. 1534년 프란시스 1세는 카톨릭 주교들과 향연을 즐기다가 35명의 루터교도들을 불태웠다. 1534년 당시 루터교도였던 그 어떤 통치자가 그 절반이라도 카톨릭 교도를 불태운 적이 있단 말인가? 만약 카톨릭 교회사가들의 말대로 “시대의 분위기”가 행동을 결정한다면 왜 카톨릭과 개신교도 사이에는 이처럼 커다란 차이가 나는 것인가? 한 마디로 카톨릭 정신이란 사탄적이며 늘상 일관되게 사탄적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양심의 자유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어떤 루터교도도, 칼빈주의자도, 침례교도도, 메노나이트교도도 그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클레멘트 8세가 “시대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교황 피오 9세는(266년이나 지난 후)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 종교를 결정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는가? 1598년과 1864년 사이에 시대정신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왜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교황들의 생각은 동일한가?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어떤가? 경제적 억압, 사회적 불평등, 짓밟힌 대중 등등을 언급하면서 부자들의 의무는 “갖지 못한 자들”과 부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는 카톨릭 교도들은 자신들의 최고 통치자가 1400개의 방이 있는 궁궐에서 19개의 방을 소유하고 있으며, 10대의 자가용과 100대의 개인용 전화기 그리고 식수공급 및 가스 공급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수많은 저택들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자는 짓밟힌 대중들과 무엇을 함께 나누고 있는가? 맑스와 레닌이 살아 있다면 이 자의 태도를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이것이 “민중”의 교황인가? 교황 바울 6세는 자신은 이런 상황에서 살면서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그것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더 위선적인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기 교회의 회원들이 완전한 암흑 가운데 거하는 직업 배우 말고 그 누가 그와 같은 위선을 말할 수 있겠는가? 카톨릭 교회법에 따르면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이단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어떤 교황도 미국의 권리선언이나 독립선언문을 정직하게 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실도 모른 채 미국의 5천만 명의 카톨릭 교도들은 매우 “애국적”인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한 명의 카톨릭 교도는 자기가 소속된 교회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여 죄를 지은 것이다. 모든 교황의 교서와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만이 미국(세계 어느 곳이든)의 모든 카톨릭 교도들의 양심을 규제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만약 이들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가르친다면 이단으로 이들을 처단할 수도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이 카톨릭 교회법과 교황의 교서를 인용하면 카톨릭 당국은 당장 나서서 우리에게 “카톨릭 정신을 모독한다”고 공격한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그라시다 주교나 버터필드 및 솔라나 신부 등이 하는 일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서 왜 교양있는 사람들이 예수회에 대한 언급에 대해 그처럼 분개하는지를 알려면 예수회의 역사를 잘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들 예수회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원칙 하에 움직이는 사교집단이다. 카톨릭 교황과 교회에 이득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니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옳은 일을 하기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못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차이점을 알겠는가? 다음 호에서는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를 향한 본격적인 카톨릭의 반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